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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3.10.02 11:41:53 | 수정시간 : 2003.10.02 11:41:53
  • "참여연대의 권력화를 심판한다"
    진보진영 '안티 참여연대'


    자본국적성 논란 등 개혁운동 방향성 놓고 첨예한 대립자







    2001년 4월. ‘대안 연대 회의’(운영위원장 박진도 충남대 교수)라는 진보 성향의 단체가 결성됐다. 참여 연대 소속 멤버들이 주축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참여 연대와 다른 길을 택했다. 시민 단체인 참여 연대와 달리 학술 기구적 성격을 지닌다는 것 외에 이념적으로도 다른 노선에 섰다. “그 간의 개혁은 신자유주의적 금융 세계화가 초래할 위험성, 즉 경제 주권이 제약되고, 금융이 종속되고, 산업 기반 마저 붕괴할 수 있다는 새로운 현실을 간과했다. 우리는 국민 경제의 민주적이고 자주적인 발전 대안을 찾는 것이 시급하다고 판단했다.”



    그 동안 개혁 주체였던 참여 연대와 정면 대결을 선언한 것이나 다름 없는 발족 취지문이었다. 진보 진영 내부의 이른바 ‘안티 참여연대’ 움직임이 서서히 가시화하고 있음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시민 권력을 창출해 낸 참여연대





    국내 시민 운동의 역사에서 1990년대 초반이 경제정의실천연합(경실련)의 시대였다면 90년대 중ㆍ후반은 참여 연대의 시대였다. 94년 ‘진보적 시민운동’을 기치로 출범한 참여연대는 사법 개혁, 부패방지법 제정, 시민들의 작은 권리 찾기 등에서 혁혁한 성과를 올리며 급부상했다.



    참여연대가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은 것은 외환 위기 발생 이후였다. 외환 위기의 단초를 제공한 한보 그룹에 불법으로 대출과 보증을 해 준 제일은행 경영진에게 책임을 묻는 ‘소액주주 운동’이 그 시작이었다. 주주 대표 소송이라는, 당시로서는 생소한 소송을 통해 400억원의 반환 판결을 이끌어 내 소액주주들의 단결된 힘을 보여 주었다.



    소액 주주 운동은 5대 재벌 기업으로 확대돼 본격적인 재벌 개혁에 들어갔다. 재벌 기업의 내부 거래, 삼성 일가의 변칙 증여, 현대전자(현 하이닉스반도체)의 주가 조작, 현대증권의 바이 코리아 불법 운용 등을 들춰 내는 혁혁한 성과를 올리며 한국 사회 시민 단체의 대표 주자로 확고히 자리매김했다.



    2000년대에 접어 들면서 참여연대의 영향력은 더욱 막강해졌다. 비록 불법 판정을 받기는 했지만 2000년 총선에서 대대적인 낙선 운동을 주도해 대상이 된 89명의 정치인 중 56명을 낙선시키는 위력을 과시했고, 해마다 주총 시즌이 되면 참여연대가 어느 기업에 화살을 겨냥할 것인 지에 재계의 촉각이 모아졌다.



    상근자 50여명, 참여사회연구소 등 부설기관 5개, 경제개혁센터 등 활동기구 9개 등 활동에 걸맞게 조직도 방대하게 성장했다. “국내에서 삼성과 맞설 수 있는 유일한 곳은 정부도, 다른 대기업도 아닌 참여연대”라는 우스개 아닌 우스개 소리가 나돌 정도였다.



    그러나 참여연대의 주장이 곧 진보 진영의 바이블(성경)로 여겨지는 ‘개혁 독주’의 시대가 장기화하면서 서서히 ‘안티(anti)’의 목소리도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참여연대가 추구하는 ‘시장 근본주의’가 ‘진보적 시민 운동’이라는 취지와 적잖이 모순된다는 비판에서부터, 시민 운동의 독과점 현상으로 관료화한다는 비판까지 흘러 나왔다. 근 10년간 국민들의 절대 지지를 등에 업고 시민 권력을 창출해 온 참여연대가 중대한 정체성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참여연대는 크레스트와 손 잡았다?





    국제통화기금(IMF) 체제 이후 참여연대가 줄곧 견지해 온 것은 ‘주주가치 자본주의론’이었다. 기업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주주가치 극대화이며, 선단식 경영으로 주주가치를 해쳐 온 한국 사회의 재벌은 해체돼야 한다는 논리였다.



    이는 미국 월스트리트가 추구하는 ‘글로벌 스탠더드’와 맞닿아 있었고, 김대중 정부의 ‘DJ노믹스’와도 일맥상통했다. 적어도 개혁, 혹은 진보 세력에게 참여연대의 이 같은 주장은 한동안 거역할 수 없는 불변의 진리로 여겨졌다.



    이 같은 주주가치론이 진보 진영 내에서 본격적으로 논쟁의 대상이 된 계기는 SK 사태였다. 영국계 크레스트증권이 SK㈜의 지분 14.99%를 시장에서 사 모아(매집ㆍ買集) 논란을 부른 이 사건을 기화로 참여연대의 행보는 도마 위에 올랐다.



    크레스트의 주식 매입이 진행 중이던 4월9일 참여연대 장하성 경제개혁센터 운영위원장이 크레스트 모기업인 소버린자산 운용측과 접촉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었다. 블룸버그 통신은 “소버린측이 SK(WN) 경영권 확보를 위해 장하성 위원장을 만나 지원을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참여연대측은 이에 대해 “소버린측과 만난 것은 사실이지만 국내외 기관 투자가들의 면담 요청에 응해 온 통상적 활동의 일환”이라고만 해명했을 뿐, 구체적인 대화 내용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재계 일각에서 소버린이 참여연대를 등에 업고 한국의 우량 기업에 대해 적대적 인수ㆍ합병(M&A)을 시도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보낸 것은 당연했다.



