• 주간한국 : 벤츠를 단돈 1원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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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3.09.24 16:52:50 | 수정시간 : 2003.09.24 16:52:50
  • 벤츠를 단돈 1원에 산다?

    가격파괴 인터넷 경매사이트 급증, "경매냐 도박이냐" 논란



    시장에서 상품의 가격이 결정되는 가장 기본적인 공식은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다.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면 가격이 높아지고 그 반대면 가격이 떨어진다. 자장면 한그릇, 볼펜 한 자루 등 우리가 무심코 받아들이는 상품의 가격들도 알고 보면 이 공식에 충실히 따르고 있다. (물론 독점이 형성됐는지 물품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지등 시장 환경에 따라 수요가 줄어도 가격이 올라가기도 한다.)

    경매 시장은 소비자가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직접 체감할수 있는 좋은 공간이다. 예로 컴퓨터 한 대가 나왔다 치자. 50만원에서 시작한 가격은 사겠다는 사람, 즉 수요가 늘어날수록 높아지기 마련이다. 60만원, 70만원, 80만원…. 누군가 99만원을 적어냈고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 사람이 없다면 바로 그것이 시장 가격이 된다.

    헌데 요즘 이 법칙을 파괴한 경매 사이트가 인터넷 공간을 휘젖고 있다. 휴대폰이나 MP3 플레이어는 물론 고급 외제 승용차가 단 돈 몇 백원, 아니 몇 십원에도 살 수 있다고 유혹한다. 말이 가격이지 이쯤 되면 사실상 거저 물품을 구입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눈속임도 아니다. 알고 봤더니 모형 제품이라든지 혹은 추가 수수료를 요구한다든지 하지 않는다. 단지 아주 특이한 방식의 경매에 비결이 있을 뿐이다.

    BMW 승용차를 단 돈 269원에 낙찰 받았다느니, 벤츠 승ㅇ요파를 8,401원에 샀다느니 횡재를 낚은 낙찰자들이 이미 수백 명에 달한다.

    물론 수요에 비해 공급이 폭증하는 바람에 가격이 떨어져 생긴 현상이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공급은 제한돼 있고 수요는 넘쳐 난다. 그렇다면 적어도 이 사이버 공간에서 수요와 공급의 법칙은 유용하지 않은 경제학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수많은 네티즌들의 껌 한 통 가격으로 외제 승용차를 구입하는 기적을 이루겠다며 분주히 입찰 참가 버튼을 클릭하고 있다.


    상품이 아니라 입찰 기회를 판다



    '위시 옥션(Wish Auction)'. 최저 1원에 외제 승용차 등 고가의 상품을 구입할 수 있다는 대대적인 홍보와 함께 급속히 쇼핑몰 시장을 잠식하고 있는 신 개념의 경매 방식이다. 이 정체 불명의 용어는 고객들의 바람이 이뤄지는 경매라는 뜻에서 붙여진 것이라고 했다.

    뭔가 대단한 아이디어가 숨어있을 것 같지만 알고 보면 비결은 무척 단순하다. 상품을 파는 것이라기 보다는 입찰 기획를 파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입찰 기획가 주어지는 기존 경매와 달리 입찰 쿠폰을 팔아서 그 돈으로 상품의 가격을 충당한다는 얘기다. 쉽게 이야기 하면 '사이버 경매장'에 들어갈 수 있는 '티켓'을 파는 것이다. 그러니 입장료 수입만 두둑하면 (최소한 상품가격보다는 많을 것이다) 상품이 10원에 낙찰되드 300만원에 낙찰되든 회사는 별로 관심이 없다. 5,000만원짜리 승용차가 1원에 팔리든 5만원에 팔리든 거기서 거기일 뿐이다.

    아니 싸게 팔리면 팔릴수록 회사측에 득이 된다. 그만큼 홍보 효과가 커 입장료 수입을 많이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회사의 관심은 오직 입찰 쿠폰(입장 티켓)이 얼마나 팔리는지에 있다. 입찰 쿠폰 장당 가격은 회사별로 1,000~2,500원. 2,000원 짜리 쿠폰3만장만 입찰에 참여하면 6,000만원으로 낙찰가가 얼마가 ?祁?외제 승요차 가격을 충분히 충당할 수 있다. 입찰자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대박을 누리는 건 단 한명의 고객과 회시 뿐인 셈이다.

