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 플러스 네이버 북마크 싸이월드 공감 기사 구입 프린트 기사메일
입력시간 : 2003.10.06 09:54:02 | 수정시간 : 2003.10.06 09:54:02
  • [데스크의 눈] 신뢰회복이 시급하다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시골에선 아스피린이 만병통치약이나 다름없었다. 누가 머리가 아프고 열이 나거나, 갑자기 가슴이 딱 막힌 듯이 답답하다고 하면 “아스피린 한 알 먹지”라고 했다. 아침에 속이 쓰려도 아스피린부터 찾았다. 의약품이 부족한 탓도 있겠지만 아스피린에 대한 우리의 신뢰도가 원체 높았다.

    아스피린보다 한참 뒤에 나온 해열진통제 타이레놀의 명성도 그에 못지 않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여성들에게 최고의 두통약으로 선정된 것이 이를 반증한다. 타이레놀이 짧은 시간에 그렇게 높은 소비자 신뢰를 얻게 된 이유를 설명할 때 반드시 인용되는 사건이 하나 있다.

    1982년에 일어난 ‘타이레놀 사건’이다. 한 정신병자가 미국 시카고에서 타이레놀 캡슐에 독극물인 청산가리가 투입하는 바람에 타이레놀 복용자 6명이 사망한 의료 사건이다. 그 사건이 사회에 충격을 주는 것으로 끝났으면 지금까지 인구에 회자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제약회사‘존슨앤존슨’의 대처 방식이 보통사람의 허를 찔렀기 때문이다.

    사건이 나자 회사측은 1억 달러의 광고비를 들여 “원인이 규명될 때까지 타이레놀을 복용하지 말라”는 소비자 경보를 발령했다. 그 결과, 1주일 만에 미국 국민의 90%가 사건 자체를 알게 됐고 30%대에 이르던 타이레놀의 시장점유율은 6%대까지 떨어졌다. 보통이라면 회사든 경영진이든 이런 사건을 본능적으로 쉬쉬하려 했을 것이다.

    존슨앤존슨은 또 사건 발생지역인 시카고는 물론 미 전역에 배포된 타이레놀을 전량 회수해 폐기 처분했다. 그 비용만도 2억5,000만 달러가 들었다.

    회사는 생존을 걱정할 만큼 막대한 경제적 타격을 받았지만 타이레놀은 그 대가로 소비자 신뢰를 얻었다. 타이레놀이 6개월만에 시장 점유율을 회복하고 3년만에 회사 전체 수익의 20%를 차지할 만큼 알짜상품이 된 데는 ‘자기 살을 베어내고 얻은’ 소비자의 신뢰가 있었다.

    반면에 노무현 대통령 취임 6개월을 맞아 각 언론사가 조사한 참여정부 지지도가 취임 초 90%대에서 40% 안팎으로 반토막 난 것은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통상 취임 6개월내에 자기 색깔의 국정운영 철학 및 방향을 설정하고 이를 국민에게 홍보, 신뢰를 얻어야 하는데, 노 대통령은 그러지 못한 것이다. 너무 자주 말을 바꾸고, 원칙을 어기고, 현실과 동떨어진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신뢰는커녕 기왕의 믿음마저 스스로 저버렸다. 노 대통령이 걸핏하면 지적하는 ‘언론 탓’은 아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얼마 전 포항지역 경제인들과 만난 자리에서 “나는 히딩크 체질이다” “초장에는 물을 좀 먹다가 나중에는 잘 나가는 체질 아니냐…”고 지지율 급락을 개의치 않는다는 투로 말했다. 성공한 대통령의 상징인 링컨이나 클린턴 전 대통령을 지향하던 노 대통령이 축구 감독인 히딩크의 체질 운운하는 것도 격에 맞지 않지만 대통령의 현실 인식이 여전히 안이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잘 아는 것처럼 히딩크는 한국 축구팀을 처음 맡았을 때 한국식 사고방식을 뜯어 고치려다 시행착오로 욕을 숱하게 먹었다. 하지만 나중에 ‘월드컵 영웅’이 된 젊은 선수들은 히딩크를 믿고 따랐다고 한다. 네덜란드 국내리그 3연속 우승(86~88년), 유럽챔피언리그 우승(88년), 월드컵 4강(98년) 등 그의 성공 신화는 선수들의 신뢰를 얻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히딩크는 선수들의 신뢰를 바탕으로 자신의 지도 방식을 한국팀에 전수, 월드컵 4강이라는 위업을 이뤘다. 그에 비해 노 대통령에게는 ‘바보 노무현’ ‘노짱’ 성공 신화외에 국민에게 신뢰를 줄만한 행적이 그리 많지 않다. 그것도 대통령이 된 이상 더 이상 쓸모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지난 6개월간 북핵 위기와 금융시장 불안, 세대갈등,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대립, 화물연대 파업, 새만금 사업 중단, 양길승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의 향응 파문에 이르기까지 대통령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는 일만 계속됐다.

    함께 일하는 참모진도 마찬가지다. 히딩크는 축구를 가장 잘 하는 선수들로 팀을 구성했다. 능력과는 상관없이 가깝고 코드가 맞는 사람에게 중책을 맡기는 노 대통령의 고집은 히딩크가 처음부터 타파해야 했던 한국식 온정주의였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노 대통령이 진정으로 나중에 잘 나가는 히딩크가 되기를 원한다면 무엇보다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신뢰는 타이레놀 사건에서 보듯 뼈를 깎는 고통 속에서 쌓여가는 것이다. 번드르한 말 몇 마디로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너무 순진하다. 그건 선거 때나 가능할 뿐이다.



    이진희 부장 jinhlee@hk.co.kr


    입력시간 : 2003-10-06 09:54

  • HOME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