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직업의 세계-20] 보안경비 전문가 신광철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 플러스 네이버 북마크 싸이월드 공감 기사 구입 프린트 기사메일
입력시간 : 2003.12.23 17:21:11 | 수정시간 : 2003.12.23 17:21:11
  • [직업의 세계-20] 보안경비 전문가 신광철
    밤을 낮같이 사는 인간센서
    범죄 방어율 100%에 도전하는 완벽주의자






    “ 잘 때 머리맡에 집 전화와 휴대폰을 두고 잡니다. 자다가도 사고가 터지면 바로 옷을 입고 관제센터에 나가야 되거든요. 명절이나 휴일에는 더 비상입니다. ”

    경찰과 같이 뛰지만, 경찰은 아니다. 민간 보안경비 전문업체인 에스원 관제팀장 신광철(45)씨. 올해로 경력 20년째를 맞는 베테랑이다. 경비 책임을 맡고 있는 곳이 전국 35만 군데. 갈수록 맹렬한 범죄의 표적이 되고 있는 은행 등 금융기관을 비롯해 일반 기업과 가정, 작게는 빵가게나 미장원에 이르기까지 대상이 다양하다.


    관제팀 진두지휘하는 야전사령관



    신씨가 소속된 관제팀은 그 모든 현장 상황을 진두지휘하는 총 사령부와 같다. 휘하의 관제사들만 모두 140명. 그 사령탑인 신씨는 동종업계에서도 줄곧 현장만을 사수해 온 최고참 현역이자 1호 주자다.

    그에겐 차라리 밤이 낮보다 친하다. 보안경비요원들의 주임무는 고객들의 재산 보호다. 대부분의 도난사고가 심야에 터진다. 특히 새벽 1시부터 5시까지는 이들의 긴장이 최고조에 달한다. 센터의 관제사들이 주야 교대로 자리를 바꿔가며 24시간 전자 감시망을 가동하고 있다. 바깥에선 바깥대로 1,000여대의 차량과 오토바이, 1,000여명의 출동요원이 번갈아가며 쉴 새 없이 현장을 방비한다.

    어느 순간, 관제사들의 책상 칸막이마다 놓여 있는 램프 한 곳에 빨간 불이 켜지면 바로 비상이다. 해당 관제사의 구역에서 방금 무단 침입 흔적이 발견됐다는 신호다. 빨간 불이 켜지자마자 관제사가 포착한 침입 신호 등 모니터 화면이 수 초 내에 관제센터 중앙 벽에 설치된 대형 빔 프로젝트 스크린으로 연결돼 펼쳐진다.

    이때부터 영화에서나 봄직한 상황이 벌어진다. 문제가 발생한 건물의 내부구조는 물론, 침입자의 위치나 이동 동선까지 빨간 점으로 깜빡거리며 화면에 실시간 중계된다. 해당 건물 곳곳에 설치돼 있던 고감도 열 센서 등 각종 첨단 장비의 도움이다.

    관제팀의 민첩한 지시에 따라 주변 구역을 순찰하던 요원이 바로 배치돼 현장에 도착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보통 1,2분. 길어야 5분 정도면 이미 출동요원이 현장을 둘러싸고 있다. 이 모든 일들이 어둠 속에서 소리없이 진행된다. 실제로 절도 또는 강도범인 것이 확인되면 112에 동시 연락된 경찰이 도착하기 전까지 범인이 달아나지 못하도록 현장을 제압하는 것이 이들의 역할이다.

    “얼마 전에도 고급 액세서리점을 턴 절도범 다섯 명을 잡은 일이 있습니다. 그런 실제 도난사고가 연간 약 300건, 한해 평균 약 1,400명의 현행범을 저희가 잡는 셈입니다. 그 외에는 침입 신호 상당수가, 가보면 실제 사고가 아니라 개나 고양이가 ‘범인’이었다든지, 주인의 실수로 일어난 경우입니다.”


    생명을 담보로 쌓아올린 방어율 96%





    방어율 96%. 관제팀과 출동요원들이 생명을 담보로 쌓아올린 기록이다. 범죄자들과 격투를 벌이다 보면 경비요원들이 흉기에 다치는 일이 많다. 자사에 접수된 사고건수만 한 해 5,300여건까지 치솟았던 IMF때는 특히 심했다. 은행 자동현금 지급기를 털려던 강도범과 싸우다 가슴에 총을 맞아 위가 관통된 요원도 있다.

