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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3.10.05 15:54:37 | 수정시간 : 2003.10.05 15:54:37
  • [데스크의 눈] 일 잘하는 사람으로 바꿀 때


    한 달쯤 전에 가까운 사람 몇몇이 청와대 모 비서관과 저녁 자리를 함께 한 적이 있다. 그 비서관은 이전에도 몇 차례 만났고, 친한 친구도 낀 터라 격식을 차리지 않아도 되는, 허물없는 자리였다. 폭탄주가 서너순배 도는 사이 청와대 직원들의 처신과 사고방식이 화제에 올랐다.

    “요즘은 자칫하면 인터넷에 ‘(청)와대에 있는 누가 뭐뭐 하더라’라는 글이 오르기 때문에 조심한다. 한잔 마시고 싶어도 갈만한 곳을 찾기가 힘들어서 포기한다.”

    “하긴 얼굴이 많이 노출돼 있으니까, 조심하긴 해야 할텐데…. 그렇다고 사생활마저 없어지는 건 웃기잖아. 와대 직원은 사람 아닌가?”

    “그래도 보는 눈이 워낙 많아서. 강남엔 아예 안 가고, 얼마 전에 촌에서 친구가 왔는데, 마땅히 갈 곳이 없잖아. 강북의 한 허름한 술집에 갔더니 마음이 놓이더군. 그래서 술 고프던 참에 원없이 마셨지.”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친구하고 강남에서 술 좀 마시면 어때?”

    “이 정권이 아마추어라는 비판을 받지만 그래도 도덕성과 청렴성 하나만은 확실한데, 그것마저 망가지면 끝나니….”

    양길승 청와대 제1부속실장이 청주의 K나이트 클럽에서 조세포탈과 윤락행위방지법 위반 등으로 조사를 받고 있는 재력가 이모씨와 술을 마셨다는 보도를 접하는 순간, 그 비서관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도덕성과 청렴성 하나만은 끝까지 지켜야 하는 노무현 정권의 숙명을 모르지 않았을텐데, 측근중의 측근이 왜 그런 처신을 했을까 궁금해졌다.

    시중에는 양 실장의 처신과 관련해 “그 정도로 왜 난리를 치느냐”는 여론도 있다. 양 실장에게도 사생활이 있고, 기본적으로 정치를 한 사람인데, 그 정도도 안하고 어떻게 정치를 하느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애주가의 입장에서 보면 그가 노 정권 출범 5개월여간 ‘방콕’하면서 참고 참았던 술 생각에 서울 강남은 못 가고, 청주로 갔다가 재수없이 걸렸다는 생각도 든다. 지방 나이트클럽의 한적한 VIP룸에 들어가면 얼굴을 알아볼 사람은 없겠지라고 안일한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굳이 청와대의 윤리강령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양 실장이 수사를 받고 있는 사람과 자리를 함께 했다면 오해의 소지가 많다. 역대 정권에서 배태된 국민정서상 그런 행위는 향응 혹은 청탁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본때를 보여준다’, ‘청탁하다 걸리면 패가망신’ 등 노 대통령 특유의 어법을 감안하면 양 실장의 청주 행적은 ‘막 가자는’ 것이나 다름없다. 더불어 그 비서관이 그렇게 지키고자 했던 도덕성과 청렴성은 땅에 떨어졌다.

    그런데 양 실장의 행적을 찍은 ‘몰카’가 한 방송사에 의해 방영되면서 노 대통령과 청와대의 대응이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언론이야 보고 읽는 사람을 생각해서 흥미위주로 흐른다 치고, 사태를 수습해야 할 당사자들이 음모론에 기획 몰카 등 타블로이드 신문이나 좋아할 말을 흘리고 행동하니 실망스럽다. 진상 조사는 담당 부서나 검찰에게 맡기고 청와대는 왜 그런 일이 벌어지는지, 시스템에 문제는 없는지 등을 점검하고 내부 기강확립에 나서야 하지 않는가?

    사회나 집단마다 그 곳에 소속된 다수의 구성원이 가지고 있는 공통적 성격을 사회학에선 ‘사회적 성격’ 이라고 한다. 대체로 전통지향형 (사고방식이나 행동의 기준을 전통적인 가치관에 두는 성격)과 내적지향형 (자신이 옳다고 믿는 내적 가치관에 입각해 행동하는 성격), 타인지향형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를 기준으로 삼는 성격) 등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뉘는데, 한국 사회에는 주로 전통지향형이나 타인지향형이 많다.

    특이하게도 노 정권의 사회적 성격은 내적지향형이라고 한다. 나만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관에 따라 행동하는 이 유형은 다른 유형보다 훨씬 위험하다. 노 대통령이 즐겨 사용하는 ‘코드가 맞는 인물’은 ‘개혁성과 도덕성을 갖춘 인물’이란 뜻으로, 이것 하나만 있으면 경험이 없어도, 경륜이 없어도, 잘 할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 도덕성이 갖는 또 다른 위험성은 어떤 이유에서든 한순간 그것을 잃어버리면 모든 게 끝난다는 점이다.

    흔들리는 국정운영에도 불구하고 노 정권을 버텨주던 도덕성마저 양 실장의 몰카 사건으로 여지 없이 무너지고 있다. 노 대통령은 이번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여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양 실장 문제를 처리하고 조직 개편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정서나 감성, 노선으로 ‘코드’를 맞추기 보다는 ‘일’로 코드를 맞춰야 한다. 일 잘하는 사람으로 청와대를 개편해야 성공한 대통령으로 남을 수 있다.



    이진희 차장 jinhlee@hk.co.kr


    입력시간 : 2003-10-05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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