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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3.10.02 11:11:47 | 수정시간 : 2003.10.02 11:11:47
  • [이 여자가 사는 법] 동화작가 '오진희'
    추억하나, 보물하나 '짱뚱이'는 내안의 나





    어린이날, 어버이날이 사흘거리로 들어 있는 가정의 달, 우리는 자주 아이들이나 어른들과의 소통을 힘들어 한다. 그런데 변방의 동화작가 오진희(40)가 만들어내는 세계, ‘짱뚱이 시리즈’(동화만화)에는 모든 세대 간의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독특한 이야기 방식이 있다.



    짱뚱이가 사는 마을 ‘장수’에 다녀온 도회지의 영악한(?) 아이들은 한번도 먹어본 적이 없는 찐 고구마와 얼음이 서걱거리는 동치미 국물이 어우러지는 맛을 그리워하고, 어른들은 어슴프레 기억 저 편에 묻힌 고향마을이 무작정 그리워진다.



    만화라는 매체가 아이들에게 갖는 침투성을 고려한다 해도 ‘짱뚱이’가 갖는 특수성에 크게 흠집이 가지 않는 이유는 ‘고향’을 가진 사람이든 아니든 모두 ‘고향’을 그리워하게 만드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불과 1, 2년 안 되는데, 작가라는 이름을 제 이름 앞에 붙이기도 참 부끄럽고 어색해요. 특히 올해는 좀 빈번했는데 적응이 잘 안 되네요.”



    그러나 분명 그녀는 그녀만의 이야기 방식을 만들어냈고, 그 방식은 그녀의 살아온 내력 곳곳에 보물찾기의 보물들처럼 숨겨져 있었다.






    안티, 안티, 안티…





    80년대 초반의 험준한 학생운동권 한복판에 있었고, 졸업 후엔 노동운동 판에서 살았던 작가에게 ‘짱뚱이 시리즈’(파랑새 어린이출판사 펴냄)를 쓰기 이전의 시간은 어린 시절의 ‘짱뚱이’를 잃어가는 과정이었다.



    “운동하는 사람들이 망가지는 이유가 안티, 안티하다보니 스스로 안티 성향이 돼버리고 모든 것에 비판적이다 보니 사람이 굉장히 시니컬해지고 그 안에 미움과 화가 들어차요. 제가 원래 굉장히 감성적인 사람이었어요. 겉보기엔 강하고 카리스마까지 있어 보인다는데(웃음) 그거 있잖아요, 자기의 여린 면을 방어하기 위해 더 그랬던 것도 같아요.”



    학교를 졸업하면서 자기 안의 분노와 미움을 보듬을 새도 없이 방적공장으로 위장취업 했다. 대개 ‘학출’(학생출신)들이 3개월을 못 버틴다는 그곳에서 그녀는 꼬박 3년을 살았다. “제 삶이 이러니까 원래 갖고 있던 여린 부분은 방어하고 다혈질적인 성향은 당위성, 정의 그런 것에 치우쳐 저 자신은 점점 더 힘들어지는 거예요.”



    1985년 이후 무너지기 시작한 동구권 상황은 국내 운동권의 꿈과 이상을 송두리째 무너뜨리고 그 안에 있던 사람들조차 역사의 수레바퀴 밑으로 밀어 넣는 것을 목도하게 했다.







    “참, 힘든 세대잖아요. 입산파도 있고, 정말 망가진 사람도 많고. 제가 무사히 그 지점을 빠져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저희 부모님(교사)과 공장 노동자들에게 배운 성실 때문이었어요. 돈 벌어 엄마한테 냉장고 사주고, 오빠 학비 대주는 일이 기쁨인 거예요.



    자본가에게 착취당하는 것 이전에 그게 한 인간으로 굉장히 긍정적으로 보였어요. 학출들은 안 그랬거든요. 우리 부모가 왜 나한테 이거밖에 안 해주나, 이거였거든요. 나는 그 친구들한테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할 줄 아는 것과 성실을 배웠어요.”