    작년 3월까지도 그 역시 출동요원팀 소속이었던 신씨만 해도 과거 천장을 뚫고 침입한 4인조 절도범들과 맞닥뜨려져 어둠 속에서 1대 4의 사투를 벌인 적이 있다. 드라이버과 칼 등을 쥐고 필사적으로 공격하는 범인들을 무사히 제압할 수 있었던 건 특전사 출신으로 잘 다져진 무술실쩜?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요즘 제일 걱정되는 게 현금수송차량입니다. 작년 포천에 있었던 은행 총기강도사건 이후엔 근무자 전원에게 방탄조끼를 입히고 있지만, 워낙 범행수법이 잔인해지고 공격적으로 변하기 때문에 늘 걱정이 됩니다.”

    신씨가 이 일을 시작한 것은 84년부터다. 어려서 부터 경찰을 꿈꾸었던 그는 특전사로 7년간 복무한 뒤 에스원의 모체격인 ‘한국안전시스템’에 입사해 경비업계에 첫 발을 디뎠다. 당시 국내에선 유일한 사설 보안경비업체였다. 출동차량이 단 2대. 출동요원도 관제팀까지 포함해 7명이었다. 지극히 단순한 램프식 경보장치가 장비의 전부였다. 현재와 같은 입체적 시스템이 구축된 것도 한참 후에 이뤄진 일이다.

    그의 별명은 ‘신칼’. 현장에 나가면 범인을 놓치는 법이 거의 없었다. 태권도, 합기도, 검도, 특공무술 등으로 다져진 체력도 막강했지만, 완벽주의자에 가까운 성격의 영향도 크다.

    “이 일도 일종의 게임과 같습니다. 주어진 인력과 장비를 가지고 어떻게 현장에서 이기느냐, 판단력과 경험이 아주 중요합니다. 누군가 실패하면 실패한대로 다 현장에 데리고 가서 패인이 뭔가를 분석하곤 했습니다. ”

    세월이 흐르면서 발전되는 것은 경비요원들의 실력만이 아니다. 범인들의 수법도 점점 치밀해진다. 가장 황당한 봉변은 범인에게 속아서 놓치는 경우다. 전과경력이 화려한 전문털이범일수록 연기력이 탤런트를 능가한다. 주로 신참들이 당한다.

    “예를 들면, 분명히 도둑이 침입한 신호를 보고 출동했는데, 매장에 가보면 불도 환하게 켜진 채 소파에 웬 남자가 장부를 펴 들고 앉아서 ‘어, 진짜 기동력 빠르네!’라며 천연덕스럽게 칭찬까지 합니다. 그리고는 ‘내가 사장인데, 하도 사업이 잘 안돼서 가게에 나와 장부를 봤더니, 글쎄 우리 종업원들이 만들어놓은 이 장부 꼴 좀 봐라. 너무 화가 나서 지금 당장 다 나오라고 비상을 불러놨는데, 내가 집에서 급히 나오다보니 그만 출입카드를 깜빡해서 경보시스템이 작동하게 됐다.’고 합니다.

    너무 완벽하고 자연스러워서 도저히 거짓말이라고 의심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마침 다른 곳에서 부르는 출동호출까지 받게 된 신참이 ‘그럼 잠시 여기 앉아계시면 곧 돌아오겠다’말하고 자릴 비운 사이 다 털고 튀어버립니다. 눈을 뜬 채로 당하는 거지요.”


    범인들 '연기'에 속아넘기도



    ‘취객 연기’가 전문인 털이범도 있다. 비슷한 상황에서 한 남자가 술냄새를 풍기며 앉아있다. 옷도 여기저기 뜯어져 있고, 군데군데 토사물도 묻어 있다. 누구시냐고 물으면 ‘내가 총무부장인데, 내 사무실 내 맘대로 들어오는데 웬 상관이냐’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른다.

    행색부터 말투까지 영낙없는 술 주정꾼이다. 행여나 해서, 출동요원이 몰래 관제센터를 통해 해당업체의 사장과 비상연락을 취해 확인해보면 가짜다. 신원조회 결과 전과 21범. 경찰에 체포된 뒤에도 ‘술에 취해 아무것도 기억 안 난다’며 오리발을 내미는 등, 사후 마무리까지 달인의 수준이다. 오죽하면 ‘신칼’조차 감쪽같이 속았을까.

    신씨는 범인에 대한 연민과 이 직업에 대한 회의로 사표까지 냈었다. 어차피 회사에서 받아주지 않아 무산되기는 했지만.

