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김동식의 문화읽기] '죽이는' 드라마와 삶의 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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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3.12.23 11:26:19 | 수정시간 : 2003.12.23 11:26:19
  • [김동식의 문화읽기] '죽이는' 드라마와 삶의 품격


    텔레비전 드라마는 지금 상중(喪中)이다. ‘대장금’의 한 상궁(양미경)이 억울한 죽음을 당했고, ‘완전한 사랑’의 영애(김희애)는 가쁜 숨을 거두어 들였다. 위암을 앓고 있는, ‘로즈마리’의 정연(유호정)도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한다. 비록 가상의 내용을 다루는 드라마의 등장인물 들이기는 하지만 세 사람 모두 훌륭한 여성들이기에, 그들의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안타까움이 배어날 수밖에 없다.

    드라마에서 주인공이나 중심인물의 죽음은, 시청자들의 정서적 공감을 집중시키는 상징적인 지점이 된다. 세 편의 드라마는 그 양상에서는 조금씩 차이가 나지만 죽음의 상징성을 매우 탁월하게 활용하고 있다. ‘대장금’에서 장금의 후견인이었던 한 상궁의 죽음은 극의 전체적인 스토리 전개를 바꾸어 놓는 커다란 사건이다.

    반면에 ‘완전한 사랑’과 ‘로즈마리’의 경우 주인공들의 죽음은 반성적인 거울이라는 상징성을 갖는다. 주인공의 죽음을 바라보는 시청자들은 삶과 사랑과 가족의 의미를 되돌아보는 기회를 부여받기 때문이다.

    놀라운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대장금’에는 두 명의 어머니가 등장한다. 낳아준 어머니 명희와 보살펴준 어머니 한 상궁이 그들이다. 드라마의 전반부가 생모의 억울한 죽음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면, 의녀 장금을 그리는 후반부는 한 상궁의 죽음에서 비롯된다.

    ‘대장금’이 세속적인 출세기나 성공담에 그치지 않을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낳아준 어머니와 보살펴준 어머니의 죽음이 갖는 상징성이 장금이라는 캐릭터를 감싸고 있기 때문이다. 명희와 한 상궁은 장금에게 삶의 방향성을 부여하는 근원적인 존재인 동시에, 삶의 원칙과 장인적인 태도를 가르쳐 준 스승이다.

    따라서 장금의 삶이란 두 어머니의 못다 이룬 소망을 그들의 가르침에 근거해서 이루어 가는 과정이자, 죽은 자들과의 약속을 지켜가는 과정일 수밖에 없다. ‘대장금’의 품격은 바로 이 지점에서 유지된다.

    ‘완전한 사랑’은 작가 김수현이 아니라면 불가능했을 드라마이다. 남편 시우(차인표)까지 죽음으로 몰고 가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설정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죽음으로 완성되는 사랑이라는 고전적인 테마를 통해서 사랑이 조롱 당하는 시대와 맞서고 싶었던 것이리라.

    주인공 영애의 삶은 사랑의 치열함과 구별되지 않는다. 자기자신을 사랑했고, 연하의 남편을 사랑했으며, 아이들과 가족들을 사랑했다. 불꽃같은 삶이었고, 불꽃처럼 자신의 전부를 소진해 버렸다. 그런 의미에서 특발성 폐 섬유증은 영애에게 찾아온 부조리한 운명인 동시에, 삶의 모든 가능성들을 사랑으로 소진해 버린 사람의 운명이기도 하다. 시우의 죽음 역시 삶의 모든 것을 쏟아 부은 사랑에게 주어지는 운명이었을 것이다.

    ‘로즈마리’에서 아내 정연은 위암으로 죽어가고 있다. 우연한 기회에 온라인 게임회사 사장인 남편 영도(김승우)가 젊은 일러스트레이터 경수(배두나)와 불륜 관계에 있었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경수에게 자신의 자리를 내어 주려고 한다. 죽음을 앞둔 정연의 태도는 남아있는 가족에 대한 배려로 요약된다. 달리 말하면 자신의 죽음 이후에도 가족이라는 시스템이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사람은 가도 시스템은 남는다는 것은, 어쩌면 ‘모래시계’ 세대의 윤리적 무의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잠시 해 본다. 미세한 차이겠지만, ‘완전한 사랑’에 김수현 세대의 실존적 고뇌와 낭만적 열정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면, ‘로즈마리’에는 시스템과의 합리적인 관계 속에서 죽음의 의미를 배치하는 이후 세대의 윤리적 감수성이 나타난다.

    세 편의 드라마는 죽어 가는 여성들을 통해서 삶의 품격을 생각하게 한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하지만 뒤집어서 생각해 보면 우리 주변에서 품격 있는 삶이 그만큼 희소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한 상궁, 영애, 정연 등은 모두 커다란 욕심을 가지지 않고 자신의 선택에 따라 정당하고 열심히 삶을 살아가고자 했던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죽어간다는 것은, 비록 드라마가 제시하는 이야기일 뿐이겠지만, 왠지 우리 시대의 어두운 자화상을 보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말도 안 되는 사건들이 연일 터져 나오는 현실보다는, 정상적인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드라마가 더 좋은 시절이다. 어쩌면 우리는 드라마에서나 겨우 제대로 된 인간들을 만날 수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김동식 문화평론가 tympan@empal.com


    입력시간 : 2003-12-23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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