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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3.10.05 14:51:25 | 수정시간 : 2003.10.05 14:51:25
  • [문화 속 음식 이야기] '허글레이브즈의일인이역' 줄렙
    페퍼민트에 버번위스키와 설탕 혼합 음료





    '오 헨리'라고 하면 <마지막 잎새>나 <크리스마스 선물>, 혹은 <20년 후>가 떠오를 것이다. 초등학교 교과서 등에 자주 인용되는 오 헨리의 이야기들은 때로 소시민적인 감상주의를 드러낸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덜 알려진 <허글레이브즈의 일인이역>과 같은 작품들을 보면 오히려 단편 작가로서 그의 진면목을 더 쉽게 알 수 있다.



    워싱턴의 한 초라한 하숙집에 두 부녀가 살고 있다. 아버지는 꼬불꼬불한 백발에 매부리코, 유행이 지난 프록코트를 걸친 노인이다. 그의 이름은 펜들턴 톨버트. 한때는 광대한 목화밭을 지닌 지주이자 남군의 소령이었다. 그러나 남북전쟁이 끝난 뒤 그는 모든 것을 잃고, 딸 리디어와 함께 근근히 살아가고 있다. 서른 다섯의 노처녀인 리디어는 돈 문제에는 영 관심이 없는 아버지 곁에서 힘겹게 살림을 꾸려나간다.



    어느날 이들 부녀는 이웃에 사는 연극배우 허글레이브즈를 만나게 된다. 이 쾌활한 청년이 깐깐한데다 고지식한 톨버트 소령의 마음을 사로잡은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수십 번 들어 지겨워질 법도 한 소령의 젊은 시절 이야기들을 언제나 눈을 빛내며 들어 주는 것이다. 소령에게 있어 그는 자신을 존경하고 이해해주는 유일한 친구이다.



    공연이 끝난 허글레이브즈가 그들의 집을 찾아올 때면 테이블에는 술병과 설탕 그릇, 그리고 신선한 초록색의 박하 한 다발이 놓여있곤 한다. 그리고 톨버트 소령은 허글레이브즈에게 고풍스러운 격식을 갖춰 말을 꺼낸다. “문득 생각이 나서 말일세. 시인이 ‘피로한 몸의 달콤한 치유자’라고 썼을 때 틀림없이 머릿 속에 그렸을 것으로 짐작되는 것을 말하자면 우리 남부의 줄렙을 한번 맛봐 줄 수 있겠지, 하고 생각한 것일세.”



    그가 줄렙을 만드는 과정은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는 장인의 작업을 연상시킨다. 박하를 빻는 엄숙한 손놀림, 재료들의 분량을 재어 섞을 때의 정확함, 장식용 빨간 과실을 넣을 때의 조심스러움, 그리고 스트로를 꽂아 손님 앞에 내놓을 때의 그 정중한 태도…. 허글레이브즈는 그런 그의 모습을 경탄하며 바라보고, 완성된 줄렙이 놓인 테이블에는 화기애애한 웃음꽃이 피어나곤 한다.



    그러나 그들의 우정은 어이없는 사건으로 인해 금가게 되는데…. 리디어와 톨버트 소령은 우연히 연극을 보러 갔다가 프로그램에서 허글레이브즈의 이름을 발견한다. 그런데 경악할 일이 일어났으니, 무대 위에 나타난 허글레이브즈의 옷차림과 분장은 톨버트 소령의 모습을 그대로 흉내낸 것이었다.



    그가 언제나 입고 있는 낡은 프록코트까지. 간신히 화를 참으며 연극을 보던 소령은 허글레이브즈가 줄렙을 만드는 장면에서 자신의 말투를 똑같이 따라하자 그만 분을 터뜨리고 만다.



    처음부터 허글레이브즈는 자신이 맡은 배역을 연구하기 위해 소령의 모습과 말투를 자세히 관찰했던 것이다. 연극이 성공을 거두자 허글레이브즈는 도움을 준 톨버트 소령에게 작은 보답을 하려고 찾아온다. 그러나 불같이 화가 난 소령은 그가 주려는 돈을 오히려 모욕으로 여기고 자신의 호의를 욕보였다며 다시는 나타나지 말라고 한다.



