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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3.10.02 15:22:43 | 수정시간 : 2003.10.02 15:22:43
  • [직업의 세계] 프로듀서 이영돈
    KBS '추적 6 0분' 책임 프로듀서, 다큐 화제작 메이커





    이영돈 PD의 달력은 세상의 달력과 상관없이 돌아간다. 일요일을 빼곤 빨간 날이 거의 없다. 조상 명절도, 가족 기념일도 몰라본다. 일요일도 여차하면 자진반납이다. 여의도 바깥 공기가 어떤지도 잘 모르고 산다. “ PD들 대부분이 아마 그럴겁니다”



    KBS ‘추적60분’의 책임 프로듀서(CP)이자 진행자로 낯이 익은 이영돈PD (47)는 올해로 방송생활 22년째를 맞고 있다. 이PD는 지금도 회자되는 화제의 다큐멘터리 5부작 ‘생로병사의 비밀’과 6부작 ‘술, 담배, 스트레스에 관한 첨단보고서’등 많은 히트작으로 익히 실력을 공인받은 다큐멘터리계의 화제작 메이커다.



    지난 현충일 역시 그에게는 까만 날보다 더 까만 빨간 날이었다. 어렵게 시간을 내 오후 늦게서야 만난 그는 이야기를 시작한 얼마 뒤, 다른 PD가 대신 전해 달라는 말이 있다고 했다. ‘PD의 삶은 지옥이었다(그 주의 방송분 타이틀 패러디)’라는 전언이었다. 밖에서는 평균 300대 1의 경쟁률을 넘나 든다는 인기직종 방송 프로듀서. 그런데 우리더러 이말을 믿으라는 것일까?




    강도 높은 노동






    - 그럼 다‘지옥인 줄도 모르고 제 발로 걸어 들어간’건가?



    ▲ 그렇다. 다 천당인 줄 알고 들어와서는 여명을 거쳐서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거다. (웃음)




    - 어제 통화를 할 때도 ‘토요일에는 초주검’이라고 했는데, 그렇게 힘들고 바쁜가?



    ▲ 오늘만 해도 현충일인지조차 몰랐다. 기술 스태프와 점심 약속까지 해놓고 아침에 나와보니 쉬는 날이었다. 어제도 새벽 3시에 퇴근했다. 그나마 월, 화요일에 조금 남들처럼 하루를 보내고 나면, 수요일부터 서서히 압박이 시작돼 목, 금, 토요일은 완전히 초주검이다.



    밖에서는 아주 화려하고 멋있는 직업으로 보는 것 같은데, 실제로 이 안에 들어와 있는 우리는 그런 이미지와 전혀 상관없는 아주 강도 높은 노동을 하고 있는 거다. 옷차림이나 얼굴만 봐도 아주 후줄그레하다.






    - 그렇다면 대충 PD들 행색이나 표정만 봐도 방송이 얼마나 남았는지 표시가 나겠다.



    ▲ 그렇다. 딱 보면 안다. 다니면서 웃고 다니는 PD는 막 방송을 끝낸 PD다. 가장 후줄그레하고 인상 쓴 사람은 곧 방송 들어갈 PD다. 드라마 PD들도 그렇다지 않나. 촬영장 가서 제일 꾀죄죄한 사람을 찾으면 그 사람이 PD, 그보다 더 후줄그레한 사람은 AD(수습 PD), 그리고 FD라고 진행요원이 있는데, FD는 심부름 가서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고 한다.






    - PD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가?



    ▲ 어떤 프로그램을 만들 것인지를 기획하고 그렇게 기획한 아이디어에 따라 카메라 맨과 함께 나가 촬영한 다음 촬영한 내용을 편집하고.. 그외 필요한 여러 작업까지 거쳐 완성된 하나의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일을 한다.








    - 편집 기술은 처음에 정식으로 누가 가르쳐주는 곳이 있나?



    ▲ 아니다. 그냥 AD때 선배 PD들을 따라 다니면서 스스로 보고 배운다. AD때는 처음에 간단한 방송 예고편부터 맡게 되는데, 밤새 머리 쥐어 뜯어가며 고민해서 만들어 가도 선배들이 ‘이게 아닌데...’하면 또 다시 만들고. 거의 도제식으로 배우는 셈이다.






    - 그렇게 AD로 얼마나 있어야 비로소 제작다운 제작을 맡아보게 되나?



