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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3.10.05 20:37:13 | 수정시간 : 2003.10.05 20:37:13
  • 라디오, 더 함부로 더 가볍게
    음주방송, 욕설, 오보 등으로 얼룩진 막가파식 진행







    “XX호텔 가 봤느냐. 내가 거기서 잤잖아. 목포여자 예쁘냐. 유달산 가봤느냐? 여자랑. (월급을)한 500만원 받나? 그 정도 못 받지?” 드라마 대사가 아니다.



    7월 30일 MBC ‘이종환의 음악살롱’ 목포 현지에서 진행하는 라디오 생방송에서 DJ 이종환이 음주한 뒤 술이 덜 깬 상태에서 공동 진행자에게 한 말이다.



    이종환은 이날 방송으로 수많은 청취자들에게서 “방송인의 본분을 망각한 진행”이라며 거센 항의를 받은 뒤 “청취자께서 느끼셨을 배신감을 생각하면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마음입니다”라는 사죄의 글을 인터넷 사이트에 올리고 다음날 진행자 자리에서 물러났다.



    철학자이자 방송 강의, 일간지 기자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며 최근 자신의 칼럼에서 대통령을 당신이라는 표현을 써 청와대의 비판을 불러왔던 김용옥은 5일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 에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방송 내내 ‘노무현씨’로 호칭하며 방송을 해 “방송과 대통령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저버린 행위”라는 네티즌들의 무수한 비난에 직면하기도 했다.



    위의 예에서 보듯 상당수 라디오 방송의 진행자와 출연자들의 ‘막가파식 방송’은 위험 수위에 다다랐다. 끝간데 없이 ‘더욱 가볍게, 더욱 더 함부로’를 향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때로는 개성이라는 허울로, 때로는 언론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위험수위 넘은 '개성'





    화종구출(禍從口出)이라는 말이 있다. 禍(화)가 되는 일은 모두 입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니 말을 조심하라는 뜻이다. 하지만 화종구출이 안중에 없는 진행자나 출연자들은 화(禍)를 오히려 대중의 시선을 끌거나 관심을 유도하기 위한 상품으로 활용하려는 사업화 전략으로 까지 활용하고 있다.



    이종환은 이번 뿐만 아니다. 지난해 10월 자신을 비난하는 글을 올린 청취자에게 방송 도중 폭언을 퍼부은 게 말썽이 돼 ‘이종환, 최유라의 지금은 라디오 시대’를 중도하차 한 적 있다.



    이종환 못지 않은 탤런트 박철 역시 농담과 청취자에 대한 무례한 행동으로 DJ 사퇴와 복귀를 거듭하고 있다. 박철은 2001년 SBS ‘박철의 2시 탈출’을 진행하다 쉬는 동안 욕설을 퍼부었는데 이 내용이 그대로 인터넷 방송으로 전달돼 이 프로그램의 진행을 그만 둔 뒤 복귀해 지난 1월 13일 방송에서 또 한번 사고를 쳤다.



    그는 자신의 라디오 진행 태도를 비판한 글을 쓴 청취자의 실명을 거론하며 방송에서 “이거 정○○가 쓴 거지? 그거는 잘못 생각 한거야. 정○○가 나한테 돈 줬어. 여기에 쓸데없는 소리 마시고 딴데 가서 노시기 바랍니다”라는 멘트를 해 방송위원회로부터 청취자에 대한 사과 명령과 함께 프로그램 관계자 징계를 받았다.



    이 징계가 발단이 돼 그는 DJ자리에서 4월 퇴진한 뒤 지난 6월 30일 경인방송 라디오프로그램 ‘박철의 2시 폭탄’에 복귀해 여전히 특유의 자유분방한(?) 진행을 하고 있다.



    막가파 방송의 하이라이트는 아마도 탤런트 겸 진행자로 활동하는 최화정이 될 것 같다. 지난해 6월 월드컵 기간 그녀는 SBS라디오 ‘최화정의 파워타임’ 진행 도중 자신의 코디네이터에게서 한국과 독일전 경기가 끝난 직후 도핑 테스트에서 독일 선수들의 약물복용 사실이 밝혀져 우리 대표팀이 결승전에 진출해 요코하마로 간다는 휴대폰 메시지를 받고 확인절차 없이 그대로 방송하는 희대의 방송 사고를 냈다.



    물론 이 내용이 거짓이었던 것을 알고 곧바로 정정했지만 방송사에 한국팀의 결승 진출이 사실이냐는 청취자의 문의가 쇄도하기도 했다.




    90년대 이후 거친 진행 늘어









    라디오 방송이 이처럼 막가파식으로 나간 것은 1990년대 들어서면서부터다. 1927년 2월 16일 경성방송국이 일본인의 손에 의해 라디오 본방송을 시작하면서 열린 한국 방송의 역사에서 라디오는 오랜 기간 동안 대중의 사랑을 받는 대표적인 방송매체 역할을 해 왔다.



    경성방송국 시절 마현경, 이옥경 등 아나운서들이 각종 방송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관행은 금과옥조처럼 지켜졌고 일제 강점기에 윤용로, 서명석, 장기범 아나운서들이 대중의 사랑을 받았고 1950년대 ‘라디오 게임’ ‘무엇일까요’ ‘노래자랑’ 등 공개 방송이 인기를 끌면서 이를 진행하는 아나운서들 역시 스타덤에 올랐다.



    이때에는 연예인이나 성우들은 방송을 진행할 수 없었기 때문에 수많은 라디오 프로그램은 아나운서들만이 진행했다. 이 당시 철저한 국어 교육을 받은 아나운서들은 표준말, 바른말만을 구사해 국민들의 국어 교사 기능도 담당할 정도였다.



