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어제와오늘] 함석헌과 와그너의 '5·16 그 후 한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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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7.05.29 12:09:40 | 수정시간 : 2007.05.29 12:09:40
  • [어제와오늘] 함석헌과 와그너의 '5·16 그 후 한 달'


    올해 대통령선거를 7개월 앞둔 5월. 세개의 날-5·16, 5·17, 5·18-이 다시 역사 앞에 섰다.

    그 첫번 째 날인 5월 16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5·16 민족상 시상식에 참석만 했다. 박 전 대표는 사촌형부인 김종필(JP) 전 자민련 총재와 만났지만 직접 대화는 하지 않았다.

    JP는 이날 축사를 통해 덕담을 건넸다. “오늘 특히 귀한 분이 참석하고 계신다”며 “연말에 좋은 결과를 얻어 민족의 내일의 선두를 이끌기 바란다”고 했다.

    JP는 “아까 (축사 때) 이름도 안 불렀는데 (누군지) 다 알더라”며 “12월이면 다 알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1961년 5월 16일로부터 1개월여 후인 6월 25일 새벽녘, 당시 60세를 막 넘긴 함석헌(1901년 3월 13일-89년 2월 4일) 선생은 <사상계> 7월호에 실릴 ‘5·16을 어떻게 볼까’라는 원고를 마무리했다.

    “불안한 맘에 자꾸 생각나는 옛말이 있다.

    ‘뿔을 바로잡다가 소를 죽인다!’

    ‘아이는 죽었어도 학질이 떨어지니 시원하다!’

    써놓고 보면 속과는 딴판 같아 찢어버리고 싶은 넋두리를 하는 동안에 6·25의 밤이 다 샜구나. 3년 전 이 밤엔 잠 못 자고 한 생각을 말했더니 ‘나라 없는 백성이다’ 했다고(<사상계> 58년 8월호) 나를 스무 날 참선시켰지. 이번엔 또 무슨 선물받을까?”

    그는 이 글에서 5·16과 4·19를 비교하면서 썼다.

    “그때는 맨주먹으로 일어났다. 이번은 칼을 뽑았다. 그때는 밤중에 내놓고 행진을 했지만 이번에는 밤중에 몰래 갑자기 했다. 그만큼 정신적으로 낮다.”

    그가 생각하는 혁명에 대해서도 썼다.

    “혁명은 민중의 것이다. 민중만이 혁명을 할 수 있다. 민중의 의사를 듣지 않고 꾸미는 혁명은 아무리 성의로 했다 하더라도 참이 아니다. 반드시 어느 때에 가서는 민중과 버그러지는 날이 오고야 만다.

    즉 다시 말하면, 지배자로서 본색을 드러내고야 만다. 그리고 오래 속였으면 속였을수록 그 죄는 크고 그 해는 깊다.”

    그때 주한미국대사관 정무참사관 그레고리 핸더슨(1924-88년 10월, <소용돌이 정치>의 저자)은 이 글을 영역해 미국으로 보냈다.

    이를 읽었다는 말은 없지만 61년 5·16 때 하버드대학 조교수였던 에드워드 와그너(1924년 8월 7일-2001년 11월 7일)는 <포린 어페어즈> 10월호에 ‘한국에서 미국의 실패’라는 짤막한 논문을 기고했다. 와그너는 하버드대 재학 중 2차대전에 참전, 46~48년 미 군정 외무부서에서 문관으로 일했다.

    49년 하버드대를 졸업한 그는 51년 ‘동아시아 지역학’으로 석사 학위를, 55~58년 서울대 이병도 교수 밑에서 한국사를 연구해 59년 동아시아 언어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그해 조교수가 되었다.

    5·16 쿠데타 당시 35세였던 와그너는 그동안 공부한 한국과 미국의 관계에서 실망과 좌절을 느꼈다. 그는 흥분했지만 침착하게 쿠데타 1개월 후의 한국을 고찰했다. 광복 이후 16년간의 한·미 관계의 고찰이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날로 심해지는 폭정과 무능한 체제 아래 대중의 파멸을 초래한 다년간의 고통이 최고조에 달하면서 봉기가 일어났고 그 결과 이승만은 하야했다.

    이때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성명을 발표하면서 ‘이승만은 위대한 인물이며 애국자인 동시에 국부이다. 그러나 연로한 탓에 약간의 실수가 있었을 것이다’고 이야기했는데, 이는 일반대중이 생각하기에도 매우 옹색한 것이었다.

    이어 5·16 군사쿠데타가 일어났을 때도 미국은 큰 충격을 받았고 매우 곤혹스러워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 국무부는 쿠데타를 온건하게 비난하는 수준에 머물렀으며 오히려 한국의 미래 운명과 이를 좌우하는 쿠데타 주도자들에게 신뢰를 표명함으로써 균형감마저 잃어버렸다.

    또한 미국 의회 역시 한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에 대해 알려고조차 하지 않았다.”

    올해 3월 30일, 와그너 사후 6년 여 만에 와그너의 35년간의 연구논문을 추려 <조선 왕조 사회의 성취와 귀속(일조각 발행)>이라는 책을 엮고 번역한 동아대 이훈상(54) 교수는 ‘미국의 실패’를 요약했다.

    “와그너는 미국 정부가 쿠데타에 단호하게 대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앞서 방대한 경제원조와 한국전쟁 참여 등에도 불구하고 군사쿠데타가 일어나도록 방치한 미국의 실패를 조목조목 제시한다. 이어 미국이 한국 군사체제를 조기에 해체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들고 있다.

    박정희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한 이 글에서 와그너는 한국인의 삶의 방식을 물질적으로 개선할 수 있도록 남한 사회에 처방을 주지 않는다면 미국에게는 세계의 위험한 저개발지역에서 공산주의와 경쟁할 의지나 지혜가 없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끝맺고 있다.”

    박근혜 캠프에 있는 브레인트러스트들은 함석헌과 와그너가 쓴 ‘1961년 5·16 이후 한 달’에 대한 두 글을 꼭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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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시간 : 2007/05/29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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