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가랑이 찢어져도 강남이 좋은 '강남 뱁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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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3.11.21 16:33:29 | 수정시간 : 2003.11.21 16:33:29
  • 가랑이 찢어져도 강남이 좋은 '강남 뱁새들'
    교육때문에 이사와서 교육비에 '발목'
    강남권 최저생활에 상대적 박탈감






    서울 강남.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서초 강남 송파구 일대. 언제부터인가 이곳은 지방은 물론 서울 타 지역과 구분되는 특별한 곳으로 분류됐다. 거주지가 그 사람이 보유한 부(富)의 정도를, 또 사회적 지위를 가늠하는 잣대였다. ‘강남 특구’ ‘강남 별천지’ 라는 말도 동경과 냉소가 뒤섞인 표현이었다.

    하지만 강남 주민들이라고 해서 모두 수십억원 대의 재산을 갖고 있는 부자들은 아니다. 그 중에는 자녀의 교육 때문에, 집 값 상승의 기대감으로, 혹은 상류층 문화를 쫓기 위해 가진 재산을 모두 털어 간신히 강남에 집 한 채를 마련한 이들도 적지 않다.

    이들은 빠듯한 살림살이지만 원조 강남 주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물론 그렇게 살아가기엔 상대적 박탈감도 적지 않다. 게다가 ‘강남 주민’이라는 이유만으로 온갖 사회적 비난도 감수해야 한다. 남들은 이렇게 일침을 놓는다. “그러면 강남을 떠나면 되지. 그 집을 팔고 강북에 가면 남 부럽지 않게 살 수 있겠다.”

    허나 강남을 등지기는 싫다. 분명 강남이 주는 특권이 있기에. 황새를 쫓아가고 싶은 뱁새들의 심정이라고나 할까.


    그래도 강남이 좋다



    결혼 후 남편 직장의 사택이 있는 충남 서산에서 10여년을 살았던 남순영(41ㆍ가명)씨가 서울 강남에 입성한 것은 1년 여 전이었다. 남편을 홀로 지방에 남겨둔 채 강남구 압구정동 A아파트 22평짜리 전세 집에 새 둥지를 틀었다. 이유는 자녀 교육 때문. 서울 강북에 마련해 둔 35평형 집 한 채가 있었지만 올해 중학교에 들어간 큰 아들을 비롯한 3남매의 교육을 위해서는 강남이 좋겠다는 판단이었다.

    평소 중산층 정도는 된다고 생각했지만 강남 주민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무척 팍팍했다. 사실 관리비가 조금 더 나온다는 것을 제외하고 기본적인 생활비에서 강남ㆍ북의 차이가 있을 것은 별로 없었다. 역시 가장 큰 부담은 교육비였다. “교육 때문에 강남에 왔는데 교육비에 발목을 잡힌 느낌”이라고 했다.

    이제 20개월 된 막내를 제외하고 중학교 1학년인 큰 아들과 초등학교 3학년인 둘째 딸의 사교육비에 지출되는 돈은 100만원 가량. 이곳 주민들로서는 최저 수준에 가까웠다. 그래도 남편 월급에서 매달 30% 가까이를 고스란히 쏟아 부어야 하는 액수였다.

    “남들 다 보내는 단과반은 엄두도 내기 힘들더라구요. 그래서 지금까지는 월 40만원에 주요 과목을 모두 가르쳐주는 종합반에만 보내왔죠. 여기에 속독학원과 음악학원, 그리고 학습지 비용까지 합치니 아이들 두 명의 교육비가 100만원이 조금 넘더군요.”

    하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다. 아이들의 학년이 높아질수록 교육비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밖에 없다. 큰 아이가 입시 전쟁에 뛰어드는 내년부터는 최소한 영어, 수학은 과목 당 30만원 정도 하는 단과반에 보낼 생각이다.

    아이들의 기를 살려주기도 쉽지 않다. 처음 강남으로 왔을 때의 일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온 큰 아이가 시무룩했다. 몇 번을 다그치자 “서울 친구들은 다 좋은 옷을 입는데 나만 시장에서 산 옷을 입어 창피하다”는 것이었다. “무작정 좋은 것만 입히고 먹일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아이가 위축되게 할 수는 없겠더라구요. 당장 데리고 나가서 비교적 저렴한 메이커 의류를 사 줬죠.”

    강남 문화에 녹아 들어간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남씨는 계속 강남에 눌러 살기로 작심했다.

    그래서 얼마 전 강북의 집을 팔아 이곳의 아파트를 샀다. 어차피 강남에 터를 잡고 살 거라면 집값이 더 오르기 전에 구입해두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이었고, 아이들이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좋은 교육 환경을 유지해줘야 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루 하루가 버겁기는 하지만 어쨌든 이제 진짜 강남 주민이 됐다는 생각에 가끔은 흐뭇하다고 했다.


    여유 있는 생활은 먼 나라 얘기



    “양재천이나 대모산이 있어서 주변 환경이 좋죠. 유흥가가 없으니 시끄럽지 않죠. 또 교통도 워낙 잘 돼 있고, 백화점이나 할인점 등 편의 시설도 많잖아요.”

    강남구 대치동 35평 B아파트에 사는 조경아(40ㆍ가명)씨의 강남 예찬론이다. 하지만 그녀 역시 1순위로 꼽는 것은 교육이었다. “아이들이 다닐 수 있는 학원에 대한 선택의 폭이 넓다는 것이 가장 매력적이다”는 설명이다.

