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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3.10.05 20:25:52 | 수정시간 : 2003.10.05 20:25:52
  • [문화속 음식 이야기] 케이크 한 조각, 셀레임 한 아름
    만화 <서양골동 양과자점> 케이크







    수업 시간에 선생님 몰래 만화를 돌려보는 재미는 중ㆍ고등학교 시절에 한번쯤 가져봤을 법한 추억이다. 그런데 그 중에는 더러 만화 보는 학생을 잡아낸 선생님을 낯뜨겁게 하는 것들이 있다. 소위 ‘야오이’라고 불리는, 남성의 동성애를 묘사한 만화가 그것이다.



    여학생들이 동성애에 흥미를 갖는다는 사실이 어른들에게는 충격이겠지만 야오이 만화가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는 따로 있다. 한창 사춘기의 소녀들은 ‘꽃미남’들의 예쁘장한 연애 이야기를 통해 죄의식을 피하면서 은밀한 성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것이다.



    요시나가 후미의 <서양골동 양과자점>역시 그런 만화들 중 하나이다. 색색가지 케이크들이 인쇄된 표지와 섬세한 그림 선은 언뜻 케이크 가게를 배경으로 한 순정만화를 떠올리게 할 것이다. 그런데 웬걸… 페이지를 펼치면 처음부터 심상치 않은 대사들이 오간다.



    두 명의 남자 고등학생이 서 있고 안경을 낀 한 소년이 다른 한쪽에게 좋아한다고 고백을 한다. 고백을 받은 소년은 잠시 싸늘한 웃음을 짓더니 입에 담기 민망한 폭언을 퍼붓는다. 그리고 14년 후. 거절 당했던 소년인 오노는 실력 있는 파티셰(제빵사)가 되어 있다. 한편 그를 차버린 타치바나는 케이크 가게를 오픈하려는 사장으로 다시 그 앞에 나타났다.




    색깔있는 네남자의 삶





    ‘마성의 게이’라고 불리는 매력 때문에 취직한 가게에서 매번 연애 사건을 일으키고 쫓겨난 오노. 타치바나가 오래 전 유일하게 자신의 구애를 거절한 남자라는 것을 기억해낸 오노는 이제 마음을 놓고 그의 가게에서 일을 하게 된다. 여기에 전직 프로복서인 조수 칸다와 타치바나의 집 고용인인 치카게가 가세한다.



    이렇게 개성이 다른 네 사람이 있으니 조용할 리가 없을 터. 여자를 무서워하는 오노는 여자 손님들 앞에 제대로 나서지도 못하고, 잘 생긴 남자가 나타났다 하면 여지없이 이성이 무너져 버린다. 타치바나는 ‘수려한 외모, 화려한 말발’로 손님을 끌지만 정작 자신은 만나는 여자마다 채인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다.



    어린 시절을 폭주족으로 보낸 칸다는 사장인 타치바나를 ‘영감탱이’라고 부르며 툭하면 반말을 써댄다. 네 사람 중 가장 연장자이지만 어린애 같은 치카게는 손님 앞에서 타치바나가 알려준 두 가지 대사인 “맛을 보시면 알게 될 겁니다”, “대단히 죄송합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밖에는 할 줄 모른다.



    ‘마성의 게이’ 오노의 화려한(?) 남성편력이 펼쳐지면서 곳곳에 민망한 대사들이 나오기는 하지만 정작 만화의 분위기는 의외로 명랑하고 달콤하다. 야오이 만화를 한번이라도 읽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서양골동…>은 비슷한 다른 만화들에 비해 노골적인 표현을 상당히 자제하고 있는 편이다.







