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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3.10.02 11:34:40 | 수정시간 : 2003.10.02 11:34:40
  • [데스크의 눈] 노문스럽다?


    달포 전 사석에서 만난 노무현 정권의 한 핵심 인사는 노조의 불법 파업에 대한 공권력 투입을 묻는 질문에 “노조가 불법 행위를 할 수밖에 없도록 몰고 간 기업의 비정상적인 행태부터 먼저 바로 잡아야 한다”고 답변했다.

    이 같은 친(親) 노조 성향의 정책 기조 설정은 ‘국민이 대통령입니다’는 플래카드를 내세운 참여 정부의 국정 철학으로 볼 때 당연하다. 야당이나 일부 언론에서 인기만을 노린 ‘포퓰리즘’이라고 덧걸이를 하더라도 참여 정부의 출범 이념과 정신을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니 이 정부 들어 잇따라 들려오는 노조의 투쟁 승전보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DJ 정권 시절에 시작된 두산중공업 파업은 정부의 노조 편들기로 63일 만에 끝났고, 철도 민영화를 둘러싼 노조의 파업 움직임에 정부는 ‘달라는 대로’ 모두 주었다.

    엊그제 13일만에 가까스로 타결된 전국운송하역노조 산하 화물연대 파업도 크게 다르지 않다. 포항에서 막이 오른 화물연대 파업은 육상 대동맥의 흐름을 끊어 버렸고, 부산항 수출입 자체를 막는 바람에 법과 질서 확보를 위한 공권력 투입설이 나돌았지만 정부는 화물 연대의 요구를 거의 다 들어 주었다.

    엄밀히 말해 노조라고 부르기 힘든 화물연대 소속 지입 차주들의 집단 행동에 정부가 양보한 것은 그들이 구조적 약자란 판단 때문이다. 지입제와 거미줄 같은 다단계 운송 알선 구조에 의해 중간에서 돈을 뜯겨 운송 수입으로는 생계비도 감당하기 어렵다는 게 지입 차주들의 하소연이다.

    이들은 생존권 차원에서 집단행동에 나섰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정부가 공권력을 투입하기 보다는 에너지 정책의 큰 틀을 훼손하면서까지 몸을 낮춘 것은 사회적 힘의 균형과 분배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불가피한 조치로 보인다.

    그런데 정부는 파업 10여일간 왜 그리 허둥지둥, 갈팡질팡 했을까? 파업 첫날부터 참여 정부의 국정 노선에 따라 양보할 건 양보했더라면 그 난리를 피하고, 수천억원대에 이르는 경제적 피해를 크게 줄였을텐데…. 혹 참여 정부 출범 3개월이 다 되도록 국정 이념이 각 부처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건 아닐까? 그렇다면 참여 정부의 정체성이란 측면에서 우려할 만한 사태다.

    문제의 원천은 다른 데 있는 듯하다. 국정 이념을 일관되게 전파해야 할 노무현 대통령 스스로가 일탈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이 미국 방문에서 취한 자세를 보자. 확연히 달라졌다. 말도 180도 바뀌었다.

    그는 그 동안 “자주적인 외교. 수평적 한미 관계” 또는 “미국이 세계 질서를 주도하는 힘을 갖고 있지만 남북한 관계에서 우리가 할 말은 하겠다”는 등 외교의 자주성을 강조했다. 이전에는 들어보지 못한 멋진 그의 말에 젊은이들은 12ㆍ19 대선에서 ‘노무현 짱’을 만들어 냈는데, 미국에 첫 발을 딛는 순간부터 태도를 바꿨으니 지지 계층에서 실망을 느낄만하다.

    “미국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희생하는 나라”, “50년 전 미국의 도움이 없었다면 나는 정치범 수용소에 있을 것”,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호감을 갖게 됐다”, “미국의 군사력에 대한 북한의 두려움은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도움이 될 것”등 그의 말을 놓고 세간에서는 현실을 고려한 정치적 선택이라고 하기도 하고, 국익 우선의 실용주의라고도 한다.

    분명한 것은 노 대통령의 대북 정책을 포함한 외교 기조가 바꿨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았든, 본인이 스스로 깨달았든 바뀐 노선이 참여 정부의 국정 철학과 어떻게 맥이 통하고 상충하는지 명확히 하지 않으면 각 부처는 참여 정부의 정체성에 혼돈을 느낄 수밖에 없다.

    더욱이 노 대통령 반대 세력은 그의 달라진 정책을 환영하면서도 “언제 또 그 기조가 바뀔지, 말을 바꿀지 모른다”며 불안해 하는 상황이다.

    노동 정책에서 국정 기조를 일관되게 지켜온 이 정부가 국제 무대에서는 현실의 높은 벽을 실감한 것일까? 그렇게 쉬 달라지는 국정 기조라면 국민은 이를 실용주의로 받아들이기에 앞서 불안감부터 느낄 터이다.

    권력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 정권 초기에 “며칠 투쟁하니까 항만 물류가 완전히 마비되고 조금만 더 밀면 정부가 완전히 굴복할 것”이라는 말이 화물연대의 파업 현장에서 공공연하게 나돌았다는 것도 우려스럽다. 이쯤 되면 노조 등 모든 이해 집단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막 가자’는 소리가 나오기 마련이다.

    억눌린 사회적 욕구가 앞으로 봇물처럼 터지면 군사독재의 뒤끝에 자랑스런 ‘보통 사람의 시대’를 연 노태우 전 정권의 혼란이 재연될 지도 모른다. 집단간의 이해 충돌을 조정하지 못하고 허둥댄 노 전대통령은 급기야 ‘거쩔議??소리를 들었다. 안타깝지만 지금 시중에는 노 대통령과 검사들과의 대화에서 만들어진 신조어 ‘검사스럽다’에 빗댄 ‘노문스럽다’는 말이 돌기 시작했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는 참여 정부가 안쓰럽다.



    이진희 부장 jinhlee@hk.co.kr


    입력시간 : 2003-10-02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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