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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3.10.06 10:14:09 | 수정시간 : 2003.10.06 10:14:09
  • [직업의 세계-11] 쇼호스트 한호웅
    "방송은 색깔을 낼 수 있어 매력적"









    처음 쇼호스트를 하겠다고 했을 때 주변의 동료들이 '미쳤다'고 했다. 그는 억대 연봉의 한창 잘 나가는 성우였다. 기껏 잘 파놓은 우물을 안 지키고 왠 모험이냐는 소리였다.



    "하지만 너무나 해보고 싶었어요. 주어진 대본을 보고 읽는 거라면 지금도 신문 한 면을 한 글자도 안틀리고 한번에 읽을 수 있지만, 그런게 아니라 제 생각을 제 방식대로 표현할 수 있는 일을 해보고 싶었거든요. 홈쇼핑 방송은 특히 쇼호스트의 이야기를 듣고 구매를 결정한다는 점에서 라디오적인 특성도 있고, 할수록 정말 매력이 있는 직업입니다."




    화재를 몰고 다닌 개성파





    그의 반란은 꽤 성공적으로 보인다. '텔레토비'의 '뚜비' 목소리로 잘 알려진 성우 출신 쇼호스트 한호웅(35)씨. 뛰어든지 약 2년만에 그는 지금 현대 홈쇼핑 채널의 간판급 쇼호스트로 자리를 굳혔다.



    성우라서 그리 큰 덕을 본 것 같지도 않다. 마이크 앞에선 13년 베테랑이라도 카메라 앞에서는 영낙없는 신인. 초창기엔 실수도 많았다. TV라는 사실도 잊고 생방송중 카메라 앞을 지나다녀 스태프들을 경악케 한 전력이 몇 번이나 된다. 면목이 없어 '한번만 더 그러면 제작진 전원에게 삼겹살 파티를 열어주겠다'고 자진 공약까지 걸었지만 결국 얼마 안 가 재범을 저지르고 말았다.



    괴로운 최초 기록도 있다. 건강상품을 팔면서 의욕에 넘쳐 효능까지 언급했다가 방송심의에 걸려 자사 최초로 사과방송을 내보낸 '역사적'인 인물이 되었다. 협찬의상이란 것도 깜빡 잊은채 몸을 사리지 않은 '열연'을 벌이다가 옷을 망가뜨려 옷 값을 물어 준 일도 여러 번이다. 다이어트 패치를 팔 때는 외국인 여성 모델의 팔 근육을 손으로 강조하는 제스처를 썼다가 시청자들 눈에 가슴을 건드리는 것으로 잘못 비춰져 때 아닌 성희롱 오해를 받기도 했다.



    물론, 즐거운 기록은 더 많다. 요구르트 제조기, 돼지 갈비 세트 등을 팔때에는 방송 도중 주문전화가 폭주해 급기야 ARS 시스템이 다운되는 사태만 세 번이나 경험했다. 200만원대나 되는 비싼 식기세트도 방송 시작 단 15분만에 다 팔아치웠다. 1시간에 6억원의 매출을 기록, 본인이 팔아놓고도 본인조차 놀랐다. 쇼호스트도 매출에 따라 울고 웃는 몸, 개성파 한씨가 방송하는 날은 이래저래 화제다발이다.



    "상품이 잘 나갈땐 쇼호스트도 신이 납니다. 그럴때 저도 모르게 목소리도 커지고 말도 빨라지죠. 하지만 정말 좋은 상품인데 사람들이 주문을 별로 안 할 때는 자신도 모르게 거의 애원조가 될 때도 있어요. 그러다가 순간적으로 제 모습을 깨닫고 '어, 내가 왜 이러지?' 하죠. 결과가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대로 방송이 끝나면 그 이유를 나름대로 꼭 분석해 봅니다. 다음 판매 때에도 도움이 되지만,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알아가는 자체가 제겐 재미있습니다."



    한씨가 요즘 맡고 있는 것은 주로 식품이나 주방용품과 관련된 상품이다. 쇼호스트는 TV홈쇼핑 채널에서 직접 물품을 광고하고 판매하는 최전방의 주역. 그는 쇼호스트 중에서도, 특히 남자로서는 보기 드문 요리 전문 쇼호스트다.



