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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3.10.02 13:47:34 | 수정시간 : 2003.10.02 13:47:34
  • [석학에게 듣는다] "신식민사관 확대 경계해야"
    신용하 한양대석좌교수





    “심각한 건 아닙니다.”



    5월 18일 노무현 대통령이 광주에서 맞닥뜨린 사태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대해 신용하(65ㆍ한양대 석좌 교수, 서울대 명예 교수, 백범 학술원 원장) 교수는 가볍게 대응했다. 대통령이 미국에 가서 했던 발언은 국가 이익의 차원에서 나온 것으로 너무 심하게 몰아 붙일 것도 아니며, 대통령 또한 학생들의 정의감을 폄하해선 안 된다는 말이다.



    대통령의 발언은 그 자리에서 당연한 외교였으며, 미국의 시각으로 보자면 기대된 바였다는 것이다. 과학적 민족주의의 정당성을 알리는 데 평생을 바쳐 온 신 교수는 “양측 모두 상대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의 입지만을 고려한 비민주적 오류에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찾아간 서울대 사회대 명예교수실은 초여름의 열기 속에서 오히려 서늘했다.



    “사전에 학생들의 동향에 관한 정보를 입수했으면서도 그냥 둬, 5ㆍ18 묘지의 도로를 점거하도록 방치한 경찰이나 경호팀의 잘못을 물을 수는 있겠죠. 결과적으로는 한총련 지도부와 경호팀의 실수가 빚어 낸 작은 해프닝일 뿐입니다.” 양측 모두 ‘관리 소홀’이 맞물렸다는 지적이다.




    5ㆍ18 기념식 시위는 권위 해체의 흐름





    서울대가 관악으로 오기 전 동숭동에 있을 때부터 강단을 지켜 온 신 교수는 유사한 해프닝을 하나 떠올렸다. 교사 출신이었던 박정희 대통령이 서울대 캠퍼스의 사범대를 지나다 반가운 마음에 별 생각 없이 들어 갔다.



    그러나 정부와 대학생 간의 충돌로 시국이 험악하던 시절, 학생들이 그냥 보고만 있을 리 없었다. 그들이 집어 던진 돌로 자동차가 일부 손상되는 일이 벌어졌고 이 일을 보고 받은 총장이 허겁지겁 사과했다. “그러나 대통령은 학생들이 철이 없어 벌어진 일이라고 하는 터에 유야무야되고 말았죠.”



    이번 사태에서는 사과 요구뿐, 노 정권 퇴진 주장은 없었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는 신 교수는 “한총련 학생들 다수가 대선 당시 노 후보에게 투표했다”며 뜨거웠던 대선 상황을 돌이켰다. 우발적 사태 때문에 눈이 흐려져서는 곤란하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상황은 수년간 급속 전개돼 온 권위 해체의 흐름과 중복된다고 그는 말했다. 전두환, 노태우 등 대통령의 직권을 남용한 전직 대통령들의 비리에다 IMF 관리 체제로 한국에는 일체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는 단초가 마련됐다는 것. 최근 광주에서의 해프닝은 최근 수년간 한국 사회에서 전개돼 온 일련의 사건에서 굳어진 ‘문화적 관례’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관측이다.



    그렇다면 바람직한 한미 관계란 무엇인가? “백범이 미 군정 당시, 선생에게 기념으로 휘호를 부탁해 온 핸더슨 문정관에게 써 준 글을 돼새겨 봅시다. 한미친선 평등호조(韓美親善 平等互助)라는 명구죠.” 당시 친선만이 강조되던 때, 평등성을 일깨운 백범의 혜안은 세월이 갈수록 빛난다고 말했다. “문제는 평등호조라는 입장을 친절하고 당당하게 알려줘야 한다는 거죠.”



    가장 큰 논거는 미국과 우리는 많은 부분에서 일치한다는 사실이다. “특히 북핵 문제는 미국과의 공조가 절실합니다. 북핵은 현실적으로 일본의 핵무장을, 그 다음으로는 필연적으로 한국의 핵무장을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세계에서 동북아가 가장 위험한 지역이 되는 거죠.” 결과적으로 일본만 경제 부흥이란 혜택을 주고 만 한국전과 유사한 상황이 재현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반도 전쟁은 美지배의 통일 불러





    이 대목에서 그는 북한에 강력한 메시지를 보낸다. “북한은 모험을 그만 둬야 합니다. 미국이 단기전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 북한을 초토화시킬 수 있어요.” 그 다음은? “북한은 첨단 무기의 기수를 미국이 아니라 남한으로 돌려 보복할 겁니다. 이미 초토화된 북한은 멸망하고, 수백만의 인명을 앗긴 남한은 GNP 1,000~2,000달러 국가로 추락하죠.”



