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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3.10.02 17:05:54 | 수정시간 : 2003.10.02 17:05:54
  • [직업의 세계-5] KBS 효과감독 김동찬
    방송이 살아있음을 소리에 담아내는 '술사'







    TV에는 있고 신문에는 없다. 방송국에는 있고 사진관에는 없다. 진짜가 가짜같고 가짜가 진짜같다. 뭘까? 이미 제목을 읽었을테니 사실 우문이다. 소리로 방송에 생명을 불어넣는 방송음향효과, 화면 속의 빗소리가 빗소리로 들리는 건 다 이 전문기술 덕분이다.



    “소리가 가볍지 않으면서 사람들이 쉽게 알아채지 못하도록 가능한 한 복합된 소리를 씁니다. 그렇게 해서 들려주면 진짜 현장에서 따온 실제음은 진짜가 아니라고 하고 저희가 만들어낸 소리가 진짜라고 하지요.(웃음)”



    KBS 효과감독 김동찬(55)씨는 자사 효과팀의 최고참 사령탑이자 35년 경력의 음향 효과 전문가다. 드라마 ‘전설의 고향’, ‘용의 눈물’을 위시해 그동안 많은 작품을 제작했고, 현재도 대하사극 ‘무인시대’, ‘장희빈’ 등의 작업을 맡고 있다.



    방송의 음향효과는 제작방법상 크게 두 가지. 직접 즉석에서 도구를 이용해 소리를 연출하는 생 효과와 이미 녹음된 소리자료들을 활용해 만드는 테이프 효과로 나뉜다. 신디사이저와 같은 전자장비도 여기에서 일당백의 지원군이다. 말발굽 소리나, 문 여닫는 소리, 발자국 소리, 찻잔 내려놓는 소리와 같은 것들은 주로 즉석에서 만들어지고, 새 소리 같은 자연의 소리나 화살 날아가는 소리, 우주의 신비한 파열음 같은 것은 기존 자료를 사용하거나 또는 상상력을 동원해 재창작한 것들이다.




    대사 빠르고 모두 효과음





    음향효과의 존재가 가장 화려하게 피어나는 무대는 드라마다. 등장인물의 대사를 빼고는 모두 음향효과팀의 손을 거친 것들이라 보면 된다. 새가 지저귀고, 누군가 뛰어가고, 삐그덕 문을 닫거나 자동차가 급출발하는 소리, 심지어 고요한 ‘무음’상태까지도 모두 치밀하게 계산된 음향이다. 동시녹음을 하는 경우에도 원음에서 소리를 보태고 빼고, 낱낱이 잔손질을 거치는 과정이 빠지지 않는다.



    재미로 치면 이렇게 특이하게 재미있는 일도 흔치 않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사극에서 볼기 치는 소리는 삼겹살 뭉치를 쳐서 나오는 소리다. 얼음 깨지는 소리가 필요할 땐 유리판에 스카치테이프를 붙인 뒤 좍 찢듯이 떼어내면 된다. 싸락싸락 눈 밟는 소리는 녹말가루를 한웅큼 손에 쥐고 비벼서 해결한 것.



    낚시대를 휘두르면 검객들의 칼 휘두르는 소리가 튀어나오고, 공사장의 흙손을 서로 부딪치면 쨍쨍~ 칼 부딪치는 소리가 탄생한다. 물론 이것은 KBS식 비법이다. 소리를 내는 방법은 방송사마다 다른 노하우다.



    “가끔은 우리도 모르는 소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옛날에 ‘명전’ 소리를 만들 때가 그랬는데, 명전이란 사극의 기습 장면에 잘 나오는, 일종의 화살 신호탄입니다. 화살 끝에 바람개비같은 게 달려서 이것이 날아가면서 휘잉~ 소리를 내는 건데 언제 우리가 그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어야지요.



    일단 고증위원들의 자문을 받아 어떤 소리인지 알아본 뒤에 나름대로 길게 분 호루라기 소리랑 옛날에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이 갖고 다니던 안마피리 소리를 한데 섞어서 고속으로 돌려봤습니다. 그리고 고증위원들에게 들려주자 ‘똑같다!’고 하더군요. 사실 소리라는 건 일단 자료로 만들어 놓고 나면 별 것도 아니지만 그때까지 찾고 얻는 과정이 아주 어렵고 힘든 거지요.”




    자연의 소리 채음작업은 고행









    자연 속에 있는 소리를 그대로 담는 채음작업만 해도 끝없는 행군이다. 종류나 분량이라는 건 아예 정할 수조차 없다. 빗소리 하나로도 수백가지. 맨 흙에 떨어지는 비, 콘크리트 바닥에 떨어지는 비, 유리창에 떨어지는 비, 자동차 지붕에 떨어지는 비, 이슬비, 장대비 등등 상황에 따라 수백, 수천가지의 종류가 태어난다.



