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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3.10.06 15:15:39 | 수정시간 : 2003.10.06 15:15:39
  • [김동식 문화읽기] 지나간 시대의 문화적 향수


    최근에 음악평론가 신현준은 웹진 ‘컬티즌’에 ‘1980년대의 미망에 사로잡힌 한국대중문화’라는 글을 발표한 바 있다. 조용필의 콘서트가 아줌마들이 되어버린 그때의 단발머리들을 객석으로 불러모았고, 김완선이 30대 여성의 아름다움을 과감한 누드로 선보여 관심을 끌었고, 광주의 꽃 윤상원을 다룬 프로그램이 국영방송국에서 방송되기도 했다.

    1980년대를 돌아보게 하는 여러 현상들이, 80년대 초반 학번인 음악비평가의 눈에 조금은 낯설게 다가왔던 모양이다. 그리고 그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한다. ‘이렇게 생각하고 보니 1980년대라는 시대는 매우 복잡했던 시대였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지나간 시대를 하나의 이미지로 표현할 수는 없겠지만, 일반적으로 1980년대에 관한 기억의 중심에는 언제나 ‘광주’가 신성한 모습으로 가로놓여져 있다. 그리고 한편에는 억압적인 국가기구의 폭력과 통제에 대한 기억이, 다른 한편에는 해방과 자유를 외치며 뜨거운 피를 흘렸던 사람들의 모습이 자리를 하고 있다.

    사회학이나 역사학에서 광범하면서도 정밀한 연구가 있어야 하겠지만, 1980년대가 민주주의를 향한 거대한 발걸음을 내딛었던 역사적인 분기점이었다는 사실은 부인의 여지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어떤 시대의 중심적인 이미지가 그 시대의 모든 것을 설명해 줄 수는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나의 예를 들자면, 1980년대를 억압과 투쟁의 시대로만 이해할 때 1990년대 이후에 분출한 문화적 다양성을 설명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1990년대 이후의 사회문화적 다양성을 배태하고 있는, 그 어떤 근원과 같은 것이 1980년대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1980년대는 매우 복잡한 시대였고, 그 복합적인 면모를 발견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1980년대를 다룬 영화에서 뚜렷한 전환점을 형성한 작품은 <친구>이다. <친구>는 1980년대 부산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네 친구의 서로 엇갈리는 운명을 그린 영화이다.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1980년대라는 시간을 감독이 경험한 개인적인 시간과 등치시켜 놓은 점이다.

    1980년대를 역사적인 관점이 아니라, 한 개인의 성장기에 대한 고백으로 제시한다. 이러한 면모는 1980년대를 기억하고 표현하는 새로운 시선이었다. 중고등학생 또는 사춘기의 청소년으로서 경험한 1980년대가, 체험의 한계 속에서 솔직하게 표현된 것이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억압적인 국가의 압축모형이라 할 수 있는 학교와, 그 학교 주변에 펼쳐져 있던 하위문화적 지형을 통해서 1980년대를 재현한 것이다.

    억압적인 학교와 하위문화적 지형 사이에서 서성이는 사춘기 청소년들의 모습에서 1980년대를 그린다는 설정은, 영화 <품행제로>, <남자 태어나다>, <해적 디스코왕되다>, <몽정기> 등에서도 그대로 반복된다. 이들 영화에서 나타나는 공통점은 1980년대를 순정과 촌스러움의 시대로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1980년대라는 시대를 배경으로 성장영화의 모티프를 배치함으로써, 지나간 시대를 향한 노스탤지어를 구현한 것이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1970년대생들이고 영화를 보는 대학생 관객들이 1980년 이후에 태어났다는 세대론적인 감각 또한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1980년대를 떠올리게 하는 아이콘들이 대부분 대중문화와 관련된다는 사실이다.

    블론디의 ‘콜미’가 울려퍼지는 롤러장, 병에 담겨져 판매되었던 서울우유, 커다란 칼라와 촌스러운 꽃무늬 프린트가 그려진 의상 등이 그것이다. “교복 자율화가 시행된 1980년대는 억압적이면서도 이상하리만치 자유로운 활기가 감도는 그런 시기였고, 나는 그 접점의 기운을 이미지화 하고 싶었다”는 <품행제로>의 조근식 감독의 말은 새로운 시선을 압축적으로 대변하고 있다.

    정치적인 시선이 아니라 문화적인 관점에서 1980년대를 재발견하고 있는 것일까. 아직까지는 명확한 판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1980년대를 기억하는 방식이 세대에 따라서 매우 다양하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한 것 같다. 1980년대의 무자비한 억압과 숭고했던 희생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와 같은 문화적 표현들이 지나친 낭만화로 여겨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18세기의 포르노그래피를 통해서 프랑스혁명의 의미를 연구하는 역사학자들을 생각한다면, 우리의 1980년대 역시 보다 포괄적인 관점에서 고찰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일까. <박하사탕>과 <살인의 추억>, <품행제로> 등이 이루어낸 영화적 성취가 새삼스럽게 돋보인다. 언젠가는 그 시대의 억압과 墟? 삶과 문화가 어우러진 작품을 만날 수 聆?것이다.



    김동식 문화평론가 tympan@empal.com


    입력시간 : 2003-10-06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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