    결국 미국 지배하의 통일이 종착역이라는 것이다. 전후 복구 사업을 할수록 재벌의 지갑만 더욱 두툼해져, 결국은 미ㆍ일의 재도약과 부흥의 계기로 낙착지워질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다.



    “제일 딱한 것은 북한입니다. 클린턴 때와는 다른 미국이란 사실을 인지하지 못 하고 있어요.” 이 대목에서 신 교수는 “한국의 북침 의사는 전혀 없으므로, 북한은 현재 그들이 안고 있는 문제의 본질인 식량과 에너지 위기 등 경제 위기를 푸는 데 머리를 모아야 할 것”繭箚?충고했다.



    미국이 북한에 대해 관심을 두고 있다면 오직 하나, 핵뿐이라는 것이다. 이미 세계사의 대세로 결정된 미국의 단일 지배 체제란 궁극적으로는 경제적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느냐의 여부가 그 기준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팍스 아메리카나의 입장에서 보자면 시장으로서의 의미도, 매력도 없는 북한은 핵을 포기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강조한다.



    신 교수는 자신을 실사구시론자라 했다. 이념의 시대는 끝났지만, 몇 가지 조각들은 이 시대를 이끌 지침으로 기능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정치적으로는 자유 민주주의, 경제적으로는 자유 경쟁과 분배 정의를 절충한 사회 시장 경제를 가능성으로 들었다.



    최근 급격히 논의되고 있는 가족 해체의 대목에서는 전세계적으로 보자면 일부일 수밖에 없는 미국과 유럽만의 현상을 너무 확대했다며 주의를 환기시켰다.




    나는 실사구시론자







    요즘 그의 안광은 더욱 빛난다. 일본인의 동향이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일본 대중 문화의 전면적 개방을 선언한 이후 일본측으로부터 연구비가 대거 유입되기 시작했어요.” 일본측의 돈으로 개최된 학술 대회에서는 조선 총독부의 식민지 정책을 합리화ㆍ정당화하는 한일 학자들의 논문이 버젓이 나돌기 시작했다고 신 교수는 지적했다.



    지금 제 3권의 집필에 돌입한 연작 ‘일제 강점기 한국민족사’는 최근 일부 한일 사학자들을 중심으로 공공연하게 펼쳐지고 있는 ‘신식민주의 사관’에 대한 노학자의 답이다. 2001년부터 서울대 출판부에서 나오기 시작한 역작은 일제의 식민지 정책이 한국을 근대화시켜 결국 혜택을 가져왔다는 일본학계의 주장을 실증적으로 뒤집는 데 목적을 두고 씌어졌다.



    예를 들어 1910~18년 총독부가 벌인 토지조사사업은 한반도의 토지 60%를 총독부 소유로 만들어 일본인에게 무상으로 분배했던 토지 약탈 정책이었다. 그럼에도 최근 일본 학계는 이를 한국에서의 첫 토지 사유화의 계기가 된 세계사적 업적이라고 강변한다며 신 교수는 말했다. 한국에서의 토지 사유화는 이미 15세기 과전법으로 확립됐음에도 이를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일제 식민지정책을 정당화한다는 것이다.



    일본군이 작두로 의병의 목을 자르는 장면, 도쿄대지진 때 머리를 잘린 한국인의 사진 등 그 동안 띄엄띄엄 나왔던 한민족 수난사 사진들을 곳곳에 수록한 것도 이 책에 쏟는 정성을 대변한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왜곡은 일본학계가 몰라서 벌어지는 일도 있지만, 최근 들어서는 알고도 저지른다는 데 심각성이 도사리고 있다고 신 교수는 말했다.




    일본의 의도적인 식민지 정책 합리화





    식민주의사관이 실증으로 치장한 결과물인 신식민주의사관의 폐해는 이미 우리 사이에 제법 퍼져 있다고 신 교수는 지적한다. “그처럼 터무니 없는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 땅의 일본어학과 학생들이 한총련 사태보다 더 큰 문제 아닙니까?”



