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터미네이터, 캘리포니아 접수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 플러스 네이버 북마크 싸이월드 공감 기사 구입 프린트 기사메일
입력시간 : 2003.10.15 16:59:34 | 수정시간 : 2003.10.15 16:59:34
  • 터미네이터, 캘리포니아 접수
    아놀드 슈워제네거, 주지사 소환선거서 현 지사 누르고 당선





    더 이상의 수식어가 필요없는 근육질 영화배우에서 미국 캘리포니아주 주지사로 화려하게 변신,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한 아놀드 슈워제네거로 세계가 떠들썩하다.

    당선 직후 “나는 빈손으로 왔지만 미국에서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었다”는 그의 소감은 상당히 퇴색해 있던 아메리칸 드림을 재차 각인시킨 명언으로 기록될 듯하다. 세계 언론들은 이민자 출신의 한 배우가 영화 속 주인공처럼 성공할 수 있음을 증명한 이번 소환선거야 말로 한편의 멜로드라마 였다고 전했다.

    이번 선거 판세는 선거 전날인 6일의 마지막 유세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주지사에서 ?겨날 위기에 처한 그레이 데이비스의 유세는 우울하기 짝이 없었다. 데이비스의 아내는 “남들은 남편을 무뚝뚝하고 퉁명스럽다고 말하는데 나는 그 점이 그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라며 인기없는 남편을 변호했다. 아내는 애처로웠다.

    비슷한 시각 슈워제네거는 새너제이 해변에서 우람한 상체 일부를 드러내고 서핑을 즐기는 젊은이들 앞에서 무거운 서핑을 번쩍 들어올린 뒤 “데이비스와 뒷걸음칠 것인가 아니면 나와 함께 전진할 것인가를 유권자들이 선택할 것”이라며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숱한 여성들을 성추행한 의혹을 받는 슈워제네거가 남성들은 물론 여성들로부터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것은 당연했다.

    다음날 그는 주지사 당선자로서 아내 마리아 슈라이버와 당선 기념 키스를 나누는 멋진 장면을 연출했고 언론들은 35년전 무일푼으로 미국으로 건너와 영화 배우와 제작자로 활약하면서 3억 달러 이상의 부를 쌓은 그의 인생 스토리를 대서특필했다. 그의 고향 오스트리아에서 모짜르트보다 더 유명한 인물이 됐다.


    민심동향에 미 정가 긴장



    하지만 화려한 드라마는 여기에서 멈추는 듯 하다. 정치가로서의 재능과 능력 대신에 대중적인 인기와 스타일로만 선거라는 어려운 관문을 너무 쉽게 통과한 현실은 미 정가에 후폭풍을 안겨주고 있다. 유권자들은 정치 초년생 슈워제네거를 선택하는 방법으로 기존 정치인들에게 강한 혐오감을 분출했다. 정파를 막론하고 미 정가 전체가 이번 사건을 결코 즐거워할만한 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도 당연했다.

    이번 선거를 복기하기 시작한 미 정가와 언론은 이때부터 다분히 비관적인 톤으로 이번 선거가 낳을 파장과 향후 미국 정국 상황을 묘사하기 시작했다.

    미 정가는 슈워제네거가 공화당 소속이기 때문에 민주당 텃밭에서 공화당의 세를 넓힐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단순 도식에 선뜻 동의하지 않고 있다. 백악관 참모들은 “다음달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모금 행사에 슈워제네거가 나올 것”이라며 ‘슈워제네거 효과’를 기대하는 모습이지만 결코 현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미 언론들의 분석이다.

    언론들은 먼저 이번 소환 선거가 380억 달러에 이르는 캘리포니아주 재정적자를 낳은 연방정부의 감세 및 재정정책에 대한 심판 성격도 지닌다는 점에 주목한다. 국방비 지출 확대와 감세 정책으로 연방재정 적자를 키우고 있는 부시 대통령에게 민생ㆍ복지 예산 축소에 분노하는 민심은 재선의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워싱턴 포스트는 “이번 선거 결과는 기존 정치권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만일 뿐”이라며 공화당의 아전인수를 경계했고, LA타임스는 “백악관이 당면한 현안을 해결하지 않으면 부시 대통령은 민주당 강세 지역인 캘리포니아에서 힘겨운 재선 운동을 펴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내년 대선 클라크 돌풍 시사



    주지사 선거에서 승리한 슈워제네거가 아내 마리아 슈라이버와 함께 지지자들의 환호에 손을 들어 답례하고 있다.

