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시몽의 논술 가로지르기] 새터민 청소년과 정체성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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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7.06.12 11:53:38 | 수정시간 : 2007.06.12 11:53:38
  • [시몽의 논술 가로지르기] 새터민 청소년과 정체성 문제






    들어가기 전에: 필자는 2005년부터 현재까지 새터민 청소년들을 위한 대안학교에서 글쓰기와 음악을 가르치고 있다. 이 글은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쓰여졌다.

    남한 사람들은 새터민에 대해서 양가적 감정을 갖는다. 한편으로는 연민과 동정을 느끼기도 하지만 동시에 두려움과 이질감도 느낀다.

    전자는 ‘우리는 한민족’이라는 믿음에서 기인하고, 후자는 공산주의(혹은 사회주의)에 대한 조건반사적 거부감에서 기인한다.

    같은 민족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으니 새터민들에게 뭔가 도움을 주고 싶긴 하지만, 북한 사람들은 모두 공산주의자로 세뇌되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심지어 ‘혹시 간첩이 아니야?’라는 의심을 갖기도 한다.

    남한 사람들의 이러한 태도 때문에 새터민 청소년들은 남한에서 살면서 정체성 문제를 겪게 된다.

    먼저 민족 정체성 문제부터 살펴보자. 새터민들은 남한 사람들보다 훨씬 더 강한 ‘한민족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남한 사람들의 통일에 대한 관심이 줄어드는 현상을 걱정하고 심지어는 분노하기도 한다.

    또한 자신들에 대한 남한 사람들의 차별을 느낄 때, “어떻게 같은 민족에게 이럴 수 있느냐?”고 분통을 터뜨리기도 한다.

    이처럼 강한 민족 정체성 때문에 새터민 청소년들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북한 사람/남한 사람’이라는 범주를 ‘조선 사람’이라는 상위 범주로 통합하려고 한다. 이를 지난 시간에 다룬 상징적 상호작용의 도식과 연결시키면 다음과 같이 그려볼 수 있다.



    한 새터민 청소년(N)과 남한 사람(S)이 만나서 상호 작용을 하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서로 대화를 하던 도중, 왠지 낯선 말투 때문에 S는 N의 정체성을 의심하게 되고, N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어본다.

    만약 N이 북한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드러내기를 원치 않는다면, 정체성을 숨길 수도 있겠지만(많은 새터민 청소년들은 이와 비슷한 상황에서 강원도 출신이라는 거짓말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N이 ‘남한 사람/북한 사람’이라는 사회적 범주에 연연하지 않고, ‘조선 사람’이라는 범주를 이용하려고 한다면, 북한에서 왔다고 말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S가 가진 범주는 N의 범주와 다르다는 데 있다. 보통의 남한 사람이라면, 북한에서 왔다는 말을 듣고 곧바로 N을 북한 사람으로 규정해 버릴 것이다.

    뿐만 아니라, 북한 사람이라는 규정과 더불어 S의 머리 속에는 북한 사람에 대한 기존의 이미지(선입견)도 함께 활성화된다.

    결국, N은 스스로를 조선 사람으로 규정하지만(N{me}), S는 N을 북한 사람으로 규정한다(N{Me}). 거꾸로 N은 S를 조선 사람이라고 규정하려고 하지만(S{Me}) S는 스스로를 남한 사람으로 규정한다(S{me}).

    S는 N을 동정할 수도 있고, 깔볼 수도 있고, 의심할 수도 있고, 두려워할 수도 있다. S가 어떤 태도를 취하건 N은 정체성이 드러나기 이전과 이후의 상호작용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

    물론, S가 ‘남한 사람/북한 사람’이라는 범주를 활성화했음에도 상대에 대한 배려 때문에, 겉으로는 그 사실을 드러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에도 S의 내면에 ‘남한 사람/북한 사람’이라는 범주가 활성화되어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만약 S가 매우 무례한 사람이라면 ‘북한에서는 다 굶어 죽는다면서요?’, ‘정착 지원금은 얼마나 나왔나요?’ 등 N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는 말이나 행위를 할 수도 있다.

    이때, N은 북한에서 왔다는 이유 때문에, 자신에 대한 S의 대한 태도가 변했음을 알아차릴 것이다. 이제 N은 확실히, S가 자신을 북한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N{Me}=북한 사람).

    즉 내가 규정하는 나(N{me}=조선 사람)와 상대방이 규정하는 나(N{Me}=북한 사람)가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민족 정체성으로 인한 갈등의 핵심이다.

