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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3.10.02 14:49:00 | 수정시간 : 2003.10.02 14:49:00
  • [정권의 황태자] 왕수석, 그는 황태자인가?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 실체적 권능의 2인자 행보로 구설수





    5년의 임기동안 제왕적 권력을 부여받는 대통령. 그 권력의 이면에는 대통령의 눈과 귀, 손과 발을 자처하는 그림자 무리들이 늘 뒤따른다. 그들은 대통령으로 향하는 정보를 함께 공유하면서 국가적 대소사의 결정 과정에 깊숙이 관여한다.



    대통령의 절대적 신임이 유지되는 한 그런 행태는 변함없이 지속되면서 권력의 ‘보이지 않은 손’으로, 권력의 또다른 한 추를 양산하곤 한다. 대통령으로 향하는 길목을 지키며, 중심에 서 있는 그림자 군단의 정점을 우리는 흔히 ‘정권의 황태자’라고 부른다.



    ‘2인자’지위인 정권의 황태자는 정권마다 끊임없이 존재했다. 친·인척에서 아들, 가신급 비서에서 오랜 정치적 동지까지 다양한 루트를 통해 황태자는 생겨나고 또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대통령의 후광을 등에 업고 어떻게 보면 대통령보다 더 대통령 같은, 어떤 때는 대통령보다 더 막강한 힘을 발휘하기도 했다. 불을 향해 부나방들이 날아들 듯이 뭇 세인들은 ‘황태자’ 곁으로 몰려든다. 유혹하고 조르고 회유하고 압박하면서 대통령의 뜻을 대리해서 결정해 주기를 바라게 된다.



    대통령제에서 신임을 받는 측근이 힘을 갖는 일은 당연하다. 하지만 특정한 한 사람에게, 또 권력의 시초 단계부터 등장하는 황태자의 존재는 종종 권력의 누수로 연결되는 틈새가 되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지 갓 100일이 지났지만 벌써부터 청와대 안팎에서는 2인자를 지칭하는 이야기가 들린다. 야당은 물론 대통령 측근에서 조차 그의 이름이 나오기 시작한다. 수석비서관중에 가장 영향력이 세다고 해서 ‘왕수석’이라고도 하고 ‘진짜 비서실장’이라는 비아냥도 들린다. 각종 대형사건의 고비마다 그의 이름이 오르내리면서 붙여진 별칭이다.



    물론 본인은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영향력을 행사한 적이 없다”고 부인한다. 하지만 노 대통령의 생수회사 장수천의 부채 해결과정에서 드러난 용인땅 거래와 관련, 노 대통령의 후원자인 강금원 부산 창신섬유 회장이 “노 대통령을 제대로 보좌하지 못하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리면서 ‘왕수석’ 문재인 민정수석비서관의 황태자식 행보가 본격적으로 도마 위에 올랐다.




    문재인 수석, 막후 해결사로 급부상





    문 수석의 노 대통령 ‘복심(腹心)’ 행보는 당선자 시절부터 시작됐다. 노 대통령 형 건평씨을 겨냥한 유력인사의 인사청탁 문제가 불거지자 당시 노 당선자는 문 수석을 고향으로 급파해 형의 몸가짐 단속을 주문했다.



    문희상 비서실장과 유인태 정무수석과 함께 가장 먼저 청와대에 들어간 문 수석은 후속 인사 문제를 비롯해 각종 현안에 목소리를 냈다. 노 대통령의 친ㆍ인척 관리와 측근들에 대한 엄중 감시 등 민정비수석실 고유의 업무 계획을 발표할 때만 해도 그다지 주목을 받지 않았지만, 그것은 서막에 불과했다.



    부산 고속철의 노선 변경, 보길도 댐 건설, 한총련 합법화, 부산 선물거래소 이전, 화물연대 파업,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실시문제, 조흥은행 매각 등 이해 당사자들의 찬반 대결로 중대 고비가 찾아올 때 마다 그는 사실상의 해결사 역할을 자처했다.



    “문제 있는 곳에 문재인이 있다”라는 파다할 정도로 청와대의 조정 몫을 떠맡다시피 했다. 당연히 모든 업무에서 문재인 쏠림 현상이 두드러졌다.



    한총련 의장을 면담하고 민주당 이미경 의원과 함께 NEIS 담판을 중재하고, 화물연대 파업도 챙겼다. 나아가 5ㆍ18 광주시위에 대해 “경비 경호에 문제가 드러났다. 잘못이 있으면 문책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여 전남경찰청장을 날렸고, 안희정 염동연씨 사건과 관련해서는 “문제될 것이 없다고 판단했으면 무혐의 처리하는 것으로 수사를 종결했어야 하는데…”라며 검찰수사에 대한 훈수도 뒀다. 이밖에 서동만 국정원장 카드를 고집하는 등 인사문제에도 깊숙이 손을 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 수석의 힘은 노 대통령의 절대적인 신임에서 나온다. 노 대통령은 일과 후에도 수시로 그를 관저로 불러 이런저런 문제를 상의하고 특별지시를 내린다는 후문이다. 문 수석에 대해 국정이 시스템보다 특정인의 인치(人治)로 운영된다는 비판이 나오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선 한나라당에서부터 비난이 쏟아졌다. 박종희 대변인은 NEIS 처리와 관련, “왕수석인 문재인 수석의 월권과 청와대의 시스템 경시로 인해 국정 원칙이 파괴됐다”고 직격탄을 날렸고, 김덕룡 의원은 “문 수석이 조흥은행 노조와 대통령의 대화를 주선했다고 하는데 경제를 모르는 민정수석이 노사문제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공박했다.



