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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3.10.02 15:32:27 | 수정시간 : 2003.10.02 15:32:27
  • 25년만에 신보를 낸 시각장애인 가수 이용복
    "아이야, 노래엔 향기가 있단다"





    우리나라 첫 시각 장애인 가수 이용복이 25년 만에 무대로 돌아온다. ‘한국의 호세 펠리치아노’로 불리며 시각 장애인의 우상이었던 그는 1978년 필리핀 가수 프레디 아귈라의 히트곡 ‘아낙’을 번안한 ‘아들아’를 마지막으로 가요계에서 사라졌다. 갑작스런 그의 퇴진을 두고 세간에는 소문이 무성했다.



    은퇴 당시 ‘즐거워야 할 안방 프로에 저런 맹인 가수가 자주 나오면 국가 이미지에 좋지 않다’는 최고위 공무원 부인이 거부 반응을 보여 방송 출연을 금지 당했다는 황당한 소문마저 공공연하게 나돌았다.



    화사한 초여름 날 자신이 운영하는 양평의 까페에서 만난 이용복은 “78년엔 이런 저런 일로 참 힘들었다. 그래서 가수활동을 접고 녹음실을 차렸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84년 서울 강남에 작은 녹음 스튜디오를 연 후 이듬해 장로교 연합회 초청으로 미국으로 떠나 복음 성가 가수로 변신을 했다. 당시 한국 맹인 복지 협회는 보사부 등 관계 당국에 “이용복과 같은 맹인 연예인들이 다시 방송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장애인의 재활 의지를 북돋아 달라”는 건의문을 보냈을 만큼 그의 퇴진을 아쉬워 했다.



    7년만인 91년 귀국한 그는 답십리에 85평 규모의 녹음실을 마련, 부활과 영턱스의 음반을 녹음하며 수완 좋은 사업가로 거듭났다.



    하지만 2001년 샤크라의 ‘헤이 유’ 음반을 마지막으로 녹음실 사업을 접었다. 이후 용문사 입구에서 모텔을 잠시 운영하다 2001년 11월부터 양평에 실제 비행기를 개조한 ‘공항 까페’를 열어 지금까지 운영중이다. 자신의 팬이었던 김연희씨와 결혼, 주원ㆍ효원 쌍둥이 아들을 두고 있다.



    8평 규모의 컨테이너에 마련된 이용복의 양평 북한강가 녹음 작업실. 야마하 DM2000 96채널 디지털 콘솔과 미국 스타인버거사의 뉴엔도라는 작지만 탄탄한 녹음 프로그램을 갖추어 놓았을 만큼 그에겐 소중한 음악공간이다.



    그는 “예전엔 이 정도 시스템이면 7억~8억은 족히 들었지만 요즘은 세상이 좋아 4,000만 원 정도에 마련했다"며 은근 슬쩍 시스템 자랑을 한다. 새 음반 녹음 준비를 위해 펜더와 깁슨의 장점을 갖춘 일렉트릭 기타 ‘탐 앤더슨’도 470만원에 들여왔다.




    원 맨 올 마스터 시스템으로 제작





    이용복의 신보는 국내에서는 드문 형식의 음반이 될 듯하다. 우선 노래뿐 아니라 작곡, 편곡, 연주, 녹음 엔지니어링, 디렉터, 믹싱 등 음반 기획 일체를 그가 혼자 맡아서 제작한 ‘원 맨 올 마스터’ 시스템이기 때문. 자신의 히트곡 ‘사랑의 모닥불’과 현철의 ‘봉선화 연정’ 작사가로 유명한 KBS 효과음악 감독 김동찬과 부인이 작사만을 거들었다.



    음반을 내게 된 동기는 부인의 글을 가사로 채택한 ‘아이야’ 때문. 3~4년 전 외국에 보냈던 아이들을 다시 한국에 데려왔을 때 말이 서툴러 적응하기 힘들어 했던 당시의 고생담을 적어 놓은 부인의 글을 우연히 보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







    “다섯 장의 꽃잎 같은 작은 손 주먹 쥐고 태어 났을 때/ 아이야 가만히 불러봤단다 너의 모습 바라보면서/ 세상 어떻게 사는지 모르는 너의 마음 우리가 알 때/ 아이야 우리가 손잡아 줄게 언제나 널 지켜 줄게/ (후렴)두 손을 꼭 잡고 얼굴을 마주보며 너에게 들려줄 말은/ 바람 속에서도 흔들리지 말고 비켜서지도 말아라/ 길을 가다 길을 잃어도 고개 숙이지 말고 길을 찾아 가야 한다고”.(‘아이야’)



    한번은 부부싸움을 크게 했다. 보통 하루면 끝이 나는데 그때는 처음으로 2~3일 갔다. 그때 아내는 또 글을 썼다. 그 글을 읽고 가슴이 뭉클해 곡을 붙였다. 까페에서 그 노래를 몇 번 불렀다. 부부 싸움을 하고 온 손님들은 그 노래를 다시 불러 달라고 했다. 노래 제목은 ‘부부싸움’. 또 70년대 부인과의 연애 시절 사연을 담은 노래 ‘70년대 첫사랑’도 있다.



