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김동식의 문화읽기] 예능인으로서의 이야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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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3.11.19 15:22:00 | 수정시간 : 2003.11.19 15:22:00
  • [김동식의 문화읽기] 예능인으로서의 이야기꾼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다. 소설가이자 시인인 장석주씨가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었다. 가을 개편과 함께 새롭게 선보인 프로그램인데, 책에서 보았던 감명 깊은 구절을 낭독하고 거기에 어울리는 음악을 곁들이는 포맷이었다.

    무엇보다도 인상적인 것은 제목이었다. 낭독의 발견. 책 읽는 모습의 아름다움과 목소리의 떨림을 섬세하게 포착해내려는 의도가 무척이나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겨울로 발걸음을 재촉하는 늦가을의 풍취와도 잘 어울렸고, 책읽기의 즐거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소리 내서 읽는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말로는 낭독(朗讀)과 음독(音讀)이 있다. 사전에 의하면, 문학작품을 소리내어 읽는 경우에는 낭독이라고 하고 일반적인 문장을 읽을 때는 음독이라고 한다. 낭독이 예술적인 자기표현을 목적으로 한다면, 음독의 목적은 메시지의 정확한 전달이다.

    낭독의 과정에 음악적인 리듬이나 연극적인 연출이 결합되는 경우가 많기는 하지만, 일상적인 경험에서 낭독과 음독이 명확하게 구분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떠한 경우가 되었건 간에, 소리 내어 글을 읽는 것은 책과 몸이 만나는 가장 원초적인 모습이다.

    오늘날에는 독서라고 하면 소리내지 않고 눈으로 책을 읽는 묵독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소리내지 않고 눈으로 읽는 시각 중심의 독서가 오늘날의 일반적인 독서관행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묵독이 지배적인 독서관행으로 자리를 잡은 것은, 근대적인 인쇄복제기술이 일반화한 이후의 일이다. 알베르토 망구엘의 ‘독서의 역사’에 의하면, 서구의 경우 적어도 10세기 이전까지는 묵독이 일반화되지 않았다고 한다. 소리를 내지 않는 독서의 예들이 있기는 하지만, 근대 이전의 일반적인 독서관행은 소리를 내서 읽는 낭독이었다.

    특히 경전을 읽을 때는 글자에 혼을 불어넣는 심정으로 입을 크게 벌리고 문장의 리듬에 따라 몸을 움직이며 노래하듯이 읽었다. 독경(讀經)의 리드미컬한 책읽기 방식을 떠올린다면 낭독의 오랜 전통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의 역사학자 로제 샤르티에는 낭독에서 묵독으로, 그리고 경전에 대한 집중적인 독서에서 일반서적에 대한 광범위한 독서로의 점진적인 이행을 독서혁명이라고 부른다. 낭독과 묵독은 언제나 병존하는 책읽기 방식들이었다. 다만 특정 시대나 사회가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지배적인 독서관행이 역사적으로 변화해 왔다는 것이다.

    서구의 경우 근대 이후에도 낭독의 전통은 매우 활발하게 유지되었다. 특히 19세기는 작가가 일반대중을 상대로 자신의 작품을 읽는 대중 낭독회의 황금기였다. 소설가 찰스 디킨즈는 낭독회의 스타 작가였는데, 그는 어조와 몸짓을 연습하느라 최소한 2개월의 시간을 들이기도 했다. 낭독회가 활성화할 수 있었던 것은 독자에게 내밀한 즐거움을 제공했기 때문이었다. 작가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동안 독자들은 작품이 창조되는 신비로운 순간에 참여하고 있다는 느낌을 나누어 가졌다.

    그렇다면 우리의 역사 속에서 낭독은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을까. 임형택 교수의 논문 ‘18ㆍ19세기 이야기꾼과 소설의 발달’에 의하면, 소설 독자층이 확대되던 조선 후기는 전문적이고 직업적인 예능인으로서 ‘이야기꾼’이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기였다.

    이야기꾼은 크게 3 부류로 나뉘어진다. 이야기를 노래로 부르는 강창사(講唱師), 담화조로 이야기하는 강담사(講談師), 소설책을 낭독하는 강독사(講讀師)가 그것이다. 특히 조수삼(趙秀三ㆍ1762~1847)의 ‘기이(紀異)’에 소개된 전기수(傳奇叟) 이야기는 매우 흥미롭다. 전기수는 동대문 밖에 살던 사람인데 지금의 종로를 6일 간격으로 오르내리며 소설을 구연했다. 일정한 장소에서 정기적으로 소설을 낭독했던 것이다.

    그는 소설을 읽다가 결정적인 대목에서 낭송을 뚝 그쳐 청중의 애를 태웠는데, 그러면 청중들은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앞을 다투어 돈을 던졌다고 한다.

    낭독의 전통은 곳곳에서 확인된다. 도시의 시가에서 청중을 상대로 하는 이야기꾼도 있었고, 일반 가정을 돌아다니며 소설책을 읽어주던 강독사도 있었다. 특히 이업복(李業福)은 부자집에 불려 다니던 전문 이야기꾼이었는데, 당시의 여성 독자들을 위해서 안방까지 출입을 하며 소설을 읽었다.

    또한 시골의 사랑방에서 목청 좋은 사람이 동네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소설책을 읽던 모습은 일반적인 농촌 풍경 가운데 하나였다. 가을 추수에서 이듬해 정월 사이에는 책을 읽고 듣는 일이 최고의 엔터테인먼트였던 것이다.

    다음 글에서는 영화와 소설에 등장하는 낭독의 양상들을 통해서 그 문화적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김동식 문화평론가 tympan@empal.com


    입력시간 : 2003-11-19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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