    수십년에 걸쳐 비축된 자료들을 갖고도 여전히 채음을 나서야 하는 이유도 그만큼 세상의 소리가 다양하고 변화무쌍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쓸모없?소리란 이들에게 한가지도 없다.



    “옛날에는 녹음장비가 좋은 것도 아니고, 고생이 무지 심했지요. 틈만 나면 녹음기를 들고 나가 소리를 따오는 게 일과였어요. 자료에 없는 건 무조건 담는 겁니다. 어떨 땐 택시를 타고 가다 말고 밭에서 소 쟁기질을 하는 걸 보고 즉석에서 뛰어가 녹음을 한 적도 있고, 동굴 특유의 울림 소리를 만들어내게 된 것도 문경의 한 탄광에 채음을 하러 갱도에 들어갔다가 공기풀무 소리를 듣고 비슷하다 싶어 녹음해뒀다가 나중에 이 소리를 길게 늘인 뒤 바람소리랑 섞어서 성공시킨 거였지요. 요즘도 길 가다가 무슨 이상한 소리만 나면 반드시 확인하고 지나가야 됩니다.”



    와중에 김씨가 겪은 갖가지 사건사고들. 얼음 깨는 소리를 녹음하려다가 물에 빠지기도 하고, 산속에서 녹음을 하다 말고 인근 주민들의 신고로 난데없는 간첩 누명을 덮어쓰고 이를 해명하느라 진땀을 빼기도 했다.



    방송을 하루 앞둔 시점에 급히 양계장 소리가 필요했던 어느 날에는 수소문 끝에 서울 인근의 한 나환자촌 양계장을 찾아가다가 문득 세간의 소문이 떠올라 공연히 겁을 먹기도 했다. 결국 발길을 돌려 다른 시골의 양계장을 찾았지만 ‘외부인이 들어오면 닭들이 병들어 죽는다’며 주인이 거부하는 바람에 한참을 사정해야 했던 기억도 있다.



    “옛날에는 그래도 다들 잘 도와주신 편인데, 요즘은 갈수록 채음이 어렵습니다. 돈을 요구하는 곳도 많고, TV 카메라도 아닌 녹음기만 달랑 들고 가다 보니까 시시하게 여겨서 귀찮다고 거절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또 어디를 가나 요즘은 자동차 소리가 안 들리는 곳이 없어요. 소음 때문에 채음이 제대로 안됩니다. 어떨 때는 겨우 녹음이 시작돼 한창 잘 나가는 중에도 갑자기 옆에 지나가던 분이 불쑥 와서 ‘지금 뭐하는 거냐?’고 물어보는 바람에 허사가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웃음)”




    시간에 쫓기는 '소리와의 전쟁'





    소리에도 색깔과 감정이 있다는 게 김씨의 지론이다. 해당 방송물의 내용과 분위기에 따라 음향의 강약과 색깔을 정확하게 읽고 맞춰주는 게 전문가의 능력이라는 것. 당장 연출자가 원하는 색깔부터가 각양각색이다. 오래 전 김구 선생 특집극을 제작할 때도 김씨는 특별한 주문을 받았다.



    “장면 중에 백범 선생을 암살하라고 사령관이 안두희에게 은근히 압력을 넣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이쪽에선 아직 마음의 결정도 안 했는데 ‘네가 하기로 했다며?’하면서 앞질러 격려하며 압력을 넣는거지요.







    그 장소가 공원이라, 객관적인 용례대로 공원의 새 소리를 넣어갔더니 PD가 아니라는 거예요. ‘뭔가 음모적인 새소리로 깔아달라’는 거예요. PD의 말이 바로 머리에 콱 박히더라구요. 그럼 시간을 더 달라고 하고서는 다시 생각했어요.



    말하자면 이건 내가 지금 결정을 못하고 있는데 옆에서 마구 쪼는 상황이란 말이죠. 그래서 딱다구리 소리 있죠? 부리로 연신 두들겨대는. 그거랑 웩웩 하는 잡까마귀 소리, 그리고 딱갈새 소리, 이런 것들을 함께 섞어서 다시 PD에게 갔어요. 그러자 PD가 ‘바로 이거!’라는 거예요. 그 다음부터 그 PD는 작품을 할 때마다 다른 사람은 두고 꼭 저만 찾았었어요. 소리라는 게 그만큼 소리 이상의 역할을 하는 거지요.”



