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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3.10.06 14:23:39 | 수정시간 : 2003.10.06 14:23:39
  • [재즈프레소] 진정으로 창조된 소리의 향연






    인왕산은 완연한 가을이다. 해거름 뒤의 산공기는 알싸 하다.



    9월 19일 오후 8시 인왕산 자락 부암아트홀은 산의 기운속에서 평소 보기 힘든 즉흥 음악의 열기가 가을 기운을 무색케 했다. ‘한국의 자연음, 일본의 전자음을 만나다(Korean Acoustic Meets Japanese Electronic)’라는 제목으로 펼쳐진 충격, 또는 감동의 세계가 100여석을 꽉 채운 소극장 객석을 휘감았다.



    8시 15분에 시작, 10시 4분에 끝났다. ‘연주’라는 표현은 너무 상투적이다. 악기 또는 전자 기계를 통한 ‘발화(發話) 행위’가 있었다고 해야 더 적절하리라. 박재천(타악), 미연(피아노), 김애라(해금) 등 3명의 한국측 주자는 모두 전자음과는 전혀 관계없는, 자연 음향의 악기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들이다.



    이에 반해 사치코 M(전자파 조작), 오토모 요시히데(전자 기타, 턴테이블), 도시마루 나카무라(사운드 믹싱) 등 일본에서 건너 온 3인은 전자 음향을 다루는 데 일가를 이룬 사람들이다.



    맨 먼저 사치코가 아카이사에서 만든 ‘리믹스88’이라는 전자파 발생기를 조작해 잡음 같기도 하고 신비하기도 한 전자음을 쏘았다. 오토모는 기타의 현을 철사줄로 긁으며 이상한 소리를 냈다. 17분의 ‘연주’ 후 박제천이 심벌즈 소리를 내 또 다른 곡의 출발을 알렸다. 맨발 차림의 미연은 피아노 건반을 툭툭 두드려 갔다.



    그렇게 10분여 동안 서로를 탐색하던 연주자들은 서서히 자기 악기(또는 기계)의 소리를 높여 가다 거의 광란에 가까운 소음을 ‘연주’했다. 기타는 강력한 자기장을 형성하는 말굽자석을 현위로 움직여 가며 기타 특유의 피드백음을 조작했다. 한마디로 무시무시한 소음의 천지로 돌변한 것이다.



    이런 것도 음악일까?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막상 보니 지나치다 싶었는지 수근거림이 객석 여기저기에서 피어 올라왔다. 막간 휴식 시간에 주최사인 ‘국악중심’측이 나와 “지금 펼쳐지고 있는 것은 현대 프리 재즈”라고 간략한 도움말을 주었다.



    2부에서는 요시히데가 박재천의 낮은 징소리를 배경으로 현을 활로 긁더니 손가락에 침을 묻혀 기타의 몸통에 대고 세게 문지르기 시작했다. 기타에서 ‘뽀드득’ 소리가 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연주가 열기를 더해가자 박제천은 일어나 커다란 동작으로 징을 울렸다. 공연의 끝을 알리는 신호였다.



    4장의 CD를 발표한 사치코 M은 “내 음악은 전자 아방가르드”라며 “나는 소리의 창조자”라고 말했다. 마츠바라라는 이름을 두고 굳이 M이라 불리우고 싶어 했다. 한편 나카무라는 “나의 음악은 아름답다”고 말했다.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나는 비틀즈 이외의 음악은 거의 듣지 않는다”며 “미국과 유럽의 재즈 뮤지션과 함께 연주하지만 재즈를 듣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나카무라 역시 소리의 창조자다. CD, MD, 샘플러 등 다른 음원 없이 음향 발생기인 믹싱데스크에 의식을 집중, 소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날 한껏 이채를 더한 대목은 정통 해금 주자 김애라(37ㆍ서울시 국악 관현악단)가 가세한 순간이었다. 한국의 전통 타악기와 전자 음향이 충돌해 빚어 내는 음향속에 또렷이 떠오르는 해금의 농현음은 이상한 안정감을 주었다.



    그러나 그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불협화의 음을 내면서 다른 소리들과 어울려 갔다. 그것은 어떤 새로운 질서와 조화의 경지였다. 엄청난 혼돈을 몰고 다니는 태풍의 중심, 즉 태풍의 눈은 정반대로 고요와 정적의 세계인 것과 같은 이치였다. 백척간두(百尺竿頭)에서 한발짝 더 나아 가니(進一步), 그것은 아득한 추락이 아니라 새로운 개안(開眼)인 것처럼.



    김씨는 “내가 알고 있던 산조 가락을 그대로 연주하려 했는데 막상 올라가 보니 그게 아니더라”며 “예리한 칼날이 머릿속을 관통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고 전자 악기와 첫 대면한 순간을 떠올렸다. 자신의 본령인 지영희류 해금 산조 가락을 중심으로 낯선 기계음들이 뛰어 놀 공간을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는 것. 그것은 바로 즉흥 연주자의 본능이자 미덕이다. 김씨는 보름전 다리가 부러진 탓에 이날 깁스를 하고 무대에 올라, 더욱 이채로웠는 지 모른다.



    장병욱 차장 aje@hk.co.kr


    입력시간 : 2003-10-06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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