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영욕의 23년 대우빌딩, '오리발' 떼고 '대우' 이름표도 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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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7.05.15 14:42:21 | 수정시간 : 2007.05.15 14:42:21
  • 영욕의 23년 대우빌딩, '오리발' 떼고 '대우' 이름표도 뗀다
    숱한 화제 남긴 한국경제성장의 상징… 금호 아시아나 빌딩 매각 추진

    예나 지금이나 서울역을 빠져 나오면 갈색의 육중한 마천루가 우리를 압도한다. 과거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에게 서울의 발전상을 상징하는 축소판이었고, 국민들에게 한강의 기적만큼이나 드라마틱한 상징물이었던 마천루.

    신경숙은 이를 두고 ‘내가 세상에 나와 그때가지 봤던 것 중 제일 높은 것. 거대한 짐승으로 보이는 것이 성큼성큼 걸어와서… 나를 삼켜버릴 것만 같다’고 묘사했다. 그것의 정체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세계 경영 총지휘소였던 대우센터 빌딩이다.

    하지만 지금 대우빌딩의 행색은 물 위를 떠다니는 부평초다. 대우사태로 인해 많은 대우맨들이 정들었던 대우빌딩을 떠나 뿔뿔이 흩어졌지만 대우건설이 계속 입주해 있으면서 명맥만은 유지해 왔던 게 사실이다.

    건물 오른쪽 꼭대기에 걸린 대우의 로고인 일명 ‘오리발’도 최근까지 대우의 운명과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리를 보전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말 금호아시아나가 대우건설을 인수하면서 대우의 로고인 오리발을 떼내고 금호의 상징인 ‘날개’를 달아야 했다.





    그때만 해도 대우건설이 있는 한 대우빌딩은 ‘대우’라는 이름만은 유지할 것이라고 자위하는 대우맨들이 많았다. 금호아시아나가 6조원에 달하는 인수자금 마련을 위해 투자자를 끌어들인 까닭에 결국 ‘대우건설의 자산들을 차례대로 매각해 인수자금을 충당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들이 고개를 들었지만, 금호가 ‘최소한 2008년까지는 팔지 않겠다’고 천명했던 터라 더욱 그랬다.

    하지만 이제 대우빌딩은 백척간두에 서 있다. 금호가 대우건설 인수 4개월 만인 지난 4월에 매각 추진을 공식 발표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구체적인 매수 희망 기업까지 거론되면서 매각액의 절충만 남아 있는 상태다. 한때 세계를 호령했던 김우중 전 회장이나 대우맨들에게는 ‘창씨 개명’만큼이나 큰 아픔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김우일 대우M&A 대표. 그 또한 대우빌딩 매각을 안타까운 심정으로 쳐다보는 대우맨이다. 아직까지도 대우에 대한 애착이 남아 있어 인수ㆍ합병 시장에 나오는 옛 대우계열사를 투자자를 모집해 인수하기 위해 회사까지 차렸다.

    비록 대우사태 이후 <문어는 왜 죽었는가>라는 책을 통해 김 전 회장의 방만한 경영을 비판하는 바람에 일부에서는 ‘배신자’라고 비난하기도 하지만 대우 쇠락에 대한 안타까움은 누구 못지않다.

    특히 77년 대우빌딩 준공과 함께 입사해 대우사태로 대우 경영권이 정부로 넘어간 2000년 말까지 23년을 대우빌딩에서만 지내 대우빌딩에 얽힌 우여곡절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대우빌딩이 대우라는 이름표를 떼야 할 시간이 다가오는 즈음에 김 대표에게서 대우와 운명을 함께 했던 대우빌딩의 영욕을 들어본다.

    ▦ 청와대 "25층 유리창 막아라"

    김 대표는 “입사할 때만 해도 삼성과 현대의 사옥은 각각 5층과 3층에 불과했다”며 “25층 대우빌딩은 준공과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랜드마크가 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에 따르면 대우빌딩은 건설업 진출을 모색하던 김우중 전 회장이 당시 대우 빌딩 터에 교통부 건물을 짓던 영진토건을 인수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교통부와 합의해 빌딩 터까지 인수하면서 대우빌딩 건립이 급물살을 타게 됐다. 하지만 원래 교통부 건물 규모는 5층에 불과했다. 세계 경영의 전진기지로는 보잘 것 없는 규모였던 셈.