    맹인학교에서 책을 읽어 주는 봉사 활동을 했던 그의 부인은 고시 1차 시험에 합격을 했던 법학도였다. 글재주가 있는 그녀는 얼마 전에 모델 가수 김종운이 불렀던 ‘전화위복'과 김하정이 90년대 후반에 음반을 냈던 ‘당신의 나’를 작사한 실력가다.



    이용복은 “가사를 보니 곡을 쓰고 싶어 즉석에서 작곡했다. 교육적인 내용이 좋고 그동안 음반을 내야 할 특별한 동기가 없었는데 이번엔 부부가 의기투합했다. 5월 쯤에 발표할 생각이었는데 바쁘게 사는 와중에 틈틈이 작업할 수 밖에 없어 늦어졌다”고 아쉬워한다.



    그가 애착을 가지는 또 다른 곡은 암으로 요절한 여수의 어느 젊은 작곡가의 구전가요 ‘다시 오마 여수항아’. 곡성 경찰서장 김용인씨와 작사가 김동찬씨가 공동 작사한 이 노래는 구전으로 이미 알고 있는 여수 팬들의 기대가 굉장하다.



    25년만에 선을 뵈는 새 앨범에 수록된 곡은 괴테의 문학과 베토벤의 음악을 논했던, 낭만이 있던 시절의 연애이야기와 삶의 향기가 나는 곡들로 꾸며졌다. 이밖에 자신의 가수일생을 정리한 ‘I'm A Singer’, 딥 퍼플과 퀸의 리듬을 리믹스한 하드록 풍의 ‘하지마’, 소프트 록 라틴 풍의 ‘믿어요’등 총 11곡이다.



    발표를 앞두고 막바지 믹싱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그는 타이틀곡 선정 때문에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깐소네 풍의 ‘아이야’와 ‘70년대 첫사랑’, ‘I'm A Singer’중에서 최종 결정할 계획이다.




    다양한 음악장르 선 뵈





    새 앨범은 이용복 자신의 오랜 음악적 갈증도 풀어줄 듯 싶다. 그는 “앨범 재킷 사진촬영도 마친 상태라, 6월말이나 7월 초쯤에는 세상 빛을 보게 된다”며 들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숨겨진 노래에 대한 사연도 조심스레 털어 놓았다. 바로 ‘감옥에서 사형수들이 불렀다’는 이유로 금지됐던 ‘어부의 노래’가 사실은 자신의 곡이라고 밝혔다.



    원래 이 노래는 끝맺음이 없는 미완성곡이었는데 ‘어부의 아들’로 완성해 모 작곡가에게 편곡을 맡겼더니 다른 작곡가의 이름으로 둔갑이 됐다고 한다. “처음엔 도둑을 맞았다는 생각에 화가 나 고소를 하려고 했었다”는 그는 “기회를 봐서 내가 다시 노래 할 생각”이라고 했다.



    무대를 떠났던 지난 20여 년간 가수의 꿈을 아주 접은 것은 아니었다. 여러 음반 작업에 세션으로 참가했고 노래도 20여 곡 만들어 놓았다. 그의 집에는 장애자 팬들로부터 가수 활동 재개를 간청하는 격려 편지가 지금도 오고 있다.



    그는 변치 않는 사랑을 보내주는 팬들에게 보답하기 위해 용기를 내 최근 방송 활동을 재개했다. “이제 인기에는 관심이 없고 제 노래가 저처럼 불우한 사람들에게 조그만 삶의 희망을 줄 수 있다면 무엇보다 기쁠 것 같다. 아이들을 생각하며 우리 부부가 함께 만든 곡 ‘아이야’를 먼 훗날 내 아이들이 들으며 엄마 아빠의 사랑을 기억해 준다면 바랄 것이 없겠다.”



    소박한 음악 포부를 그의 모습에는 인간미 넘치는 아티스트의 향기가 풍겨 나왔다.



    최규성 가요칼럼니스트 kschoi@hk.co.kr


    입력시간 : 2003-10-02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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