    안티에 안티를 거듭해 나락으로 떨어질 즈음 그녀가 발견해낸 긍정의 씨앗이었다. 힘든 가운데 발견한 씨앗 한 톨은 환경운동을 접하면서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제가 운동을 하면서 늘 품던 의문이 있잖아요. 대안, 대안! 근데 환경운동철학은 제가 원래 갖고 있던 자연을 사랑하는 것들과 너무나 맞아떨어졌어요. 이거다 싶었어요.”



    그러나 그때, 이미 그녀의 심신은 지칠 대로 지쳐있었고, 아름다운 스무 살의 청춘이 이슬처럼 사라져버린 뒤였다. “뭔가 잃어버렸다는 생각도 많이 했지만, 역사가 흘러가면서 긴급하게 요구하는 게 있고, 나는 그것에 부응해야 한다는 생각도 많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했던 거에 대해 후회하진 않아요. 다만 그 과정에서 선생님이신 저희 부모님들한테 미안한 건 있어요.”








    ‘긍정’으로





    그녀는 환경운동의 과정을 그가 10여년 잃어버리고 살았던 ‘어린 짱뚱이’를 찾아가는 치유의 과정이라 말한다.



    “‘짱뚱이’를 시작할 때 남편하고 얘기한 게 뭐냐면, 그때까지 남편이 썼던 건 다 고발성이 강한 거였잖아요. 우리가 항상 얘기하는 게 대안인데 그 전에는 우리가 분리수거를 하자고만 해도 빨갱이 소리를 들었지만, 지금은 누구나 다 그 소리를 한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지금 그 소리를 해야 할 때는 아닌 것 같다. 이것이 꼭 대안은 될 수 없지만 내가 잃어버린 것을 좀 찾고 싶다는 거였어요.”



    80년대를 관통하느라 지친 그녀의 기억 속에는 남들이 쉬 잊을 법한 어린 시절의 노래며 놀이, 자연의 품에서 피고 지던 풀과 꽃들과 비, 바람의 기억이 영상처럼 늘 남아있었다.



    “사실 치유가 있죠, 내 안으로 들어가면서 되는 거잖아요. 상처받은 사람을 치료하는 기법 중에 ‘이야기 치료’라는 게 있어요. 자기 어렸을 때의 사건을 재정리하는 거예요. 지금 이 시점에서 자기가 하고 싶었던 쪽으로. 왜 우리는 어릴 때부터 자기감정표현을 잘 못했잖아요. 근데 여기 짱뚱이는 안 그래요. 떼쓰고, 울고….(웃음)”



    위로 딸 넷 중 하나는 장애인이고, 그 밑으로 쌍둥이를 낳은 그녀의 엄마는 자주 아프면서도 늘 뭔가 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바빴고, 또 늘 아픈 동생에게 매달려야 했다.



    “저는 거의 혼자 장돌뱅이처럼 돌아다녔대요. 애들이랑 밥 먹고 놀다가 혼자 어디론가 없어지는 거예요. 어릴 때부터 별명이 짱뚱이라 우리 엄마가 짱뚱이 어디 갔냐고 물으면 5리나 되는 길을 혼자 걸어 영화를 보러 갔다거나, 어디 뭐 새우 뜨러 간다고 쫓아갔다 해서 한 밤중에 저를 찾느라 난리를 치고(웃음). 아마도 제가 도회적인데서 자랐다면 문제아가 되었을 거예요. 자연 속으로 들어가면 거기서는 소외당하는 게 없잖아요. 늘 혼자였던 제가 그런 환경에서 놀지 않았다면 어디 갔겠어요.”



    환경운동의 철학이 그녀의 시각을 긍정적으로 바꾸어주었다면, 짱뚱이 작업을 통해 스스로를 치유해나가는 자신을 경험하고 있다. 그러나 시작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다.







