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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3.10.02 17:11:09 | 수정시간 : 2003.10.02 17:11:09
  • 카메라폰 공포 확산, 당신은 지금 "찍히고 있다"
    간편하고 신속한 촬영에 속수무책, 몰카의 제국으로





    해마다 여름이면 방송에서 ‘납량 특집’을 만난다. ‘스크림’ ‘링’ 등의 공포 영화나 ‘전설의 고향’ 류의 정통 귀신 드라마가 연일 방송되고, 어두컴컴한 산중에서 연예인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귀신에 외마디 비명을 질러대는 공포 체험 프로그램도 적지 않다. 구식이다.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그런 원시적인 공포로 시청자들에게 오싹함을 줄 수 있을 거라고 믿는 건지. 2003년 여름, ‘납량 특집 프로그램’은 이 정도는 돼야 하지 않을까.



    #1. 30대 남자. 사우나 탈의실에서 벌거벗은 채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며 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리고 있다. 문득 주변의 기운이 느껴져 슬쩍 곁눈질을 해보니 누군가 휴대폰을 들고 음흉한 표정을 짓고 있다.



    #2. 자정을 넘긴 시각. 20대 초반의 여자가 술에 덜 깨 지하철 안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다. 종착역, 깜짝 놀라 눈을 떠 보니 텅 빈 객차 안에서 한 핸섬한 남자의 어깨에 기대어 있는 게 아닌가. 민망한 마음에 입가에 묻은 침을 닦으려는 순간, 그 남자의 손에 들려진 휴대폰에 자신의 얼굴이 들어 있다.



    #3.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날 한 수영장 리조트. 비키니 수영복을 입은 20대 여성이 경사 50도가 넘는 슬라이드를 타고 쏜살같이 아래로 내려 온다. 스릴을 만끽하는 것도 잠깐. 잔뜩 위로 치켜 올라간 수영복을 추스리려는 순간, 주변의 구경꾼들 사이에서 찰칵하는 소리가 연이어 들린다.



    #4. 점심 시간. 텅 빈 사무실에서 메일을 열어 보는데 ‘엽기 사진’이라는 제목이 관심을 끈다. 황당한 포즈의 사진들에 킥킥 거리는 데 어디서 많이 본듯한 얼굴이 끼여있다. 그리곤 외마디 비명이다. “앗!”




    '빅 브라더' 카메라폰





    휴대폰과 카메라가 결합된 ‘카메라폰’의 등장으로 ‘몰카 공포’가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일반 디지털 카메라(디카)와 다를 게 뭐 있냐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휴대의 간편성과 신속성에서 디카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출근 길에 혹은 등교 길에 디카를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아도 휴대폰은 누구나 갖고 다니는 필수품이다.



    전화 통화를 하던 중이라도 마음에 드는 장면이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찰칵”, 화면에 담을 수 있다. 전화를 하는 건지, 사진을 찍는 건지 언뜻 봐서는 구분이 가지 않기 때문에 무방비로 당하기 십상이다. 최근에는 휴대폰 폴더를 열지 않고서도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제품까지 등장했다.



    공공 기관에 설치된 무인 카메라, 여관이나 비디오방에 설치된 몰래 카메라, 아날로그 카메라 시장을 급속히 대체한 디카, 여기에 카메라폰까지 가세하면서 개인은 언제 어디서 누군가의 셔터에 걸려들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떨며 완전히 발가벗겨진 채로 살아가고 있다.




    위험 수위 넘어선 카메라폰 부작용





    카메라폰 사진을 공유하는 인터넷 P 사이트. 대부분이 자신을 과시하는 사진들이지만 아슬아슬한 경계선을 넘나드는 사진들도 적잖이 눈에 띈다. 당사자의 허락을 받기는 했는지 친구가 술에 취해 주점에서 엎드려 자고 있는 모습이 버젓이 올라 있고, 학교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팔을 괴고 졸고 있는 모습도 “딱 걸렸다”는 듯 공개돼 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의 한 카메라폰 동호회. ‘파파라치’라는 이름의 한 회원은 학교 교실에서 한 친구가 다른 친구의 돈을 뺏는 장면을 실제로 포착했다며 사진을 올리는 가 하면, 주유소 나레이터 모델의 몸매를 구경시켜 주기도 한다. 이쯤은 예사다.





    성인 전용 사이트나 파일 교환 사이트에는 카메라폰을 이용한 ‘몰래 카메라’ 사진과 동영상들이 쏟아진다. 목욕탕이나 수영장 탈의실, 화장실 등이 카메라폰을 이용한 몰카의 집중 공략 대상이다.



    기업이나 학교 등 공공기관도 카메라폰과의 한 판 전쟁을 치르고 있? 카메라폰을 통해 사내 기밀 문서가 유출되는 등 피해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기 때문. 올 초 한 자동차연구소의 경우 한 협력업체 직원이 미공개 신차 사진을 카메라폰으로 찍어간 사실이 밝혀지면서 한바탕 소동을 겪기도 했다.



    이에 따라 현대ㆍ기아차는 주요 연구시설과 본사 사옥 21층 등 사내 핵심시설을 카메라폰 휴대 금지구역으로 지정했고, 심지어 카메라폰 제조 업체인 삼성전자도 7월 중순부터 반도체와 LCD, 가전 전 사업장에서 임직원과 방문객을 포함한 모든 출입자의 카메라폰 반입을 전면 통제키로 했다.