    다음으로 사회 정체성 문제를 살펴보자. 사회 정체성은 개인이 특정한 사회집단의 구성원이라는 사실로 인해 얻게 되는 자기관념이다. 아래의 그림을 보자.



    중국에 있을 때, 새터민 청소년들은 사회적으로 하위 범주에 속했다(n/C). 중국에서 ‘북한 사람’이라는 사회적 범주는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되며(달리 말해, 정체성의 사회적 위계가 낮고), 도망자, 배신자, 불법체류자, 난민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명명(labeling)된다.

    새터민 청소년들은 중국에서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북한 사람’이라는 사회적 범주를 떠나서 ‘남한 사람’으로 ‘사회적 이동’을 하기를 갈망한다(n/C→s/S).

    그러나 새터민 청소년들의 기대와는 달리, 남한으로 이주해서도 ‘북한 사람’이라는 사회적 범주는 사라지지 않는다. 남한 사회에서도 북한 사람은 정체성의 위계가 낮은 사회적 범주(n/S)에 해당한다.

    개인은 자신이 속한 집단이 다른 집단보다 사회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기를 원하며, 이를 통해 자신이 긍정적으로 평가받기를 바란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았을 때, 새터민 청소년들은 남한 사회에서 북한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서는 자신이 원했던 대접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는 남한 사회에서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외집단(남한 사람)에 의해서 내집단(북한 사람)이 부정적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새터민 청소년들이 취할 수 있는 선택은 크게 네 가지이다.

    첫째, ‘북한 사람’이라는 사회적 범주를 떠나서 ‘남한 사람’으로 살아가려는 시도를 해볼 수 있다(①, n/S→s/S).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먼저 남한 사람들이 새터민을 남한 사람으로 인정해 주어야 하는데, 현재 남한의 상황은 그렇지 못하므로 이러한 시도는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둘째, 내집단(북한 사람) 자체를 외집단(남한 사람)과 동등한 사회적 위치로 이동시키기 위해서 노력해 볼 수 있다(②). 그러나 이것은 새터민 청소년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고, 사회적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새터민 청소년들이 선택하기는 어려운 방법이다.

    셋째, 인지적인 차원에서 내집단/외집단의 구분을 소멸시키려는 시도를 할 수 있다(③). 이는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다.

    즉 ‘남한 사람/북한 사람’ 이라는 사회적 범주 자체를 거부하고, 보다 보편적인 사회적 범주(예컨대, 조선 사람)와 자신을 동일시하거나 완전히 다른 차원의 범주(예컨대, 대학생)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이다(대학에 다니는 새터민 청소년들은 대학생이기 때문에 북한 사람이라는 점이 덜 문제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 인지적 차원의 전략이기 때문에, 실제 현실에서 작동하는 ‘사회적 범주’와 그 위계에 영향을 미치기는 어렵다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내집단/외집단의 구분이 효력을 발휘하는 사회 자체를 떠나서 완전히 새로운 사회로의 이동을 시도해 볼 수 있다(④, n/S→s/C). 이러한 시도는 이주를 통해서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단번에 변화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새로 이주한 사회에서 자신에게 할당된 사회적 범주가 어떤 평가를 받을 것인지에 대한 예측이 어렵다는 단점도 있다.

    이는 새터민 청소년들이 남한에 가면 더 대접받고 살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차별을 경험했던 것과 유사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통해 볼 때, 새터민 청소년들은 ③과 ④의 시도를 선호하였다. 여기서는 특히 ④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새터민 청소년들이 중국이나 중국으로의 이주를 고려할 때는 ‘북한 사람’이라는 사회적 범주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이 아니라, ‘남한 사람’이라는 범주와 자신을 동일시한다.

    법적으로 남한 국적을 취득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서 새터민 청소년들은 애초 남한에서 기대했던 사회적 범주(S/S)는 아니지만, 그에 버금가는 대접을 받을 수 있는 범주(S/C)를 선택하는 것이다. 씁쓸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수업시간에 통일이나 새터민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 “우리 세금 축내는 북한 사람들 안 왔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는 학생들이 꽤 많다. 통일에 대해서 부정적인 학생도 점점 늘고 있다.

    이러한 추세를 우려한다면, 통일의 당위성을 주장하기에 앞서, 이미 남한에 살고 있는 북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땅의 통일보다 사람의 통일이 먼저다!

    TOPIA 논술아카데미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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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시간 : 2007/06/12 11:53




    심원 i2u4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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