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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3.10.05 20:16:06 | 수정시간 : 2003.10.05 20:16:06
  • [현대家] 별리의 아픔 속에 핀 형제애
    현대家 長子 정몽구 회장, 동생 마지막길 지키며 말없는 화해

    정몽구 회장이 현대아산병원에 마련된 고 정몽헌 회장
    빈소에서 침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할 말을 잊었다. 평소에도 별 말이 없는 그였다.



    하지만 아버지 곁으로 먼저 떠나 보내는 동생(MH)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며 그는 더욱 입을 닫았다. ‘인생의 덧없음’을 통감하는 듯, 깊은 슬픔의 그림자가 얼굴 가득히 드리워졌다. 얄궂게도 입추(入秋)였지만 두 뺨을 타고 흐르는 땀과 눈물이 뒤범벅된 채 북받치는 감정을, 말없이 그는 연거푸 닦아 낼 뿐이었다.



    정몽구(MK) 현대자동차 그룹 회장은 역시 ‘현대가(家)’의 맏형이었다. 그는 8월8일 정몽헌(MH) 현대 아산 이사회 회장이 경기 하남시 창우리 검단산 자락에 묻히고 스님들의 염불 속에 반혼제(返魂祭)가 끝날 때까지, 결코 흐트러짐 없이 의연함을 잃지 않았다.



    주5일 근무제와 노조의 경영 참여 등을 요구하는 현대자동차 노조의 거친 목소리도 빈소를 지키는 그에겐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로 들릴 뿐이었다. 누구보다 슬픔 어린 감정에 목이 메인 듯 말을 잇지 못 했지만, 그의 표정엔 남다른 결연함이 배어 있었다.



    하관식이 끝난 뒤 듬성듬성 심어져 있는 소나무들을 가리키며 “나무들을 좀더 옮겨다 심어야 겠다”는 말로 동생을 먼저 보내는 아픈 심경을 내비칠 뿐. 동생이 살아 생전, 껄끄러웠던 불편한 심기를 끝내 풀지 못하고 먼저 떠나보내게 된 데 대해 가슴 아파하면서도 장자(長子)로서의 책임감을 다하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장자로서의 책임 다한 MK





    정 회장은 가장 먼저 달려갔다. 동생의 투신 소식이 알려진 4일, 형제 중 가장 먼저 서울 계동 사옥에 도착해 시신 수습 현장을 직접 진두지휘 했다. 5일장이 열린 빈소에서도 조문객들을 맞아 수저를 직접 챙기고 술잔도 채워주는 등 슬프고도 힘든 하루 하루를 보냈다.



    그는 누구보다 먼저 아침 일찍 나와 빈소를 지키며 자살이라는 ‘회한의 죽음’을 택한 동생의 명복을 빌었다. 정 회장은 이상주 전 교육부총리 등 조문객들을 몸소 엘리베이터 앞까지 배웅하면서 손수건으로 눈시울을 연신 훔치는 등 가슴 저린 슬픔을 참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2000년 이른바 ‘왕자의 난’으로 감정의 골이 파이기는 했지만 정 회장은 장자로서 동생 MH의 어려움을 도와 주려고 무던히 애썼다. 현대상선이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자동차 운반선을 팔려던 지난해 7월, MK는 경영진의 반대를 무릅쓰고 5년간의 장기 공급 계약을 맺고 인수 업체에 20%의 지분을 참여하는 등 매각 성사를 위해 측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또 올해 초 자금난에 시달리던 MH가 경기 용인의 개인 토지를 처분하려 하자 현대모비스가 이를 사들인 것도 MK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서울 계동 현대그룹 사옥을 현대차가 매입한 데 이어 은행관리중인 현대건설 인수에 깊은 관심을 보인 것은 장자로서 소임을 다하려 한 측면도 있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는 동생 MH를 간접적으로 지원하려 했던 것으로 받아들여 지고 있다.



