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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3.10.06 09:18:51 | 수정시간 : 2003.10.06 09:18:51
  • 현대를 통째로 삼키려고?
    '제2의 SK사태' 우려, 현대家 경영권 방어에 나서







    상황이 꽤나 흡사하다. 우선 표적이 그렇다. SK㈜와 현대엘리베이터. SK그룹이 SK㈜를 통해 SK텔레콤 등 계열사 경영권을 장악해 왔다면, 현대그룹은 현대엘리베이터를 통해 현대상선이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계열사들을 지배해 왔다. 이들 회사만 장악한다면 계열사 전체가 딸려 들어온다.



    시점도 예사롭지 않다. 소버린자산운용이 SK에 대해 공세를 펴기 시작한 시점이 그룹 총수 격인 최태원 회장의 구속 직후였다면, 현대엘리베이터가 외국인의 집중 공략 대상이 된 시점은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의 사망 바로 뒤였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는 격일까, 아니면 일각의 우려처럼 정말 ‘제2의 SK 사태’가 물밑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일까.




    외국인, 5일만에 현대그룹 10%를 삼키다





    정몽헌 회장의 자살 소식이 전해진 4일 뒤인 8월8일.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구성에 중대 변화가 감지됐다. 그간 전혀 거들떠 보지도 않던 외국인들이 장내에서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1.75%를 사들인 것이다.



    “외국인 지분율이 겨우 1%대 변동한 걸 가지고…”라며 대충 넘길 일이 아니었다. 외국인들이 수시로 사고 파는 삼성전자 등 대형주와는 달랐다. 현대엘리베이터는 바로 전날까지만 해도 외국인들이 ‘입질’조차 않던, 그래서 외국인 지분율 0%를 기록하던 기업이었다.



    현대엘리베이터를 향한 외국인들의 ‘러브콜’은 연일 계속됐다. 다음 영업일인 11일 지분율이 2.22%로 높아진 데 이어 12일에는 하루 동안 무려 8.17%를 사들이며 지분율 10%를 훌쩍 넘겼다. 외국인 공세가 시작된 지 5영업일만인 14일 현재 회사의 외국인 지분은 11.81%.



    외국인들의 공격적 매수를 등에 업고 주가도 고공 행진을 했다. 6일 1만2,500원에 불과했던 주가는 6영업일 연속 가격 제한폭까지 오르며 두 배가 넘는 2만8,750원(14일)까지 치솟았다.



    지난 3월말~4월초 불과 보름 정도의 짧은 기간에 소버린측이 SK㈜ 지분 14.99%를 사들여 최대 주주로 급부상하면서 급기야 경영에까지 간섭하고 나섰던 것과 매우 비슷한 행보다.



    배경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다. 정 회장 사망 이후 독립 경영과 실적 개선 기대에 따른 순수한 투자(혹은 투기) 목적이거나, 적대적 인수ㆍ합병(M&A)이나 그린 메일(경영권을 위협해 프리미엄을 붙여 경영진에 되파는 행위)일 가능성이다.




    '제2 SK' 냐, '제2 한국전기초자'냐





    지금까지는 전자일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회사측이 14일 발표한 반기 실적이 이를 설명한다. 올 상반기 매출은 1,722억원으로 지난해 동기(1,470억원)에 비해 17.1% 증가한 수준. 영업이익(216억원)이 63.6%, 당기순이익(133억원)이 118% 늘어나는 등 모든 실적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정 회장 사후 대북 사업과의 연계성 감소, 지배구조 변동에 대한 기대감 등도 외국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았을 가능성도 짙다. 외국인들의 매수 창구 역할을 한 삼성증권도 이런 견해를 내놓고 있다.



    삼성증권 송준덕 팀장은 “현대엘리베이터 주가가 저평가된 것은 MH(정 회장) 계열사에 대한 지원 가능성 등 기업지배구조 관련 부실화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며 “MH 사망으로 독립 경영체제로 운영될 가능성이 높아 본업에만 집중할 수 있기 때문에 주가 상승 여력이 풍부하다”고 분석했다.



