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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3.10.06 14:03:10 | 수정시간 : 2003.10.06 14:03:10
  • [직업의 세계-14] 방송구성작가 이미애
    PD와 '2인3각' 이루며 전 제작과정 참여, 일과 결혼







    시작한 지 3년만에 내뺐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계속 뭔가를 쥐어 짜내야 한다는 게 끔찍해졌다. 친구와 다른 일을 벌이며 멀리 달아났지만 결국 6개월만에 자진 귀순했다.



    “송충이가 다시 솔잎을 찾은 거죠. 그 일만큼 제게 재미있고 맞는 게 없다는 걸 알았어요.”



    올해로 16년차에 접어 드는 방송구성작가 이미애(42)씨. 작가 후배들이나 지망생들에게는 등대 같은 존재다. 수상 작품 기록만도 쟁쟁하다. 97년 ABU(아시아태평양방송연합) 대상을 수상한 KBS ‘일요스페셜-성덕 바우만’을 비롯해 몇 달전 바톤을 넘긴 ‘TV동화 행복한 세상’은 시민단체들로 부터 ‘시청자가 뽑은 좋은 프로그램상’등을 받았다.



    이씨가 ‘TV동화…’에서 썼던 글은 이후 책으로도 발행돼 약 100만부가 팔렸다. 사실상 그녀의 성품과 가장 닮은 이야기들이다. 이씨는 지난해 한국방송작가협회가 주는 ‘한국방송작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상당히 힘든 일입니다. 정신노동도 심하지만 거의 육체노동자나 다름없어요.” 오죽하면 초반에 달아나려 했으랴. 신분은 프리랜서지만 생활은 전혀 ‘프리’할 수가 없다. 교양분야 구성작가는 작가군중에서도 가장 실전이 혹독한 야전 외인부대다. 사실성에 기반하기 때문에 글에 대한 부담이 더욱 크다.




    일주일에 사나흘 밤샘은 기본





    고상하게 글만 쓰는 것도 아니다. PD가 하는 일 중 편집만 빼고는 거의 나란히 뛰기다. 기획단계에서부터 취재와 구성, 촬영 콘티 작성 등 제작의 처음에서 끝까지 ‘2인3각’이다.



    원고를 쓰는 일은 그 마라톤의 ‘데드 포인트’쯤 된다. 편집 테입을 건네받자마자 주어진 시간 안에 원고를 마쳐야 한다. 일일이 화면속 효과음과 상황, 타이밍 등을 맞춰가며 써야 되는 글이다. 일주일에 사나흘 밤새기는 기본, 방송 때마다 목이 졸린다. 좋은 글을 빨리 내놓을 수 있는 건 이씨의 강점중 강점이다.



    “보통 50분짜리 다큐멘터리 한편을 쓰자면 하룻밤을 꼬박 새는데, 제 경우엔 그 3분의 1? 길어도 그 절반 정도 시간이면 이미 다 끝나 있어요.”



    타고난 복인가? 그게 아니다. “남들과 똑같이 해서는 절대 살아 남지 못하거든요. 그만한 스피드가 나오는 건 사실 그전부터 이미 머릿속으로 계속 원고를 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개 작가들은 일을 끝까지 미루다가 마감 때가 돼야 시작하는데, 저는 일이 떨어지는 바로 그 순간부터 일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거의 24시간 원고 생각만 하죠. PD가 촬영을 나간 동안에도, 일산 집에서 여의도로 차를 운전하며 올 때도, 첫 부분은 어떻게 시작할까, 끝은 어떻게 마칠까 머릿속에서 계속 원고를 쓰고 있어요. 수정하는 것만 100번쯤 될 겁니다. 그러니까 나중에 편집 테입이 나오면 앉자마자 곧바로 글을 쓰게 되는 거죠. 전에는 제가 쓴 50분짜리 원고를 통째로 다 외고 다녔어요.”