    허글레이브즈가 소령의 집에 드나들지 않게 된 이후 그의 빈자리만큼 리디어의 근심도 깊어간다. 톨버트 소령의 회고록은 출판사에서 거절 당하고, 빚은 쌓여 있는데 재산은 이미 바닥난 것이다. 아무 희망이 없던 그들에게 구원의 손길은 뜻하지 않은 곳에서 찾아온다. 오래 전 톨버트 소령이 데리고 있었던 늙은 흑인이 찾아와 전쟁 후 집을 떠날 때 주었던 노새 한 필 값을 갚는다며 300달러를 선뜻 내놓은 것이다.



    소령은 옛 하인의 충직함에 눈물을 흘리고, 두 사람은 위기를 넘긴다. 때마침 일이 잘 풀리려는지 회고록을 다시 보낸 출판사에서도 좋은 소식이 들려온다. 소령이 오랫 만에 기운을 되찾고 줄렙을 만드려고 할 때 리디어는 뉴욕에서 날아온 한 통의 편지를 받는다.




    갈증과 피로 '싹'





    이야기의 시작과 끝에 등장하는 이름도 낯선 음료, ‘줄렙’(흔히 민트 줄렙이라고 불린다)은 원래 아라비아의 상인들이 쓴 약을 먹고 난 뒤에 입가심으로 마시던, 민트가 든 음료를 뜻한다. 19세기 미국에서 조지아, 愾考?등 남부 지방에 살던 사람들은 갈증과 피로를 잊기 위해 으깬 페퍼민트에 남부 지방 특산의 버번 위스키와 설탕을 섞어 마셨다고 한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도 아주 잠깐 언급되는 줄렙은, 말하자면 남부의 정취가 흠뻑 묻어나는 음료라고 할 수 있다.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민트로 차를 만들어 마시거나 고기 요리에 자주 이용한다. 물이 귀한 사막 지대에서 민트는 갈증을 씻어 주는 데 더없이 훌륭한 식물이었을 것이다. 그 알싸한 맛 이외에도 민트에는 더울 때에는 차갑게, 추울 때에는 따뜻하게 해주는 성분이 있어 해열과 발한을 돕는다고 한다. 또한 피로와 우울증, 신경발작 등에도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서양인들에게 민트는 환영과 접대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것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제우스와 헤르메스의 일화에서 유래했다. 나그네로 꾸미고 인간 세상을 여행하던 두 신은 한 작은 마을에서 하룻밤 쉬어 가기를 청했으나 가는 집마다 거절 당한다. 마침내 한 가난한 노부부가 이들을 맞이하여 초라하지만 정성스럽게 식탁을 차린다. 이 노부부가 신들을 대접할 때 낡은 식탁을 닦은 것이 바로 박하잎이었던 것이다.



    톨버트 소령이 만드는 줄렙은 고향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과, 친구를 향한 따뜻하면서도 정중한 환대를 상징한다. 쇠락해버린 남부 문화에 대한 자존심을 줄렙을 만듦으로써 지켜내려 하는 것이다. 그런 소령의 마음을 이해하는 허글레이브즈는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은혜를 갚는다. 리디어만이 알게 되는 그의 비밀은 읽는 이로 하여금 따뜻한 웃음을 짓게 만들며, 민트향 만큼이나 상쾌한 뒷맛을 남겨준다.



    우리나라에선 줄렙이 별로 유명하지 않은 탓인지 칵테일 바에서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지만 의외로 집에서 간단히 만들 수 있다. 시판되는 페퍼민트는 맛이 강하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그럴 때는 으깬 페퍼민트를 섞은 설탕시럽을 냉장고에 하루 정도 재어 놓았다가 쓰면 된다.




    # 만드는 법



    *재료: 버번 위스키 2온스(약 60ml), 설탕시럽 두 큰술, 페퍼민트 적당량

    *만드는 법:

    1. 잔에 민트잎을 넣고 스푼으로 으깨어 향기가 배어 나오게 한다.

    2. 잘게 부순 얼음을 잔에 채우고 버번 위스키와 설탕시럽을 붓는다.

    3. 잔 표면에 성에가 낄 때까지 잘 저은 다음, 민트 줄기와 스트로로 장식해서 낸다.

    입력시간 : 2003-10-05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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