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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3.10.05 15:58:36 | 수정시간 : 2003.10.05 15:58:36
  • [르포] 원전수거물관리센터 후보지 위도
    "이대로 살랑게 그대로 놔두쇼"

    오락가락 보상문제로 주민들 분노, '불신의 섬' 위도

    정부의 현금보상 백지화 발표 후 위도 주민들이 집 앞
    마당에 나와 근심어린 표정으로 앉아 있다. 위도=손용석 기자





    모양이 고슴도치를 닮은 전북 부안군 위도(蝟島)는 변산반도 끝머리 포구인 격포에서 불과 14.4㎞ 거리에 있는 섬이다. 뭍 사람들과는 동떨어진 채 누구의 간섭도 없이 그들만의 삶을 살아온 위도 사람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너도나도 ‘위도’를 외쳐대는 개벽이 일어났다.



    꼭 10년 전 일어난 서해페리호 침몰로 ‘통곡의 섬’이었던 위도가 원전수거물관리센터 후보지로 확정된 후 ‘분노의 섬’으로 변한 것이다.



    지루한 장마가 지나고 불볕 더위가 시작된 8월초 격포항에서 카페리호로 40여분만에 도착한 위도는 겉으로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섬 그대로였다. 그러나 피서철을 맞아 예년 같으면 북적거렸을 파장금항은 한산했고 포구에는 수십 척의 낚시배들이 정박해 있어 뭔가 이상한 조짐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주민들도 표면적으로는 평상시처럼 평온해 보였으나 사실은 ‘폭풍전야’의 고요다.



    만나는 주민들의 말투도 날카롭다. 현금보상 이야기를 꺼내면 격한 감정을 쏟아내기도 한다. 김춘자(65ㆍ여)씨는 “외지에 사는 자식들이 고향을 팔아먹는다고 하지만 고령인데다 먹고 살기가 힘들어 할 수 없이 유치신청에 찬성했는데 현금보상을 하지 않는다니 말도 안 된다”며 “보상이 없이는 방폐장이 절대 들어올 수 없을 것”이라고 분개했다.



    방폐장 시설이 들어설 예정인 치도리에서 농사를 짓는 김기종(55)씨도 경운기를 타고 논에 가던 도중 기자가 정부의 현금보상 불가방침에 대한 입장을 묻자 “이제 방폐장 유치는 무효”라며 버럭 화부터 냈다.




    "정부 말 못믿겠다"





    위도 파출소 관계자는 “아직은 주민들이 말로만 불만을 토로하고 있는데 언제 그 불만이 밖으로 터질지 모른다”고 했다. 경찰은 7월 말부터 민심이 동요할 것에 대비, 2개 소대 80명의 병력을 배치했다. 그러나 주민들의 눈을 의식해 관광객처럼 사복을 입고 활동중이다. 경찰 간부들도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헬기로 위도를 찾곤 한다.



    7월29일 주민 30여 명이 어민회관 2층에 있는 원전센터 위도추진위 사무실을 찾아가 현판을 떼내고 격렬히 항의한 것이 위도의 분위기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주민들은 “그 동안 믿고 따라줬더니 도대체 뭐 하는 거냐. 이제 더 이상 못 믿겠다”며 원전센터 위도 유치 추진위원회와 부안군, 산업자원부가 모두 한통속이라며 비난하고 있다.



    서금순(65ㆍ여)씨는 “다리와 도로도 필요 없고 5억원도 안 받고 그냥 이대로 살겠으니 원전센터도 들어오지 말라”며 현금 보상 문제로 오락가락하는 정부에 대한 불만을 강하게 표출했다.