    그러나 그 외에도 이 만화를 밝게 만들어주는 것은 등장 인물들의 소소한 일상을 다루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다. 주인공이 모두 남자인데도 대부분의 일본 요리만화들에 비해 훨씬 여성들의 취향에 가까운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경찰 간부였다가 한직으로 물러나 부인 몰래 케이크 가게를 드나드는 아저씨, 지적인 여자 아나운서가 되려고 했으나 큰 가슴 때문에 유치한 일만 맡게 되는 하루카, 아버지를 쏙 빼닮은 치카게의 딸 등 주변 사람들의 사연은 코믹하면서도 억지스럽지 않은 감동을 자아낸다.



    특히 여자들 앞에서 게이 티를 냈다고 부끄러워하는 오노에게 하루카가 건네는 말은 작가 자신의 목소리를 담아낸 듯 싶다. “게이가 게이처럼 행동하는 게 뭐가 어때서요? 여자들이 당신을 쳐다본 건 당신이 너무 멋졌기 때문이라구요.”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이 만화의 매력은 이름도 복잡한 케이크들이다. ‘슈 파리지엔느, 샤바렝 오 프뤼, 쉬브스트 오 퐁, 샤를로트 오 포와르, 피티비예, 밀푀유 오 프레즈…’ 이름만 들어??무슨 과자인지 알아내기도 어렵다. 이럴 때는 타치바나처럼 친절히 설명해주는 케이크 가게 주인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 것이다. 읽는 이를 유혹하는 수많은 케이크들 중에 눈을 딱 감고 세 가지만 골라 소개해 본다.




    부드럽고 친숙한 맛의 케이크





    스폰지 케이크와 닮아 가장 우리에게 친숙한 것이 생크림을 얹은 쉬폰 케이크이다. 불어로 ‘비단’이라는 이름처럼 부드러운 촉감을 자랑한다. 제과점에 가면 다른 케이크에 비해 저렴하면서 큰 조각으로 팔기 때문에 인기가 높다.



    쉬폰 케이크가 지닌 부드러움의 비밀은 달걀을 충분히 사용하고 버터 대신 식용유가 들어간 데 있다. 그 위에 풍성한 생크림이 얹어져 맛을 더한다. 최근 들어 쉬폰 케이크는 녹차, 커피, 바나나 등 다양한 종류가 선을 보이고 있다.



    쉬폰 케이크 이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두 번째 주인공은 바로 치즈 케이크. 원래 유대인의 전통 과자였다고 전해지는 치즈 케이크는 뉴욕 스타일이 가장 유명하다.



    우리나라에는 치즈가 첨가된 스폰지 케이크로 잘못 알려졌다가 몇년 전부터 고급 제과점에서 판매되기 시작했다. 치즈 케이크는 다른 케이크 종류에 비해 집에서 만들기가 쉽다. 가루 낸 쿠키나 시판 스폰지 케이크를 베이스로 깔고 크림치즈와 달걀, 생크림 등을 채워 오븐에 구워내는 것이다. 케이크라기보다 아이스크림 같은 질감에 진한 맛이 일품이다.



    마지막으로, 케이크 진열대에서 단연 화려하게 돋보이는 과일 타르트가 있다. 그릇처럼 생긴, 바삭바삭한 과자에 여러 가지 조린 과일을 담아낸다. 보통 ‘타르트 오(Tarte au)'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데 그 뒤에는 재료 이름이 따라온다. 사과가 들어가면 타르트 오 뽐므(Tarte au Pomme), 레몬을 넣은 것은 타르트 오 시트롱(Tarte au Citron) 등이다. 지나치게 단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생과일을 얹은 타르트를 권할 만 하다.



    일본의 여고생들은 마치 우리나라 여고생이 방과 후 떡볶이집으로 달려가듯 케이크 가게를 찾는다고 한다. 이제는 우리나라에서도 대학가를 중심으로 아기자기한 케이크 가게에 앉아 수다를 떠는 10대, 20대 여성들을 보는 일이 낯설지 않다. 달콤한 케이크 한 조각이 주는 기쁨은 호기심 왕성한 소녀 시절의 설레임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장세진 맛 칼럼니스트 sejinjeong@yahoo.co.kr


    입력시간 : 2003-10-05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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