    시간에 쫓기는 압박감은 효과팀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대본을 받은 뒤 웬만큼 준비를 한다 하더라도 실질적으로 작업이 가능한 것은 편집된 최종 화면을 확인한 뒤다. 다 찾아놓은 자료로 화면에 소리를 입히는 데에만 거의 하루가 걸린다. 특히 전투 장면이 많은 사극의 경우는 준 비상이다.



    화면에서 한번 전쟁이라도 벌어졌다 하면 음향효과팀 안에서도 버금가는 전쟁이 벌어진다. 불과 몇초 사이에 쏟아지는 수백발의 화살 소리도 제작이 간단치 않다. 눈이 빨갛게 충혈되도록 일일이 느린 화면으로 동작을 확인해 한발 한발 타이밍에 맞춰 소리를 심기 때문이다.



    게다가 북소리, 함성소리, 말이 뛰는 소리까지 동시다발로 터지면 일은 산더미처럼 늘어난다. 어떨 땐 방송 시간이 다 되도록 작업이 끝나지 않아 김씨 표현을 빌자면 ‘×줄이 탄다’. 이럴 때는 너나없이 신경이 날카로와져 작업실 전체가 시한폭탄이다.



    “하지만 일을 하고 난 뒤의 성취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만들어낸 결과를 보고 연출자가 ‘역시!’라며 고마워할 때, 또 예전의 ‘TV 문학관’과 같은 경우 방송위원회에 작품을 가져갔을 때 참 잘했다고 할 때, 그럴 때 아주 뿌듯하지요.”



    ‘育?눈물'에서도 김씨는 독특한 인상을 남긴 바 있다. 태종의 기우제 장면에 나오는 천둥소리에 스테레오 방식을 도입해 여기저기서 천둥이 꽝꽝 터지는 ‘입체적 낙뢰’를 선보인 것. 이 작품은 얼마 뒤 자사의 우수 프로그램 평가 음향효과상 수상의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원래 가수의 길을 준비하던 김씨가 음향효과 분야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은 1968년 한 영화 녹음스튜디오에 취직하면서부터다. 약 8년간 영화계에서 일한 뒤 동아방송을 거쳐 지금까지 방송인의 길을 걷고 있다.



    영화쪽에서는 TV의 기본을, 동아방송에서는 라디오의 기본을 다진 셈이다. 그에게도 시작은 쉽지 않았다. 선배들의 야단과 욕을 얻어먹어가며 어렵게 노하우를 익히고 다졌다. 날아다니는 벌 소리를 종전처럼 전기면도기로 내는 것보다 비상벨의 내부장치를 이용하면 더 세련된 소리로 만들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것도 한 선배가 전해준 노하우였다.



    말발굽 소리를 잘 내보려고 실없는 사람처럼 혼자 밥그릇을 엎어놓고 연습하던 시절도 있었다. 작업에 쓰이는 갖가지 도구들을 준비하고 치우는 허드렛 일도 신참 김씨의 몫. 이것은 요즘도 신입이라면 반드시 거치는 엄연한 학습과정이기도 하다. 도구를 직접 다뤄보면서 소리를 만드는 법에 대한 눈이 자연스레 떠지기 때문이다.




    히트곡 작사가로도 이름 날려





    “이 일에도 인내와 시간이 필요합니다. 저희 때는 15년씩 걸렸지만 요즘처럼 영리한 후배들 같으면 대략 10년쯤 배우면 뭘 맡겨도 문제없이 일 할 수 있는 단계가 되지 않나 봅니다. 의욕이 넘치다 보면 조급해지기 쉽지만, 늦더라도 확실하게 알고 가는 사람이 결국 경쟁에서 이기게 돼 있습니다.”



    ‘네 박자’ ‘봉선화 연정’ 등을 작사해 가요계에서는 히트곡 제조기로도 유명한 김씨. 노랫말을 짓는 감성이 방송에서 소리의 감정을 파악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되었다고 그는 말한다. 그처럼 방송 음향효과맨이 되자면 방송국 공채를 거치거나 또는 외부의 프리랜서팀에서 활동하는 방법이 있다. 방송사 시험에는 지원자의 자질을 알아보는 실기시험도 포함돼 있다. 시험방식은 노코멘트. 정 원한다면 김동찬 효과감독도 이 정도의 코치는 해 줄 수 있다.



    “평소에 드라마를 많이 보는 게 좋습니다. 거기에 나오는 소리 하나하나에 주목하면서 어떻게 하면 저런 소리가 나올지 직접 만들어보기도 하면서요. 특히 드라마는 그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이 만든 것이기 때문에 그 이상 좋은 교본이 없다는 거지요.”



    글·사진 정영주 자유기고가 pinplus@empal.com


    입력시간 : 2003-10-02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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