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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3.10.02 18:16:00 | 수정시간 : 2003.10.02 18:16:00
  • [김동식의 문화읽기] 절제와 여백의 미


    영화만큼 관능적일까. 영화에서는 카메라 워킹을 통해서 캐서린 제타 존스와 르네 젤위거의 매력을 극대화할 수 있었지만, 시공간의 제약 아래 펼쳐지는 공연예술의 특성상 관능성으로 승부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스토리의 분량도 만만치 않고 상당히 복잡한 내용인데, 뮤지컬에서는 어떠한 방식으로 소화하게 될까. 사실 영화가 뮤지컬을 바탕으로 한 것이니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겠지.

    그나 저나 국립극장의 무대가 그다지 큰 편이 아닌데 어떠한 방식으로 극적 공간을 확보하게 될까. 뮤지컬 ‘시카고’를 보기 위해 국립극장으로 가는 셔틀 버스 안에서 가졌던 생각들이다. 영화와 뮤지컬의 차이를 확인하고, 영화와 뮤지컬의 고유한 특성을 경험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무척이나 들떠있었던 것 같다.

    1920년대 중반 시카고에서는 욕망과 배신 그리고 살인으로 이어지는 두 편의 드라마가 동시에 펼쳐진다. 첫 번째 드라마의 주인공은 관능적인 율동과 노래로 무대를 압도하는 시카고 최고의 배우 벨마 켈리. 그녀는 자기 몰래 불륜 관계를 맺어온 남편과 여동생을 총으로 쏜다.

    두 번째 드라마의 주인공은 스타를 꿈꾸는 여배우 록시 하트. 중앙 무대를 약속하며 접근했던 남자가 자신의 몸만 노린 사기꾼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방아쇠를 당긴다. 최고의 스캔들이 법정이라는 무대 위에 올려졌고, 상업 언론의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진다. 벨마는 언론 플레이의 귀재인 변호사 빌리를 선임하여 화려한 무대로 복귀할 꿈을 꾼다.

    하지만 빌리는 록시의 사건에 흥미를 가지게 되고, 록시 또한 거짓으로 임신을 꾸미고 벨마의 아이디어를 도용하며 감옥에서도 스타에의 꿈을 이어간다. 살인을 저지르고도 스캔들 메이킹을 통해서 스타가 되고 싶었던 두 여인의 욕망이 감옥이라는 또 다른 무대 위에서 뒤엉킨다.

    뮤지컬 ‘시카고’에서 인상적이었던 것들 중에 하나는 세트였다. 느낀 대로 말하자면 무대 중앙에 2층으로 위치한 악단을 제외하면 아무 것도 없는 무대장치였다. 일반적으로 뮤지컬의 무대는 대단히 화려하고 사실적인 세트를 제시한다. 하지만 ‘시카고’는 엄청난 물량을 투입해서 ‘뭔가를 보여주겠다’는 의지를 강박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들의 대사와 무용과 노래를 통해서 무대의 공간적 성격을 상징적으로 규정해 나가는 방식을 취한다.

    여백의 미학이라고 할까. 공연예술이 가질 수밖에 없는 공간적 제약을 있는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공간적 한계를 공간적 가능성으로 바꾸어 놓은 무대연출이 참으로 매력적이었다. 무대에 별다른 장치가 없기 때문에 배우들의 몸짓과 노래에 자연스럽게 집중할 수 있었고, 관객의 상상력은 여백과도 같은 공간을 통해서 작품의 의미구성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다.

    뮤지컬을 영화와 구별짓는 요소, 또는 뮤지컬을 뮤지컬답게 만드는 힘은 다른 곳에 있지 않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배우들의 완숙한 기량과 탁월한 연기력이었다. 일반적으로 뮤지컬을 두고 환상(fantasy)을 만들어 내는 공연예술이라고 한다.

    ‘시카고’의 경우 스토리는 어두운 사회적 사실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무대장치는 최소한의 요소들만으로 절제되어 있기 때문에, 스토리와 무대장치를 통해서 판타지를 구성해 내기는 어렵다. 개인적인 경험에 근거한 고백이 되겠지만, ‘시카고’에서 판타지는 배우들의 몸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이었다.

    스토리의 근간이 되는 살인, 욕망, 부패, 폭력, 착취, 간통, 배신 등의 모티프들을 작위적인 환상성으로 뒤집어 씌우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악덕의 모티프들이 배우의 몸으로 표현되는 순간에 판타지가 마술처럼 찾아왔다. 벨마와 여죄수들이 형무소에 오게 된 내력을 말하는 장면, 변호사 플린이 록시를 대신하여 인형놀이를 하듯이 복화술을 펼치는 장면, 록시의 남편 에이모스가 스스로를 ‘미스터 셀로판’(존재감이 없는 인물)이라고 노래하는 장면 등은 참으로 압권이었다.

    좋은 공연을 보고 나면 언제나 쾌적하다. ‘시카고’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남산을 내려오면서, 뮤지컬을 잡종성의 대중예술로 볼 수는 없을까라는 생각을 별다른 근거도 없이 해보았을 따름이다. 그리고 문화를 향유하고자 하는 욕망을 계속해서 불러일으키는 힘은, 아마도 장인(匠人)적인 진정성 또는 기술적인 완미함에 있다는 생각도 은연중에 가졌던 것 같다.

    문화와 예술은 근원적으로 인공(人工)적인 것이다. 하지만 인공적인 몸짓과 음성의 극한에는 자연스러움에 대한 한없는 동경이 가로놓여져 있는 것이 아닐까. 공연예술의 근거는 배우의 몸을 통해서 자연을 발견하는 과정에 있음을 새삼스럽게 확인한다.



    김동식 문화평론가 tympan@empal.com


    입력시간 : 2003-10-02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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