    여론이 나빠지자 방폐장 위도추진위 정영복(51) 위원장은 최근 치도리 어민회관 1층으로 사무실을 이전하고 추진위 이름을 ‘지역개발협의회’로 바꿨다. 정 위원장은 “3억~5억원은 아니더라도 정부로부터 정당한 보상을 받아 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만약 현금보상이 물거품이 되면 그때 가서 특단의 조치를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위도를 사랑하는 모임(위사모)’은 방폐장 유치 반대 목소리를 결집시키기 위해 주민들을 상대로 설득작업을 나서고 있어 섬 주민들끼리 갈등도 깊어 가는 중이다. 위사모 서대석(52)씨는 “정부의 현금 보상이 핵폐기장 유치를 위한 거짓 술수였음이 드러나 주민들이 집단반발하고 있다”며 “위도에서도 이들 주민들과 힘을 모아 유치 백지화 운동을 벌이겠다”고 말했다.




    주민들간 반목과 갈등





    보상문제를 둘러싼 주민들간의 반목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위도면사무소 신형균(54) 총무담당은 “주민들이 이제는 정부의 말이라면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지 않을 정도로 불신이 팽팽하다”며 “처음부터 우려했던 대로 현금보상 문제로 주민들간 갈등과 반목이 깊어질까 봐 걱정”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이처럼 유치 찬성에서 반대로 돌아설 기미가 보이자 산자부를 비롯, 한국수력원자력㈜, 전북도, 부안군 직원들이 주민들을 달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면사무소와 파출소 직원들도 원전센터 유치가 확정된 7월15일부터 언론취재 요청과 전입자 급증, 상황보고,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오는 고위직 안내 등 폭주하는 업무로 녹초가 되었다. 예전 같이 친절하고 상냥한 관계자 면담은 물 건너 간지 오래다.



    위도 주민들의 고통은 관광객 감소로 더욱 짙어지고 있다. 지난해 성수기에는 하루 500여명씩 피서객을 맞았으나 올해는 평소 주말 수준인 100~200여명에 불과해 주민들의 시름은 깊어지고 있다.



    진리에서 용현민박을 운영하는 김모(46)씨는 “평년에는 여름철이면 밀려드는 피서객들 때문에 방이 모자랐는데 올해는 텅 비어 있다”며 “위도가 방폐장 문제로 시끄럽고 난리 났다는 소식에 관광객들이 외면하고 있다”고 푸념했다.



    더욱이 방폐장 유치를 강력히 반대하는 격포지역 낚시점 10여 개가 단합해 위도 선주들에게 낚시꾼을 소개해 주지 않고 있어 낚시배 운영으로 생계를 잇는 주민들의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7톤짜리 낚시배를 가진 신모(51)씨는 “하루 한차례씩 낚시꾼들을 태워 40만~50만원씩의 수입을 챙겼는데 지난 일주일간은 한건도 못했다”며 “다른 선주들도 마찬가지여서 50여 척의 낚시배가 모두 항구에 정박해 있다”고 하소연했다.




    보상노린 위장전입 급증





    이러한 주민들의 아픔은 아랑곳하지 않고 현금 보상을 노린 위장 전입자들은 꾸준히 면사무소로 향하고 있다. 전입자들이 방폐장 유치 논란이 시작된 5월부터 급증, 지난 4월말 674가구 1,458명에 불과한 인구가 3개월 만에 911가구, 1,875명으로 늘어났다. 늘어난 사람은 대부분 위장전입자라고 보면 된다는 게 주민들의 이야기다.



    위도면은 파시(波市)가 형성되던 1960년대 주민 5,000여명을 피크로 감소하기 시작해 92년 2,858명으로 줄었고 서해 페리호 침몰사고 2년 뒤인 95년 이후 1,500여명을 넘지 못했다.



    현재 8개리 11개 마을, 유인도 6개 무인도 20 등 모두 26개의 섬으로 이뤄진 위도는 주민들이 공동으로 토속굿인 신앙굿과 위도띠뱃놀이, 당제, 위령제, 풍어제 등의 행사를 주기적으로 개최하면서 태평과 풍어를 기원하고 있다.



    93년 10월 10일 292명의 목숨을 앗아간 서해페리호 참사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위도가 이제사 한을 떨궈내려는지 웅크린 고슴도치의 모습을 벗고 활개를 칠 수 있을 지 지켜 볼 뿐이다.



    최수학 기자 shchoi@hk.co.kr


    입력시간 : 2003-10-05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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