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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3.10.05 15:28:29 | 수정시간 : 2003.10.05 15:28:29
  • [직업의 세계-8] 방송 댄서 안무가 홍영주, 애니
    "황홀경을 모르면 백댄서 못해요"







    춤꾼을 만났다. 그것도 우리 연예계에서 제일 잘 나간다는 댄서를 둘이나 동시에 만났다. 국내 최고의 방송 안무가로 손꼽히는 홍영주(33)씨와 발레리나 출신의 스타 댄서 애니(23).



    홍씨는 9년 전 가수 박진영의 ‘날 떠나지마’에서 발군의 춤 실력으로 집중시선을 받은 뒤, 현재 스타 안무가로 종횡무진하고 있다. 많이 알려져있다시피, 백지영, 김현정, 왁스 등 숱한 별들을 탄생시켰다. 1살 때 캐나다로 이민한 애니는 4살 때부터 발레를 시작, 14살 때 이미 캐나다와 미국에서 댄스 강사로 활약한 재원이다.



    가수 마돈나와 쿨리오 댄서를 비롯해 화려한 공연 및 수상 경력을 갖고 있다. 1997년 한국에 들어온 뒤 엄정화, 핑클, 애즈원을 개인지도 하는 등 댄스계의 차세대를 이끌고 있다. 두 사람은 현재 ‘아이기스 아카데미’라는 전문 연예트레이닝센터에서 함께 활동하고 있다.



    어쩌다 대화가 그리 흘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만난 지 얼마 안 돼 우리는 ‘한국에서 백댄서 노릇하기 힘든 이유’들을 세고 있었다. 아직도 우리말 발음이 완전치 못한 애니가 이야기 도중 샛길로 미끄러지면서 같이 미끄러진 것 같다.




    연예인과 친해지지 말라





    사람들이 내게 ‘왜 가수를 하지 않고 댄서를 하느냐’고 물을 때 참 속상하다. 댄서가 가수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데서 나온 말이기 때문이다. 댄서를 하면 무조건 가수를 하고 싶어하는 줄 아는 게 잘못 됐다. 오히려 가수가 되라고 해도 댄서가 되겠다고 거절하는 사람도 있고, 댄서로서 더 많이 인정받기 위해 가수가 되는 사람도 있다.



    아직 우리나라에선 댄서들이 제대로 존중받지 못하는 것 같다. 공연하러 가봐도 가수랑 댄서들을 대하는 태도가 많이 다르다. (애니)




    -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다른가?



    예를 들어 가수는 대기실이 있지만, 댄서들은 그냥 땅바닥 아무데나 누워서 기다린다. 제공되는 식사도 다르고, 어떨 땐 아예 없을 때도 있다. 그외에도 댄서들에게 하는 말이라든가, 기본적으로 대하는 태도 자체가 다르다. 외국에서는 댄서든 가수든 거의 똑같이 대우해 준다. 대기실이나 숙식문제는 물론이고 모든 면에서 다른 연예인들과 똑같이 정중한 대우를 받는다. (애니)




    - 외부에서는 그렇다 치고, 직접 접하는 가수들 경우는 어떤가?



    똑똑한 가수들은 매니저든 댄서든 자신을 돌봐주는 사람들에게 잘 해준다. 그러나 나이 어린 가수, 특히 갑자기 뜬 가수들은 일단 뜨고 나면 태도가 싹 바뀐다. 그전에는 그렇게 공손하고 잘 하다가도 인기를 얻고 나면 세상에 자기가 최고인 줄 안다. 다른 사람들은 전부 자기 시녀쯤으로 안다. (홍영주)




    - 그럴 땐 아주 속상하겠다.



    나는 이미 초월했다. 후배들에게도 늘 ‘연예인과 친해지지 말라’고 미리 교육을 시킨다. 필요할 때는 친하게 지내다가 필요가 없어지면 언제든지 버릴 수 있는 게 댄서들이다. 친해지면 나중에 상처만 받는다. (홍영주)




    - 개인적으로 가장 상처를 받았던 기억은 어떤것인가?



    그런 건 물으면 안 된다(웃음). 이런 건 요즘에도 늘 있는 일이다. 거의 매번 그렇다고 보면 된다. 사실 연습을 하다 보면 한달이상 그 가수와 밥도 같이 먹고 잠도 같이 자고 그렇게 연습을 하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점점 인간적으로도 친해져서 ‘너랑 나랑은 끝까지 함께 하자’든가, 서로의 비밀 얘기까지 터놓을 정도가 된다.



