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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3.10.05 19:56:49 | 수정시간 : 2003.10.05 19:56:49
  • [문화 속 음식이야기] 영화 '글루미 선데이' 비프롤
    세 가지 맛과 세 남자의 사랑







    너무도 아름다운 여인과 그녀를 사랑한 세 남자가 있다. 이들의 어긋난 사랑은 불협화음을 이루고 주인공들을 비극적인 운명으로 이끌어간다. 그리고 그 운명의 핵심에는 아름답지만 저주받은 <글루미 선데이>라는 노래가 자리하고 있다.



    1935년 헝가리의 무명 작곡가 레조 세레스는 연인인 헬렌에게 실연당한 아픔을 담아 <글루미 선데이>라는 곡을 썼다. 그런 사연이 있어서 일까? 음반이 출시된 지 8주만에 헝가리에서만 187명의 자살자가 나오고 전세계에서 수많은 젊은이들이 이 노래를 들으며 목숨을 끊었다. 레조 세레스 역시 자기 노래 때문에 사람들이 죽었다는 죄책감에 자살했다고 한다.



    롤프 슈벨 감독의 영화 <글루미 선데이>는 이 믿기지 않는 실화를 바탕으로 가슴 아픈 사랑과 전쟁의 비극을 그리고 있다. 한 곡의 노래가 주인공인 만큼 영화 감상의 초점도 배경 음악에 있지만 오늘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한 여자와 세남자와의 비극적 사랑





    1930년대의 부다페스트. 작은 레스토랑을 경영하고 있는 유대인 사내 ‘자보’와 그의 사랑스러운 연인 일로나가 있었다. 레스토랑에 피아노를 들여 놓은 이들은 연주할 사람을 찾고 강렬한 눈빛을 가진 젊은이 안드라스가 찾아온다.



    안드라스는 일로나에게 첫눈에 반하여 그녀의 생일에 <글루미 선데이>라는 곡을 만들어 선물한다. 두 사람이 하룻밤을 보낸 다음날 자보는 “일로나를 완전히 잃느니 반만이라도 갖겠다”며 그들의 관계를 인정하게 된다. 그리고 세 사람의 기이한 동거가 이어지는데….



    여기에 일로나를 사랑하는 또 한 사람의 남자가 있다. 그는 독일인 청년 한스. 부다페스트에 여행을 온 한스는 자보의 레스토랑에서 비프롤을 가져다 주는 일로나의 모습에 끌린다. 그 후로 그는 매일 식사를 하러 와서는 비프롤만을 주문한다. 일로나의 생일날이며(한스의 생일이기도 하다) 글루미 선데이가 작곡된 날이기도 했던 그 날, 한스는 일로나에게 청혼했다가 거절당한다. 다뉴브 강에 몸을 던진 한스를 자보가 구해내고, 실의에 빠진 그에게 자보는 말한다.



    “실연당한 심정을 모르진 않아. 하지만 그게 생의 전부는 아니라고. 우리 가게의 비프롤도 있잖소. 최고라며? 그 비법을 알려줘? 언제 한번 해먹어 보라구. 일단은 소의 연한 허리살을 엷게 잘라. 그리곤 버터를 녹여 버터가 살짝 스며들 때쯤 마늘을 넣어. 버터에 향이 잘 스며들게 말이야. 그러면 튀기듯 굽는거지. 속은 뭘로 채운 줄 알아? 그렇지 햄, 치즈 아주 얇은 걸로. 그 오묘한 세 가지 맛. 그게 바로 우리의 비프롤 비법이네.”



    자보와 한스는 이렇게 친구가 된다. 그러나 2차대전이 발발하고 나치 군인이 되어 돌아온 한스는 더 이상 짝사랑에 목숨을 걸던 순진한 청년이 아니었다. 그는 전쟁 중이라 물자가 부족한 레스토랑에서 거리낌 없이 비프롤을 시키고 자보와 안드라스를 조롱한다. 모욕감을 참지 못한 안드라스는 한스의 총을 빼앗아 자살하고 만다.