    “ 전당포를 막 털고 나온 범인을 거의 1km 가까이 쫓아가서 잡아 경찰에 넘겼습니다. 그러자 이 사람이 막 우는 겁니다. 부인이 만삭인데, 자기는 조그만 가게를 하다가 망해서 집사람 병원비라도 어떻게든 구하려고 범행을 저질렀다는 겁니다. ” 눈물을 뚝뚝 흘리는 가난한 가장. 절도범이 측은하다못해 자신의 일까지 싫어졌다. ‘같은 인간으로서 할 짓이 못 된다’는 생각에 회사에 사표를 내밀었다.

    신씨는 그 가족이라도 도와야겠다고 동료들과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부인의 병원비를 마련했다. 그 돈을 전해주려고 절도범의 주민등록증에 나온 주소대로 꼬불꼬불한 북아현동 골목길을 한참이나 헤맨 끝에 집을 찾아냈을 때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비로소 알았다. 주민등록번호의 실제 주인은 전연 다른 사람이었다. 주민등록증도 위조한 채 끝까지 모두를 속인 것이다. 사람에 대한 실망감으로 한참동안 가슴앓이를 했다.

    바깥만 아니라 안에서도 사고가 수시로 터진다. 현장요원 상당수가 27세 이하의 젊은이들이다. 경험이 짧은데다 워낙 긴장하다보니 웃지못할 일들이 도처에서 벌어진다. 범인을 보자마자 자신이 더 놀라 그대로 졸도해버린 신참. 캄캄한 옷가게에서 빨간 스카프를 매고 있는 머리 없는 마네킹을 보고 ‘목이 잘린 채 피를 흘리는 시체가 있다’며 놀라 허둥대다가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기절한 신참.

    그 뒤를 따르던 신참은 한 술 더 떴다. 뒤따라 들어서자마자 동료가 입에 거품을 문 채 계단밑에 누워있는 것을 보고 ‘사람이 죽었다’고 경찰에 신고, 경찰들까지 단체로 비상출동시키는 소오?빚었다.

    무술실력이 뛰어난 한 신입요원은 순발력이 너무 탁월해서 탈이었다. 현장에 그가 나갔다하면 마네킹이면 마네킹, 거울이면 거울, 기물이 남아나는 게 없었다. 뭐든 사람처럼 어른거린다 싶으면 반사적으로 주먹이나 발이 튀어나간 결과다. 심지어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도 몰라본다. 그만큼 어둠 속의 긴장과 보이지않는 범인과의 싸움이 엄청난 위협감을 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정에서는 '부실 가장'



    때로는 119 대원이나 보호자 노릇을 대신하기도 한다. 누군가 아프다는 연락만 오면 한밤중이라도 바로 달려가 병원 응급실까지 데려갔다 데려온다. 얼마 전엔 마침 석촌호수 주변에 있던 순찰차량이 지나가던 주민의 신고를 받고 바로 달려가 신호대기중인 차량을 상대로 협박 중이던 강도를 잡은 일도 있다. 집 주변에서 아내와 걷고 있던 신씨가 우연히 강도를 목격하고 쫓아가 잡은 것만 두어번이다. 고객 여부와도 상관없는, 보안경비요원 특유의 보호본능이었다.

    “이 일을 하면 할수록 많이 느껴지는 게 고객들이 우리에게 원하는 건 결국 사람의 정이더라는 겁니다. 언뜻 생각하면 경비회사란 돈만 잘 지켜주면 최고일 것 같지만, 그게 아닙니다. 진심으로 정을 갖고 돌봐주기를 사람들은 바라는 겁니다.” 신씨가 이 길로 들어설 때만 해도 하나뿐이던 보안경비업체가 지금은 약 300개까지 늘었다.

    그만큼 세상 살기가 좋아졌다는 뜻일까, 흉흉해졌다는 뜻일까? 휴가라곤 십 여년 전에 받아 본 것이 마지막이었던 후방의 수비대원, 신씨. 언젠가 일을 끝낼 때가 찾아오면 보안경비업계의 발자취를 담은 책 한 권 쓰리라 생각하고 있다. 가정에서는 일찍이 ‘부실 가장’으로 낙인찍힌 그가 그 한 권의 책으로 완전 사면이 될지 어떨지는 두고 봐야 알 것 같다.



    정영주 pinplus@empal.com


    입력시간 : 2003-12-23 17:22

  • HOME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