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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3.10.02 17:46:10 | 수정시간 : 2003.10.02 17:46:10
  • [데스크의 눈] 거꾸로 도는 정치 시계


    #1 2003년 7월 10일 런던.

    블레어 총리가 지난 3월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지 않고 있다는 이라크 후세인의 주장은 ‘웃기는 것’이라고 일축했으나 최근 이를 번복한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며, 그때 명백히 거짓말을 했다는 뜻이다.(로빈 쿡 전 영국 외무장관)

    #2 워싱턴

    백악관이 이라크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해 가짜 정보를 이용했다는 사실을 시인한다면 누가 그랬는지 스스로 알고 있는 만큼 당사자는 당장 사임해야 한다. 전쟁 전에 국민에게 진실을 숨긴 이유도 설명해야 한다.(하워드 딘 전 미국 버몬트 주지사)

    #3 7월 11일 모스크바

    최고 권력의 지지를 받는 일부 세력의 권력 남용은 국가 안정을 해치고 기업인을 적으로 돌리는 일이다. 우리는 (석유기업 유코스 수색 등) 이번 사태를 매우 위험한 것으로 보고 있으며 권력과 관료도 제 책임을 다해야 한다.(러시아 기업가연맹)

    #4 서울

    정대철 (민주당) 대표가 받은 돈 중 대선자금 2억원은 영수증 처리가 돼 문제가 없지만, 경선자금은 할 말이 없는 것이다. 대통령이 ‘검찰한테 잘 봐주도록 하겠다’고 할 수도 없지 않느냐.(문희상 대통령 비서실장)

    지구촌 여기저기서 권력과 언론ㆍ국민 사이에 짜릿한 진실게임이 한창이다.

    우선 독재자 후세인의 조기 축출로 기고만장한 블레어 영국 총리와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아직까지 전쟁의 명분이었던 대량살상무기를 찾아내지 못해 ‘이라크 위험을 과장했다’는 공격을 야당ㆍ언론으로부터 받고 있다.

    ‘대량살상 무기 제거 = 테러 위협 해소’란 등식으로 반전 시위를 묵살했던 양국 정상은 전쟁 명분의 강화를 위해 정보의 과장과 윤색, 미확인 정보의 기정사실화 등으로 국민을 속였다는 것이다.

    부시는 올해 국정연설에서 이라크가 핵무기 제조를 위해 아프리카로부터 대량의 우라늄을 사들이려 했다고 강조했으나 사실 여부가 불명확하고, 블레어는 이라크가 생화학무기를 45분 만에 발사할 수 있는 것처럼 정보를 윤색했다가 들통 났다. 모두 정보조작 의혹에 대한 언론의 폭로를 정부측에서 방어하는 형태로 진실 찾기가 이뤄지고 있지만 후세인이 은닉했다는 대량살상무기를 끝내 찾지 못할 경우 두 정상은 거짓말을 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거짓말은 정권의 도덕적 권위를 확보하는데 치명적이다. 두 나라의 진실게임은 정부가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 도덕적 선명성, 혹은 투명성이 어느 정도여야 하는가를 보여준다. 9ㆍ11 뉴욕테러 이후 두 나라가 눈앞에 펼쳐진 참상을 근거로 테러집단에 대한 응징을 선언할 때만 해도, 또 아프간을 공격할 때만 해도 도덕적 선명성을 확보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를 세계 패권 전략에 이용하려는 부적절한 시도는 거꾸로 도덕적 투명성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이 정도는 모스크바와 서울에 비하면 그나마 훨씬 나은 편이다. 모스크바에선 제2의 석유기업 ‘유코스’에 대한 검찰의 전격적인 압수 수색과 세무조사 등을 놓고 크렘린의 기획 사정 여부로 공방이 치열하다. 12월 총선과 내년 대선을 앞둔 크렘린으로서는 유코스의 야당 지원을 막고, 대선 자금을 확보하려는 유혹에 빠졌을 법하다. 그러나 권력측은 ‘잘못된 것을 바로 잡는 일’이라고 시치미를 뗀다. 국민들 사이에서 푸틴 정권의 도덕성이 까마득하게 추락하는 게 손에 잡힐 듯 보인다.

    서울은 아예 한술 더 떠는 듯하다. 박지원 150억원설의 실체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굿모닝시티 불법 자금의 정계 유입에다 검은(?) 대선자금설까지 불거져 출범 5개월째를 맞은 참여정부의 권위와 도덕성이 벼랑 끝으로 몰렸다.

    ‘굿모닝 시티로 부터 4억여원 수수’ ‘대선 자금 200억원 모금’ ‘10억원 토스’ 등 정대철 전 민주당 선대위원장(현 당대표)의 발언은 지난 대선에서 국민에게 정치 개혁의 희망을 안겨준 첫 국민경선과 노사모, 돼지저금통 신화를 짓밟기에 충분하다. 게다가 언론이 진실을 캐려 하자 정 대표 등이 말을 바꾸고 짜맞추는 등 예의 ?汰?술수로 넘어가려 하고 있지 않는가.

    이런 행태를 보면 우리 정치는 아직도 재벌과 YS가 사생결단으로 싸웠던 92년 대선이나 재벌을 압박해 대선자금을 뜯어낸 97년 ‘세풍’수준에서 한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다는 느낌이다. 요란했던 돼지저금통 소리도 결국 검은 돈의 악취를 덮기 위한 이벤트에 불과했다는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참여정부가 이렇게 추락한 국민의 자존심을 되찾아주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검찰수사든, 특검을 도입하든 굿모닝시티에서 파생된 검은 돈의 흐름을 철저히 파헤쳐 국민의 의혹을 풀어주는 것이다. 그것이 참여정부가 성공한 정권으로 남는 길이고, 거꾸로 돈 우리의 정치시계를 제자리로 되돌리는 일이다.



    이진희 부장 jinhlee@hk.co.kr


    입력시간 : 2003-10-02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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