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취업전선 2060…절망하는 20대 절규하는 60대] "우리도 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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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3.11.06 13:54:55 | 수정시간 : 2003.11.06 13:54:55
  • [취업전선 2060…절망하는 20대 절규하는 60대]
    "우리도 일하고 싶다"

    생계위해 평균 68세까지 돈벌이 해야하는 서글픈 현실
    인산인해 이룬 취업 박람회, 고위공직자 출신 등 구직 행렬






    “한국 남성들의 실질 은퇴 연령은 68세.”

    ‘사오정’, ‘오륙도’에 이어 ‘삼팔선’(38세 명퇴)이라는 얘기까지 나오는 마당에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발표된 ‘고령자 보고서’는 다소 엉뚱하다.

    하지만 알고 보면, 이는 퇴직 연령은 갈수록 앞당겨지고 있지만 생계를 위해서는 평균 68세까지 돈 벌이를 해야 한다는 의미. 회사에서는 일찍 밀려 나는데 먹고 살려면 무슨 일이든 70세가 다 되도록 해야 하는 우리 사회의 서글픈 현실을 대변한다.

    한창 능력과 패기를 발휘해야 할 20대 대졸자들이 극심한 취업난에 좌절하고 있듯, 편안한 노년을 맞이해야 할 60대, 70대들도 일자리 찾기에 발을 동동 구른다. 10월 28~29일 이틀 간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03 실버 취업 박람회’는 우리 사회에서 노인들이 겪고 있는 심각한 취업난의 현주소를 그대로 반영했다. 그 풍경 속으로 들어가 봤다.


    이력서 2시간만에 바닥



    박람회 첫 날인 28일 오후. 행사가 한창 진행중인 코엑스 전시장은 일자리를 찾아 나선 노인들로 인산인해다. 1,000평이 넘는 행사 공간마저도 몹시 비좁게 느껴진다.

    주최측인 서울시는 아침 일찍부터 몰려든 인파 탓에 오전 10시 30분으로 예정됐던 개장 시간보다 45분이나 일찍 행사장 문을 열었고, 덕분(?)에 이틀 간 사용할 요량으로 마련했던 이력서 2만장은 2시간 만에 동이 났다. 발표대로라면 362개 업체가 참여해 총 3,968명을 채용할 예정인 이번 행사에 이틀간 몰려 든 노인들은 3만1,000여명. 취업 경쟁률이 얼추 10대 1에 달했다.

    5월에 이어 두 번째로 마련된 이번 박람회에는 “빈 수레가 요란했다”는 앞서의 비판을 의식한 듯 다양한 분야의 업체들이 참가했다. 통ㆍ번역을 주로 하는 외국어 전문직 채용관, 주례나 영업 담당직을 모집하는 서비스ㆍ영업직 채용관 등은 고학력 노인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공직 25년 이상 근무 경력자’, ‘대기업, 국영업체 간부 이상 경력’, ‘대학교수급 이상’ 등의 구인 조건을 내건 업체들도 종종 눈에 띄었다.

    하지만 전문 직종은 여전히 구색을 맞추는 정도의 수준. 대부분 ‘60세 이하’ ‘급여 추후 협의’ 등의 조건을 내걸고 있는 데다 실제 모집 여부도 불투명했다. 행사장 입구에 마련된 대필관에는 이력서를 직접 작성하지 못하는 노인들이 하루에 1,000명 이상 몰릴 정도였다. 그 같은 저학력 구직 노인들 대부분에게는 특출한 경력을 요구하는 전문 직종이란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주류를 이룬 것은 경비, 미화원, 택배, 운전, 간병, 베이비 시터 등의 단순 노무 분야. 이들 업체가 제시하는 급여 수준이 통상 월 70만~80만원, 적게는 20만원에 불과했지만 창구마다 늘 수십명의 지원자들이 북적댈 정도로 가장 높은 인기를 누렸다.


    시켜만 주면 뭐든 한다



    올해로 꼭 칠순이라는 한 할아버지는 벌써 5년째 일손을 놓은 탓에 못내 몸이 근질근질한 듯했다. “마음은 지금도 30대야. 육체도 최소한 50대 수준은 될 걸.” 말마따나 단단한 체구에서 느껴지는 품새는 언뜻 보기에도 아직 충분히 일할 수 있는 체력이었다.

    대학을 졸업한 뒤 젊어서는 공무원 생활을 10여년간 했다는 그가 이력서를 낸 곳은 아파트 경비원과 주유소 아르바이트.

    “생각 같아서는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무조건 무능력한 노인 취급하니 일 할 곳이 있어야지. 상반기에는 사무 직종에 원서를 냈더니 아무런 연락도 없더라구.” 그래서 이번엔 눈 높이를 낮춰서라도 반드시 일 자리를 찾을 작정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채용을 장담하기 힘든 처지다. 2~3명을 뽑는 데 100명이 넘는 지원자가 몰리기도 했으니 그저 운에 맡길 수밖에 없다.

    박모(61ㆍ여)씨는 일찌감치 행사장을 찾아 5시간째 발품을 판 탓인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택배원 모집하는 회사 두 곳에 원서 냈소. 아무리 둘러봐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것 밖에 있어야지.” 노인들이 지하철로 서울 시내를 이동하면서 물건을 배달해주는 ‘실버 택배’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이내 신세 한탄으로 이어진다.