    결정적인 한방은 적군이 아닌 아군 측에서 터져 나왔다. 노 대통령의 오랜 후원자인 강금원 회장은 “문 수석이 용인 땅 매입문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에 노 대통령에 대한 의혹만 부풀려져 나라 일이 어렵게 됐다”며 “민정수석이 할 일은 내용을 정확히 파악해 정면돌파를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주장했다. 한발 더 나아가 “문 수석 등은 이번 일을 책임지고 사퇴해야 한다”고 까지 압박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측은 “참여정부에 왕수석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문 수석의 중재 역할은 철저히 공적 업무에 따른 것이며 협상과정에서도 주연이 아니라 측면 지원을 하는 중재자였을 뿐”이라고 두둔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해명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따가운 눈총은 가시지 않는다. 이를 의식한 듯 문 수석은 최근 청와대에서 열린 조흥은행 민영화 관련 노정토론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문 수석에 대한 견제 움직임이 내부에서부터 제기되는 데 따른 저자세 움직임이다. 향후 그의 행보가 더욱 주목되는 대목이다.




    반복되는 정권의 황태자





    정권의 황태자는 흔히 국정 운영의 시스템 부재에서 비롯된다. 분야별 단계별로 권한과 책임이 분산되는 시스템이 정상 가동되지 못하다 보니 관계 공무원이나 이해 당사자들이 맨 위쪽인 청와대만 바라보게 되는 것.



    이에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측근들이 전면에 나서면서 ‘비선’이 형성되고 ‘비선’을 거머진 황태자가 출현하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취임 초 청와대 구조를 개편해 각 부처를 담당하던 수석실을 폐지하면서 정부 부처의 자율적 해결기능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익단체들의 요구가 폭증하고 집단적인 세 대결로 사태가 번지면서 정부 부처의 중재 기능은 마비됐다. 시위 현장마다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줄을 이었고 여기서 문 수석이 교통정리에 나선 측면이 강하다.



    물론 인치 몸살은 역대정권에도 있었다. DJ정권에서는 대통령(代統領)이, YS정권에서는 소통령(小統領)이 득세했고 노태우 정권에서는 처고종사촌 동생 등 친ㆍ인척 3인방이 정국을 주물렀다. 이들 주변에는 권력의 부나방들이 들끓었고 비리와 정권 몰락의 단초로 제공되기도 했다. 그들의 말로 또한 비참하기까지 했다.



    6공화국의 황태자 박철언 전 의원은 “새벽이 왔다고 소리치면서도 닭의 목을 왜 비트는지 모르겠다”고 대항했지만 황태자 시절 생긴 적들에 의해 철창 신세를 면치 못했다.



    YS가 ‘K1’으로 불릴 당시 ‘K2’는 차남 김현철씨의 암호명이었다. 권력의 2인자로서 정권 재창출에도 큰 뜻을 품었지만 그 역시 수의(囚衣)를 입어야 했다. DJ정권에서도 두 아들이 구속되면서 이른바 ‘황태자 게이트’를 반복했고, ‘왕수석’의 원조격인 박지원 전 비서실장도 대북 송금 의혹과 관련해 앞날을 점치기 힘든 상황이다.




    절대권력이 빚어낸 예고된 몰락





    왜 한결같이 매 정권에 황태자가 생겨나 세간의 비난을 받다가 결국은 추락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고질적인 정권의 ‘황태자 병’은 제왕적 대통령으로 통하는 절대 권력에서 기인한다”고 입을 모은다. 어려운 시절의 좋은 인연들이 집권 후 부채상환식으로 이어지는데 따른 산물인 데다 여기에 대통령제가 워낙 큰 권력이다 보니 호가호위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그 정점에서 황태자가 필연적으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어 황태자는 대통령으로 가는 모든 정보를 차단하거나 각색하고 결정까지 하는 ‘권력’을 휘두르면서 인너서클내에서 ‘1인 시스템’을 형성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는 것이다.



    황태자는 대부분 정권 말기에 이르러, 대통령의 힘이 빠지면서 레임 덕 현상과 함께 나타나는 게 보통이다. 추상 같은 대통령 면전에서 처음부터 2인자가 득세한다면 어떻게 권위가 서겠는가. 그런 점에서 노 정권의 ‘왕수석’ 문제는 과거보다 더 심각한 현상이라고 하겠다.



    유신정권 시절 독재자 박정희 전 대통령은 황태자 및 2인자 옹립을 절대 간과하지 않았다. 김종필 이후락 김형욱 김재규씨 등을 번갈아 중용하는 ‘다바이드 앤 룰’(devide and rule) 통치술로 권력의 누수를 막았다. 그러나 그도 결국 총기가 흐려져 유신정권의 마지막 황태자인 차지철씨의 2인자 독주 행보를 막지 못했고. 비참한 최후를 맞고 말았다.



    위기는 곧 기마箚?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100여일 만에 징후가 나타난 ‘황태자 증후군’을 초기에 적절히 치유하면 나머지 4년 8개월여가 편안할 수도 있다.



    염영남 기자 liberty@hk.co.kr


    입력시간 : 2003-10-02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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