    그런데 정작 노래가 뜨고 시간이 지나면 변심을 한다. 본인이 원해서든, 소속사의 결정 때문이든 다른 데로 가버리는 거다. 물론 우리도 그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기는 하지만 어쨌든 상처는 남는다. 몇 번 그런 舅?겪은 뒤 일관계는 일관계로만 선을 긋기로 했다. (홍영주)




    A급 백댄서 월급 50만원쯤





    이야기는 곧 ‘돈’으로 흘렀다. 이들을 힘들게 하기로 치면 단연 첫번째다. 방송 댄서의 수입이 얼마나 되는지 물어보았다.



    사람마다, 무용단마다 다 달라서 얼마라고 말하기 어렵? 그냥 만원을 주면 만원을 받고, 5만원을 주면 5만원을 받고, 정해진 게 없다. 한달 내내 열심히 뛰어도 방송국에서 돈이 많이 안 나와 단장이 ‘이달엔 30만원밖에 못 주겠다’하면 그게 그달 월급이다. 모두 단장 손에 달렸다. 일이 별로 없으면 실제로 한푼도 못 받을 수 있다. 방송국 출연료 자체가 낮기도 하다. IMF이후 일감이 많이 줄어들었고 출연료도 지금은 한번 출연에 1인당 5만원까지 떨어졌다. (홍영주)








    - 그럼 이곳(홍씨가 있는 무용단)의 신입단원 월급은 얼마쯤 되나?



    우리는 타 무용단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돼 있다. 단원마다 경력, 연수 등에 따라 등급이 나눠져 있어서 기본급에다 그 사람이 그달에 방송에 출연한 만큼 각자의 등급에 맞춰서 더 받는다. 그래도 역시 얼마 안 된다. 기본급이란 것도 차비랑 밥값 정도나 될까. (홍영주)




    - 가령, 50만원은 넘나?



    그것도 어렵다. 한달에 50만원쯤 받는 사람은 최고 A급들이다. 무용단안에 2~3명 있을까 말까다. 그러니까 아무리 열심히 뛰어도 50만원을 못 넘길 수 있다. 기본적인 생활도 안되는 거다. 이런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도중에 포기하는 댄서들이 많다. 신입을 뽑아놓으면 연수기간 3개월안에 이미 80%가 나간다. 남은 20%도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그중 15%가 또 나가고 없다. (홍영주)



    오디션 보러 와서 ‘얼마나 벌 수 있어요?’ 묻는 지원자를 보면 우리는 그냥 가라고 한다. 처음부터 월급을 밝힐 정도면 더더욱 이 일은 못한다. (애니)




    무조건 춤이 좋았다





    뒤집어보면 어떨까? 두 사람은 그만큼 거친 길에서 성공적으로 살아남은 생존자들이다. 만난 지점은 같지만, 이들의 출발점은 각각 달랐다. 홍영주씨는 고교 졸업후 한 무역회사에서 근무하다가 어느 회식 자리 끝에 몰려간 나이트클럽에서 처음 춤의 맛에 빠진다.



    춤이 좋았고, 무대 위에서 춤 추는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좋았다. 한창 때는 1주일에 7번 나이트클럽에 ‘출석’하기도 했다. 21살 때, KBS 쇼프로그램인 ‘젊음의 행진'에서 백댄서를 구하는 자막광고를 보고 바로 지원, 오디션에 합격하자 회사를 그만뒀다.



    반대하는 부모님에게는 ‘석달만 지나면 돈을 많이 번다더라'고 속였다. 그후에도 수시로 되풀이된 이 ‘석달 타령'은 3년뒤에야 멈췄다. 당시 수입이 한번에 만원. 방송사 전속 무용단의 현실조차 그러했다.




    - 방송사에서는 왜 나왔나?



    춤추는 사람들에게 그런 게 있다. 춤을 1년 정도 추면 세상에서 자기가 최고로 춤을 잘 추는 줄 안다. 나도 그때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에 빠졌던 거다. 다른 춤을 배우고 싶어서 이태원도 왔다 갔다 했고, 한때 나이트 디제이, 방송국 치어걸도 했다. 무슨 계획이란 것도 없었다. 어떨 땐 버스비조차 떨어져 고생을 하면서도 돈이 없어도 좋고, 길거리에서 자도 좋으니까 그냥 무조건 춤만 배우고 출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가수 박진영씨를 만나게 됐다.