    “일찍 남편을 잃고 17년간 동네에서 옷 가게를 하면서 혼자서 4명의 딸을 키웠어. 그런데 외환 위기 이후에 장사가 통 돼야 말이지. 결국 3년 전에 문을 닫았지.” 설사 취업이 된다 해도 월 급여로 받을 수 있는 돈은 50만원 정도. “노동 강도에 비해 돈이 너무 적은 것이 아니냐”고 하자 “단 한 푼이라도 아쉬운 마당에 그 정도도 감지덕지”라고 했다.

    노원구청이 마련한 부스 앞에서는 한 할머니가 접수 직원에게 통사정을 하며 떼를 쓰고 있다. “혹시라도 여분이 생기면 일할 수 있도록 원서 좀 받아달라”는 것이었다. 할머니가 눈 도장을 찍은 곳은 한 폐백 업체.

    결혼식 폐백용 음식에 대추와 잣을 끼우는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루 5시간에 시간당 급여는 2,500원. 많지 않은 급여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덜 험한 일인 탓인지 고작 1~2명을 모집하는데 행사장이 문을 열자마자 10여명의 지원자들이 몰려 일찌감치 모집을 마감한 터였다.

    수천만원의 빚 때문에 일자리를 찾아 나섰다는 60대 후반의 이 할머니는 벌써 가정에 입주해 아이를 돌봐주는 베이비 시터 업체 3~4곳에 이력서를 접수해놓은 상태. 어떻게 해서든 돈을 벌어야 겠다는 욕심에 또 다른 일거리를 찾는 중이었다. “자식들도 있지만 어쩌겠소. 생활비를 한 푼이라도 줄이려면 입주를 할 수밖에. 한 150만원 정도는 준다니까 몇 년만 고생하면 빚은 다 갚을 수 있으려나.” 할머니의 말 속에는 깊은 시름이 묻어 났다.


    전직 차관보도 구직 행렬 동참



    외국어 통ㆍ번역자를 모집하는 연합번역센터 창구. 하룻동안 이력서를 접수한 120명의 지원자 중에는 교수, 중소기업 사장, 고등학교 교장 등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들이 상당수였다.

    특히 차관보를 지낸 전직 고위 공무원까지 원서를 접수해 회사측을 깜짝 놀라게 했다. 교육 상담직을 모집하는 인터넷 교육업체인 아이 넷 스쿨 역시 지원자들의 면면은 믿기 힘들 정도였다. 공사 임원, H산업 이사, 중ㆍ고등학교 교사, 대학 강사 등등.

    회사 관계자는 “월 70만원에 인센티브가 추가되는 수준으로 급여 수준이 그리 높다고 할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우수한 노령 인력이 대거 몰렸다”며 “노인 취업난이 심각한 수준인 것은 틀림 없는 것 같다”고 했다. 그렇다고 전문 직종을 모집하는 창구의 분위기가 단순 노무직 창구에 비해 밝은 것만은 아니었다. 모집 인원이 턱없이 적은 데다 자신의 경력을 살려 일을 할 수 있는 업체를 찾기가 쉽지 않은 탓인 듯했다.

    아예 경력을 감추고 눈높이를 낮춰 단순 노무직에 지원하는 고학력 노인들도 적지 않았다. 동대문 고령자취업센터 유동일씨는 “단순 노무직에 이력서를 내는 분들 중에는 경력을 숨기는 경우도 종종 있다”며 “체면도 체면이겠지만, 화려한 경력 탓에 오히려 불이익(?) 당할 것을 우려하는 것 같다”고 했다.

    실망만 안고 발걸음을 돌리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젊어서 홍보, 기획 쪽의 일을 하다가 나이 들어서는 도저히 할 일이 없어 주유 아르바이트 등 이것 저것 안 해본 것이 없소. 이젠 이런 일을 벗어나서 사무직 일을 구할 수 있을까 기대하고 찾아왔는데 참 허탈하군.” 멍하니 천정만 쳐다보고 있던 성모(64)씨는 대단히 화가 나 있었다.

    그는 “심지어 운전이라도 하겠다고 원서를 낼라치면 나중에 필요한 인력이 있으면 연락을 주겠다는 식”이라며 “도저히 믿을 수도 없고 스스로 비참해지는 것 같아 아예 원서도 접수시키지 않았다”고 했다. 35년간 포목점을 운영해왔다는 안서영(63ㆍ여)씨도 “노인들 취업 박람회라고 해서 왔더니 구인 잡지에 나오는 광고 수준인 것 같다”며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직장에서 정상적으로 정년 퇴직을 하고도 최소한 20년 이상은 변변한 일거리가 없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시대. 행사장을 가득 메운 노인들은 한결같이 마음 속으로 이렇게 외치고 있는 듯했다.

    “우리도 일 할 수 있다”고. 또 “우리도 일 하고 싶다”고.



    이영태기자 ytlee@hk.co.kr

    정민승 인턴 기자


    입력시간 : 2003-11-06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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