    방송 출연은 1주일에 서너번. 리허설도 없는 생방송이다. 기본적인 정보야 업체 관계자나 제작 스태프로부터 얻지만 실제로 무슨 말을 어떻게 꺼낼 것인가는 전적으로 쇼호스트의 재간에 달렸다. 방송할 상품이 정해지면 미리 판매할 상품을 직접 써보기도 하고, 경쟁사 제품과 조목조목 비교해 보기도 한다. 인터넷을 뒤져 방송 바깥 사람들의 실제 사용 후기도 탐색하고, 나름대로 상품 연출의 아이디어를 짜내어 보태기도 한다.




    맛있게 먹는 기술









    여기까지는 그나마 공통 기본. 한씨의 독특한 자기관리법은 그 너머에 있다. 행여 한마디라도 은연중에 따라하게 될까봐 그는 다른 쇼호스트들의 방송을 일부러 보지 않는다. 한 두시간이나 계속되는 방송에 나서면서도 원고 한 줄 준비하는 법도 없다.



    원고를 쓰거나 외우면 자신이 했던 말조차 상투적으로 되풀이하게 될까봐 스스로 경계해서다. 그날 방송은 그날 느낌에 맡겨둔다. 상품을 파는 쇼호스트도 어쨌든 방송인. '나만의 색깔'이라는 명제가 자존심 센 한씨의 머릿속에 꽉 박혀 있다.



    자존심을 지키기가 어디 쉬우랴, 남보다 몇배나 더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 한씨는 언젠가 칼 세트가 등장한 방소에서 느잣없이 요리사를 방불케 하는 채소 썰기 솜씨를 선보여 사람들을 놀라게 한 적이 있다. 동고동락하던 스태프들조차 감쪽같이 몰랐던 이 솜씨는 사실상 1주일 전 방송에 함게 출연했던 요리사를 졸라 배운뒤 1주일 내내 남몰래 집에서 갈고 닦은 맹훈련의 결과였다.



    아예 정식으로 요리학원에 등록, 한식조리기능사 자격증 과정을 공부하기도 했다. 욕심이 불어나 이제는 푸드 스타일리스 트 과정까지 진행중이다. 평소에는 먹지도 못하는 닭고기와 청국장도 카메라 앞에만 섰다하면 시청자들이 침이 넘어가도록 맛있게 먹어대는 기술까지 갖췄다.



    미간을 좁히면 쇼호스트로서 보다 호감과 신뢰를 주는 인상이 될 거라는 한 전문가의 조언에 콧대를 높이는 수술까지 받았던 열성파다.



    "원래는 주 소비자층인 주부들의 심리를 잘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요리공부를 시작한건데, 직접 해보니 요리가 참 재미있더라구요. 그러면서 요리 전문 쇼호스트가 되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고, 아무거나 다 잘 파는 쇼호스트가 되기보다 한가지 분야에서 최고의 쇼호스트가 되겠다고 계획을 굳힌 거죠."



    매사 꼼꼼하고 다부진 성격은 타고난 천성이다. 한씨를 말해주는 막간 인생 스토리 잠깐.



    한씨는 세살때 아버지를 여읜뒤 어려운 성장기를 보냈다. 그러면서도 낙천적인 성격에,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든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 길을 찾았다. 형편상 상업고교에 진학하고도 새벽과 밤이면 신문배달과 구두공장 아르바이트를 하며 번 돈으로 모 대학의 음악과 교수로부터 성악을 사사, 성악가의 꿈을 키웠다. 어려서부터 노래에 소질을 보였던 한씨. 그러나 용기만큼 좌절도 일찍 체험했다.



    "어느날 그 선생님이 저를 불러 술을 사주시더니 '내가 보기에 네 정도 실력이면 분명히 서울의 한 대학에 진학할 수는 있겠지만 졸업하고 나면 고잭해야 지방의 시립합창단에 들어가는 게 전부일 것 같다'고 하셨어요. 맘속으로 아주 충격이 컸지만, 솔직하게 말씀해주셔셔 감사하다고 인사드린 뒤, 결국 그 꿈을 접었습니다. 그리고 길을 바꿔 한 극단에 들어가 연기공부를 했어요."