    ‘MH의 충신’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으로부터 “왜 진작 도와 주지 않았느냐”는 회환 섞인 한탄의 소리를 들어야 했던 MK. 하지만 그는 현대가의 장자로서 가족들에게 남다른 면모를 보여왔다. 1982년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장남인 정몽필 전 인천제철 사장이 교통 사고로 불의의 죽음을 맞은 뒤 MK는 맏형으로서 가족들을 보살피는 데 애정을 쏟아왔다.



    90년 자살한 동생 몽우씨의 자녀인 정일선 BNG스틸 부사장과 정문선 BNG스틸 재정부 차장 등을 계열사 요직에 앉힌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되고 있다. MK가 MH의 하관식과 반혼제 절차가 끝날 때까지 줄곧 상주인 어린 조카 영선(18)씨의 등뒤에서 자리를 지키며 집안 최고 어른 역할을 했듯, 영선 씨가 사회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독립할 때까지 지근거리에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으로 재계는 내다 보고 있다.



    이번 장례 절차도 MH가 몸담고 있던 현대아산의 주관으로 진행했으나 현대ㆍ기아자동차 직원들을 빈소에 대거 투입하는 등 현대차그룹이 대대적인 측면지원에 나선 것도 MK의 깊은 의중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測育湄온?고위 관계자는 “정몽헌 회장의 죽음으로 가장 상처를 입은 사람은 정몽구 회장”이라며 “세간의 평가가 어떻든 동생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을 늘 안타까워 하고 자신이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을 늘 아쉬워 했다”고 귀뜸했다.



    한 측근은 자금난으로 항상 어려움을 겪어야 했던 금강산 사업과 관련해 “돌아가신 왕 회장의 유지를 받들어 개인적으로 동생을 돕고 싶지 않았겠냐”며 “개인적 감정보다는 기업경영이 더 중요하다는 경영진 및 참모진들의 의견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복잡했던 MK의 속사정을 털어 났다.



    대북 사업을 포함해 MH 계열 현대그룹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외부의 도움이 절실했지만 외국인 지분이 절반이 넘는 현대차로서는 회사 이미지에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커 선 뜻 나설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대선 때 역시 정 씨 일가 대부분이 정몽준(MJ) 국민연합21 후보에 대해 지지를 나타냈지만 정몽구 회장만은 정치적 중립으로 돌아설 수 밖에 없었다.



    MK는 대선을 앞두고 한 때 “대통령으로 MJ가 잘 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가 정치적으로 오해의 불씨가 될 것으로 우려되자 부랴부랴 현대차의 정치적 중립을 공식선언하기도 했다.




    대북사업 등엔 분명한 선









    MK는 11일 금강산에서 열리는 MH의 추모비 건립 등 추모행사에 참석하지 않았다. 아마도 대북 사업 관여 여부와 연관 지으려는 외부의 시선을 깊이 의식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는 빈소에서 조차도 “현대차 그룹은 자동차에만 전념한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으며 대북 사업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누누이 강조했다. 맏형으로서 가정사는 전적으로 책임 지겠지만 사업 부문에 있어서는 분명히 선을 긋겠다는 단호한 입장이었다.



    선친의 유지를 지키지 못하고 먼저 간 동생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지 못할 것임을 잘 아는 MK로서는 그래서인지 더욱 깊은 슬픔을 가누지 못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MH사망을 계기로 ‘현대가’의 화해 분위기를 언급하는 사람들도 많다. 2000년 ‘왕자의 난’으로 형제 그룹간 서로 상처를 주며 등을 돌렸던 ‘현대가’가 MH의 죽음 앞에서 마음의 문을 다시 여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설득력 있게 제시되고 있다. 빈소를 찾은 이들의 한결 같은 관측이다.



    ‘몽’자 항렬 중 맏형이자 최 연장자인 MK를 비롯해 정몽근 현대백화점 회장, 정몽준 현대중공업 고문, 정몽윤 현대해상화재 회장, 정몽일 현대기업금융회장 등 형제들은 잠시도 자리를 뜨지않고 빈소를 지킨 채 서로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나누며 조문객들을 응대했다.