    구성작가가 된 건 생전에 KBS PD였던 오빠의 영향이 컸다. 오빠를 지켜보며 자연스레 방송 일에 매력을 느꼈다. 지금도 말 수가 적고 조용한 성격의 이씨는 어릴 때도 양지에서 친구들과 뛰어다니기보다는 그런 친구들을 조용히 바라보며 혼자 나무 그늘에 앉아 있던, 생각이 많은 아이였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 86년 KBS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을 시작으로 방송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1년쯤 지났을 때 ‘르포 이웃사람들’이라는 라디오 다큐멘터리를 맡았다. 매주 한번씩 30분간 방송되는 이 프로그램의 원고를 쓰느라 리포터와 녹음기 하나를 둘러메고 2박3일 출장을 다니며 전국 곳곳 안 가본 곳이 없었다. 사람들의 기쁨과 아픔이 뭔지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세상을 배웠다. 그러나 그 즐거움도 2년 이상 가지 못했다.



    “뭣보다 끊임없이 뭔가를 쥐어 짜내야 한다는 게 나중에는 못 견딜 만큼 스트레스가 됐어요. 자유로운 직업이라고 택했는데 알고 보니 아주 자유롭지 않은 직업이더란 거죠.”



    그만두고 나갔지만 결국 반년만에 제자리로 돌아왔다. 복귀한 얼마 뒤, 전부터 이씨의 대본을 눈여겨 보고 있던 MC 송지헌씨의 소개로 TV국으로 건너가게 되었다. 맨 처음 맡은 것이 60분짜리 시사물 ‘집중기획’이었다. 첫 원고를 써가자 마?퇴짜를 맞았다. 글이 너무 짧다고 했다. 그날 밤을 꼬박 샌 뒤 다시 쓴 원고를 확인한 PD는 ‘원고가 좋다’며 반색이었다. 이씨는 단 한번의 시행착오 후 바로 적응한 이례적인 케이스다.




    스피디한 글쓰기가 최대 강점











    문제는 체력이었다. TV쪽은 라디오보다 훨씬 더 험난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나마 라디오에서 누리던 최소한의 자유마저 빼앗겼다. 라디오처럼 작가의 재량대로 쓸 수도, PD보다 먼저 갈 수도 뒤처져서도 안 되는 팀워크의 승부전이었다. 기나긴 취재 과정과 속전속결을 요구하는 원고작업, 수시 밤샘 등의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해야 했다.



    와중에도 김옥영씨를 비롯해 당시 손꼽히는 실력파 현역들의 대본을 꼼꼼이 모니터하며 마음의 경쟁상대로 삼았다. 결혼에 무관심한 딸을 설득하려던 어머니는 결국 ‘대신 건강하게 살아야 한다’는 조건으로 그녀의 일중독을 받아들였다. 미혼인 이씨는 앞으로도 결혼할 생각이 없다.



    “욕 먹지 않으려고 열심히 일 했습니다. 이건 성격 탓인데, 평소에도 누군가와 약속을 하면 혹시라도 늦는 게 싫어서 20분전에 미리 약속장소에 가 있는 그런 성격이거든요. 저만 아니라 제게 일을 맡긴 분에게 욕을 먹이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성덕 바우만 이야기를 썼을 때는 특히 방송의 위력과 책임감을 절감했다. 방송이 나간 바로 다음날 전국에서 7,000여명이 성덕 바우만을 위해 헌혈을 자원했다. 나중에는 건강한 몸으로 일어나 결혼까지 하는 등 꺼져가던 한 청년의 운명이 방송과 함께 뒤바뀌는 기적을 보았다. 사람과 사랑의 힘이었다. 다큐멘터리 ‘사람과 사람들’등 그녀는 지난 10여년간 주로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에 애착을 보이고 있었다.



    반면에 이력서를 쓸 때마다 이씨가 고의로 빠뜨리는 경력이 하나 있다. 범죄 관련 프로그램인 KBS ‘사건 25시’집필 경력이다.



    “아시겠지만 용의자의 몽타주나 사진을 보여주고 ‘이 사람을 공개수배합니다. 보신 분은 어디어디로 제보해주십시오.’ 뭐 그런 내용인데, 그걸 할 때가 제일 싫었어요. 범인도 범인 인권이 있을텐데…. 제게 잘 맞지도 않았고, 잘 하지도 못했어요. 너무 힘들었어요…”



    더불어, 성공을 꿈꾸는 작가 후배들이나 지망생들이라면 새겨 볼만한 이야기가 있다.



