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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3.10.05 15:49:59 | 수정시간 : 2003.10.05 15:49:59
  • [제2의 보아를 꿈 꾼다] JYP 사단 영재 육성 프로젝트
    "내일은 스타" 꿈을 먹고 큰다

    2001년 SBS 공개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9명의
    '영재 프로젝트' 훈련생들. 임재범 기자





    2001년 봄. 아홉살 난 한 여자 아이의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사이버 공간에서 놀라운 속도로 인기몰이를 했다. 박지윤, 백지영 등 유명 연예인들의 춤을 거뜬히 소화해내며 네티즌을 매료시킨 아이는 당시 부산의 한 초등학교에 다니던 구슬기 양이었다.



    같은 해 5월 SBS ‘초특급! 일요일 만세’ 제작팀은 구양을 발굴하고 가수 박진영을 훈련 강사로 초빙해 ‘영재 육성 프로젝트’란 코너를 만들었다. 이에 고무된 제작진은 서둘러 대대적인 공개 오디션을 열었다. 7월 1일 진행된 공개 오디션에 몰린 15살 미만 초ㆍ중학생은 3,197명. 마지막 관문을 통과한 사람은 불과 9명에 불과했다. 아이들에게는 굉장한 전쟁이었다.



    그로부터 2년이 흐른 2003년 7월. “영재들은 다 어디 갔냐” “방송이 끝나더니 망했냐”며 이들의 소식을 궁금해 하는 소리가 여전히 들려온다. 아이들은 영재들의 모습을 자신과 동일시 하며 꿈을 키우고, 어른들은 아름다운 재능을 몸 안에 품은 ‘어린 천재’의 성장을 궁금해 한다.




    많은 것 포기해야





    서울 청담동의 JYP엔터테인먼트 사무실. 귀에 익은 휘트니 휴스톤의 ‘all the man that I need’란 곡이 흘러나온다. 분명 휘트니 휴스톤의 목소리는 아니지만, 풍부한 성량과 감정은 그녀의 그것과 흡사하다. 문을 열고 보니, 미소년을 좁은 방 가운데 두고 앳된 얼굴의 어린 학생들이 옹기종기 모여 한 여름 ‘음악 삼매경’에 빠져 있다.



    가수 박진영이 이끄는 ‘JYP사단’의 훈련생들. ‘영재 육성 프로젝트’에 뽑혔던 그들이다. 방송은 진작에 끝났지만, 이들의 훈련은 한창 진행 중이다.



    “호흡이 짧아” “마디 마디가 다 끊어지잖아” 보컬 트레이너 조윤희(29)씨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수준급 솜씨이지만, 강사의 날카로운 지적을 피할 수는 없다. 지금 미소년은 변성기에 들어서고 있는 중이란다. “얘가 얼마 전까지 피아노 건반 바깥의 (높은) 소리까지 다 냈었는데….” 고강사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소년이 다급하게 외친다. “한 번만 더 할께요.” 눈가에 이슬이 맺힐 듯 하다.



    나머지 아이들은 저마다 순서를 기다리며, 귀를 기울인다. 따라 부르기도 한다. “좀 더 소리가 커야 하는데…” “배에 힘을 줘야지” 친구가 부르는 노래를 들으면서, 부족한 점을 지적하는 아이들의 표정이 진지하다.



    잠깐의 휴식 시간. 장난을 치고, 수다를 떨고, 군것질을 하는 영재들. 아까와는 전혀 딴판인 영락없는 또래의 아이들 모습, 그대로다. “방송 나올 때는 길을 지나면 사람들이 몰려 들어 불편했어요. 지금은 알아보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아기 사슴 ‘단비’가 별명인 조권(14)군은 사람들의 관심이 낮아진 요즘이 오히려 좋단다. “지나친 관심은 부담스러워요. 아직 가수도 아니니까요.”