    ▲ 우리가 하는 말로 ‘입봉’이라고 하는 건데, 드라마는 5, 6년 정도, 예능쪽은 대개 1년쯤 지났을 때 한 프로그램속의 일부 꼭지를 맡는 게 보통이다. 다큐멘터리쪽도 입봉하는데 5, 6년쯤 걸린다. 특별히 정해진 기간이 있는 건 아니다.




    - 인정을 받자면 뭘 특히 잘 해야 되나? 편집을 잘 하면 유능한 PD인가?



    ▲ 편집은 일부에 불과하다. 시키는 대로 잘 만드는 것도 기본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자신만의 새로운 아이디어로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기획력과 그것을 프로그램화 해서 완성도 있게 만들어내는 능력이다. 그게 뛰어난 PD를 결정하는 힘이다.






    - 실제로 그 정도 수준의 PD는 전체에서 얼마나 되나?



    ▲ (한참 난처해 하다가) 어느 사회든 그렇겠지만, 여기서도 주도적으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제작할 수 있는 수준의 사람은 내가 보기에 약 5%선인 것 같다.




    - 그 5%와 나머지 95%의 차이는 성실성의 차이인가, 감각의 차이인가?



    ▲ 그것과는 또 다른, 어떤 동물적인 차이라고 말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예를 들면 창의성이라든가 세상을 보는 시각 등 교육으로 되는 성질의 것도 아닌 것 같다. 그리고 나머지 95%도 다 같다는 게 아니라 개중엔 방금 말한 5%가 될 잠재력을 지닌 25%도 있고, 그냥 월급 받는 직장인으로서 열심히 자기 몫을 하는 65%가 있을 수 있고, 이렇게 말하기는 뭣하지만 더 아래로 내려가면 차라리 다른 직업을 택했더라면 더 능력발휘를 하고 있을, PD로는 맞지 않는 사람들도 모두 섞인 숫자다.






    - 제작을 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실수를 할 수도 있을텐데, 만약 어떤 ‘사고’를 친 경우 그래도 언제든 다시 만회할 기회가 주어지는 편인가?



    ▲ ‘사고’라면 여러 가지 경우가 있는데, 그중 소위 틀린 ‘Fact'를 방송하는 경우라면 PD에게 가장 치명적이다. 그러면 더 이상 그 PD에게는 그 프로그램이 안 맡겨지기 쉽다. 한번 실패한 곳에서 다시 기회를 얻을 확률이란 사실상 희박하다.






    - 실제로 선배나 동료, 후배들 중에 평소에는 프로그램을 잘 만들다가 단 한번의 실수로 큰 곤경을 겪은 사례도 있는가?



    ▲ (또 한참 난감해 하다가) 성격은 조금 다르지만, 예전의 ‘수달사건’이 그 비슷한 경우다. 그때 문제가 됐던 후배PD는 그 사건 이후 제작을 할 수 없는, 완전히 다른 부서로 보내지는 등 오랜 반성의 시간을 거쳐 돌아왔다. 이제는 돌아와 다시 일을 잘 하고 있다. 하지만 어쨌든 본인에게는 치명적일 수 밖에 없다. 일생동안 쫓아다니니까.




    ‘추적 60분’은 방송사선 3D업종








    - 매주 방송물인 추적 60분의 경우, 제작 일정이 보통 어떻게 돌아가나?



    ▲ 추적60분은, 특히 우리 방송 내부에서는 3D업종으로 불린다. 여기에서는 한 PD에 보통 6주 간격으로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첫째, 둘째주는 아이템을 찾다 보면 훌쩍 지나버린다. 그리고 3주간 촬영을 하고, 나머지 1주일을 가지고 편집을 포함해 마지막 작업까지 마친다. 촬영할 때도 고생이지만, 편집할 때도 며칠 내내 편집실에 처박혀 거의 매일 밤을 샌다. 완전히 파김치가 된 채 토요일 밤에 겨우 방송을 내보내고 나면 그때부터 며칠동안은 말 그대로 하늘을 날 것 같다.






    - 특히 민감한 사안들을 다루는 프로그램이라 외부적인 어려움도 많을 것 같은데...

    ▲ 그렇다. 취재도 어렵고, 외부 압력도 많고, 촬영 때도 항상 사고의 위험 때문에 긴장 상태다. 이번에 방송할 가정폭력 내용에서도 딸 넷이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를 죽인 사건을 취재하면서 딸의 인터뷰가 꼭 필요했는데, 그 집앞에서 1주일이나 죽치고 있어도 만나주려고 하지 않아 PD들이 어려움을 겪었다.