    업체별로 다소 차이는 있지만 '워시 옥션'의 방식은 대체로 이런 식이다. 입찰 쿠폰을 산 고객들이 1원에서 시중가의 0.1~10%정도까지 형성된 입찰 범위 내에서 원하는 가격을 비공개로 적어 낸다. 경매가 종료되는 시점에서 가장 낮은, 혹은 가장높은 가격을 단독으로 적어낸 사람에게 낙찰의 행운이 돌아간다.

    예를 들어 최저가 낙찰 방식의 경우 1원에 3명, 2원에 2명, 3원에 1명의 입찰이 이뤄졌다면 해당 상품의 낙찰가는 3원이 된다.


    더 싸게, 그리고 더 많이



    '워시 옥션' 방식이 처음 등장한 것은 지난 2월이었다. 코스닥 등록 업체인 코리아 텐더가 개설한 '맥스턴(www.max10.co.kr)'. 시중가의 10%를 입찰 최고 가격으로 정해놓은 뒤 최고가 낙찰을 하는 방식이었다.

    2월24일 시작?첫 회차 경매에 등장한 상품은 승용차, 피아노, 휴대폰 등 10개였다. 최고가 상품인 시중가 974만원의 아반떼XD 승용차는 입찰 범위가 1원~97만4,000원. 100만원도 안 되는 가격에 신차를 구입할 수 있다는 희소식에 알음 알음 고객들이 몰려 들었다. 1주일 뒤 입찰을 마감한 결과 아반떼 승용차는 97만3,740원. 최저가 상품인 삼익 디지털 피아노(시중가 79만9,000원)는 7만9,885원에 낙찰됐다.

    맥스텐이 회차를 거듭할수록 인기 몰이를 하면서 로윈닷컴(www.lowwin.com), 세븐투데이(www.seventoday.co.kr)등 유사 쇼핑몰이 줄을 잇기 시작했다. 경쟁자들이 늘어나면서 입찰 최고가를 시중가의 1%, 로윈닷컴은 한 술 더 떠 0.1%로 낮추었다. 게다가 낙찰가가 비교적 높을 수밖에 없는 최고가 낙찰 대신 최저가 낙찰 방식이 대세로 자리 잡았다.

    상품의 종류도 휠씬 많아졌고, 훨씬 고급스러워 졌다. 국산 승용차가 차지하고 있던 최고가 상품의 자리에는 시가 수천만원의 외제 승용차가 들어 섰고, 초기 10여개에 불과했던 상품 수는 승요차와 가전 제품은 물론 귀금속, 상품권 등까지 가세하며 30~40개로 늘어났다.


    1주일에 300만원을 베팅한다



    신종 업종이라는 그럴싸한 포장에도 불구하고 '위시 옥션'은 사행 행위를 조장한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형식은 분명 경매이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사실 복표나 다름 없다. 돈을 주고 입찰 쿠폰을 구입해서 경매에 참석하는 것이 대박을 노리고 복권을 구입하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업체들도 이 같은 비판을 의식한 듯 1일 입찰 한도를 정해놓고 있기는 하다. 맥스텐의 경우 1일 150회. 로윈닷컴은 200회. 입찰 쿠폰이 1,000원으로 가장 저렴한 세븐투데이의 경우 상품당 1일 입찰 한도가 600회로 정해져 있다. 하지만 생색 내기에 불과하다.

    맥스텐, 로윈닷컴의 경우 1주일 단위로 경매가 이뤄지기 때문에 실제 한 회차에 입찰 할 수 있는 쿠폰을 금액으로 환산하면 300만원에 육박한다.

    8월29일 마감한 로윈닷컴의 10회차 경매에서 최고가 상품인 '벤츠C200K'의 경우 1인당 평균 입찰 수는 7.45회. 재미 삼아 1회씩 응찰하는 이들이 전체의 50%가 넘는 것을 감안하면 한 상품 당 수십회씩 참가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얘기다. 로윈닷컴 심 경 차장은 "1일 200회 한도를 모두 채워 입찰에 참여하는 고객들도 상당수 있다"고 말했다. 비록 형식적이기는 하지만 로또의 구매 한도를 1인당 10만원으로 제한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로또를 휠씬 능가하는 도박인 셈이다.

