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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3.10.06 11:09:08 | 수정시간 : 2003.10.06 11:09:08
  • [직업의 세계-12] 매니저 방윤태
    가수 뜨면 매니저는 일 '대박'
    보호자·방패막이 같은 존재, 자기 시간은 아예 포기






    거의 2분에 한번꼴이었다. 방윤태(30)씨의 휴대폰이 울어댄 것은. 웬만한 전화는 걸러내고도 우리의 대화는 수시로 쉬어야 했다. 여간한 훼방꾼이 아니었다. “하루 평균 300~400통쯤 전화를 하는 것 같습니다. 착발신 기록이 최대 60개까지 저장되는데 그게 하루에 6바퀴 가량 돌거든요. 전화요금이 40만원 정도 나옵니다.”



    생업이 달렸으니 타박할 도리도 없다. 그를 찾는 전화들은 대부분 자신이 맡고 있는 가수 싸이나 이정현 등과 관련된 연락이다. 팬엔터테인먼트라는 연예기획사에 근무하는 방씨는 본인의 이름보다 인기가수 싸이와 이정현의 매니저로 불리는 일이 더 많다. 올해로 경력 6년차, 두 가수의 데뷔 때부터 곁을 지켜왔다.



    줄곧 현장을 뛰다가 실장으로 승급된 것이 올해, 팀장급 매니저가 되면서 활동무대도 바뀌었다. 주로 방송국과 신문사 등을 찾아 다니며 홍보, 자신이 맡은 가수가 한번이라도 더 방송에 출연하거나 기사로 오를 기회를 따내는 것이 주업무다. 폼 날 것 같지만, 몸보다 마음이 더 피곤해졌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땐 ‘그냥 시키는 대로 하기만 하면 됐던 옛날이 더 좋았다’ 는 생각이 공연히 들 때도 있다.




    방송국ㆍ신문사 순례로 하루일과 시작





    방씨의 요즘 일과. 아침 9시에 출근해 담당 가수에 대한 기사가 있는지 일간지부터 죄 훑는다. 그리고 방송국과 신문사 순례에 나선다.



    특히 방송의 음악프로그램은 가수들의 인기등락이 걸린 주요 공략지다. 오라는 사람이 없어도 거의 매일 ‘출근 도장’ 을 찍는다. 출연 프로그램 녹화가 있는 날은 녹화날이라서, 없는 날은 없는 날이라서 미리 관리를 해야 한다. 부르지도 않았는데 허구한 날 들러서 뭔 얘기를 할까?



    “꼭 직접적인 홍보가 아니라도 우리를 한번이라도 더 상기시키는 게 중요합니다. 그냥 차 한잔 마시며 살아가는 얘기를 나누다 올 때도 있고, 같이 밥을 먹을 때도 있습니다. PD들이 너무 바쁠 땐 인사만 하고 돌아서기도 하고, 자리에 없어서 못 만나고 올 때도 있죠.”



    신문사에서 먼저 취재 요청이 찾아올 때도 있지만, 없을 땐 직접 기사꺼리를 싸들고 기자들을 찾아가기도 한다. 웬만한 사건사고 소식도 매니저들이 직접 공수한 것들이다.



    이럭저럭 가수들 주변까지 다 챙기고 나면 밤 10, 11시쯤에야 귀가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도 소위 ‘로드매니저’에 비하면 제법 사치스러운 생활이다. 이들은 가수가 다니는 곳마다 일거수 일투족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거의 24시간 밀착 수비를 맡는다. 출퇴근 시간도 따로 없다. 방씨도 작년까지 5년이나 그 생활을 거쳤다.







    “현장진행을 맡은 매니저들은 집이면 집, 사무실이면 사무실, 가수가 아침에 밖으로 나서는 순간부터 다시 집에 돌아가는 시각까지 그 동안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책임진다고 보면 됩니다. 운전부터 경호, 그 외 자질구레한 일들까지 모두 포함되지요. 몸이 아주 힘듭니다. 그래도 지원 이유부터가 연예인을 좋아하고, 그 가까이에서 접하고 싶어서 뛰어든 사람들이기 때문에 일할 땐 힘든 줄 모릅니다. 일이 끝나고 난 뒤에야 ‘아, 힘들구나’ 싶죠.”



