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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3.10.02 15:17:15 | 수정시간 : 2003.10.02 15:17:15
  • [데스크의 눈] 훈련병 안정환의 교훈


    스타는 인기를 먹고 산다고 한다. 자기 만족을 넘어 인기에 따라 몸값마저 달라지는 판이니 자신의 상품성을 과시하려는 스타들의 몸짓도 요란하다.

    IT산업의 발달로 홍보 수단이 기존의 언론매체에서 휴대폰, 인터넷 등으로 다양해지자 관능적인 누드집 발간으로 인기를 확인하는 여배우가 있는가 하면 스캔들을 일부러 만들어 퍼뜨리고, 이적에 따른 몸값을 수십배 뻥튀기 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 는 광고 카피가 한때 유행했듯이 인기는 때와 장소에 따라 움직이게 마련이다. 대중은 그만큼 변덕스럽다.

    그 많은 스타들 가운데 오롯이 실력으로 인기를 지탱하는 곳은 스포츠 분야가 아닐까 싶다. 인기 절정의 메이저리거 박찬호가 최근 등판할 때 마다 무너지자 “이제 끝났다”는 야박한 평가가 나오고, 새내기 최희섭과 서재응은 인기가 하늘을 찌를 듯하다. 또 2002한일월드컵에서 한국팀이 4강에 오르지 못했으면 월드컵 스타가 그렇게 쏟아졌을까?

    월드컵-뜨거운 6월의 함성이 1년만에 재연되면서 월드컵 스타들이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그 중에서도 잘 생긴 얼굴이 실력을 받혀주는 안정환의 인기가 최고다. 5월말 도쿄에서 열린 한ㆍ일전에서 안정환이 결승골을 넣은 순간, 열렬한 팬인 딸아이는 거의 자지러졌다.

    맹목적 열광이랄까. 6월11일 한국-아르헨티나 전 내내 안정환에게 벤치를 지키게 한 코엘루 감독을, 평소엔 축구엔 관심도 없는 딸아이가 욕하는 것도 그 때문이리라. 그가 군 신병 훈련소에서 갓 나와 몸이 무겁다든가 동료들과 발을 못 맞춰 팀워크에 문제가 있다는 것 등은 전혀 고려 대상이 안 된다. ‘축구라면 무조건 그가 있어야 한다’는 철없는 아이들의 무한 추종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분노하는 딸아이 또래들을 보면서 신병훈련소에서 안정환을 불러낸 축구협회와 국방부의 앞뒤 가리지 않는 얕은 꾀가 영 마뜩찮다. 안정환 팬들이 몰려 있는 인터넷에 “축구협회와 국방부가 무리하게 안정환을 출전시키려다 세계적인 망신거리가 됐다"는 글이 오른 정도니 망신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최소한 코엘루 감독 등 현장의 의견을 들어보는 기본만 지켰어도 그런 망신을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우루과이전에서 0-2로 패한 뒤 다급해진 축구협회의 심정을 이해할 만하다. 일본전에서 결승골을 넣은 안정환을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아르헨티나전에 출전시켜야 한다는 ‘오빠 부대 네티즌’들도 인터넷에 넘쳤다.

    인터넷의 비난도 피하고, 잘 하면 골도 터지는 꿈에 국방부는 안정환 출전이라는 얕은 꾀에 동의했을 법하다. 그러나 그 요구들도 딸아이와 같이 스타에 대한 맹목적 추종과 다를 바 없을 터인데, 그런 책임 없는 목소리에 국방부가 따랐다면 참으로 실망스럽다.

    안정환은 6월2일부터 훈련소에서 기본 군사 훈련을 받고 있다. 군 생활의 기초와 기본을 배우는 과정이다. 소위 사회의 물을 빼고 대한남아의 국방 의무와 책임감을 심어주는 까닭에 군기도 세고, ‘뺑뺑이’도 많이 돌린다.

    훈련소에서 제대로 배워야 남은 군 생활이 덜 괴롭다는 말은 진리로 통한다. 당연히 집안의 흉사외에 훈련에서 열외시키는 예외는 있을 수 없다.

    국방부가 안정환의 ‘예외’조치에 대해 “국가 대표 선수는 외국과의 국내 경기에 출전할 수 있다는 육군 규정 151조(군인 대표 선수의 대회 경기 출전)에 따랐다”고 설명한다. 이때 국가 대표 선수에 훈련생까지 포함되는지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그를 파주 연습장까지 보내는 과정은 마치 군사 작전을 방불케 했다고 한다. 군부대도 안정환의 예외조치를 ‘감추고 싶은 무리수’임을 자인한 셈이다.

    그가 경기에 출전하고 안 한 게 문제가 아니다. 네티즌들이 내보내라고 한다고 원칙과 기준을 무시하고 덜렁 내보낸 그 자체가 우려스럽다. 이것은 참여정부 들어 우리 주변에 나타난 즉흥적인 성과주의와 임기응변식 대응의 전형이 아닐까.

    참여정부 100여일을 되돌아 보면 모든 게 그런 식이었다. 큰 틀과 비전속에서 정책 방향을 잡는 게 아니라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한 차원에서 대통령의 말이 달라지고, 기업 구조조정의 방향이 바뀌었다.

    또 목소리를 높이며 떼거리로 몰려나오면 구조적 약자와 타협이란 명분아래 기존의 정책을 완전히 뒤집는 판이다. 한전이 그랬고, 화물연대, 새만금, 조흥은행 매각도 마찬가지다.

    원칙과 공정한 기준에 따라 안 되는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안돼야 우리 사회의 기강이 서는 법이다. 아니, 은행노조가 파업을 하면서 사표를 청와대로 내겠다니, 중개업협회가 부동산 투기 단속에 나선 고위 공무원의 투기내역을 공개하겠다니, 이 무슨 해괴한 말인가? 정부의 정당한 정책 집행에 반기를 드는 집단이기주의엔 공권력으로 다스려야 한다. 그래야 떼만 쓰면 통한다는 ‘떼~한민국’ 소리를 듣지 않는다.



    이진희 부장 jinhlee@hk.co.kr


    입력시간 : 2003-10-02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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