    - 박씨의 데뷔 앨범 하나로 바로 이름이 떴는데, 가장 결정적인 비결이 뭔가?



    박진영씨 머리가 좋았던 거다. 자기 혼자 튀려고 한 게 아니라 댄서들을 부각시키며 힘을 실어주었다. 댄서들과 팀 체제로 가는 가수는 그전에도 많았지만, 그런 스타일은 처음이었다. 가수가 춤은 물론, 옷까지도 댄서들과 똑같이 입고 댄서들과 조금도 다른 게 없었다. 그런 박진영씨 곁에 있다가 나도 부각이 된 것이다. 그는 댄서들에 대해 애정이 많은 사람이다.




    나는 가수가 아니라 댄서다





    홍씨가 느닷없이 춤에 빠진 것과는 반대로 애니는 어려서부터 무용과 함께 자란 춤꾼이다. 4살 때 우연히 생일선물로 발레 슬리퍼를 받으면서 발레를 배우기 시작했다. 재즈, 힙합 등 대중적인 춤을 배운 것도 현지의 발레교육과정이 요구하는 공부의 일종이었다.



    우리나라 무용교육과는 달리 그곳에서는 발레 전공자들에게 다른 대중적인 춤까지 다양하게 경험하고 배우도록 권했다. 결과적으로 애니의 진로를 바꾸게 만들었다.




    - 왜 발레쪽으로 계속 나가지 않았나?



    발레의 길은 참 힘들다. 오로지 발레, 발레뿐이다. 항상 몸이 말라있어야 하고, 밥도 잘 못 먹는다. 하루종일 발레만 생각해야 하고, 조금만 연습을 못해도 실력 차이가 무섭게 벌어진다. 성공한다 해도 프리마 발레리나, 한 사람뿐이다. 그에 비해 댄스는 훨씬 자유롭고, 라틴댄스든 재즈든 안무를 짤 때도 원하는 대로 모든 춤을 넣어 짤 수 있다.



    또 댄서도 될 수 있고, 강사나 안무를 할 수도 있고, 길이 여러 가지다. 이 길이 훨씬 좋았다. 지금도 발레를 버린 건 아니다. 댄서가 되더라도 모든 춤을 다 알아야 보다 실력 있는 댄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여기서 방송 안무뿐 아니라 발레도 함께 가르치고 있다.




    - 본인은 가수가 아니라 댄서라고 했는데, 예전에 '타샤니'의 멤버로 한때 가수활동도 하지 않았나.



    그것도 사실 댄서가 되기 위해 가수가 되었던 거다. 원래 한국에 오게 된 것도, 캐나다에 있으면서 작곡가 최준영씨로부터 가수 제의를 받았을 때 나는 댄서지 가수가 아니라고 거절했었다. 결국 댄서를 하기로 하고 들어왔는데, 나중에 생각이 조금 바뀌게 됐다. 그때 내 꿈은 우리나라 최고의 전문 댄스 스쿨을 만드는 것이었다. 우선 가수활동을 하는 게 댄스학교를 만드는데 더 도움이 되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가수가 아니라 댄서다. 앞으로도 똑같다.




    춤 알려면 직접 춰봐라





    TV 가요 프로그램 등에 등장하는 소위 ‘백댄서’들은 가수와는 별도로, 대부분 홍씨와 애니의 무용단과 같은, 외부팀에서 지원된 무용수들이다. 안무가가 무용단의 단장이자 댄스 디렉터인 셈이다. 얼마나 바쁜 일과를 보내느냐는 전적으로 무용단의 일거리와 실력에 달려 있다.



    일이 몰리는 곳은 내내 성업이지만, 일이 적은 곳은 한달에 열번 출연하기도 힘겹다. 홍씨팀의 경우 많을 때는 한달에 55회, 평균적으로는 20~30회 수준이다. 연습량만 하루 평균 5시간, 길면 아침부터 밤까지 연습이 이어지기도 한다.



    전국에 집중호우가 퍼붓던 이날, 홍씨는 ‘오늘같이 날씨가 궂을 땐 온 관절이 다 아프다’며 웃었다. 12년이나 관절을 혹사시켰으니 나올 법도 한 소리다. 자리를 파하고 일어서려는데 애니가 인사 끝에 꼬리를 달았다. ‘춤에 대해 정말 알고 싶으시다면 직접 배우고 춰 봐야 돼요.’



    연습실로 돌아가는 그들의 표정이 다시 활짝 개었다.



    정영주 자유기고가 pinplus@empal.com


    입력시간 : 2003-10-05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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