    조씨 가족이 강북에서 강남으로 이사를 온 것은 7년 전. 당시 2억원을 주고 샀던 아파트는 최근 한 때 8억원 이상까지 치솟았다. 주변 사람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은 것은 물론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손사래를 친다. “솔직히 제가 이사를 갈 생각이 있다면 집 값이 뛴 것이 큰 의미가 있을 거예요. 하지만 전 강남이 좋아서 계속 살려고 하는데 실현되지도 않은 이익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괜히 세금만 더 많이 내는 거죠.” 조씨는 차라리 집 값이 오르지 않는 편이 낫겠다고 했다.

    초등학교 6학년인 아들은 영어 수학 과학 논술 검도, 4학년인 딸은 영어 수학 검도. 두 아이가 다니는 학원 수는 무려 8곳, 매월 들어가는 비용은 140만원 정도가 된다. 하지만 “부족하면 부족했지 넘치는 것은 아니다”는 것이 조씨의 말이다. 그는 “여기 학부모들과 모여서 얘기해보면 가관”이라며 “어떤 엄마는 아이에게 학원 10곳을 보내면서도 하나도 뺄 것이 없다고 하더라”고 했다.

    2년 전에는 빚을 져가면서까지 아이들과 함께 어학 연수를 위해 미국에 다녀왔다. 수천만원의 돈을 투자해야 했고, 1년6개월 남짓한 기간에 남편은 속칭 ‘기러기 아빠’가 돼야 했다.

    “아무리 돈이 없어도 어릴 때 영어를 제대로 배울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부모의 책무일 것 같아서”였다. 한 한급의 절반 정도는 최소한 방학 기간을 이용해 단기 연수라도 다녀오고 있으니, 연수 경험이 없는 아이들은 또래들로부터 소외되는 것이 당연한 터였다.

    요즘 조씨는 어학 연수 빚을 갚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 다니며 3~4건의 주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그런 조씨 가족에게 통상의 강남 주민 같은 풍요로운 생활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요즘 재산이 10억원이면 부자라고 하잖아요. 근데 강남에서 부족함이 없이 살려면 적어도 30억~40억원은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자녀 사교육에 수백만원씩 투자하고서도 골프, 헬스, 피부관리, 쇼핑 등 누릴 것은 다 누리고 살아가는 주변 사람들에 대한 부러움 내지는 박탈감의 에두른 표현이었다.


    비좁은 '강남 이너 서클'의 문



    그래도 이들은 엄청난 빚을 안고 최근 강남 주민이 된 강미영(43ㆍ가명)씨 가족에 비하면 사정이 나은 편이다. 강씨 가족은 지난해 여름 서울 강북 15년 생활을 접고 강남 대치동에서도 손 꼽히는 C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31평 짜리 집을 장만하는데 은행에서 대출을 받은 돈은 2억원이 조금 넘었다.

    남편 월급으로 손에 받아 쥐는 돈이 400만원 남짓인 처지에 이자를 갚아나가는 것만도 버거운 처지였다. “강북에서 42평 짜리 빌라에 살았는데 좀처럼 가격이 뛰어야 말이죠. 이대로 있다가는 점점 뒤쳐지겠다 싶더라구요. 재테크나 아이들 교육이 가장 큰 고려 대상이었지만 솔직히 상류층의 생활을 접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어요.”

    하지만 강남의 벽은 높았다. 이곳 주민들 사이에는 이방인들이 좀처럼 비집고 들어가기 힘든 ‘이너 서클’ 같은 것이 존재했다. 강남 주민이라고 다 같은 사람들은 분명 아닌 듯했다. “같은 주민이라도 남편의 직업, 살고 있는 평수, 그리고 보유 재산 정도 등에 따라서 끼리끼리 모이더라구요. 그렇게 그룹이 형성되면 그네들끼리 아이들 과외도 같이 시키고, 투자 정보도 주고 받고, 또 쇼핑도 함께 다니고 하더군요.”

    중학교 2학년, 1학년인 두 아이를 제대로 교육시키기 위해서라도 ‘이너 서클’에 반드시 편입돼야 했다

    . “그저 일반 학원 종합반에 다녀서는 강남이나 강북이나 크게 다를 것이 없잖아요. 형편이 맞는 이들끼리 그룹을 이뤄 스타 강사에게 쪽집게 강의를 받는 것이라면 모를까요.” 어줍지 않게 백화점 쇼핑에 따라 나섰다가 한 벌에 100만원이 넘는 정장을 충동 구매하기도 했고, 한 번에 15만원이나 하는 피부관리실에도 몇 차례 쫓아다니기도 했다.

    그렇게 “없어도 있는 것처럼, 못 먹어도 잘 먹는 것처럼” 생활하면서 비좁은 틈바구니, 그것도 겨우 언저리까지 비집고 들어 가는 데만 1년 가까이 걸렸다.

    드러내 놓고 내색은 못하지만 강씨는 요즘 깊은 속앓이를 하고 있다. 한 때 천정부지로 치솟던 아파트 가격은 정부의 강력한 부동산 대책에 따라 곤두박질치고 있는 탓이다. 이 대로 가다가는 언제 담보대출금 상환 압력에 시달릴 지도 모를 일이다.

    “도대체 강남 주민들이 뭘 그렇게 잘못 했다고 이렇게 족쇄를 채우는 지 모르겠습니다. 주거 환경이 좋아서 강남에 사는 것도 잘못 인가요? 투기 세력을 적발하면 될 일인데 왜 강남 주민 모두에게 뭇매를 때립니까.” 그녀의 항변에는 이미 강남 주민들의 보편적인 생각이 절로 묻어났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입력시간 : 2003-11-21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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