    사이트를 전전하며 지금까지 1,000만원 가까이 쏟아 부었다는 직장인 이모(38)씨는 "지금까지 낙찰을 받은 것은 70만원짜리 인라인 스케이트 단 한 개 뿐"이라며 "처음에는 재미로 시작했다가 이젠 오기로 덤벼들고 있다"고 했다.

    횡재를 노리는 고객들이 늘어날수록 업체들은 출범 몇 개월 만에 돈방석에 앉을 태세다. 앞선 '벤츠C200K' 입찰에 참여한 쿠폰 수는 모두 5만3,254장. 쿠폰 1장의 가격을 2,000원씩으로 계산하면 회사측이 벌어들인 돈은 족히 1억원이 넘는다. 차량의 실제 가격이 5,240만원이니 각종 부가 경비를 감안하더라도 이미 '두 배 장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업계가 직면한 내우외환



    현행 사행 행위 등 규제 및 처벌 특례법은 국가 기관외에 민간의 경우 어떤 이유로든 복표 사업을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민에서 사행 행위를 조장할 수 있다는 이유다.

    만약 '위시 옥션'이 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복표사업에 해당한다면 형사 처벌까지 감수해야 한다는 얘기다.

    아직까지 이에 대한 유권 해석은 없다. 신종 업종이 워낙 많은 탓에 정부는 아직 이런 업종이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상태다. 경찰청 한 관계자는 "인터넷을 통해 신종 영업을 하는 사이트들이 많지만 일일이 다 법률적 검토를 하기 어렵다" 며 "사행 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보다 면밀한 검토가 이뤄진 뒤에야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업체들도 당당하다. 저마다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충분한 법적 검토를 했다고 주당한다. 코리아텐더 김철호 팀장은 "인터넷을 통해 제품을 유통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복표 사업과는 엄연히 다르다는 법무법인의 유권해석을 받아 놓았다"고 했다.

    이런 업계 주장과 달리 법조계 일각에서는 정부 당국이 무관심해서일 뿐 적극적으로 단속에 나선다면 문제가 될 소지가 크다고 지적한다. 한 변호사는 "수천만원 호가하는 상품에 붙은 몇 백원의 판매가는 정상적인 가격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결국 입찰 권리를 판매해 행운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인 만큼 복표 사업과 유사한 것으로 보여진다"고 해석했다.

    경쟁이 거세지면서 업계 내부도 심가한 홍역을 앓고 있다. 가장 늦게 사업에 뛰어든 세븐투데이측은 2000년 '위시 옥션' 방식에 대해 특허 출원을 낸 뒤 지난 5월 특匙佇舅?마친 상태. 회사측은 경쟁 업체들이 특허권을 침해했다며 최근 형사고발까지 하고 나섰다.

    이 회사 최진우 팀장은 "사실 특허를 낼 때만 해도 시중가의 70~80% 정도에서 낙찰이 이뤄지도록 할 방침이었는데 시장에 먼저 뛰어든 업체들이 질서를 흐려 놓았다"며 "살아 남아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에 저가 공세에 동참하기는 했지만 특허 분쟁이 마무리 되면 건전한 영업 방식으로 전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민간 업체들이 사실상 복표 사업에 나서다 보니 해킹이나 사기 등이 발생할 소지도 충분하다. 각 회사들은 인터넷 보완 업체들과 계약을 맺고 보안 관리에 주력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해킹이나 사기 위험에는 늘 노출돼 있는 상태다.

    최근 로윈닷컴의 경우 9회차 경매의 소렌토 승용차 입찰 과정에서 해킹 사고가 발생해 전 고객에게 입찰 쿠폰을 되돌려주는 일도 발생했다.

    인터넷 쇼핑몰 업체 한 관계자는 "현재 유사한 방식의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업체가 꽤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대로 방치하면 국민의 사행 심리를 부추기고 인터넷 쇼핑몰 시장의 질서가 크게 훼손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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