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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3.10.06 13:59:33 | 수정시간 : 2003.10.06 13:59:33
  • [석학에게 듣는다] 최성재 서울대 교수
    "한국의 노년, 설 땅을 잃었다"











    “21세기에는 어느 국가라 할 것 없이 노인 의료비와 노인 소득 문제가 가장 큰 이슈로 떠 오르고 있어요.”



    연구실의 냉장고에서 음료수를 직접 꺼내 권하면서 최성재(57ㆍ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말을 이어갔다. 육중한 질감으로 다가오는 말에 목을 축일 기회를 엿볼 틈 없다.



    한편으론 “사오정(40, 50대면 정년)ㆍ오륙도(50, 60까지 직장에 있으면 도둑놈)”라는 비아냥으로, 다른 한편으론, 젊음과 소비를 위해 넘쳐나는 문화 상품으로 현재 한국의 노년은 설 땅이 없다. 인생칠십 다반사(人生七十 茶飯事)가 돼 버린 이 시대, 도둑 소리까지 듣게 된 노인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헤어날 길 없다. 자식들을 위해 고스란히 바친 청춘이 원망스럽다.



    몇 가지 수치만 보자.



    한국의 노인 인구 비율은 2020년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예상치인 17.5%에 근접하고 2030년에는 평균치를 초과, 2050년에는 국민 3명 중 1명이 노인일 것으로 예측됐다. 그렇게 된다면 전체 인구 중 노인이 34.4%가 되는 셈이다. 그 시기, OECD 국가의 평균은 24.4%로 점쳐지고 있다.



    한국은 이미 2000년에 노인 인구 7.2%를 기록해 고령화 사회(aging society:65세 노인 인구가 전체 인구의 7%~14%인 사회)에로의 진입을 알렸다.



    현재 우리나라는 국내 170개 시ㆍ군ㆍ구 중 55개는 노인 인구(65세이상)의 비율이 14%가 넘는 고령 사회(aged society:노인 인구가 14%~21%인 사회)다. 2020년 안으로 실현되리라던 전망이 일찌감치 현실로 된 것이다. 9월 17일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를 보자. 이에 의하면 우리 국민의 평균 수명은 76.53살이다(남자 72.84살, 여자 80.01살). 10년전과 비교해 남자는 5.1년, 여자는 4.09년씩 각각 늘어난 수치다.




    천덕꾸러기 신세로 내몰린 노인층





    조선 시대에는 80세 이상의 노인에게 왕이 ‘노인직(老人職)’이라는 벼슬까지 내려 나이듦에 대해 존경을 표했다. 그러나 지난 20~30년 동안 7~8순의 노인은 좋든 싫든 천덕꾸러기 신세로 내몰리고 있다. 이제 노인이란 ‘늙고 가난하고, 병들고, 힘 없고, 문제 많고, 받기만 하는 사람’으로 치부되고 있는 현실이다.



    기껏해야 노인의 성을 희화시킨 영화 ‘죽어도 좋아’나 새벽녘 TV에서 하는 노인 프로 정도가 그들을 능동적 존재로 대접한다. 자신들도 머잖은 미래에 같은 대우를 받으리라는 예측을 현재의 중장년층이 거부할 수 있겠는가.







    한국은 지금 고령화 사회, 고령 사회를 넘어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당나라 시인 두보가 남긴 명구는 한국에서는 시대착오다. ‘백세인(百歲人ㆍcentenarian)’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다. 그들은 현재 인구 집단 중 가장 빠르게 증가하는 연령층이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에는 머잖아 3분의 1을 노인이 차지하게 된다. 엄청난 압력이다. ‘노인 문화’라는 말이 ‘장수 문화’로 바뀌어야 한다는 요청마저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현재, 우리는 밑그림을 준비하고 있는가?



    선생은 노인에게 인간다움을 향유할 권리가 있음을 역설하고, 밑그림과 전망을 제시하기 위해 애써왔다. 지난 3월 EU의 프로젝트로 영국 버밍햄대에서 열렸던 심포지엄 ‘고령화 사회, 동양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에 참여했다.