    한석규와 KBS 성우 입사동기









    고교 졸업후 서울예전 방송연예학과에 합격, 첫 등록금만 가족의 도움을 받은 뒤 이후 학비도 직접 벌어 해결했다. 대학에서 원로 성우 고은정씨로부터 지도를 받았고, 1990년 KBS 공채를 거쳐 성우가 되었다. 영화계로 진출한 성우 한석규와 입사동기이기도 하다.



    만화영화의 미소년 역할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한씨는 입사 4년만인 94년 프리랜서로 독립하면서 성우로서 남부럽지 않은 전성기를 맞았다. 어린이 프로그램 '텔레토비'로 입지를 굳혔고, 특히 오락프로그램 '남희석의 멋진 만남'에서 맡았던 '최종선택'코너는 한씨의 방송생활에 새로운 의욕과 자극점을 던져주었다.



    처음에는 연출자의 가벼운 요청에 따라 한두마디 애드립을 던져 본 것이 시청자들로부터 기대 이상의 폭발적인 반응을 몰고 온 것. 한씨는 물론 제작진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나중에는 한씨의 애드립이 방송의 주요 부분으로 다루어졌고, 이 자작즉흥대사를 위해 제작진은 그를 사전 제작회의 때부터 함께 참석시켜 협의할 만큼 그의 말솜씨와 순발력을 높이 샀다. 때로는 방송을 통해 공공연히 '유일하게 애드립이 가능한 성우'라는 찬사를 던질 정도였다.



    한씨가 쇼호스트에 눈을 돌리게 된 것도 그 다음의 일이었다. 얼굴 없는 연기자가 아니라 방송 전면에 나서서 역동적인 방송 진행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2002년 3월 현재의 회사에 입사, 화면을 통해 시청자들을 만나왔다.



    "한번은 방송에서 칼질을 하다가 실수로 손을 베인 때가 있어요. 피가 나는데 그대로 있다가는 카메라에 잡힐 것 같아서 베인 손을 웅크려 쥔 채 썰던 채소를 바로 양념그릇에 넣고 버무리는 장면으로 넘어가 버렸어요. 그런데 그 매운 양념이 베인 살에 닿으니까 속으로는 너무 따갑고 쓰라린데도 겉으로는 아무 일도 없는 듯 계속 웃으며 방송을 했지요."




    손가락 잘릴 각오로 배운 요리





    요리사에 처음 칼질을 배울 때도 '장난치는 거냐'며 거절하는 상대를 붙들도 '손가락 하나 잘릴 각오도 돼 있다'며 집요하게 졸랐던 한씨. 앞으로 홈쇼핑안에서 자신의 이름이 걸린 요리 전문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이 꿈이다.



    지금도 그 목표점을 향한 걸음이 분주하다. 쇼호스트가 된 뒤 그의 일상에서도 알게 모르게 변한 것들이 많다. 가족과 외식을 나가서도 접시 밑바닥마다 들춰보며 상표와 원산지를 확인해보는 것은 굳은 습관. 이전 같으면 해외여행을 다녀올 때마다 으례 술이나 담배가 들어있던 가방에 이제는 테이블 매트니 숟가락, 젓가락과 같은 주방용품이 수집품처럼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집에서 직접 앞치마를 두르고 요리하는 일도 익히 자연스럽다. 술자리가 줄어들고 귀가 시간이 빨라진 것도 변화 중의 하나. 이유를 들어보면 영낙없는 반 주부다.



    "술 마실 시간에 차라리 집에 가서 애들 간식이라도 하나 더 만들어 먹이는 게 낮거든요. 제가 만들어준 간식을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뿌듯하고 좋을 수가 없어요. 직접 주부들의 생활속에 들어가보면서 '아, 이런 게 여자 마음이구나, 이런 게 사는 재미구나' 비로소 이해하게 된 것들이 많아요. 저도 원해 전형적인 한국 가부장 스타일의 남자였는데 이렇게 변하더라구요. 앞으로도 저는 이성이나 논리로 풀어가는 진행보다 정감있고 따뜻한 쇼호스트로 시청자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글·사진 정영주 자유기고가 pinplus@empal.com


    입력시간 : 2003-10-06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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