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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3.10.06 09:41:23 | 수정시간 : 2003.10.06 09:41:23
  • [추억의 LP여행] 신촌블루스(下)






    트리오 '풍선' 해체 이후 엄인호는 1년 6개월 동안 군복무를 마쳤다. 방위병 근무 중에 기타 나원주, 베이스 박동률, 드럼 양영수와 함께 록 그룹 '장끼들'을 결성했다. 원래 '오래된 시계'란 팀 이름을 쓰고 싶었지만 대성레코드 이흥주 사장이 "개성이 강하고 스타일이 독특하다"는 의미로 '장끼들'로 팀 이름을 정해버렸다.



    이들은 당시 청소년 층에 인기가 높던 TV 음악프로 '영 일레븐', '젊음의 행진'등 미디어 매체를 기반으로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서울과 마장동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장끼들-별/첫사랑.대성음반ㆍ1982>은 한국 최초로 정통 레게 음악을 시도했던 야심 찬 데뷔 음반이었지만 음악적인 완성이나 폭 넓은 대중적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이후 박동률이 '벗님들'로 이적한 후 록 그룹 '장끼들'은 나이트 클럽 '블루 쉘', '마이 하우스'등지에서 3년 정도 밤무대 활동을 했다. 특이했던 것은 당시 최고 인기 가수 이용의 백 밴드로도 활약했던 점이다. 85년 '장끼들' 해체 후 엄인호는 뉴웨이브 음악을 시도한 비공식 솔로 음반 <환상/골목길-서라벌>을 발표했지만 이런 저런 사정으로 묻혀 버렸다.



    1986년 4월 엄인호는 이정선, 이광조, 한영애와 함께 신촌의 카페 '레드 제플린'에서 매주 토요일에 한번씩 공연을 열며 '신촌블루스'라는 이름으로 뭉쳤다. "신촌에서 만나 다들 블루스를 좋아해 팀 이름도 그렇게 지었다." 두 달 후 카페 사장 강선철의 기획으로 동숭동 파랑새 극장에서 첫 외부 공연을 열었다.



    연장을 거듭했을 만큼 소극장 사상 최다 관객으로 북적거렸던 기록적인 공연이었다. 87년엔 가수 이문세의 주선으로 미국 LA 공연을 가졌다. 방송 등 주류 무대가 아닌 라이브 공연으로 대중 앞에 첫발을 디딘 신촌블루스는 블루스와 레게를 가요에 접목해 큰 반향을 일으키며 정통 블루스 음악 열풍을 일으켰다.



    블루스적 음악 성향을 가진 언더 그라운드 뮤지션들의 자유로운 조인트 형식을 유지했던 신촌블루스는 탄탄한 실력외에 신선한 이미지로 꾸준하게 인기를 모았다. 이들은 85년 말에 나타난 전인권의 록 그룹 '들국화'와 더불어 '80년대 언더 그라운드 음악'의 대명사가 되었다. 돈보다는 실험적인 음악과 깊은 내면의 음악성을 추구했던 이들의 음악은 한국 대중 음악의 발전에 기름진 자양분을 제공했다.



    "88년 첫 음반을 만들 무렵, 김홍탁 선배의 홍익대 부근 작업실에서 어린 시절 좋아했던 박인수 선배를 만났다. 같이 생활하면서 엄청 고생했다. 그분은 1집에서 '봄비' 한 곡 불렀다." 89년도에는 엄인호, 이정선, 정서용, 故김현식, 봄 여름 가을 겨울등이 참여해 2집을 발표했다.



    기존 블루스의 음악에 레게나 펑키, 재즈 등을 가미한 이들의 음악은 폭 넓은 공감대를 형성하며 널리 불리워 졌다. 사실 신촌블루스가 대중들에게 강력하게 어필한 것은 창설 멤버들이 하나 둘 솔로 활동을 시작하면서 부터. 엄인호는 90년 김현식이 사망하고 이정선, 한영애 등이 솔로로 독립한 후 마지막 히트 앨범인 3집부터 신촌블루스를 하나의 팀으로 재탄생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다.



    신촌 블루스 출신의 여성 보컬들 또한 대단했다. 1집 한영애, 2집 정서용과 더불어 3집의 정경화, 이은미는 힘차고 개성적인 가창력으로 사랑 받았다.



    엄인호가 블루스 기타리스트로서의 잠재력을 드러낸 자신의 첫 솔로 음반을 발표한 것은 90년 돼서였다. 이어 91년 뉴서울 레코드에서 신촌블루스의 ‘가을여행’(OST) 음반을 연이어 발표했다.



    자신감을 얻은 엄인호는 91년 11월, 집안의 반대로 12년 간 결혼식도 못 올리고 동거해 오던 정연규씨와 명동 YWCA에서 지각 결혼식을 올리며 안정을 찾았다. 93년엔 정경화, 김목경, 조준형과 함께 만든 음반 로 호평을 받고 94년 정경화, 장필순, 고 이수희, 오윤주등 네 명의 여가수와 듀엣 곡을 담은 솔로 2집을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이후 신촌블루스 4집 때까지 대학로를 중심으로 전국의 크고 작은 무대에서 라이브 위주로 활동을 이어갔다. 97년, 동경 우에노에서 열린 'One Korea Festival'에 참여한 그는 98년, 베스트앨범 '10년의 고독'을 발표했다. 그 후 서울에서 재일동포 박보 밴드와 공연을 열고 2000년 1월에는 동경에서 합동공연과 더불어 프로젝트 앨범을 한 일 양국에서 동시 발표해 관심을 끌었다.



    최근, 침묵을 깨고 발표한 베스트앨범 `Anthropology`에선 록과 블루스, 국악을 신촌 블루스의 주요 레퍼토리에 접목하는 새롭게 편곡의 연주를 선보였다. 또한 <엄인호 Anthropology>와 엄인호와 재일교포 박보의를 하나로 한 더블 음반도 발표했다.



    "요즘 족보 없이 반짝 가수가 양산되고, 댄스 위주만으로 전체 음악 패턴이 잘못 흐르고 있다. 심지어 기타 줄 제대로 맞출 줄도 모르고 기계 음에만 의존하고 무대에 오르는 가수들을 볼 땐 비참한 생각 마저 든다"



    요즘의 가요계 풍토를 개탄하던 그는 "이제는 건전한 음악을 대중들에게 보급하도록 후배들을 선도하는 일에 선배 가수들이 신경을 써야 할 때"라고 힘주어 말한다. 그는 정통 블루스는 물론 포크, 퓨전, 국악 뿐 아니라 장르에 구애 받지 않고 모든 음악을 경험하고픈 음악적 갈증에 여전히 목이 탄다. 중단 없이 진행해 온 음악 오디세이의 종착점은 어떤 빛깔일까?



    최규성 가요 컬럼니스트 kschoi@hk.co.kr


    입력시간 : 2003-10-06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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