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 플러스 네이버 북마크 싸이월드 공감 기사 구입 프린트 기사메일
입력시간 : 2003.10.02 15:25:22 | 수정시간 : 2003.10.02 15:25:22
  • 나는 빌의 목을 비틀고 싶었다
    힐러리 자선전- 클린턴과의 30년


    르위스킨 스캔들, 고백 전까지도 '누명'이라 생각







    1970년 가을, 빌 클린턴은 그냥 지나치기 힘든 인물이었다. 얼굴은 적갈색 턱수염과 갈기 같은 고수머리에 덮여 있었지만, 그 아래 어딘가에 잘생긴 얼굴이 숨어 있는 훤칠한 미남이었다. 온몸에서 활력이 분출하는 것 같았다.



    예일 법대 학생 휴게실에서 그를 처음 보았을 때 빌은 동료들 앞에서 신나게 떠들어 대고 있었다. 캠퍼스 여기저기에서 빌과 마주치곤 했지만, 사건은 이듬해 어느 봄날 저녁 법대 도서관에서 일어났다. 책을 보고 있는데 빌이 바깥 복도에서 나를 힐끔거리며 쳐다보는 게 아닌가. 지나치다 싶어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갔다.



    “자꾸 그렇게 나를 쳐다보겠다면 나도 너를 계속 쳐다볼 거야. 하여튼 우선 통성명을 하는 게 낫겠군. 난 힐러리 로드햄이야.” 그랬다. 빌의 말에 따르면 그는 너무 놀라서 자기 이름도 생각나지 않았다고 한다.






    빌 “우린 천생연분” 프로포즈





    71년 한 강의가 종강하는 날 우리는 우연히 동시에 강의실을 나왔다. 빌이 “어디로 갈 거냐”고 물었다. 다음 학기 강의를 신청하러 교무과에 가는 길이었다. 빌은 “나도 거기 가는 길”이라며 내가 입고 있던 꽃무늬 스커트를 예쁘다고 했다. 함께 교무과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한 직원이 빌에게 말했다.



    “빌, 또 웬일이에요. 당신은 벌써 수강신청을 끝냈잖아요.” 그때 빌은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었을 뿐이라고 고백했다. 그냥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 함께 산책을 했다.



    그날 밤 난 기숙사 방에서 룸메이트와 함께 종강 축하 파티를 열 예정이어서, 빌을 초대했다. 파티에서 그는 거의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사실 우리가 커플이 될 가망은 거의 없었다. 나한테는 남자친구가 있었고, 교외에서 함께 주말을 보낼 계획이었다.



    주말을 보내고 돌아온 일요일 밤, 전화를 한 빌이 내 기침 소리를 들었다. “감기가 심한 모양이군”하더니 30분쯤 뒤 닭고기 수프와 오렌지 주스를 들고 왔다. 방으로 들어온 그는 아프리카 정치에서부터 컨트리 뮤직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때 나는 왜 종강 파티에서는 입을 다물고 있었느냐고 물었다.



    “너와 네 친구들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어서.” 아칸소 출신의 이 젊은이가 첫 인상보다는 훨씬 복잡한 사람이라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졸업 후 빌은 나를 따라 캘리포니아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깜짝 놀랐다. 빌은 맥거번 상원의원의 대통령 선거운동에 참가해 남부 지역 조직책을 맡았기 때문이다. “나를 따라 캘리포니아로 가면 당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기회가 날아가버릴 텐데, 좋은 기회를 왜 포기하려는 거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그게 이유야.” 빌은 나를 보자마자 놓치고 싶지 않았다며 우리는 천생연분이라고 강조했다.



    빌이 우리집에 처음 왔을 때 난 신경이 곤두섰다. 남자친구에 대해 험담을 곧잘 하는 아버지 때문이었다. 어머니도 ‘아버지 눈에는 어떤 남자도 마음에 들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빌이 예의 바르고 설거지를 기꺼이 도와주는 것을 좋게 여겼다.



    하지만 빌이 어머니의 환심을 산 것은 철학에 대한 탁월한 식견탓이었다. 빌은 어머니가 읽던 철학책에 대해 토론을 시작했고, 한 시간 뒤에 어머니는 그의 편이 되어 있었다. 아버지의 마음을 얻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좀처럼 진전이 없었지만, 카드놀이를 하고 TV로 축구를 보면서 아버지 마음이 열렸다.



    빌을 친구인 벳시 존슨에게 소개한 뒤 집에서 나오는데, 벳시의 어머니가 말했다. “네가 무엇을 하든 상관없다만, 저 남자는 놓치지 마라. 내가 보기에 지금까지 너를 웃긴 사람은 저 남자뿐이야!.”




    나를 웃긴 남자와 결혼





    법대를 졸업한 73년, 빌은 나를 유럽으로 데려갔다. 잉글랜드의 아름다운 호수 에너데일에 이르렀을 때였다. 빌은 결혼하자고 말했다. 나는 빌을 사랑했지만, 내 인생과 미래에 대해서는 전혀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니, 지금은 안돼”라고 말했다.