    미 정가는 또 아웃사이더인 슈워제네거를 선택한 민심 자체에 주목하는 분위기이다. 아무런 정치적 경험과 배경이 없는 그를 선택한 민심은 내년 대선에서도 뜻밖의 주자가 돌풍을 일으킬 수 있음을 시사하는 징후이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민주당 대선 경선 주자인 웨슬리 클라크 전 나토군 사령관 등이 새삼스레 주목 받고 있다.

    더욱이 캘리포니아주 표심은 90년대 실리콘 밸리를 중심으로 일어났던 IT붐의 거품이 꺼지면서 이어지고 있는 경제불황, 그에 따른 박탈감 등 사회 심리적인 요인 등이 극심한 정치불신으로 연결되면서 결정됐다는 점도 간과될 수 없다. 좌절감을 치유할 대상으로 무엇이든지 풀어내는 ‘해결사’이미지의 터미네이터, 슈워제네거를 선택했다는 사실은 분명 정치ㆍ사회학적으로 건강하지 않다.

    선거전 슈워제네거의 성추행 스캔들을 폭로한 LA타임스에 1,000여명의 독자들이 보도에 항의하면서 정기 구독을 끊겠다고 밝힌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해석돼야 한다. 문제는 2000년 이후 지속되는 경제 불황으로 인해 이같은 민심은 캘리포니아주로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번 선거를 지켜본 주지사들이 전전긍긍하고 있다는 소식은 미 정치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듯 하다.

    이번 선거가 공화당과 부시 대통령에게 주는 또 다른 함의(含意)는 보수주의라도 온정 개방적 자세를 가진다면 민주당 성향을 가진 유권자의 마음을 돌려놓을 수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슈워제네거는 공화당원이지만 동성애자의 권익과 총기규제, 낙태 등에서 부시 대통령과는 상반된 진보적 공약을 내세워 표심을 얻었다.


    재정적자 해결 등 과제 산적



    주지사 슈워제네거 앞에는 이제 선거보다 훨씬 험난한 과제가 놓여 있다. 막대한 재정 적자에도 불구하고 감세 정책을 지지하고 있는 슈워제네거가 무슨 묘수로 이 문제를 풀 지가 주목된다.

    또 2006년까지 임기가 보장된 민주당 소속의 크루즈 부스타멘테 부지사와 어떤 관계를 맺고 민주당과 협력해 눈앞의 예산 부족액 80억 달러를 메울지도 관심거리이다. ‘머리는 빌릴 수 있다’는 생각으로 호화 자문단을 구성한 슈워제네거는 당선 직후 “주 재정이 정확히 어떤 상태인지 알지 못한다”고 말해 유권자들의 불안을 해소하지 못했다.

    주지사 보선 경쟁후보 였다가 도중 하차한 정치 칼럼니스트 애리애나 허핑턴은 “슈워제네거가 아웃사이더로서 선거운동은 할 수 있었지만 아웃사이더로 주 행정을 펴나갈 수는 없다”고 우려했다. 슈워제네거는 캘리포니아주 재정 문제에 대한 부시 대통령의 ‘선처‘를 크게 기대하는 표정이다.

    슈워제네거의 당선과 함께 화려한 조명을 받고 있는 이는 아마도 부인 마리아 슈라이버일 듯 하다.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 누나의 딸인 슈라이버는 남편의 성추행 보도에 흔들리지 않고 남편 곁을 지키면서 당선의 ‘1등 공신’이 돼 케네디가의 명성을 더욱 확고히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슈라이버는 남편이 당선된 직후 선거운동으로 잠시 접었던 NBC TV 앵커 일을 계속할 예정이다.



    이영섭 기자 younglee@hk.co.kr


    입력시간 : 2003-10-15 17:00

  • HOME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