    2년 여 동안 아이들은 부쩍 자랐다. 몸과 마음, 그리고 음악과 댄스 실력도. “예전 오디션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요. 어쩌면 그렇게 못했었는지.”(민선예ㆍ14) “목소리가 가는 게 흠이었는데, 이젠 제법 굵어졌어요.”(맹지나ㆍ17)



    요즘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는 외모와 다이어트다. “부시시하게 나온 날은 머리 푹 숙이고 다녀요. 죄인처럼.”(장서희ㆍ14) “살 안 찌고 키도 많이 컸으면 좋겠어요.”(이상지)



    방학인 요즈음 일주일에 보통 너댓 번은 사무실에 나와 노래와 댄스 등을 공부한다. 집이 부산인 구슬기(11)양은 유일하게 집 근처에서 개인 훈련을 받는다. 하루 수업은 노래 1시간ㆍ 댄스 2시간으로 짜여 있지만, 대개 6시간 이상 사무실에 머물며 연습을 한다. 강사의 지적 사항을 녹음했다가 집에 가서 다시 연습도 한다.



    더러는 세계적인 가수 준비를 위해 일주일에 두세 번 집 근처에서 중국어 등 외국어 교습을 받고, 무용과 악기 다루는 훈쳄?한다. 자연히 “영재들을 제외하면 다른 친구들과 어울릴 시간이 없다”는 게 아이들의 공통된 얘기다. “여느 아이들이 누릴 수 있는 여유는 포기해야죠.” 다른 선택은 가수에 대한 꿈을 접는 것이다. 박지영(14)양은 올 5월 훈련을 중단했다.




    기약없는 데뷔무대





    초등학교 6학년인 다니양의 노래연습. 나이는 어리지만,
    풍부한 성량과 감정표현이 뛰어나다. 임재범 기자



    또래 학생들이 공부에 매달릴 시간에 사무실에서 춤과 노래를 연습하지만, 성적이 떨어져서는 안 된다. 학교 성적표가 나올 때마다 소속사에 즉각 제출해야 한다.



    “회사에 성적표 내는 것도 신경 쓰이지만, 학교 아이들 비난이 더 무서워요. 성적 떨어지면 애들 사이에선 금방 이런 소리가 나와요. 노래만 잘 하면 뭐 하냐고. 머리에 든 게 없다고요.” “오기로 이 악물고 공부한다”는 민선예 양은 학교(송곡여중)에서 전교 10등 안에 들기도 했던 수재. 하지만 “자신보다 공부 잘 하는 애들이 영재 중에 많다”고 귀뜸한다.



    한 달에 한 번 있는 소속사 월말 평가 때면 아이들의 경쟁심은 극도로 고조된다. 다른 영



    재들의 박수 소리, 박진영 대표의 관심 표현 하나하나가 아이들을 긴장하게 만든다. “나보다 못 하던 애가 어느날 실력이 확 늘어보이면 긴장 되요. 불안감도 생기고요.”(조권) “월말 평가 전날에는 난리가 나요. 수험생을 둔 것처럼 집안 식구들도 긴장해요. 떨리는 마음을 내리 누르며 소금물로 양치 하고, 가습기 틀어 놓고 푹 자려고 노력해요.”(이상지ㆍ14)



    훈련생 생활에서 가장 힘든 것은 역시 기약 없는 가수 데뷔의 문제다. “언제 데뷔하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어린 가슴이 천근만근 무겁다. 영재들 중 막내인 다니(12)양은 “애들도 그렇지만 선생님까지 ‘다음 학기엔 데뷔해야지’ 한다”며 “정말 부담스럽다”고 털어 놓았다.



    “겸손하면서도 무대 위에서도 사람들을 압도하는 가수가 되고 싶어요.” 반드시 꿈을 이루겠다고 다짐한다. 조권 군의 꿈은 중국에 진출하는 실력 있는 가수가 되는 것이다. “만일 1집 내서 안 되면 더 노력해서 2집 내고, 2집도 안 되면 3집 내고. 될 때까지 할 거예요.” 조군의 핸드폰 창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새겨져 있다.



    “아무리 힘들어두 잘 견디쟈.” 웬만한 어른들보다 더 고된 삶을 살고 있는 영재들, 그들이 흘리는 땀이 헛되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관심 갖고 지켜보는 것은 음악 팬들의 몫이다.



    배현정 기자 hjbae@hk.co.kr


    입력시간 : 2003-10-05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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