    부모의 이혼을 지켜본 나는 결혼을 한다면 평생 지속하고 싶었다. 나는 그때 무언가에 묶이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빌은 끈기가 대단하다. 일단 목표를 세우면 끝장을 본다. 나도 목표 가운데 하나였다. 빌은 몇 번이고 청혼했고 나는 거절했다. 마침내 빌은 뽀杉?







    “이제 더 이상 결혼해 달라고 말하지 않겠어. 결심이 서거든 나한테 말해줘.” 아칸소의 붉은 벽돌집 거실에서 결혼식을 올린 것은 그로부터 2년 반이 지나서였다.



    시어머니 버지니아를 처음 만난 것은 72년 봄이었다. 우리는 서로 당황했다. 버지니아가 오기 직전 나는 돈을 아끼려고 머리를 짧게 잘랐다. 화장도 하지 않았고, 거의 청바지와 작업복 셔츠 차림으로 지냈다.



    그러나 버지니아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아침 일찍 일어나 속눈썹을 붙이고 새빨간 립스틱을 바르는 타입이었다. 나한테는 시아버지인 제프 드와이어가 훨씬 편한 상대였다. 그는 “버지니아는 걱정하지 마. 새로운 생활에 익숙해질 시간이 필요할 뿐이야. 강한 성격을 가진 두 여자가 사이좋게 지내기는 어렵지”라고 위로했다.



    빌이 대통령에 취임하던 날 만찬이 끝난 뒤 2층에서 엘리베이터를 내렸을 때 우리는 달라진 환경이 믿을 수가 없어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 이제는 이곳이 우리 집이었다. 너무 피곤해 침대에 그냥 쓰러졌는데 겨우 몇 시간 눈을 붙였을까? 똑 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첫날 아침부터 긴급 사태가 벌어진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문이 열리더니 턱시도 차림의 남자가 은쟁반을 들고 들어왔다. 부시 전 대통령 내외는 오전 5시 반에 침실에서 아침을 먹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고, 백악관 집사들은 거기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러나 그 남자가 미국 제42대 대통령한테 들은 첫 마디는 “이봐! 대체 무슨 일이야?”였다. 그처럼 잽싸게 방에서 나가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우리는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가 한 시간쯤 더 자려고 애썼으나 허사였다.




    낯선 백악관 생활





    백악관의 딱딱한 격식이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것처럼, 백악관 식구들에게도 우리의 불규칙한 생활방식과 24시간 내내 일하는 습관이 낯설었다.



    특히 침실 문밖에 배치된 경호원에 대해서는 결코 익숙해질 것 같지 않았다. 항의를 했으나 경호국측도 양보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2층에서 침실을 지킬 게 아니라 아래층을 지키면 어떻겠냐”고 제의하자, 한 경호원이 되물었다. “각하께서 한밤중에 심장마비라도 일으키면 어떻게 합니까?” “대통령은 마흔여섯 살이고 아주 건강해 심장마비 따위는 절대로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고 쏘아주었다. 우리의 안전에 관해서는 그들이 전문가였다. 그들은 지난 12년 동안 예측 가능한 일과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선거 유세 도중 위험한 과속을 일삼고, 걸핏하면 차를 세운 뒤 군중에게 다가가 경호원들을 허둥거리게 했다. 경호팀장 돈 플린은 나중에 이렇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우리가 대통령이어도 비슷할 겁니다. 우리도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밤늦게까지 일어나 있기를 좋아하니까요.”



    내 참모들은 백악관 주변에서 ‘힐러리랜드’로 불렸다. 우리는 ‘웨스트 윙’의 일상적인 기능 속에 묻혀 있었지만, 나름대로 작은 문화를 갖고 있었다.



    ‘웨스트 윙’에서 정보가 새나가는 경향이 있었지만, ‘힐러리랜드’는 결코 그렇지 않았다. 대통령의 수석 참모들은 대통령 집무실과 가까운 사무실을 서로 차지하려고 애썼지만, 내 선임 참모들은 젊은 보좌역과 기꺼이 사무실을 공유했다. 회의실에는 아이들을 위한 장난감과 크레용이 놓여 있었고, 백악관을 찾아온 아이들은 우리가 쿠키를 숨겨둔 곳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어느 크리스마스 날 난 ‘힐러리랜드’라는 뱃지를 만들어 혹사당하는 직원들의 배우자와 자녀들에게 건네줬다. 이 뱃지를 단 사람은 언제든지 백악관을 방문할 수 있었고 우리 파티에도 참석할 수 있었다.



    레이디 퍼스트는 무엇을 원한다고 할 때 극도로 조심해야 한다. 퍼스트 레이디가 된 뒤 처음으로 혼자 여행하고 있을 때 한 젊은 보좌관이 물었다. “객실에서 뭘 마시고 싶으세요?” “다이어트 닥터 페퍼.” 그 후 몇 년 동안 나는 호텔 방에서 다이어트 닥터 페퍼가 가득찬 냉장고 문을 열어야 했다. 또 사람들은 어딜 가나 차가운 다이어트 닥터 페퍼가 담긴 잔을 들고 나에게 다가왔다.



