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시몽의 논술 가로지르기] 인간이라고 잘난 척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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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7.05.15 15:28:39 | 수정시간 : 2007.05.15 15:28:39
  • [시몽의 논술 가로지르기] 인간이라고 잘난 척 마라!




    인간은 스스로를 동물이라고 부르기를 주저하며 동물과는 다른 고귀한 특성을 지닌 존재라고 생각한다. (중략) 인간은 대체로 육체적 욕구를 가진 점에서는 동물과 비슷하지만, 도덕적·정신적인 면에서는 동물의 범주를 벗어난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모든 동물은 본능적으로 행동하는 데 비하여, 인간은 의식적으로 행위하며, 스스로 가치를 추구하고 정신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

    -교육인적자원부, 『고등학교 윤리와 사상』

    “지금 80세 노인과 갓 태어난 새끼 강아지가 타고 있던 보트가 뒤집혔다. 당신이 둘 중에서 하나만 구할 수 있다면 어느 쪽을 구하겠는가?”라고 묻는다면, 대부분의 독자들은 “당연히 노인을 구하겠다”고 말할 것이다.

    만약 내가, “노인은 이제 살 만큼 살았으니 갓 태어나 앞길이 창창한 강아지를 구하는 게 낫다!”라고 말한다면? 모르긴 해도, ‘미친 놈’ 취급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뿐만 아니라, ‘그런 인간에게 자녀 교육을 맡길 수 없다’며 학원으로 항의 전화가 빗발치고, 인터넷에는 <‘인간, 개만도 못하다’ 파문>이라는 제목의 기사 밑에 나를 비난하는 수많은 댓글이 붙고, 블로그는 해킹당하고, 귀신같은 누리꾼들은 부모님과 여자 친구 핸드폰으로 악성 문자를 날릴지도 모른다.

    내게 조르다노 부르노(G. Bruno)와 같은 배짱이 있을리 없으므로, 나는 “그래도 개를 구하겠다”고는 차마 말하지 못하고,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단순한 말 실수였다고 변명해야만 할 거다.

    그런데도 자꾸만 궁금해진다. 왜 사람들은 강아지가 아니라, 노인을 구해야 한다고 생각할까? 단지 노인은 인간이고 강아지는 동물이기 때문에?

    우리는 흔히 다른 사람을 비난할 때, ‘짐승만도 못한 놈’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비난의 강도를 높이고 싶을 때는 ‘개만도 못한 놈’이라고 구체적인 종(種)을 지칭하기도 한다. 이처럼 인간들은 자신들이 지구 상에서(한 때는 우주 전체를 통틀어) 가장 우월한 종이라고 생각하며, 인간과 동물은 질적으로 다른 존재라고 여긴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다른 종을 저런 식으로 모욕할 수 있겠는가? 이와 같은 인간 중심적 사고가 형성된 데에는 기독교도 한몫했다(반성할 건 반성하자!).

    성경의 창세기에는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고자 하시고, (중략) 하나님이 그들(인간)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창세기 1장 26~28절)”는 구절이 있다. 결국, 신에 의해서 특권을 부여받은 인간들은 신의 말씀을 따라서 지금도 수많은 생물들을 멸종시키면서 지구를 정복 중이다.

    서두에 적어 놓은 것처럼, <고등학교 윤리와 사상>의 첫 단원은 인간의 특성에 대해서 다룬다. 교과서에서는 인간이 도구적 존재, 유희적 존재, 사회적 존재, 윤리적 존재라는 점에서 다른 동물과 구별된다고 설명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일 거다. 그런데, 정말 인간만이 그런 특성들을 갖는 걸까?

    야생 침팬지는 잎을 씹어 스펀지를 만들고, 나뭇가지를 이용해서 흰개미를 잡아 먹는다. 심지어 어떤 까마귀는 철사를 갈고리 모양으로 만들어서 병에 든 먹이를 꺼내 먹기도 한다. 그 외에도 동물들이 도구를 사용하는 사례는 많다. 그러므로 인간만이 도구적 존재라는 주장은 틀렸다. 인간은 도구를 ‘잘’ 만들 뿐이다.

    다음으로 인간만이 유희적 존재라는 주장을 살펴보자. 동물학자들은 유인원들도 다양한 유희를 즐긴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물론, 놀이공원과 같은 시설은 없다). 하긴, 주린 배만 채우면 남는 것이 시간인데, 놀지 않는다면 무얼 하겠는가?

    그렇다면, 인간만이 사회적 존재라는 주장은 어떨까? 개미, 벌, 물개, 사자, 원숭이, 침팬지, 보노보 등 많은 동물들이 사회를 이루고 살아간다. 게다가 제인 구달이 <희망의 이유>에서 밝힌 것처럼, 침팬지들은 권력을 얻기 위해서 투쟁하고, 협력하며, 심지어는 암살도 한다. 그들은 사회적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이기도 하다.

    내친 김에 인간만이 언어를 사용하고, 문화를 향유한다는 주장도 살펴보자.