    교육 현장에서도 카메라폰 부작용이 적잖이 발생하고 있다. 학생들이 시험 시간에 답안지를 카메라폰으로 찍어 친구에게 전해주는 커닝 방법이 등장하는가 하면, 수업 시간에 체벌하는 선생님의 모습을 카메라폰에 담아 인터넷에 올리는 바람에 논란을 빚은 사례도 발생했다.




    인권 보호냐, 기업 보호냐





    카메라폰 공포가 날로 심각성을 더 해가자 오ㆍ남용 방지책을 둘러싼 논쟁도 불을 붙고 있다. 먼저 발 벗고 나선 것은 정부였다. 정보통신부가 공중 목욕탕 등에 카메라폰을 반입하지 못하도록 하거나 사용을 금지하는 초강경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나선 것. 미국, 일본, 호주 등 선진국에서 탈의실이나 수영장 등의 카메라폰 사용을 규제하고 있다는 점도 정부의 규제 정책에 힘을 실어줬다.



    하지만 가뜩이나 산업이 위축된 상황에서 카메라폰 규제 논의가 그나마 수출 효자 구실을 하고 있는 카메라폰 산업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지적이 빗발치면서 정부도 중심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며칠 뒤, 카메라폰으로 사진을 촬영할 때 신호음을 내거나 빛을 발산하도록 하는 기술적 장치를 의무화하는 방안 등을 마련하겠다고 기존의 사용 규제 방안에서 한 발 물러선 것도 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는 않을 전망. 업계가 발산 장치를 의무화할 경우 원가가 크게 상승하고 디자인 경쟁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여전히 강력 반발하고 있는 탓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카메라폰 규제는 국내 기술 발전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며 “지나친 행정 편의주의적 발상”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산하 기업들의 주장을 무시할 수 없는 정통부로선 이래 저래 난감한 처지다. 정통부 김정원 통신기반대응팀장은 “현재 국ㆍ실별로 의견을 취합해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중”이라며 “규제에 따라 카메라폰 산업이 위축되는 결과를 결코 무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결국 카메라폰으로 찍은 사진을 인터넷에 무단 유포하는 행위에 대해 엄격히 처벌하는 선에서 규제 논의가 마무리되지 않겠느냐는, 기업 보호 논리에 인권 보호 논리가 묻히지 않겠느냐는 예측이 벌써부터 솔솔 흘러나오고 있다.



    20여종 출시, 성능도 '디카'수준
       




    국내에 내장형 카메라폰이 처음 선을 보인 것은 지난해 4월. 삼성전자에서 출시한 모델명 'SCH-X590' 애니콜 휴대폰이 효시였다. 디지털 4배줌, 카메라 렌즈 180도 회전 등의 기능을 갖췄지만 10만 화소에 불과해 화질이 다소 떨어진다는 것이 단점이었다.



    불과 1년 새 카메라폰 시장은 급속 팽창했다. 시장의 60% 가량을 점유하고 있는 삼성전자를 필두로 팬택&큐리텔, KTFT, LG전자가 카메라폰 시장에 뛰어 들어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카메라폰 종류만도 20여종에 육박한다.



    이동통신 업계에서 추정하는 현재 카메라폰 이용 대수는 250만대 가량. 전체 이동통신 가입자 3,200만명의 10%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현재 신규 판매분의 50% 이상이 카메라폰이기 때문에 연말까지는 700만대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휴대 전화로 화상 통화를 할 수 있는 비동기식 IMT-2000(W-CDMA) 서비스가 연말 서울 지역에서 우선 실시되면 휴대폰에 카메라를 장착하는 것은 기본이 된다"며 "내년 이후에는 거의 대부분 휴대폰이 카메라폰으로 대체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카메라폰의 성능도 '디카'에 필적할 만큼 향상됐다. 출시 초기 10만 화소급이 주류였던 카메라폰의 요즘 주류는 30만 화소급. 업계에서는 올 하반기에는 100만 화소, 내년이면 200만 화소급 카메라폰이 출현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100만 화소 정도만 되면 A4 용지 크기의 사진으로 인화를 해도 선명성을 유지할 수 있다.



    동영상을 녹화할 수 獵?캠코더 기능도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이미 1~2분 정도의 짧은 동영상을 촬영할 수 있는 제품이 출시됐으며 조만간 오디오가 포함된 20분 이상 분량의 동영상을 연속 촬영할 수 있는 휴대폰도 등장할 전망이다. 연속 촬영, 줌 기능, 밝기 조절, 편집 등 기능도 점차 다양해지는 추세다.



    하지만 전세계적인 카메라폰 급성장이 반드시 달가운 것만은 아니다. 기존 휴대폰에서 일본을 압도했던 우리나라가 카메라를 장착한 카메라폰에서는 광학 기술이 앞선 일본에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 삼성전자 관계자는 "일본에서는 이미 100만 화소급 제품이 출시되는 등 기술력에서 차이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정부가 일방적으로 규제를 하게 되면 중국 등으로의 수출에 큰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입력시간 : 2003-10-02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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