    라디오 수신기 보급 확대와 라디오 연속극의 인기 급등으로 인해 1960년대는 라디오가 가장 인기 있고 영향력 있는 매체로 자리 잡았고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활동하던 아나운서의 역할도 증대됐다.



    TV시대가 도래한 1970년대에는 라디오의 인기가 급격히 떨어지면서 라디오 방송의 포맷이 급변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노래와 청취자의 사연 소개, 전화를 통한 청취자와의 대화로 진행되는 음악 프로그램의 대거 등장이었는데, 이 시기에 각종 음악 프로그램 진행자가 아나운서에서 전문 DJ들로 교체됐다.



    전문DJ들은 정형화한 아나운서의 딱딱한 진행에 비해 유연하게 프로그램을 진행해 인기를 누렸는데 ‘3시의 다이얼’의 최동호, MBC ‘음악편지’의 이종환, ‘골든 디스크’의 박원웅 등이 스타 진행자로 이름을 날렸다. 이때 가수들의 진행자로의 진출도 시작됐는데 윤형주, 이장희, 서유석, 박인희 등이 음악 프로그램의 DJ로 활동했다.







    PD와 가수 출신의 DJ들의 막말이나 은어, 비어 사용 등은 철저히 금지돼 이때만 해도 가수 DJ라도 하더라도 어법에 맞는 방송언어를 구사했다.



    1980년대 본격적인 FM시대를 맞아 김기덕, 김광한 등 대표적인 DJ들이 각종 음악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아 눈길을 끌었으며 가수에 이어 김미숙, 김희애, 최명길, 정애리 등 탤런트 들이 진행자로 나서기 시작했다. 이때에는 탤런트 진행자들은 애드립(즉흥대사)보다는 대본에 충실했기 때문에 방송 진행에 문제는 거의 없었다.



    1990년에 들어서면서 팝 음악보다는 가요가 인기를 끌고 10대 위주의 음악인 댄스 장르가 대세를 이루면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는 가수, 탤런트, 개그맨, 미스코리아 등 다양한 연예인들이 프로그램의 진행을 하게 됐다. 음악이 주가 되고 음악 소개가 보조가 되던 음악 프로그램은, 이야기가 주가 되고 음악이 부차적으로 따라가는 성격으로 바뀌게 되면서 방송 내용과 진행 스타일에 많은 문제를 야기했다.



    비어, 은어, 막말, 욕설 등 비문법적인 언어 구사는 물론이고 농담 따먹기식의 내용에서부터 심지어 선정적인 내용이 여과 없이 방송에서 흘러나왔다. 이때부터 라디오 방송은 국민의 언어생활에 악영향을 끼치며 언어 오염의 앞장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근래 들어 방송위원회로부터 심의 제재를 받은 라디오 프로그램 KBS ‘강타의 자유선언’과 MBC ‘옥주현의 별이 빛나는 밤에’의 내용을 살펴보면 라디오 방송의 폐해가 단적으로 드러난다.




    ▦ 강타의 자유선언

    강타=비씨 십세기 있죠. 김종국님이 하시면 필이 강해진다고. 이재국=어쭈 고기냐(개기냐)? 까불 때 날리라고. 김종국=비씨 십세기 아주 좋았습니다. 근데 제가 알고 있던거는요. 비씨 이십쎄기거든요. 비씨~이~십~쎄~기. 강타=이런 십빼기씹 같은 경우가 있습니까? 이재국=이런 씨팔년 묵은 하루살이를 봤나.




    ▦ 옥주현의 별이 빛나는 밤에





    김장훈=이런 개세요(개xx). 뭐 이런 거 있잖아요. 옥주현=귀엽네요. 아우 정말 지렁이야(지랄~). 으이. 은지원=우리 내친김에 쌍파울로(‘쌍’으로 시작하는 욕)나 할까요?






    진행자의 자질문제





    이처럼 라디오 방송이 막가파식으로 나가는 것은 우선 진행자나 출연자가 방송의 중요성과 역할에 대한 인식이 결여된 데다 최소한 지녀야 할 바른 언어사용 등 방송인으로서의 자질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라디오 방송을 사석이나 술자리에서 할 수 있는 내용으로 변질시키는 것은 이제 예사이고 맞춤법조차 모르는 진행자들이 부지기수이다. “급하게 대본을 쓰다 보니 오자가 들어가 본의 아니게 맞춤법이 틀렸는데 앵무새처럼 그대로 읽는 연예인 DJ를 보면서 문제의 심각봉?알게 됐다”는 한 방송 작가의 지적에 해당되는 방송 진敾湄湧?한 시간만 방송을 들으면 수도 없이 발견할 수 있다.



    또한 방송인으로서의 적합성보다는 인기를 염두에 두고 연예인만을 진행자로 기용하는 방송사의 안이한 제작 관행과 문제를 일으켜도 얼버무리는 방송사의 안하무인격의 대처가 막가파식 라디오 방송을 심화시키고 있다.



    이밖에 청취자의 인터넷을 통한 참여가 늘면서 초래된 일부 네티즌의 정제되지 않은 사연을 그대로 방송에 내보내는 추세 증가와 텔레비전에 비해 시청자 단체나 일반인의 감시가 소홀한 것도 막 나가는 라디오 방송을 하게 하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때 대중들로부터 가장 사랑을 받는 매체였던 라디오가 이제 청취자들로부터 더 이상 외면 받지 않기 위해서는 현재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진행자와 출연자의 막가파식 방송 문제부터 개선해야 한다.



    배국남 대중문화평론가 knbae24@hanmail.net


    입력시간 : 2003-10-05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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