    유인원들뿐만 아니라 돌고래나 코끼리의 경우에도 상당한 지능을 갖고 있다. 칼 세이건은 <에덴의 용>에서 5장을 동물의 추상 능력에 할애하고 있는데, 거기에는 침팬지들에게 수화를 가르쳤던 사례가 소개되어 있다.

    침팬지들은 수화를 이용해서 문장을 만들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했으며, 욕설을 발명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말해, 인간을 제외한 다른 동물들(특히 유인원들)이 복잡한 언어를 발달시키지 않은 까닭은 단지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언어를 발달시키도록 하는 압력이 강하다면 유인원들도 언어를 만들고 이를 다음 세대에 유산으로 넘겨줄 수 있다(물론, 뇌와 구강 구조의 제약 때문에 인간과 같은 수준의 언어를 만들 수는 없다).

    한편, <작은 인간>에서 마빈 해리스는 일본의 원숭이 집단에서 과일을 물에 씻어서 먹는 문화가 전파되는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이 사례는 문화를 발명하고, 다음 세대에 전파하는 능력이 인간의 전유물만은 아니라는 점을 알려준다.

    마지막으로 인간만이 윤리적 존재라는 주장을 살펴보자. ‘개만도 못한 놈’이라는 욕설에는 동물들은 윤리라고는 전혀 모르며, 본능만을 따라 살아가는 존재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인간의 마지막 자존심이자 최후의 보루는 바로 윤리다. 인간만이 도구적, 유희적, 언어적, 문화적, 사회적 존재는 아니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그럴 수도 있겠군’이라고 생각하던 사람이라도, ‘인간만이 윤리적 존재인 것은 아니다’라는 주장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동물이 윤리적일 수 있다는 주장의 논증이 매우 어렵다. 이 질문 자체가 인간 중심적이기 때문이다. 만약, 길에 침을 뱉지 않는다거나, 아무 장소에서나 섹스를 하지 않는다거나 하는 구체적 행동들을 바탕으로 윤리적인지 아닌지를 구분한다면 윤리적인 동물을 찾기란 무척 힘들 것이다.

    그러나 모든 윤리의 근본 바탕을 이루는 윤리적 존재의 특성에서 시작한다면 우리는 의외로 쉽게 윤리적인 동물들을 만날 수 있다.

    맹자는 우물에 빠지려는 아이를 바라볼 때 느껴지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의 예를 들어, 인간 본성이 선하다고 주장했다. 맹자의 말을 현대적으로 풀어 보자면, 윤리적 존재란, 다른 존재에게 인위적인 고통을 주지 않으며, 다른 존재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고, 다른 존재의 고통을 감소시키려는 노력을 할 수 있는 존재다.

    고양이 머리에 못을 박거나, 고층 아파트에서 강아지를 집어 던지는 등, 최근 빈번해지고 있는 동물 학대를 보면, 인간이 반드시 윤리적 존재는 아니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실험실의 동물들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어느 경우이든, 그런 상황에서 인간은 동물을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단지 식량이나 실험 대상으로 다룬다. 그것들은 물건이다.

    반면에, 프란스 드 발(Frans de Waal)의 <내 안의 유인원>이라는 책에서 소개되고 있는 사례들은 정말로 충격적이었다(개인적으로 이 책은 윌슨(E. Wilson)의 <통섭>과 더불어, 2006년에 건진 최고의 수확이었다). 유인원들(특히 보노보)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타자의 고통에 민감하며, 공감 능력의 범위는 같은 종을 뛰어 넘는다.

    이 책에는 유리창에 부딪혀 떨어진 찌르레기를 보살피고, 혼자 힘으로 날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쿠니’라는 보노보의 이야기가 나온다. 또한, 동물원 구덩이에 빠진 세 살짜리 어린 아이를 구해서 동물원 직원에게 데려다 주었던 ‘빈티’라는 고릴라의 사례도 소개되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행동들이 왜 단순한 본능에 의한 행동이 아닌지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다양한 사례들을 읽고 있노라면, 오히려 우리의 유인원 친척들이 더 윤리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적어도 그들은 실험이라는 명목으로 원숭이의 두개골을 열어, 전극을 꽂는 짓 따위는 안 하지 않는가! 그리고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발달한, 잔혹하기 그지 없는 고문 기술들은 도대체 다 뭐란 말인가(오! 아부 그라이브여!). 한마디로 인간이 윤리적 존재이기 때문에 동물과 구별된다는 주장은 까마귀 계란찜 쪄 먹는 소리다.

    * * *

    흥분을 가라 앉히고 다시 생각해 보니, 인간에겐 희망이 있다. 도킨스는 <악마의 사도>에서 호모 사피엔스는 고릴라, 침팬지, 보노보와 함께 아프리카 유인원이라고 설명한다. 인류에게 윤리란 무엇인지를 가르쳐줄 친척이 무려 셋이나 있다니 이 얼마나 불행 중 다행인가!

    TOPIA 논술 아카데미 선임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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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시간 : 2007/05/15 15:29




    심원 i2u4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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