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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3.10.02 16:28:18 | 수정시간 : 2003.10.02 16:28:18
  • [데스크의 눈] 더욱 불안한 심리적 위기


    경제위기라고 한다. 처한 입장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IMF위기 때보다 더 심각하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우는 소리 좀 그만하라”는 이도 있다. 죽을 맛이라는 쪽은 대체로 조그만 공장이나 도ㆍ소매를 하는 사람들로, 장사가 안된다고 난리다. 운영비는커녕 재고 떨이에도 급급하단다.

    대기업들은 “아직은 견딜만한데, 얼마 못 버틸 것”이라며 정부의 눈치를 본다. 최근에 만난 한 대기업 계열사 사장은 “정부가 노동시장의 유연성이라도 보장해 주면 어떻게든 해보겠는데...”라고 말꼬리를 흐렸다. 직접 공장 운영을 맡고 있는 그로서는 일감이 없는 불황기에는 부분적이나마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데, 참여정부의 노사정책 아래서는 엄두를 낼 수 없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지난 30여년간의 고도성장기에 우리가 체험한 경제위기로는 외환위기가 거의 유일하다. 달러당 800원 안팎의 환율이 1,700~1,800원대로 치솟고, 부동산과 주가는 폭락하고 기업들이 부도가 나 길거리에 나앉는 사람들이 늘고….

    일반 국민의 머리 속에 든 경제위기는 이런 것이다. “IMF위기 때보다 더 심하다는데, 아직은”하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것은 그래서 이해가 된다. 주가는 지난 몇 달새 40% 가까이 오르고 원화 가치도 미국이 암암리에 추진 중인 달러약세화 정책으로 계속 상승세를 타고 있다.

    그런데 왜 죽겠다고 아우성치는 계층은 늘어나는 것일까?

    한국경제연구원의 좌승희 원장이 최근 주간한국과의 회견에서 명쾌한 답을 내놨다. “개구리를 갑자기 뜨거운 물 속에 집어넣으면 펄쩍 뛰어 오르지만 미지근한 물 속에서 온도를 서서히 가열하면 그 위기를 체감하지 못한 채 죽고 만다”고. IMF 위기때 우리는 뜨거운 물 속에 들어간 개구리였고, 현재의 우리 경제는 미지근한 물 속에서 죽는 줄 모르고 죽어가는 개구리와 같다는 것이다.

    경제란 이론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숫자놀음이다. 전문가들은 각종 거시ㆍ미시 경제 통계뿐만 아니라 앞날을 내다보는 선행지표까지 감안해 경제상황을 진단한다. 그런 수치를 믿는다면 우리 경제는 실제로 IMF 위기 후 최악이다. 실물경기의 3대 지표로 알려진 생산, 소비, 투자 지수가 모두 지난 5월 한달간 마이너스 성장세를 기록했다.

    ‘트리플 마이너스’는 IMF위기 때인 1998년 10월 이후 55개월 만이다. 국내의 소비 위축, 화물연대 파업, 사스(SARS) 등이 겹친 탓이라고 한다.

    일반 국민에게는 골치 아픈 숫자보다는 피부에 와 닿는 느낌, 분위기가 더 중요하다. 전문가들이 경제주체의 심리적 요인을 통계 수치 못지않게 중요시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문제는 국민의 경제 심리가 일종의 집단(군중)심리라는 데 있다. 집단심리의 위력은 자주 상식을 깨뜨린다. 미국의 한 대학 심리학과가 연구실 벽에 녹색과 청색의 중간쯤 되는 색깔을 칠한 뒤 100명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 100명중에 낀 연구원 10명은 미리 짜고 “청색에 가깝다”고 답하기로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녹색에 가깝다. 그리고 1인당 10만원씩으로 책정된 수고비는 실험 후 맞춘 사람들끼리만 나눠 갖기로 했다. 먼저 연구원 10명이 약속대로 모두 “청색”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희한하게도 나머지 90명이 모두 청색이라고 답변했다. 정답은 녹색이었기 때문에 수고비가 한 푼도 들지 않았다.

    그 동안 우리가 익히 보아온 대로 80년대 민주화 운동 당시 군중이 운집한 시위 현장에서 분신하는 열사가 나오는 법이지 방안에서 TV를 보다가 분신하는 사람은 없다. 집단심리는 이처럼 개개인 심리의 산술적 평균이 아니고, 집단의 크기와 자극에 따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국민의 경제심리도 다를 바 없다. 대다수 국민은 신뢰도가 떨어진 정부보다는 직접 관계를 맺고 있는 기업의 영향을 받아 연구원 10명의 틀린 답변을 따라가는 집단 심리에 빠지는 것이다. 요즈음의 위기론도 미국 경제 등 외부 요인을 제외하면 바로 이런 심리적 위기에서 출발한 게 아닌가 싶다. 경제란 어차피 호황과 불황의 사이클을 그리기 마련이고 불황기에는 투자심리에서 희망의 불씨를 찾는 법인데, 투자심리가 거의 제로로 떨어졌다니 더욱 그렇다.

    심리적 위기와 관련해 주변에서는 “대외환경, 정부정책 등의 불확실성 때문에 기업이 투자를 줄인 것"이라는 한국개발연구원 신석하 박사의 분석보다 더 노골적인 이야기를 듣게 된다. “공장을 넓히면 아랫사람 (노조)에게 더 자주 멱살을 잡힐텐데, 그 짓을 왜 하느냐”(중소기업체 사장)는 게 대표적이다.

    심리적 위기에 잘못 대처하면 경제는 곧바로 실물위기에 봉착한다. 줄 파업사태에 대한 정부의 대응을 뭐括?75.8%가 불만스럽게 보고 있다는 한국일보 여론조사(6월27일자)는 정부가 심리적 경제위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지 알려준다.



    이진희 부장 jinhlee@hk.co.kr


    입력시간 : 2003-10-02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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