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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3.10.02 11:27:24 | 수정시간 : 2003.10.02 11:27:24
  • [김동식의 문화읽기] 관념의 일탈


    지난 4월 29일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한 편의 퍼포먼스가 벌어졌다. 4ㆍ24 재보선에서 당선된 유시민 의원이 면바지와 티셔츠 그리고 캐주얼 재킷 차림으로 등원한 것이다. 동료 의원들의 반발과 비판 때문에 의원선서가 연기되는 사태에 이르렀고, 다음날 정장 차림으로 국회를 다시 찾은 유 의원은 그제서야 의원선서를 마칠 수 있었다.

    신문, 인터넷, 텔레비전을 가리지 않고 거의 모든 매체에서 유 의원의 퍼포먼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었다. 국회의 권위주의를 타파하는 통쾌한 시도라는 상찬에서부터 일반적인 상식을 무시한 깜짝쇼라는 비난에 이르기까지 아직까지도 의견이 분분하다.

    비슷한 일은 이웃나라에서도 벌어졌다. 일본 지방의회 의원으로 당선된 현역 프로레슬러 ‘그레이트 사스케’가 평소의 소신대로 복면을 하고 의회에 등단한 것이다. 의회용으로 특수제작한 복면을 쓰고 감색양복을 입은 사진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기사에 의하면, 사스케는 링 위에서는 물론이고 유세기간에도 복면을 벗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일상생활도 복면을 쓴 채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의 맨얼굴을 본 사람이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이발소에서도 복면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 정도 되면 복면이 사스케의 정체성(identity)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최근에 인터넷을 서핑하다가 재미있는 기사와 마주쳤다. 한국의 4인조 여성 록밴드 ‘로렐라이’가 간호사들로부터 집단적인 항의를 받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홈페이지를 찾아가 게시판을 살펴보았다. 표면적인 이유는 단순했다.

    간호사 복장을 한 채로 무대에 오른 것이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섹스어필하기 위해서 간호사 복장을 차용했고 그 결과 간호사라는 직업을 모욕했다는 비난이 제기되었고, 여기에 대해서 여성밴드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여성이 전문적으로 일하는 곳의 의상을 내세웠을 뿐이라는 해명이 주어졌다.

    문제는 로렐라이의 간호사 복장이 어떠한 맥락 위에 놓여져 있는가 하는 점이 될 것이다. 로렐라이는 실제로 병원에서 만날 수 있는 간호사 복장이 아니라, 코스튬 플레이(costume play:만화주인공들의 복장을 재연하는 행사)에서나 볼 수 있는 스타일을 제시하고 있다. 앞이 찢어진 치마와 종아리를 덮고 있는 흰 부츠가 포르노그라피의 전형적인 설정을 연상시켰던 것이리라.

    일반적으로 옷은 체온을 유지하고 피부를 보호하며 외부의 충격을 완화시키는 기본적인 기능을 수행한다. 하지만 옷이 가지는 함의는 생명의 보존이라는 기본적인 기능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옷과 장신구로 대변되는 복식(服飾)은 다양하고 복잡한 문화적인 맥락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근대 이전의 사회에서 복식은 주거공간이나 교통수단과 함께 신분제의 상징적 표상체계였다. 어떠한 옷을 입고 어떤 장신구를 패용하고 몇 간짜리 집에서 살며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하는가 하는 문제는,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결정되어 주어지는 것이었다.

    반면에 신분제가 붕괴되는 근대에 들어서면 패션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취향에 따라 스스로 ‘선택하고 구성하는 것’이 된다. ‘나’의 주체성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표현되어야 하는 대상이 되며, 일반적으로는 복장이나 장신구에 대한 새로운 태도를 통해서 주장된다. 수잔 손탁의 지적처럼 복장은 ‘자아에 대한 새로운 비유’인 것이다.

    패션이 사회적으로 문제되는 이유는 다른 곳에 있지 않다. 패션이 자체로 자기표현방식이며 의사소통양식이기 때문이다. 글을 쓸 때 지켜야 할 문법이 있듯이, 옷을 입는 일에도 규약이 따른다. 속옷을 먼저 입고 겉옷을 입어야 한다든가, 최소한 하의는 한 벌 이상 입어야 한다는 것 등은 패션의 기초적인 규약이다.

    만약 상의만 3벌을 겹쳐 입고 하의에 아무 것도 입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과연 옷을 입은 것일까. 아마도 풍기문란 사범으로 처벌을 면하기 어렵지 않을까.

    글자가 모음과 자음의 결합으로 구성되듯이, 패션 역시 내부에 문법과 규약을 가지고 있는 의사소통양식이자 자기표현방식이다. 하지만 문법을 의도적으로 위반하는 표현의 묘미가 있듯이, 패션의 문법을 일탈하는 일은 새로운 패션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인 동시에 사회의 관념을 바꾸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패션이나 스타일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 함의를 극대화하는 경우를 두고 ‘스타일의 정치학’이라고 하는데, 대중음악에서는 글램록이나 펑크록에서 두드러지게 사용된 문화적 전략들이기도 하다. 우리의 경우, 1967년 미니스커트를 입고 김포공항의 트랩?내려왔던 윤복희의 모습이 대표적인 스타일의 정치학에 해당하지 않았을까.



    김동식 문화평론가 tympan@empal.com


    입력시간 : 2003-10-02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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