    97년 1월21일 빌은 아침 일찍 나를 깨웠다. 그는 침대 모서리에 앉아 말했다. “오늘 신문에 당신이 알아야 할 소식이 들어있어” “그게 뭔데?” 그는 백악관 인턴과 문제가 있었고 그녀에게 거짓 증언을 하도록 부탁한 기사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백악관 인턴인 모니카 르윈스키가 ‘웨스트 윙’에서 자원봉사하기 2년 전부터 알고 있었고 직업을 구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해 도와 주었으며 몇차례 그녀와 이야기를 나눴는데 엄청난 오해를 받게 됐다는 남편의 이야기를 믿었다.



    그때까지 나는 스타 특별검사와 일부 세력이 르윈스키 스캔들을 만들었다고 믿었다. 정치인이 된 후 마약문제에서 창녀와의 관계까지 숱한 스캔들이 나왔고, 인턴스캔들 역시 같은 게 아니냐는 생각이었다. 나는 그에게 거듭 물었다. 그는 부적절한 행위를 부인했다.



    그날도 우리는 평소와 같게 행동했다. 고민은 오후로 예정된 볼티오머 구처 대학 연설을 해야 하느냐였다. 고민 끝에 나는 볼티모어행 기차를 탔다. 사람들은 우리가 그날 아침에 어떻게 일어났는지, 어떤 모습으로 대중 앞에 설 것인지 궁금해 했다. 솔직히 나도 두려웠다. 대중 앞에 평소의 감정을 유지한다는 게 어려운 일이었다.




    쉽지않은 용서, 결국 사랑하기로







    그로부터 몇 달 후인 8월15일 아침 빌은 이전처럼 나를 깨웠다. 침대 모서리에 앉아 있지 않고 방안을 왔다 갔다하면서 처음으로 ‘사태가 고백했던 것 보다 훨씬 심각하다’고 말했다.



    그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떠듬거리며 털어 놓았다. 몇 달전에는 도저히 고백할 수 없었다고 했다. 나는 거의 숨을 쉴 수 없었다. 숨을 한번 쉬고 나서 울음을 터뜨리면서 남편에게 마구 소리를 질러댔다.



    “무슨 소리야, 지금 무슨 말을 하는거야, 왜 거짓말을 했어” 그때까지 그가 억울한 누명을 쓴 것이라고 믿었다. 나는 점점 더 격분했다. 남편은 그냥 선채로 “미안해, 미안해, 당신과 첼시를 보호하고 싶었어”라는 말만 되풀이 했다.



    그가 젊은 여자에게 눈길을 주기는 하지만 결혼을 파경으로 빠뜨릴 그런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 믿었다. 나는 거의 넋이 빠졌고 미친 듯이 날뛰었다. 난 첼시에게도 고백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편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정말 끔찍한 순간이었다. 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빌은 그날 대배심 증언을 마친 뒤 오후 10시 대국민연설을 준비했다. 빌은 그야말로 허둥댔다. 스태프들도 어찌할 줄 몰랐다. 내가 8시쯤 윗층으로 올라가 “어떻게 돌아가느냐”고 물었더니 묵묵부답이었다. 상황은 자명했다. 빌이 어떻게 말할 것인지 결정해야 했다. 마침내 내가 나섰다.



    “빌, 이건 당신의 연설이야. 바로 당신이 저지른 일이야. 오직 당신 자신만이 무얼 말할지 결정할 수 있어.” 중요한 연설문을 작성할 때면 우리는 늘 서로 조언을 주고받았으나 이번에는 아니었다.



    그 후 머리를 식히기 위해 마샤 빈야드로 가족 여행을 떠났다. 애완견 버디도 동행했다. 빌에게 따르는 것은 버디밖에 없었다. 나는 기분이 풀리지 않았다. 우리는 말없이 해변가를 거닌 뒤 남편은 아래층에서, 난 위층에서 따로 잠을 잤다. 그는 사과하고 또 설명했다.



    나는 우리 결혼에 대체 뭐가 남아있는지 생각했다. 빌을 용서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만델라가 그를 수십년간 감옥에 가둔 백인들을 용서할수 있었다면 나도 한 번 해 보겠다고 생각했다.



    8월 말에야 화해가 이뤄졌다. 상처를 입고 실망은 했지만 정치적 믿음과 개인적 필링은 가끔 충돌하는 법, 아내로서 그의 목을 비틀어 죽이고 싶었지만 그는 또 나의 대통령이었다. 내 남편과 결혼을 위해 싸울 준비는 돼 있지 않았지만 대통령을 위해서는 싸우기로 했다. 외로운 경험이었다. 결국은 남편을 사랑하기로 했다.

    입력시간 : 2003-10-02 15:27

  • HOME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