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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3.10.02 13:58:21 | 수정시간 : 2003.10.02 13:58:21
  • [아름다운 그녀] 경마기수 이명화
    금녀의 벽을 허문 '여풍당당' 여자기수
    "말 위에 올라 타면 세상이 발 아래 있어요"






    “‘역대호걸’ 덕분이에요. 제가 실력이 좋아 우승한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아요.”



    서른 한번의 경주 끝에 처음 맛 본 승리. 여기수 이명화(23)씨는 벅찬 감격에 감정이 다소 흔들릴 법도 한데 뜻밖에도 차분하다. 우승 소감을 묻자 자신을 태우고 달려준 세살박이 숫말 역대호걸에게 공을 돌린다.



    스포츠이면서 레저이기도 한 경마의 세계. 금녀의 영역이 될 까닭이 없는 듯 싶지만 실제로는 벽이 꽤 높다. 경마장에서 여기수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우리보다 경마 역사가 길고 경주도 많이 열리는 미국에는 줄리 클론, 페트리샤 쿡시와 같은 개인 통산 2,000승 이상의 톱 기수가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75년 이옥례씨가 6개월 남짓 활약한 것이 여기수의 첫 기록으로 남아 있다.



    그 후 99년까지 정식 여자기수는 한명도 없었다. 최근 들어 여성 기수들의 활약상이 보도 되고 있기는 하나 아직 한 손으로 꼽을 만한 숫자이다. 작년 9월에 데뷔를 해 10월부터 경주를 뛴 이명화씨도 아직 수습 기수의 딱지를 떼지 못하고 있다. 30승을 해야만 정식 기수로 인정이 되기 때문이다.




    여자의 부드러움은 최강의 무기





    “처음엔 여자라서 뒤질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남자들에 비해 힘이 딸려요.그래서 체력 강화 운동에 시간을 많이 투자 하죠.” 경마에는 여성경마 남성경마와 같은 성별 영역 구분이 없다. 다른 스포츠와는 달리 완벽한 남녀 평등이다. 똑같은 조건에서 경쟁을 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체력이 약한 여자가 불리하다. 기수 자격요건에 ‘남자만 가능하다’는 규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수가 탄생하기 쉽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자라서 유리한 점도 있다. 말은 몹시 섬세하고 감성이 예민하다. 여자의 부드러움은 말을 다루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남성 기수에 대적해 여성 기수가 가질 수 있는 최대의 무기다. “기수 후보생 시절 한 교관님께서 여자들에겐 남자에게는 없는 부드러움이 있기 때문에 경마에서만큼은 남자들과 동등해 질 수 있다고 가르쳐 주셨어요. 그 부드러움을 찾아 키우려고 노력하는 중이에요.”



    그녀의 하루는 새벽 4시 30분에 시작된다. 또래의 아가씨들이 단잠에 빠져 있을 그 시간, 여기수 이명화는 마구를 챙겨 숙소를 나선다. 새벽 5시 30분부터 오전9시까지 경주마를 훈련시키고, 다시 오후 1시 30분부터 3시까지는 말의 컨디션을 보살피는 놀이 운동에 들어간다.



    인마일체가 되어야만 최상의 성적을 낼 수 있는 경마의 특성 탓에 말과 많은 시간을 함께 해야 한다. 사이 사이에 주어지는 개인 시간도 몸 만들기와 체력 보강을 위한 개인 운동에 쉴 틈이 없다.



    “탤런트나 여배우들보다도 몸무게에 더 신경 쓰는 사람이 바로 기수들이에요.” 키 161cm 몸무게 49Kg, 환상적인 수치라고 생각되는데도 그녀는 고개를 젖는다. “기수는 작고 가벼워야 해요. 후보생 시절 52Kg 이었는데 지금 3Kg 가까이 감량했어요. 하지만 더 감량해야 해요.”




    선머슴에서 승마 기수로 당당한 변신







    여성에겐 흔치 않은 직업이라 무언가 승마와 관련된 성장내력이 있을 법 해 물어 보았더니 전혀 아니란다. “학교 다닐 때 운동을 무척 좋아 하긴 했죠. 하지만 부모님이 싫어 하셔서 운동은 못하고 졸업 후 컴퓨터 관련 업체에 취직했어요.”



    여기서 만족했다면 역대호걸을 타고 결승점에 당당히 들어 서던 그녀의 모습은 못 보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회가 왔다. 어릴 때부터 선머슴애란 별명을 달고 다닌 그녀에게 ‘넌 무언가 힘 쓰는 일을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해 오던 고모가 우연히 한국 마사회 기수 후보생 모집 공고를 보고 적극 추천해 주신 것.



    경마가 무엇인지 기수가 무엇인지를 잘 몰랐던 부모님은 얼떨결에 딸의 지원을 승낙했고, 그녀는 2년간의 혹독한 훈련을 이겨냈다.



    “후보생 교육은 거의 군대식이에요. 중도에서 포기하는 동기들도 많았지만 일단 시작한 일, 일인자가 되어 보자는 마음으로 이를 악물었어요.”남자들도 힘에 부친다는 빡빡한 훈련 스케줄을 우리나라 최고의 기수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버텨내지만 가끔은 몸과 마음이 고단해지기도 한다. 그럴 때면 ‘몸의 피로는 찜질방에서, 마음의 피로는 스타크래프트 게임으로 푼다’고 한다.




    남다른 직업을 가졌다는 자부심 커





    “제 담당 조교사이신 김춘근 조교사님의 500승이 2승 남았어요. 최선을 다해서 김 조교사님의 500승을 제 힘으로 채워 드리고 싶어요.” 조교사란 다른 스포츠로 치자면 감독과 같은 존재. 앞으로의 계획과 희망을 설명하면서 이명화 기수는 하루 빨리 정식 기수가 되고 싶다는 포부와 함께 자신을 지도해 주고 있는 조교사의 500승 고지점령에도 애착을 보였다.



    스승을 생각하는 착한 제자에게 김춘근 조교사 역시 ‘아주 성실하며 열심히 노력하는 데는 따라올 사람이 없을 정도’ 라고 추켜 세운다.



    “자부심요? 독특한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것 만으로도 자부심을 느껴요.” 말 타는 것에 있어서 만큼은 우리나라 최고가 되고야 말겠다는 그녀에게는 흔치 않은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커다란 매력이요 긍지인 듯 했다.

    입력시간 : 2003-10-02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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