    한스는 유대인인 자보를 보호해 주겠다고 약속하지만 알고 보니 그의 목적은 유대인들에게 목숨을 담보로 돈을 갈취하는 것이었다. 한스의 약속과 달리 수용소로 끌려가는 자보. 일로나는 한스에게 달려가 그를 구해 달라고 부탁하지만 한스는 그녀를 강간하고 자보가 수용소에 가도록 내버려 둔다. 두 사람의 연인을 한꺼번에 잃은 일로나는 복수를 결심한다.



    그로부터 50년 후, 성공한 사업가가 되어 다시 부다페스트를 찾은 한스는 자보 레스토랑에서 변함없이 비프롤을 주문하고 <글루미 선데이>를 듣는다. 그러나 음악이 울려 퍼지는 순간, 그는 갑작스럽게 가슴에 통증을 느끼고 쓰러진다. 한스 역시 <글루미 선데이>의 저주를 벗어나지 못한 것인가? 이렇게 생각하는 동안 마지막 장면을 보면 뜻하지 않은 반전에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인간의 욕망을 형상화한 여인 일로나





    이 영화가 우리나라에서 개봉되었을 때 그다지 인기를 끌지 못했던 이유는 한 여자를 사랑하는 두 남자가 평화롭게 공존(?)한다는 설정 때문인지도 모른다. 물론 영화 속의 남녀관계는 일반적인 상식으로 쉽게 납득이 가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런 의문은 일로나라는 인물이 갖는 성격을 분석해 보면 풀린다. 일로나는 한 인격체를 나타낸다기보다는 <글루미 선데이>라는 노래 그 자체이며, 인간의 욕망을 형상화한 존재이다. 한스가 잊지 못하는 비프롤은 일로나에 대한 집착을 나타낸다.



    감독이 자보의 입을 통해 말하는 비프롤의 ‘세 가지 맛’ 이란 일로나를 향한 세 남자의 다른 사랑의 방식을 말해주기도 한다. 자보는 그녀의 다른 사랑을 이해하고, 안드라스는 사랑을 음악으로 승화시킨다. 한스의 사랑은 어긋난 욕망이 되어 파멸을 불러온다.



    영화의 무대가 되는 레스토랑은 실제로 부다페스트에 위치한 ‘군델’이라는 레스토랑이다. 1908년 개점해 지금은 유럽의 명소 중 하나가 되어 있다고 한다. 얼마 전 한 TV 프로그램에서 군델 레스토랑의 비프롤을 소개한 적이 있는데 그 조리법은 영화 속에 나온 것과는 차이가 있다.



    버터와 마늘을 넣은 팬에 고기를 넣어 익히는 것까지는 같지만 속 재료가 다르다. 돼지고기와 양파, 피망을 넣어 볶은 다음 파프리카 파우더를 넣는다. 여기에 달걀 한 개를 깨어 넣어 익혀 주는 것이다. 이렇게 완성된 속 재료를 밑간한 쇠고기 위에 놓고 돌돌 말아 모양을 낸 다음 흐트러지지 않도록 실로 묶어서 팬에 굴려가며 익힌다. 그런 다음 다진 양파와 파프리카를 넣은 소스에 담갔다가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낸다.



    헝가리 음식에 거의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파프리카는 우리의 고춧가루와 같이 칼칼한 맛을 낸다. 때문에 맵고 자극적인 맛을 즐기는 한국인들에게도 잘 맞는다고. 매운탕과 비슷하면서 헝가리 요리 중 가장 유명한 ‘굴라쉬’에도 이 파프리카가 듬뿍 들어간다.




    신선한 버섯과 야채넣은 요리법도





    영화에 나온 조리법이나 실제 조리법을 볼 때 비프롤이라는 것이 딱히 격식을 갖춘 요리는 아닌 것 같다. 아마도 군델 레스토랑의 메뉴와 감독의 상상력이 합쳐져 만들어낸 메뉴가 아니었을까?



    파티용 음식이나 술안주로도 좋은 비프롤은 기호에 맞게 다양한 속 재료들을 넣을 수 있다. 영화에서처럼 치즈와 햄이 들어간 비프롤은 아무래도 좀 느끼할 듯 싶으니 위의 조리법으로 속에는 신선한 버섯이나 각종 야채를 넣어서 만들어 보자. 간단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메뉴가 될 것이다. 비프롤에서 사랑의 다른 맛을 느낀다는 것은 너무 거창한 얘기일수도 있겠지만.

    입력시간 : 2003-10-05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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