    이어 9월 3~7일 칠레의 ‘남미 지역 노인학 대회’에 참여해 2005년 브라질에서 열릴 ‘제 18차 국제 노인학회(IAGㆍInternational Association of Gerontology)’ 준비를 하고 막 돌아왔다. 또 10월 1일 인도네시아에서의 ‘국제 노인학 대회’에 가서 국제노년학회의 아시아ㆍ오세아니아 지역 회장 자격으로 축사를 할 예정이다. 5월 한국사회복지학회 회장직을 만료한 선생은 일천한 국내 노인학계의 수장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노인학이란 서구에서도 1980년대에야 부상했을 만큼 신생의 학문이다. 게다가 UN 산하의 제 1차 국제 고령화 대책 회의로부터 참가 권고를 받은 때가 전두환 정권이 막 들어선 1982년이라, 당시 혼돈의 한국으로서는 배부른 소리일 수밖에 없었다. 그 일을 알게 된 것은 1995년 YS 정권때였다.



    2002년 마드리드에서의 ‘국제 고령화 대회’ 개최 사실을 통보 받고 그에 따른 준비 작업을 하면서 였다. 어딘가 쳐박혀 있던 1차 대회의 관련 서류가 발견된 것이다. “정부에서 관련 학자를 수소문 해 묻는다는 둥 난데없는 호들갑이 벌어졌죠.” 한국 노인학의 기막힌 전사(前史)다.




    노인문제는 '복지' 가늠하는 시험대





    최근의 성과가 2002년 대회를 위해 선생이 관여한 두 건의 보고서다. 4월 UN에 제출하기 위해 준비했던 20쪽의 문건은 노인 문제에 대해 국가적 관심을 촉구하는 것으로, 노인 문제에 관해 한국서 나온 최초의 보고서다. 그렇게 민간 차원에서 제기된 노인 문제는 석달 뒤 국무총리실 산하에 노인보건복지 종합위원회가 신설되면서 정부 차원으로 격상, 선생은 다시 보고서 작성에 관여하게 됐다.



    김진표 국무총리 조정실장(현재 경제부총리)의 주재로 대책위원 25명, 실무위원 20명의 인력으로 나온 보고서는 그러나 역사적 의미에도 불구, 언론 등 외부에서는 관심이 전무했다.



    장수 문화를 이루기 위한 노인 복지 문제는 정부의 지향점과 불가분의 관계다. “지난 3월 복지부 산하에 노인 장기 요양 보장 정책 추진 기획단이 만들어 진 게 바로 그 여파죠.” 고령 환자의 간호 비용을 사회적으로 배분한다는 것이다.



    2005~2006년 중으로 시범 사업을 거친 후, 2007년 만성 질환이나 치매 등의 질병을 대상으로 한 ‘장기 요양 보험 제도’를 신설한다는 계획이다. 40대 이상의 개보험 가입을 전제로 해, 필요한 비용의 재원이 사회 보험으로 충당되는 것이다. 1995년 독일을 기점으로 해 2004년 일본이 실현한 제도가 국내에서도 현실화된다.







    노인 복지의 한 획을 긋게 될 이 제도는 사회민주주의식 복지 제도가 국내에서도 가능한 지를 가늠할 시험대이기도 하다. “미국 계통의 자본주의 방식이 아닌, 북구(스칸디나비아 3국, 영국 등)의 사회민주주의적 방식쪽으로 일단 택한 거죠.” 의사 등 이익 단체가 굳건히 버티는 미국은 복지라는점에서 보면 후진국이다. 복지란 그들의 근간인 자유주의와 정면 배치된다. 1인당 5만 달러나 하는 요양원 비용을 미국식 자본주의는 제공할 수 없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현재 제도상으로는 그럴듯한 복지국가다. 국민연금은 1999년에, 고용보험은 1992년에, 국민건강보험은 1989년에 국민 개보험화했다. 산재보험이 개보험화 한 것은 1960년대. “그러나 서비스 수준이 낮고 저소득층 위주라 질적으로는 한참 뒤져요.” 이 대목에서 선생은 연금 제도를 제대로 시행하는 것이 최선책임을 강조했다.