    정작 더 중요한 문제는 크레스트의 SK 지분 인수를 바라보는 근본 시각이었다.



    “누가 됐든 투명하고 책임지는 경영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경영 주체가 누구인지에 대해 지나치게 반응할 필요가 없다.”(장하성 위원장,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독점 자본은 모두 같다. 국적은 없다. 재벌 개혁의 가시적 성과는 발전적 해체나 분열에 있다고 본다.” (김상조 경제개혁센터 소장, 한 토론회에서) 건전한 지배구조와 훌륭한 경영 성과를 통해 기업을 지키려고 해야지 재벌 총수의 경영권을 보호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였다. 크레스트의 SK 지분 인수에 동조 내지는 적어도 묵인한 셈이었다.




    자본 국적성 두고 참여연대 VS 대안연대 대립





    “자본에는 국적이 없다”는 참여연대의 주장은 ‘자본 국적성’ 논란을 불렀다. 정면으로 문제를 삼고 나선 것은 대안연대측이었다.



    “재벌 총수는 응징하되 기업 지배권은 지켜야 한다. 한국의 재벌은 엄청난 국민적 희생과 국가 지원의 결과물로 사유 재산인 동시에 국민적, 사회적 자산이기도 하다. 외국 자본에 헐값으로 넘길 경우 양질의 일자리 창출, 기술력 강화와 같은 최소한의 국민경제적 책임을 요구할 명분이나 수단이 없어진다.”(대안연대측 이찬근 인천대 교수) 참여연대 장하성 위원장과 사촌 지간이면서 대안연대측에 합류한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도 “재벌들이 철저한 반성과 사회적 통제를 받아들인다는 전제 하에 경영 지배권을 안정시켜 줘야 한다”며 힘을 실어 주었다.



    양측의 팽팽한 대립은 온ㆍ오프 라인상의 공방으로 확산됐다. 공방의 내용도 원색적으로 변했다. 참여연대 장하성 위원장은 참여연대가 발간하는 ‘참여사회’ 5월호 인터뷰를 통해 대안연대에 직격탄을 날렸다.



    “내부 문제는 보지 않고 정부 탓을 하는 재벌과, 국내 문제는 안 보고 외국 자본 탓을 하는 극좌가 시각을 공유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명시만 하지 않았을 뿐 대안연대를 ‘외국 자본 탓을 하는 극좌’로 몰아세운 것이었다.



    심지어 “이념적 좌파는 민족자본론을 내세워 재벌을 옹호하는 결과를 자초하고 있다. 아무리 깨끗한 외국 자본이라고 해도 썩고 냄새 나는 재벌 총수가 더 낫다는 식으로, 갑자기 국수주의가 좌우에서 판치는 상황이다”라고 까지 몰아붙였다.



    대안연대측에서는 정승일 정책위원(베를린대 교수)이 저격수로 나섰다. 그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참여연대와 진보 언론들은 ‘펜타곤은 제국주의’, ‘월스트리트는 민주주의’라는 이중 잣대로 미국을 비판한다. 미국의 군사적 패권주의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지만 글로벌 스탠더드를 통해 나타나는 미국의 경제적 패권주의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킨다”고 역공을 폈다.




    이제는 귀를 열어야 할 때다





    자본 국적성 논란은 지금까지 참여연대가 펼쳐 온 개혁 운동이 바람직한 것이었는지, 앞으로 개혁의 방향을 새롭게 설정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를 되짚어 보게 하는 중요한 사안이었다.



    하지만 참여연대는 장하성 위원장 등 회원 개개인의 기고 등을 통한 입장 표명 외에 공개적 대화는 외면했다. 참여연대 이태호 정책실장은 “구체적인 현안을 두고 토론을 하자는 것이면 몰라도 거시적이고 추상적인 이념을 둘러싸고 논쟁을 벌이는 것은 시민 단체의 활동 방향과 맞지 않는다는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대안연대측은 본질을 외면하는 것이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이찬근 교수는 “국내 시민 단체를 대표한다는 참여연대가 활동 방향을 둘러싼 핵심적인 이념에 대한 문제 제기를 외면으로 일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비판은 할 수 있어도 비판은 받지 않겠다는 것으로 밖에 받아 들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카드사 대주주 책임론에 대해 참여연대가 보였던 최근 행보를 두고서도 적잖은 논란이 일었다. 신용카드사 회생 방안의 하나로 정부가 카드사 증자에 대주주 계열사 참여 방안을 내놓자 참여연대는 삼성전자측에 삼성카드의 증자에 참여하지 말라고 공문을 보냈다. 증자 참여 등으로 삼성전자가 손실을 입게 되면 이는 결국 소액주주에게 손실이 전가될 것이라는 이유였다.



    금융계 한 관계자는 “참여연대가 모든 우선 순위를 대기업의 소액주주에만 맞춰 정책을 펴는 것은 지나치게 편협한 발상”이라며 “참여연대의 이 같은 주장은 塑?아무런 잘못도 없는 국민들만 피해를 고스란히 떠 안아야 한다는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



    숱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참여연대는 여전히 2003년 한국 사회에 시민 운동의 중심 권력으로 서 있다. 그래서 행동이나 주장 하나 하나에 막대한 책임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한 진보 성향 학자는 참여연대에 이렇게 주문하고 있다.



    “자본에는 국적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또 카드사 부실을 대주주가 책임져야 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다양성을 인정하고 올바른 개혁 방향이 무엇인 지 참여연대의 주인인 시민들과 함께 모든 것을 털어 놓고 고민하는 것이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입력시간 : 2003-10-02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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