    탄탄한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지배구조에 대한 불신 때문에 매수를 꺼려왔던 외국인들이 이런 전망을 토대로 정 회장 사망 이후 집중 매수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비견할 수 있는 사례가 한국전기초자. 우량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대우그룹의 굴레 탓에 저평가돼 있었지만 3년 전 대우가 파산하고 지배구조 문제가 해결되면서 4개월만에 주가가 1만2,000원에서 7만원까지 치솟았다. 현대엘리베이터 주식을 사들인 외국인이 소버린처럼 단일 펀드가 아닌 유럽계 등 6~7개 펀드로 알려진 것도 이런 해석을 뒷받침한다.




    적대적 M&A 가능성 배제 못해









    하지만 M&A 혹은 그린 메일 의혹도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특정 세력이 정 회장 사망 뒤 혼란스러운 틈을 타 현대의 경영권을 노릴 수 있다는 경고가 증권업계 곳곳에서 제기된다.



    현대엘리베이터는 그룹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는 현대상선의 지분 15.6%를 보유하고 있는 대주주. 이를 통해 현대아산(40%) 현대증권(16.33%) 현대택배(30.11%) 등 현대상선이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계열사를 사실상 장악하고 있다. 만약 현대엘리베이터만 손 안에 넣는다면 힘 들이지 않고 현대그룹을 통째로 먹을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현대엘리베이터의 경우 최대 주주인 정 회장의 장모 김문희씨(18.6%)를 비롯해 현대종합상사(2.4%) 현대증권(4.9%) 현대중공업(2.1%) 등 의결권 행사가 가능한 우호지분이 28% 수준. 불과 5일만에 12%에 가까운 지분을 사들인 외국인들이 적극적으로 추가 매수 공세를 편다면 경영권을 위협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지적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섣불리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적대적 M&A에 대한 경계를 늦춰서는 안 된다”며 “지분을 사들인 외국계 펀드가 다수일 경우에도 주도적인 주체가 있을 경우 단순 투자 이상의 목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결집 현대가(家), 경영권 방어할까





    현대측에 초비상이 걸린 것은 당연했다. SK처럼 무방비 상태에서 무작정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위기감이 고조됐다. 단 1%의 가능성이라도 적대적 M&A 위험에 노출돼 있다면 이를 차단하고 보는 것이 급선무였다.



    현대엘리베이터측은 13일 의결권이 없는 자사주 50만주 가운데 43만주를 주당 2만5,000원, 총 107억5,000만원에 장외 거래를 통해 우호 주주에게 처분했다. 주식을 사들인 곳은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동생 정순영 성우그룹 회장 계열 현대시멘트, 정몽헌 회장의 형 몽근씨가 회장으로 있는 현대백화점, 정 명예회장의 매제인 김영주 명예회장의 한국프랜지 등 5~6개 ‘범 현대가’ 계열사.



    이로써 경영권 방어에 사실상 쓸모가 없는 현대측의 자사주는 준 대신 우호 지분은 28%에서 35.6%로 높아졌다. 현대측은 계열사들이 장내에서도 추가로 주식을 사들여 실제 우호 지분이 40%가 넘는다고 밝혔다. 현대그룹 한 관계자는 “40% 이상의 우호 지분을 확보한 만큼 적대적 M&A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졌다”며 “당분간 더 이상의 추가 조치 없이 상황을 예의주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는 이번 대응 과정에서 현대가(家)의 결집 분위기가 감지되는 것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왕자의 난’ 이후 모래 알처럼 흩어졌던 계열사들이 모처럼 단결력을 과시한데다, 비록 직접 지분 인수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역시 물밑 지원을 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현대차 그룹에서 현대엘리베이터 주식을 사들인 부분은 없지만 향후 필요에 따라 도움을 줄 수도 있을 것”이라는 현대 관계자의 발언도 이번 사건의 추이에 따라 현대가의 불편한 관계에 의미심장한 변화가 일 수도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입력시간 : 2003-10-06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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