    “‘짱뚱이’를 처음 쓰려고 할 당시 모든 것이 제가 기대했던 삶이 아니었어요. 결혼생활도, 아이들 뒷바라지도 힘들었어요. 내가 운동을 하면서 부자로 살길 원하진 않았지만 경제적으로도 너무 힘들었고요. 그런 상태에서 내 어린 시절로 돌아가 거기서부터 하나하나 쭉 올라오는 거, 물론 아이들을 위해 자연을 미화시키는 것도 있지만 제 삶을 다시 정리하는 일이기도 했지요.



    이건 제 환경운동철학과도 관련이 있는데, 힘들고 구질구질했던 과거 속에 이런 것이 깨끗하니까 이렇게 살자고 외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런 삶을 그냥 그대로 들려주면서 인정하는 거죠. 숨기고 싶은 얘기를 드러냄으로써 비로소 치유도 가능해지는 거고요.”



    작가 자신이 자신의 어린시절로 기꺼이 돌아가 마치 새로 살듯, 잘못 맞춰 엉긴 퍼즐을 하나하나 풀어가는 작업방식, 여느 만화들과 달리 ‘재미’와 ‘교훈’을 강요하지 않고 있는 그녀의 독특한 이야기방식의 열쇠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우리의 동화들은 너무 설명적이고 훈계조라 아이들 머리를 딱 열고 막 집어넣는 식이에요. ‘아빠가 6.25때 말이야~’ 하고 시작하는 아빠의 얘기, 우리도 싫어했잖아요. 아이들이 아빠가 되기는 쉽지 않으니까요. 근데 짱뚱이는 어린 모습으로 그냥 놀고, 싸우고, 막 욕도 하고. 뭘 하라고 하지 않고 그대로 보여주니까 아이들이 쉽게 동화되는 걸 거예요.”



    ‘짱뚱이’1권이 나온 지 7년. 그 후로 4권의 책이 더 나오는 동안 조금씩 달라지는 짱뚱이 얼굴처럼 작가의 내면풍경도 변했다. “점점 살이 찌고, 흑백에서 컬러판으로 바뀌는 ‘짱뚱이’가 그 자체로 하나의 역사 아니에요?”






    이제 지금, 여기의 삶에 충실하고 싶다.





    그녀는 나이 30에 들어서 환경을 운동을 하던 중에 만난 ‘돌배군’의 만화작가 신 영식씨와 결혼했다. 운동으로 모든 것을 다 잃고 난 후의 재혼이었던 신영식씨는 16년이나 후배인,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그이에게 나 지금 죽을 거 같으니 좀 살려 달라는 말로 청혼했다.



    그 역시 병들고 지쳐있었지만 ‘아까운 사람’을 잃고 싶지 않았고, 그녀 역시 견디는 힘을 얻고 싶었다. 그렇게 부부로 함께 한 10년, 대부분의 시간 동안 그들은 ‘짱뚱이’작업을 했고(8년째), 이제 그녀는 자연스레 남편으로부터의 ‘프리’를 선언하고 있는 중이다.



    “남편이 처음에 섭섭해 했어요. 남편이 말하길 나는 당신이 항상 잘 됐으면 좋겠다, 그랬는데 막상 저 혼자 다른 일을 하게 되니까 마음이 그렇지 않은 거지요. 완전히 적과의 동침이에요.(웃음)



    부부는 인생의 어느 한 지점에서 분명하게 상대의 지지대가 되어주었고 이제 서로를 위해 또 다른 버팀목을 준비해야 할 길목에 접어들었다. 불혹이 된 짱뚱이 내면엔 변화에의 욕구가 강하다. 그래서 남편과 10년을 이렇게 살았다고 앞으로의 10년도 똑 같을 거라고는 그녀 자신도 이야기하지 못한다.



    “저는 동화를 좋아해요. 어른들은 아무 것도 아닌 일을 복잡하게 생각하고 복잡하게 만들어요. 아이들은 굉장히 단순해요. here & now로 생각해요. 그런데 어른들은 안 그래요. 그게 싫어요. 그래서 아이들 입장에서 아이들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양은주 자유기고가 wayfar@hanmail.net


    입력시간 : 2003-10-02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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