    또 정의선 현대차 부사장을 비롯해 정일선, 정지선, 정문선 씨 등 ‘선’자 돌림의 3세들도 상주인 영선씨를 도와 상가를 줄곧 지켰다. 이들 3세는 틈틈이 얘기를 주고 받는 등 시종 화목한 분위기로 사촌 형제들간의 우애를 과시했다.



    또 계열분리 전 옛 현대그룹 계열사들의 대대적 ‘품앗이’ 지원도 끊이지 않았다. 장례를 주관하는 현대아산 직원들은 물론 현대ㆍ기아차, 현대백화점, 현대중공업 등 현대 계열사 임직원 300여명이 제각각 역할을 분담, 조문객 응대에 만전을 기하는 등 현대그룹의 화기애해한 옛 모습을 재현했다.




    현대가 화합이미지 정립 계기





    150평에 달하는 빈소사용료와 매일 1,000여명 이상의 조문객을 위한 식사 등 하루 평균 1,500여 만원에 달하는 비용도 현대차가 상당 부분 부담했다. 각 계열사 임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을 비롯해 현대차 그룹의 유인균 INI스틸회장과 윤명중 현대하이스코 회장, 박정인 현대모비스 회장 등 현대차그룹 사장단, 현대중공업, 현대해상화재, 현대산업개발, 현대카드, 현대백화점 임원단도 술잔을 기울이며 빈소를 지켰다.



    현대 관계자는 “과거 불명예스럽던 일들로 불거졌던 가족 간의 아픈 상처가 이번 기회를 계기로 어느 정도 치유됐으면 좋겠다”며 “현대그룹의 이미지 역시 새롭게 정립될 수 있길 바란다”고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증시는 냉정했다
       






    '증시는 냉정했다.'



    고 정몽?MH)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의 장례식이 치러진 8월 8일 종합주가지수의 하락에도 불구, MH가 지분을 보유한 현대상사가 상한가를 기록하는 등 현대 관련 주식들이 예외 없이 상승세를 보였다.



    현대상선은 장 초반 가격 제한 폭까지 올랐다가 진정세를 보였고, 특히 MH사망 이후 독립 경영 체제 전환이 점쳐지는 현대엘리베이터는 상한가를 기록했다. MH가 최고경영자로 진두지휘 했던 현대건설 주식은 이날 7.67% 올랐고, 현대상사는 12.33%나 치솟았다.



    서명석 동양증권 투자전략팀장은 "현대 관련 주식들의 상승세는 '주식시장의 냉정함'을 상기시키는 부분"이라며 "투자자의 입장에선 'MH의 죽음'으로 그간 부담이 됐던 비경제적 부문(대북 사업)에서 자유로워진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아버지 아래 누운 MH
       






    고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이 영면한 경기 하남시 창우리 선영은 검단산 중턱에 자리잡고 멀리 한강을 내려다 보는 명당(名堂).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살아 있을 때 풍수지리에 능한 지관(地官)들의 의견을 듣고 자리를 고른 것으로 알려진다.



    선산 전체 크기는 3,000평이 넘지만 실제 묘역이 조성된 면적은 MH의 묘자리까지 합쳐 200평 정도. 정 회장 묘의 봉분 크기는 보통 사람 묘와 크게 다르지 않을 정도로 검소한 편이다. 정 회장의 묘는 2년전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잠든 곳에서 산밑쪽으로 50m 정도 떨어진 100평 남짓한 공터에 자리잡고 있다.



    한때 소나무가 울창했지만 정 회장의 묘자리를 위해 소나무를 다른 곳에 옮겨 심었다. 정씨 일가 가족 묘지의 가장 위쪽에는 정주영 명예회장의 양친 묘가 자리잡고 있으며, 3m정도 아래에 정주영 명예회장의 묘가 있다. 현대 관계자에 따르면 '하동 정씨 몽헌지묘'라는 묘비가 들어 설 정회장 묘도 그리 크지 않은 봉문에 별다른 치장을 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장학만 기자 local@hk.co.kr


    입력시간 : 2003-10-05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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