    “흔히 작가의 운명을 PD가 쥐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아요. 작가의 운명을 결정하는 건 작가 자신이예요. 본인의 선택에 따라 잘 될 수도 있고 못 될 수도 있죠. 자신이 가장 하고 싶고 잘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빨리 찾아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해요. 맞지 않는 일에 가 있으면 에너지는 에너지대로 소모하고, 일도 괴롭고, 평가도 나빠서 진작 다른 곳에 갔으면 크게 능력 발휘를 할 사람인데도 결국 아깝게 도태당하는 경우를 볼 때가 있어요. 그걸 빨리 판단하고 찾아야 돼요.”




    작가의 운명, 작가 자신에 달려









    그러쟎아도 구성작가는 단명이다. 방송의 질을 위해 경력 있는 대작가를 찾는 PD들도 있지만, 상당수 PD들은 실력 여부를 떠나 나이든 작가와 함께 일하기를 ‘껄끄럽게’ 느끼는 성향 때문이다. 일을 제안 받는 횟수가 줄어들면서 저절로 은퇴 아닌 은퇴를 맞는다.



    현재 이씨 연배에 현역으로 뛰고 있는 구성작가만 해도 그녀외에는 별로 없다. 이 때문에 나이 든 구성작가들 상당수는 직접 제작사를 차리거나 프로덕션으로 자리를 옮겨 ‘본부장’등의 직함을 달고 프로그램의 질을 관리해주는 일 등으로 진로를 찾는다.



    이씨가 4년전 외주제작사를 세운 것도 같은 배경이다. 그녀는 현재 ‘허브넷’이라는 프로덕션의 사장이다. 당초 15명으로 출발한 이 제작사는 현재 약 70명의 구성작가와 PD를 거느린 대부대가 되어 있다. 회사를 처음 설립하면서 이씨가 제일 먼저 한 일은 구성작가들에게 자신의 책상과 공간을 갖게 해준 것이었다. 지금도 대부분의 방송사에서는 자신의 자리조차 없는 작가 후배들이 회의용 원탁을 떠돌며 보따리 장사처럼 일하고 있는 모습을 마음 아프게 지켜봐 왔기 때문이다.



    그녀는 서강대 방송아카데미에서 8년째 작가후배들을 양성하고 있다. 이 길을 가려는 젊은이들은 갈수록 는다. 작가가 되자면 자료조사원 약 1년, 간단한 꼭지 원고 정도를 맡는 보조작가로 2~3년, 다 합쳐서 넉넉히 5년쯤은 지나야 대본 전체를 맡아 쓰는 메인 작가가 될 수 있다.



    일정 단계에 오르고 나면 동년배 타 직종에 비해 수입이 적은 편은 아니다. 각각 월 70만~80만원, 150만원, 300만원 선이다. 하지만 메인 작가가 된 후에도 자신의 수입을 결정하는 건 본인의 능력에 달렸다. 이씨의 경우, 수입이 연 8,000만~9,000만원대였다. 잘 나가는 구성작가들 중에서도 두드러진 수준이다. 작가 세계도 철저한 경쟁사회, 빈익빈 부익부가 심하다.




    'PD 이미애'시대 열 작품에 몰두





    제작자라고는 하지만, 아직 구성작가 이미애의 시대가 끝난 건 아니다. 그녀는 요즘 마지막 결정타를 준비하고 있다. 원고도 직접 쓰고, 제작도 직접 할 작품이다. 작가생활의 피날레이자 PD 이미애의 데뷔작이 될 것이다. 물론 이번에도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얼마 전에도 마음에 드는 후보를 발견해 불원천리 달려가 촬영까지 하다가 도중에 접어버린 일이 있다.



    3권의 책을 통해 아름다운 자연의 철학자로 알려졌던 그 주인공은 실제로는 미사여구가 만들어 낸 허구였다. 이미 찍은 테입 30개의 촬영분을 미련없이 버렸다. 아름다운 가짜는 애초부터 이씨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아마도 그녀는 또 이런 사람을 찾고 있는지 모른다.



    “홍영녀 할머니라고, 9년 전 어버이날 특집에서 방송했던 분이 있습니다. 칠순에 글을 배워 10년간 일기를 쓰신 할머니인데, 처음 찾아뵙던 날 볼이 발그스레하시더라구요. 술을 드신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저희를 보고 수줍어서 볼이 빨간 거였지요. 그 분이 제일 생각납니다.”



    정영주 자유기고가 pinplus@empal.com


    입력시간 : 2003-10-06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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