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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3.10.02 11:15:32 | 수정시간 : 2003.10.02 11:15:32
  • [스포츠 프리즘] 고장난 코리안 특급의 미래는?
    최악의 박찬호, 타자 압도하던 강속구·카리스마 실종





    누가 뭐래도 박찬호(30ㆍ텍사스 레인저스)다. 1996년 LA다저스 유니폼을 입고 한국인으로는 첫 승을 신고한 이후 불 같은 강속구로 90번이나 조국에 승전보를 띄운 코리안특급이다. 맨몸으로 태평양을 건너 아메리칸드림을 이룬 박찬호의 성공스토리는 외환위기로 앞이 캄캄하던 시절 우리에게 던져진 희망이었다.



    그러던 그가 벼랑에 매달려 있다. 단순한 슬럼프의 문제가 아니다. 홈플레이트를 빛처럼 통과하던 특유의 강속구로 메이저리그의 강타자들을 돌려세우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다. 신뢰와 박수로 가득차던 운동장에는 구단과 팬들의 불신과 야유가 쏟아지고 있다. 박찬호는 몸도 마음도 모두 지쳐 있다. 왜 이 지경이 됐을까. 박찬호의 재기투를 볼 수 있을까.



    미 애리조나 피닉스 시내의 피오리아 스포츠 콤플렉스. 4월 29일 부상자명단에 올라 선발에서 제외된 뒤 3일 피닉스로 날아온 박찬호가 특별훈련을 받고 있는 곳이다. “Command the fastball(직구를 다스려라).” 벅 쇼월터 감독이 볼넷을 남발하던 박찬호에게 내린 지상과제로 직구의 제구력부터 잡지 않고서는 마운드에 다시 설 수 없다는 단호한 의지와 질책이 담겨 있다.



    실제로 박찬호는 현지에서 텍사스 산하 루키팀 애리조나 레인저스와의 확대 스프링트레이닝에 2차례 등판, 철저하게 직구 위주의 피칭으로 구위를 점검했다. 3일 피칭에서 85개의 공 중 81개를 직구로 던진 박찬호는 8일 등판에서도 7이닝 동안 직구 위주로 98개의 공을 던졌다. 정확한 투구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직구 스피드는 여전히 140㎞대 초반에 머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박찬호는 다시 텍사스 알링턴으로 이동, 13일 마이너리그 더블A 소속의 위치타 랭글러스전에 등판한다. 박찬호의 메이저리그 복귀 여부를 결정짓는 중요한 시합이다.




    승리에 급급했던 포수 리드 탓?





    과거 박찬호가 구속 160㎞에 육박하던 강속구를 던질 때 타자들은 몸쪽 공에 위협을 느끼며 뒤로 나자빠지곤 했다. 요즘은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타자들은 박찬호의 공에 전혀 겁을 먹지 않는다. 기껏해야 145㎞의 직구쯤이야 맞아도 그만이라는 표정들이다. 그만큼 박찬호는 타자들을 압도하던 카리스마를 잃어버렸다.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코리안특급의 엔진역할을 했던 직구는 96년 98마일(157㎞)에서 매년 1마일씩 떨어지고 있었다. 97년 97마일, 98년 96마일, 99년 95마일, 2000년 94마일 등의 식이다.



    이제 서른. 체력의 한계를 이야기 할 나이는 아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부상 후유증은 물론 정신적 무장해제, 전담포수 채드 크루터의 원죄설을 비롯해 비뚤어진 코 때문이라는 추측까지 난무하고 있다.



    먼저 부상 후유증. 박찬호는 올 시즌 등판 때마다 투구 폼을 바꾸면서 투구 밸런스가 무너지고 있는데다 손끝으로 볼을 잡아채지 못하고 스리쿼터에 가까울 정도로 처져 있는 오른 팔로 공을 밀어던지고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분명 몸 어느 한 곳이 안 좋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하고 있다. 특히 2년 전 부상한 허리에 의혹을 보내고 있다.



    물론 본인은 한사코 손사래를 치고 있지만 믿지 못할 일이다. 증상이 외부로 드러나 누구나 알 수 있을 때까지 단 한마디도 아프다는 소리를 하지 않는 박찬호의 경력 때문이다. 공주중 시절 팔꿈치가 부러지는 부상을 숨기고 끝까지 운동을 계속하다 병원에 실려간 일화는 유명하다.