    결국 김 전 회장은 설계변경을 거쳐 10층 규모 빌딩 건설을 계획했다. 그러나 김 전 회장의 꿈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김 대표는 “김 전 회장은 회사가 급팽창하면서 대우맨들이 함께 모여서 일할 수 있는 매머드급 사옥건립을 원했다”며 “10층도 모자란다고 생각해 또 다시 설계변경을 거쳐 25층짜리 건물을 지었다”고 귀띔했다.

    그는 “77년 완공 당시만 해도 기껏해야 5층짜리 건물이 초고층 빌딩이었던 터라 대우빌딩에 얽힌 재밌는 에피소드들이 많다”고 말했다. 특히 25층 건물이 등장하자 당혹스러운 것은 일단 청와대였다고 전한다.

    빌딩 맨 꼭대기층인 25층에서 청와대가 훤히 내려다 보였기 때문이다. 당시는 ‘안보’에 철두철미했던 서슬 퍼렇던 군부독재 시기여서 이를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청와대는 결국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그건 바로 25층 유리창을 모두 막으라는 것이었다. 또 최고층 빌딩이다 보니 옥상에는 대공포 4대가 설치되고, 수도방위사령부 산하 군부대가 주둔하게 됐다. 민간인의 옥상출입이 엄격하게 제한된 것은 당연한 조치였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대우빌딩이 누렸던 영광은 점차 사그러지고 있다. 일단 청와대가 보이던 조망은 현재 중앙일보가 임대로 사용하고 있는 삼성생명 빌딩이 올라오면서 가려졌다.

    또 대우빌딩을 능가하는 마천루가 속속 등장하면서 조만간 수도방위사령부 산하 군부대도 대우빌딩을 떠나 용산 인근 빌딩으로 옮겨 갈 것으로 알려졌다.

    ▦ 정부와 두뇌싸움 끝에 대우빌딩 매각 위기 넘기기도

    대우 사태로 대우빌딩은 정부소유로 넘어갔지만 이미 그 전에도 대우빌딩이 대우의 곁을 떠나야 했던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김 대표는 “86년 대우조선(현 대우조선해양)이 부도위기에 처하면서 정부가 자구노력의 일환으로 대우빌딩 매각을 요구했던 적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구체적으로 대우그룹은 대우조선의 부도를 막기 위해 대우조선 합리화 방안을 정부에 제출해 7,000억원 가량의 대출을 받았다. 하지만 정부는 대출의 명분을 세우기 위해 대우에 자구노력을 했다는 표시를 하라고 요구했다. 방안으로 제시된 것은 대우빌딩과 대우증권 매각.

    김 대표는 “대우가 자구노력으로 대우투금, 풍국 정유 등을 다 팔았지만 정부로서는 부족하다는 판단이었다”며 “정부 입장에서는 국민들을 납득시키기 위해서는 대우의 상징인 대우빌딩을 매각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전 회장은 빌딩을 팔지 않는 방법을 모색했다.

    당시 대우빌딩의 시가는 2,000억원 수준. 묘안은 부동산 세금에서 나왔다. 당시만 하더라도 부동산을 매각하면 특별부가세 25%, 법인세 30% 등 매각으로 얻은 수익의 50%를 세금으로 내야 했다.

    게다가 이런 저런 비용을 합치면 매각으로 얻어지는 자금이 500억원에 불과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김 대표는 “김 전 회장은 노태우 대통령에게 달려가 ‘대우빌딩을 팔아봐야 남는 게 별로 없고, 대우의 상징을 팔면 대외적인 신인도가 떨어져 대우 전체 위기로 비쳐질 위험성이 있다’며 끈질기게 설득했다”며 “정부와의 두뇌싸움 끝에 대우빌딩 매각이 자구노력에서 빠질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수많은 우여곡절 속에서도 대우와 함께 했지만 대우 사태의 파고만은 넘지 못했다”며 “금호아시아나가 빌딩 매각을 추진하면서 대우빌딩이라는 이름마저 잃게 돼 안타까울 따름”이라며 씁쓸해했다.



    입력시간 : 2007/05/15 14:43




    안형영 기자 promethe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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