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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3.10.02 10:27:11 | 수정시간 : 2003.10.02 10:27:11
  • [주말이 즐겁다] 강원도 인제군 점봉산
    속 깊은 그 곳, 생명이 숨쉬는 원시의 자연





    옛 선인들은 산을 높이로 따지지 않고 깊이로 따졌다. 제 아무리 산이 빼어나도 산이 깊지 않으면 명산 반열에 오르지 못했다. 산은 다른 자연과는 다른 무한한 정신성을 함축한 곳이라는 인식에 기인한 것으로 입산(入山)이란 말도 여기서 생겨났다.



    점봉산은 입산이란 말에 제대로 어울리는 깊은 산이다. 한계령을 가운데 두고 설악산과 마주하고 있으면서도 산의 모양새는 딴판이다. 설악산이 깎아지른 암봉으로 금관을 씌워놓은 듯이 빛난다면 점봉산은 색 바랜 검정치마처럼 수수하다. 마치 만삭을 앞둔 임산부의 배처럼 그저 볼록하기만 하다.



    그러나 속이 깊다. 세속의 그 모든 번잡함을 한 순간에 끊어내는 깊고 깊은 품이 숨겨져 있다. 극상의 원시림이 숲을 이루고, 한낮에도 어둑어둑한 숲을 가르며 시린 계곡물이 흘러간다. 점봉산으로 드는 순간 우리의 몸과 정신은 무한경쟁의 시대에서 한 걸음 떨어져 나와 자연이 분출하는 생명감에 흠뻑 젖고 만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가는 원시림





    점봉산의 속 깊은 품을 만나려면 설피밭으로 가야 한다. 인제군 기리면 진동리에서도 점봉산의 아늑한 품에 안긴 설피밭은 몇 해 전만 해도 반나절은 다리품을 팔아야 하는 오지였다. 요즘도 겨울이면 폭설로 길이 끊기는 일이 왕왕 있다.



    양양 양수발전소 상부댐이 만들어지면서 숲이 망가지고, 개발의 손길이 뻗치고 있지만 그래도 점봉산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가는 숲이 있는 곳이다.







    설피밭으로 가는 길은 비포장길이다. 기린면 방동리에서 8㎞ 쯤을 덜컹이며 가야 하는데, 진동계곡의 맑은 물소리를 들으며 가는 길이라 지루하지 않다. 또한 600m가 넘는 고지대라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시원함이 온몸을 휘감는다. 흥얼흥얼 콧노래도 절로 나는 산길을 하염없이 가다 보면 소가 바람에 날라 갔다는 쇠나드리에 닿는다. 조침령을 넘어 양양으로 가는 길이 나뉘는 이곳을 지나서 다시 6㎞를 가면 설피밭이다.



    설피밭에 머물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점봉산의 깊은 속내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어렵게 찾아온 곳인 만큼 점봉산이 분출하는 자연의 깊은 맛을 느끼려면 계곡으로 들어가야 한다. 설피밭 끝 집인 하늘카페에서 왼쪽으로 강선골로 가는 길은 오지마을과 숲을 모두 즐길 수 있다.



    갈림길에서 차는 들어갈 수 없는 오솔길로 20분쯤 가면 강선골 마을에 닿는다. 곰취나 더덕 같은 산나물로 살아가는 산골 사람들의 고단한 삶을 엿보다가 산길로 10분쯤 더 올라가면 폭포물살 소리가 쩌렁쩌렁 울리는 곳에 닿게 된다. 땀방울이 금새 서늘한 기운으로 변하고 삽시간에 몸이 덜덜 떨린다. 아무도 없는 깊은 산중에 파묻혀 폭포물살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답답한 가슴이 후련해 진다.



    숲이 제 홀로 깊어지며 생과 멸의 끝없는 순환의 고리를 이어가는 모습을 보려면 단목령쪽이 좋을 듯 싶다. 강선골 갈림길에서 내친걸음으로 직진하면 하늘카페 를 지나 계곡을 건넌다. 오솔길을 따라 15분쯤 가면 단목령에 닿는다. 강선골도 그렇지만 이곳 역시 산을 오르는 길이기 보다 원시의 숲으로 난 산책로처럼 부드럽고 편한 길이다.




    백두대간을 넘던 단목령





    백두대간의 큰 줄기를 잇는 단목령은 오색을 거쳐 양양으로 가던 옛길이다. 오색에서 올라온다면 가파른 비탈길을 오르느라 두 시간쯤 비지땀을 흘려야 한다. 예전에는 지게에 소금 한 가마씩 지고 소금장수가 오가기도 했고, 감자 몇 말을 인 아낙들이 넘나들기도 했다. 그런 산골의 애환 어린 풍경들이 문명의 편리에 지워져 가고, 이제 오지의 깊은 정취도 사라지는 것이 못내 아쉽다.



    시원한 숲 그늘에서 충분히 쉬고 나면 숲의 풍경들이 눈에 들기 시작한다. 껍질이 종이처럼 벗겨지는 자작나무며, 키가 허리춤 밖에 오지 않지만 수령은 무려 200년이 넘는다는 잣나무, 박달나무, 고로쇠나무, 음나무, 물푸레나무 등 마치 식물도감을 펼쳐놓은 것처럼 다양한 수목들이 앞서서 나서며 제 모습을 통기한다.



    투명한 연둣빛에서 짙은 녹색에 이르기까지 제각각의 나뭇잎이 어울려 녹색의 향연을 펼친다. 싱그러운 생기로 충만한 숲의 파노라마를 정신없이 훑다 보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각박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 길라잡이





    서울에서 6번 국도를 따라 양평을 거쳐 홍천(44번 국도)으로 간다. 홍천을 지나 인제 방향으로 달리다 철정 삼거리에서 451번 지방도를 따라 가면 31번 국도와 만나 상남 거쳐 기린면에 닿는다. 기린 면소재지에서 우회전해서 방대천을 따라 12㎞ 가면 포장도로가 끝이 난다. 비포장도로를 따라 8㎞ 가면 쇠나드리에 닿고, 다시 이곳에서 6㎞ 가면 진동리 설피밭이다.



    설피밭에는 통나무와 진흙을 이용해 지은 설피산장(033-463-8153)을 비롯해 민박집이 두어 곳 있다. 하지만 식당은 없다. 취사도구를 가져가거나 아니면 산장에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



    김무진 여행칼럼니스트 badagum@hk.co.kr


    입력시간 : 2003-10-02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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