    그는 DJ 정권 당시 시작된 대일본 문화 교류를 펴면서 일본 대중 문화를 무차별하게 수입 개방한 탓으로 본다. “집요하고도 대대적인 일본측의 로비가 보다 실질적인 이유였어요.” 평생 민족을 연구해 왔다고 말하는 신 교수는 앞으로 일제시대 연구를 더 해, 식민 사관을 철저히 뿌리뽑겠다는 의욕에 충만해 있다. 세계화의 압력 속에서 한민족은 어떻게 발전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연구 또한 그의 과제다.



    지난 2월 28일 서울대 문화관에서 ‘정년 퇴임식’을 가진 신 교수의 마음은 한 번도 캠퍼스를 떠난 적이 없다. 아니, 캠퍼스를 떠날 수 없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다. 퇴임 후 서울대에서 맡게 된 학부와 대학원생 강의 때문만은 아니다.



    한양대에서 석좌 교수로 초빙해 온 것이다. “가르칠 수 있고, 연구할 곳도 생겼으니 얼마나 행복한 지 모르겠어요.” 석좌 교수 초빙에 감사, 한양대 도서관에 자신이 그 동안 연구하면서 모아 온 도서 1만여점을 기증한 것은 노학자 다운 표시였다.



    그는 “요즘 학생들은 선배의 업적이나 공적에 대한 인식이 너무 약하다”며 자칫 인식론적 단절로 이어질 수도 있는 후학들의 태도를 경계했다. 그래서 그는 젊은 학생들과 대화의 끈을 놓지 않으려 한다.



    서울대 교수학습개발센터가 축제기간인 5월 22일 사회대 교수 회의실에서 그를 초빙해 펼친 2시간의 특강 ‘나의 학문과 글쓰기’ 자리는 4학년과 대학원생 등 70여명 이 모여 공감대를 형성했다.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의 록 음악과 먹거리 장터, 대강당에서의 ‘선생 김봉두’ 상영 등 5월의 향연을 마다 하고 온 사람들이다.



    이 자리에서 신 교수는 “1995년 WTO 체제 출범 이후 소위 세계화의 돌풍이 불어 와 21세기의 민족 문제를 새로운 시각으로 연구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며 “최근의 이라크 전쟁은 후진 약소 민족들을 참혹하게 도태시키는 ‘위장된 세계화’의 산물”이라고 말해 청중의 높은 공감을 샀다. 안광이 발하는 호상(虎象)에다 마이크를 쓰지 않은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넓은 회의실을 압도했다. 서권기(書卷氣)랄까.



    그의 연구실에는 연구 중 잠시 눈을 붙일 수 있는 야전 침대가 하나 있다. 1975년 서울대가 관악으로 이사한 이후, 각종 자료를 철야로 파야 할 일이 많아 아예 남대문 시장에서 사들인 것이다. “식구들 성화에 못 이겨, 이 침대는 연구실에서 나갔다 들어 왔다를 몇 번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야전 침대가 건재한 걸 보면 아무 가족도 그 뜻을 꺾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민족이 이동루트 따라 가보고 싶어





    이화여대 재학중 동숭동 문리대에 놀러 왔다가 “백합꽃 같이 이뻐서 내가 먼저 접근한” 정혜련(64)씨 사이에 1녀 2남을 두고 있다.



    큰 아들 형익(34)은 한국재활병원 과장, 둘째 형원(30)은 연세대 공과대학원 시스템공학 과정에 있는 박사다. 어느 정도 짬이 생긴 지금, 그는 제대로 한번 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말했다. “머릿속 여행은 이제 접어 두고, 알타이어족이라 총칭되던 민족의 이동 루트를 따라 가 보고 싶어요. 할 수만 있다면야 여행만큼 신나는 것도 없을 테지만, 경제적으로 유복하지 못 했던 터라….”



    차세대에 꼭 당부하는 말이 있다. “한민족이 21세기 어느 날 민족 통일을 달성하고 최선진 부강국이 돼도 종래의 열강처럼 약한 후진 민족들을 수탈하고 도태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진정으로 도와 주고 전인류의 공동 발전과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모범 민족이 되자” 는 소망이다.



    “나이로 보자면 쉬어야 할 땐데, 신문만 보면 끓어 올라서…”. 여전히 일선을 떠나지 않는 데 대한 답이다.

    입력시간 : 2003-10-02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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