    얼마 전 부산의 토막 살인사건 현장을 취재할 때는 촬영 중 지붕이 무너지는 사고로 오디오맨이 다쳐 몇 주간 병원에 입원한 일도 있다. 때로는 부득이 거짓말도 해야 되고, 때로는 취재간 PD가 쫓겨나기도 하고, 그런 일은 너무 많다.






    - 방송 내용 때문에 소송을 당해 본 경험도 있는가?



    ▲ 최근 추적60분에서는 그런 일이 없었고, 옛날에 유학원 실태를 방송할 때 상대가 1,000만달러인가 2,000만달러 소송을 건 적이 있다. 처음엔 그쪽이 우리가 적당히 합의해 주면 몇십만달러나 건지고 끝내려다가 의외로 우리가 국제변호사까지 선임하며 강력하게 맞대응하자 스스로 포기했다.



    소송으로 치면 특징적으로 사이비 종교단체를 다룰 경우 ‘제깍’이다. 타 방송사에서도 근간에 종교단체를 다뤘다가 소송이 걸려 상당히 곤욕을 치르는 일이 많지 않나. 요즘은 고발 당하는 쪽의 방어도 갈수록 강력해져서 제작하기가 점점 더 힘들어진다.






    - 본인은 어떻게 PD가 되었나?



    ▲ 어렸을 때부터 영화를 아주 좋아했고 많이 봤다. 대여섯살 때도 극장 앞에서 기다리다가 입장하는 어른들 손을 슬쩍 잡은 뒤 따라 들어가 영화를 보곤 했다. 그리고 고려대 신문방송학과에 입학해 다니던 중 당시 MBC PD였던 김우룡 현 외대교수의 ‘프로듀서’라는 책을 읽고 참 멋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1981년 공채로 KBS에 입사했다.






    - 고생하는 만큼 경제적으로 충분히 보상받는 것 같은가? 수입은 어느 정도인가?



    ▲ 적은 편은 아니다. 대기업 봉급수준보다 조금 더 높다.






    - 공중파 3사의 연봉수준을 비교한다면?



    ▲ SBS, MBC, KBS 순으로 연봉이 높은 것으로 알고 있다. 반면에 방송사 분위기도 3사가 조금씩 다 다르다.






    - 생활이 불규칙한데 건강은 괜찮은가? 건강검진 때 걸리는 항목이 없던가?



    ▲ 2주전 검진을 받았는데 위염 진단을 받았다. 사실 PD들 대부분이 건강이 좋을 수가 없다. ‘생로병사의 비밀’을 제작하면서 조사한 자료에도 시인, 체육인 다음으로 평균 수명이 짧은 사람이 바로 언론인이었다. 늘 시간에 쫓기지, 술 많이 마시지, 실제로 우리가 사는 패턴만 봐도 오래 살 것 같지가 않다.



    전에 일요스페셜에 있을 때 함께 제작을 했던 한 PD는 해외 취재를 다녀오자마자 바로 시리즈를 내야 되는 상황에서 2, 3일에 한번씩 밤을 새며 편집하다가 결국 도중에 쓰러졌었다. 그 방송? 그래도 링거를 맞아가며 끝까지 편집을 마쳐 방송은 무사히 나갔다. 입사한 지 얼마 안 돼 근무중 사망한 입사동기도 있다.






    - 그렇게 힘든 일임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좋아하는 이유는 또 무엇인가?



    ▲ 만들어가는 과정은 힘들지만, 일단 만든 것에 대해 시청자들의 반응이 있을 때, 그리고 방송을 통해 사회가 뭔가 변하는 것을 볼 때 아주 즐겁고 뿌듯하다. 또 뭔가를 만들고, 만든 것을 보여주고 하는 일 자체가 내겐 재미있고 체질적으로 맞는다. 사주팔자에도 나는 쉬엄쉬엄 살 팔자는 못 된다고 한다. 팔자려니 하고 산다. (웃음)




    창의적인 사람에겐 멋진 직업





    스태프들의 대본 확인 독촉에다 분장실로, 녹화장으로, 다시 편집실로 옮겨 다니느라 수시로 토막이 난 채 이어진 이PD와의 인터뷰는 늦은 저녁에서야 끝이 났다. 얼마 뒤엔 새 프로그램을 더 띄울 준비중이라 요즘 더 피가 마르는 이영돈 PD. 그래도 PD가 부러운 지망생이 있는가? 그렇다면 이 한마디를 더 전한다.



    ‘본인이 창의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이 일은 정말 멋진 직업이다. 그러나 그게 아니라면 만용이다.’



    글·사진 정영주 자유기고가 pinn@ddanmail.net


    입력시간 : 2003-10-02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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