    “보험에서 적립식으로 만들어 가는 현행 연금제냐, 젊은층에서 세금처럼 걷어 노인에게 혜택을 주는 부과 방식이냐 하는 갈림길이죠.” 이번에는 한국식(적립식) 대 유럽식(부과식)의 대립이다.



    복지 사회로 가는 길목에서 우리가 슬기롭게 거쳐 가야 할 여울목이다. 선생은 어느 쪽일까? 국민적 합의 사항이라는 전제를 한 뒤, 부과식이 보다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자식 세대에게 부담을 덜어 준다는 발상은 자칫 세대간의 단절을 초래할 수 있어요. 후세보다 고생을 많이 한 사람들이 후세에 짐을 지워주는 것은 결국 세대간의 유대를 지속해 나가는 길이죠.”



    제 3의 길이 1995년 이후 실시중인 개인 연금제다. 선생은 비판적이다. “국가가 복지 문제를 상업 보험사에 떠맡긴 것으로 결국 보험사의 이익이죠.” 당시만 해도 고령화 사회라는 큰 틀이 없었던 때문이라고 선생은 말했다.



    ‘세계 노인의 날’을 아는가? 1992년 UN에서 제정한 기념일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국군의 날’과 겹친다는 이유로 10월 2일에 행사가 치러지고 있다. 출발부터 삐딱해진 셈이다. 그 동안 치러져 온 노인체육대회마저 작년부터 끊긴 상태다. 그나마 1998년부터 노인복지기관 종사자나 노인 문제 연구자 등에게 훈장을 주는 것으로 간신히 명목을 유지한은 셈이다.




    노인홀대는 사회적 부담 증가시켜





    정치판으로 오면 노인의 무력감은 더욱 깊어진다. “후보 단일화 이전이었어요.” 2002년 뜨겁던 대선 유세에서 노인 문제가 빠질 리 없었다.



    당시 노무현 후보 왈, “노인을 위해 일자리 50만개를 창출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후 노인 문제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선생은 좌시하지 않고 奐뭄育觀뮐測報션昰픽?등 유관 단체와 더불어 꾸준히 항의 했다. 복지부가 낸 ‘신인구 고령화 대책 기획단’ 창설을 국무회의가 검토하고 있다는 통보를 받은 게 7월 중순이었다.



    그러다 8월말, 불가 통보를 받고 항의했다. 선생이 칠레 대회에 가 있던 9월 6일 그의 동지인 서울대 의대 박상철 교수 등을 통해 항의의 뜻은 재차 전달된 상태다. “고령 문제를 사회통합 기획단속으로 끼워 넣으려 한다니 이 정부가 문제의 심각성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죠.” 이 정부는 왜 고령화 문제에 둔감할까?



    “노무현 대통령의 비서진이 386 세대 중심이라, 그들로서는 실감하지 못 하는 거죠. 그러다 보니 분야별 전문가는 물론 비서진이 없을 수 밖에요.” 여기에 선생은 “그들이 최빈층 노인 등 어려운 노인과는 접촉하지 못 한 탓도 크다”며 “청와대 산하 기구가 비대하다는 비판에 위축된 탓도 있다”고 분석했다.



    노인 홀대는 곧 현사회 위협으로 귀결된다. 가정 영위와 부모 봉양의 경제적 책임에 40~50대는 샌드위치가 돼 허덕이고 가족 간의 갈등은 심화한다. 증가하는 노인을 감당하지 못 한 연금과 기금 체계가 파탄에 빠져 전체 사회적 부담만 증가한다. 아직도 멀쩡한 50~60대 유휴 인력이 제 갈 곳을 못 찾아 유흥에 탐닉한다. 이상은 선생이 제시한 최악의 시나리오다. 가상이라고만 하기에 너무나 현실적이다.



    선생은 “복지 제도는 최후의 수단”이라고 말했다. 그보다 먼저 교육, 노동, 봉사에 노인이 참여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우선시돼야 한다는 강조다. 2000년 박상철(의대),한경해(생활과학대), 박사목(지리학과) 등 동료 교수들과 함께 ‘장수연구팀’을 결성, 저술과 시민교양강좌 등으로 캠퍼스 안팎을 오가며 선구적 활동을 펴 오고 있다.



    장병욱차장 aje@hk.co.kr


    입력시간 : 2003-10-0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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