    허리 부상으로 마운드에서 자주 주저앉던 2년 전 “왜 아프면 아프다고 얘기를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아프다고 말하면 병이 낫습니까”라고 반문하던 박찬호다. 온전한 몸 상태가 아니면서도 매년 200이닝 안팎을 소화하는 강행군 속에 박찬호는 몸이 망가질 대로 망가져 있을지도 모른다.



    박찬호의 부상자명단 등재와 함께 방출된 채드 크루터의 탓으로 돌리는 시선도 적지않다. 99시즌 찰스 존슨에 이어 박찬호와 호흡을 맞추면서 전담 포수로 밥줄을 챙긴 크루터는 박찬호에게 자주 변화구 사인을 내보냈다. 떨어지는 구위 대신 변화구의 맛을 들이면서 박찬호는 2000년 18승10패, 생애 최고 성적을 올리기도 했다.



    이것이 오히려 직구 투수의 수명을 단축하는 독이 됐다는 설명이다. 직구와 변화구는 활용하는 팔 근육이 다르다. 따라서 직구 투수가 변화구를 많이 던지면 직구 근육이 퇴화한다는 용불용(用不用)설의 적용을 받는다.



    결국 박찬호와 크루터는 직구를 자꾸 던져야만 스피드를 지킬 수 있다는 진실을 외면하고 눈앞의 승리를 챙기에 급급한 것이다.






    올시즌 부활 불투명, 다시 시작해야





    박찬호는 정신적으로도 크게 무너져 있다. 심리적 불안과 정신적 중압감 속에 잘하려는 욕심만 앞서다 경기를 그르치기 일쑤였다. 부상자명단에 오르기 직전인 지난달 28일 뉴욕 양키스 전에서 5회를 못 견디고 강판한 박찬호의 얼굴에선 “더 이상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다”는 듯 자조만 남아있었다.



    97년 다저스시절 박찬호와 한솥밥을 먹었던 ESPN의 칼럼니스트 톰 캔디오티는 불펜에서 여러 차례 만난 박찬호가 “무엇보다도 자신감이 많이 사라진 것처럼 느꼈다”고 말했다. 박찬호처럼 자존심 강하고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에게 자신감은 승리의 필수충분조건이다. 박찬호에게 직구가 아니라 정신을 다스리는 훈련이 더욱 필요한 시점이다.



    이와 함께 무슨 이유에서인지 박찬호의 코가 비뚤어져 있고 이것이 만성피로나 어지럼증의 원인이 되면서 박찬호의 제구력 난조로 이어지고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여기에 잘못된 웨이트트레이닝으로 상체 근육이 기형적으로 발달하면서 투구의 유연성을 해쳤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박찬호의 올 시즌 부활 여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가 지배적이다. 박찬호가 부상자 명단에서 돌아오더라도 과거의 구위를 다시 찾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이다. 때문에 한 경기 결과에 집착하지 말고 최악의 경우 올 시즌 전체를 쉬어 간다는 생각으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주문이 나오고 있다.



    랜디 존슨(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과 케빈 브라운(LA다저스) 등 초특급 투수들도 1~2년 이상 슬럼프에 시달린 경우도 허다하다. 한물 갔다는 평가 속에 여러 팀을 전전하던 노모 히데오는 다저스에서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먼저 자신의 부상 여부를 솔직하게 알려주고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중요하다. 자신도 모르고 있다면 허리와 어깨 등의 정밀검사를 통해 정확한 몸 상태를 파악한 뒤 근력강화 운동을 통해 예전의 컨디션을 찾는 일이 급선무다.



    만약 이전 같은 직구의 구위를 회복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레그 매덕스(애틀랜타)나 데이비드 콘(뉴욕 메츠)처럼 기교파 투수로 변신, 얼마든지 성공 가능성을 남겨놓고 있다. 하일성 KBS해설위원은 “좋은 변화구를 갖고 있는 만큼 박찬호가 힘이 실린 시속 145㎞의 직구만 뒷받침된다면 메이저리그에서 충분히 통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병주 기자 bjkim@hk.co.kr


    입력시간 : 2003-10-02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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