    현장 매니저들을 총괄하는 것이 팀장급 매니저, 그 뒤에는 또 이들 전체를 지휘하는 ‘왕매니저’ 제작자가 자리해 있다. 중대사안은 제작자가 최종 결정한다.



    방씨는 강수지, 김완선의 노래를 들으며 자란 세대다. 원래 내성적이고 낯가림도 심하던 그가 매니저로 변신한 계기는 고모로부터 나왔다. 어려서부터 가수의 꿈을 키웠던 방씨의 고모는 주부의 신분으로 결국 꿈을 이뤘다. 트로트 음반을 취입한 것. 그 음반을 알리러 함께 뛰어다니면서 방씨는 이 일에 적성과 매력을 느꼈다.




    가수 주가 오를수록 '일 복'터져





    기획사에 입사한 것이 1998년. 사전 적응기간만 약 1년을 보냈다. 제작자의 운전기사 겸 수행원 노릇을 하며 조금씩 일을 익혔다. 음반 재킷이 나오면 짐을 나르는 일 등 궂은 일이 보통이었다.



    1년뒤 담당 가수를 배정 받고서야 비로소 매니저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운이 좋아서인지 처음 맡은 이정현의 데뷔 앨범부터 크게 터진 뒤 엽기가수 싸이의 등장과 급부상 등 이후에도 내내 순풍을 탔다. 매니저의 주가도 가수의 주가와 비례할 수 밖에 없다.



    가수가 뜨면 자연히 자신을 찾는 이들이 많아지고, 더불어 매니저 개인의 인지도도 올라가기 때문이다. 다 차치하고라도, 그런 인기가수의 매니저라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즐겁다.



    ‘옛날엔 가수를 태우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하루에도 몇 번씩 왕복했다’ 는 20년차 대선배, 제작자의 경험담에 비하면 면구스러운 얘기지만, 방씨도 지난 5년간 적지 않은 고생을 겪었다. 새벽에 일이 끝나 집에 들어가지 못한 날이 많다. 몇 시간뒤 다시 다음 일정을 위해 새벽 길을 나서야 하는 터라 아예 근처 사우나에서 자거나 남자 가수의 집에서 함께 자고 출발하곤 했다. 잦은 외박 때문에 ‘너는 왜 집에 들어오지도 않느냐’는 부모님의 꾸지람을 듣고 살았다.



    빽빽한 스케줄에 쫓겨 총알운전을 할 때도 많았다. 속도위반 스티커를 숱하게 떼었다. 사고를 당하지 않은 건 운이 좋았기 때문이다. 이동 중 교통사고로 다치거나 목숨을 잃은 매니저들도 적지 않다. 동료중에도 차량이동 중 갑자기 끼어든 화물차를 피하려다 타고 있던 승합밴이 옆으로 뒤집히는 사고로 한때 모두의 가슴을 쓸어내리게 한 일이 있었다.



    방송국이나 공연장에서 벌떼처럼 덮치는 극성 팬들 틈에서 가수를 보호하다가 옷이 찢어지거나 욕을 얻어먹기도 예사다. 한번은 한겨울 꽁꽁 얼어붙는 추위 속에서 강원도 태백의 한 공개방송에 간 적이 있었다. 일을 마친 뒤 떠나려고 보니 자동차 타이어가 누군가에 의해 심하게 찢겨져 있었다.



    이정현이 떠나지 못하도록 붙들고 싶은 어느 광적인 팬의 소행인 듯 했다. 때는 엄동설한의 한밤중. 새벽 동이 틀 때까지 꼼짝없이 추위에 떨며 밤을 지샜다. 결국 이튿날 카센터의 문이 열릴 시간쯤에서야 응급조치로 스페어 타이어를 이용해 강릉 시내까지 나가 수리할 수 있었다. 더 식은땀 나는 일은 재작년 춘천에서 벌어졌다.



    “춘천 MBC 대학가요제 생방송 때 이정현이 MC 겸, 도중에 축하공연으로 노래도 부르기로 돼 있었어요. 1부가 끝난 뒤 빨리 의상을 갈아입을 시간이 됐는데, 옷을 둔 차 문이 안 열리는 거예요. 안에 열쇠가 꽃힌 채로 문이 잠긴 거죠. 방송 20분전이라 열쇠기술자를 불러도 늦어서 펑크가 나게 생겼고, 한참 난리를 피우다가 결국 방송 3분전에 차 창문을 하나 깨고 그 안으로 서너살짜리 꼬마를 들여보내 문을 열었어요. 무사히 무대에 내보내긴 했는데, 그때 정말 식은 땀을 흘렸죠.”




    화려함에 비해 수입은 낮은편











    밤무대에 출연하는 가수의 경우에는 취객들의 주정으로부터 가수를 보호하는 일도 매니저의 몫이다. 때로는 업소측에서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며 가수에게 계약내용 이상의 출연을 무리하게 요구할 때도 있다. 그럴 땐 신변의 위험까지 느낀다. 그렇다고 내색하거나 곧이 곧대로 응할 수도 없는 일, 좋든 싫든 매니저는 가수 앞의 방패막이가 될 수 밖에 없다.



    씩씩하게 들어왔다가 짧게는 입사 한두달만에 그만두고 나가는 지원자들이 생기는 것도 이처럼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만두는 이유는 대개 비슷하다.



    “가장 큰 어려움은 자기 시간이 너무 없다는 거예요. 항상 가수 스케줄대로 움직여야 되죠. 아이러니한 것은, 일이 잘 되면 잘 될수록 시간에 더 쫓기고 힘들어진다는 거예요. 또 나쁘게 표현하자면 이 일은 남의 ‘딱까리’나 하다가 끝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어요. 몸이 아플 때는 특히 회의가 들기 쉽죠. 이 일에서 자기만족을 찾지 못하면 흔들릴 수 밖에 없어요. 가끔은 가수와 성격이 맞지 않아서 싸우고 나가는 경우도 있구요.”



    눈에 보이는 화려함에 비해 수입도 그리 높은 편이 아니다. 첫 적응기간 중에는 무보수로 일을 하는 곳도 적지 않다. 기획사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현장매니저가 되면 월 70,80만원 정도를 받는다. 팀장급으로 올라가면 한결 높아지지만 그렇다고 해도 일반인 수준으로 보면 그리 많은 편이 아니다.



    방씨는 매니저 생활 6년만에 친구도 거의 분실했다. 만날 시간도 없을 뿐더러, 어쩌다 만나더라도 질리도록 연예인 얘기만 되풀이 해?되는 고문이 따른다. 요즘은 음반시장도 불황이라 혼자서도 고민이 많다. 매니저의 능력을 평가받는 것은 주로 음반판매량과 방송 출연횟수에 달려 있다. 시장의 불황에다 쏟아지는 가수, 쏟아지는 매니저들의 경쟁속에서 자신의 탑을 지키기가 쉽지 않다.




    야릇한 시선에 부담





    일과 사람은 여전히 즐겁고 좋다. 그는 싸이와 이정현의 뮤직비디오에 두어번이나 춤추는 카메오로 출연한 일도 있다. 가수들에게는 보호자나 다름없는 존재. 너무 친해서 오히려 자제가 필요하다.



    “예를 들면, 가수가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방송 출연을 하나 더 시켜야 되는데 차마 마음이 약해져서 말을 못하는 경우가 생겨요. 그 때문에 인간적으로 가까울수록 공과 사를 구분해서 자기 조절을 할 줄 알아야 됩니다. 사실 그 일을 시키면 우리도 똑같이 고생이 더 늘어나거든요. 솔직히 우리도 명절엔 쉬고 싶다, 이걸 안 했으면 좋겠다 속으로 바랄 때도 있지만 일이기 때문에 그럴 수는 없는거죠.”



    여자 가수와 최 근접거리에 있다 보면 야릇한 시선을 받기도 쉬운 처지. 깜찍 스타 이정현에게도 그는 감정조절이 잘 통할까? “(웃음) 매니저 이상의 감정은 없습니다. 제 개인적인 이상형의 여성상도 아니라니까요.”



    그는 요즘 자신이 집중 홍보중인 그룹 ‘디베이스’의 이름도 꼭 넣어달라며 매니저 본색을 끝까지 드러냈다. 다음 행선지는 싸이의 콘서트 준비현장. ‘오늘도 자정쯤 돼야 집에 들어갈 것 같다’며 예의 휴대폰을 귀에 붙인 채 온 사방에 타전을 날리며 사라졌다.

    입력시간 : 2003-10-06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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