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 플러스 네이버 북마크 싸이월드 공감 기사 구입 프린트 기사메일
입력시간 : 2003.10.02 16:20:30 | 수정시간 : 2003.10.02 16:20:30
  • [백수탈출] 시절이 원망스러운 우리시대의 '화백'들
    '기 살리기 프로젝트'서 백수탈출 가능성 엿봐





    경기침체로 학교 졸업이 곧바로 실업으로 이어지는 시대다. 주변에는 ‘청년 백수(白手)’가 넘쳐 난다. IMF 위기 직후 불어닥친 정리해고와 함께 찾아온 청년실업, 그 여파로 마치 무능력자인양 낙인 찍혀 시대의 아픔을 통째 안고 살아가는 백수와 백조(여자 백수)들.



    그들은 사실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능력을 펼 곳을 찾지 못한 사람일런지도 모른다. 그들에겐 더 이상 백수탈출의 희망이 없는 것일까? 꽉 막힌 취업난을 뚫기 위해 열정과 패기로 내일을 준비하고 있는 청년 백수들을 만났다.



    서울 송파구 신천동 H유통의 한 회의실. 올해 대학을 갓 졸업한 20대 초ㆍ후반의 젊은 남녀 5명이 한 자리에 모였다. 강희원(28), 김기환(28), 김보인(25ㆍ여), 김지정(23ㆍ여) 박진영(26ㆍ여)씨. H그룹이 추진중인 ‘백수 기(氣) 살리기 프로젝트’의 연수생들이다.




    학벌ㆍ학점 뛰어난 인재들
    불황ㆍ취업난의 희생자




    >> 관련기사 <<
  • 이력서, 구직 그리고 슬픈 자화상
  • 시장사람들의 역동적 삶에 용기 얻어
  • "백수들이여, 시간을 헛되이 쓰지 말라"




  • 다섯 사람은 5월 27일부터 2박 3일간 진행한 ‘백수 탈출’ 연수에 참가해 평균 1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이 그룹 계열사에서 마련한 직업체험프로그램을 시작했다. 기간은 20일. 6월 9일에 시작했다.



    하루 일과는 빡빡하다. 유통업에 대한 전반적인 교육, 고객 서비스 교육, 체인 상품 구성 이해 교육, 상품 매입 및 판매 현장 교육…. 참가자들은 교육장 근처에서 뜬 눈으로 밤을 새우거나 2, 3시간 잠깐 눈을 붙인 뒤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있다는 것이 연수생 대표인 강희원(28)씨의 말이다.



    그래야 짧은 일정 속에서 유통업이란 분야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체험해 볼 수 있다고 한다. 교육 시간에 졸지 않기, 교육 시작 30분 전에 도착하기는 기본. 숨가쁜 교육 일정이 끝나면 배운 내용을 정리해 회사 홈페이지에 일기 형식으로 남겨 놓는 것도 빼놓지 않는다.



    연수생들은 이미 그룹내에서 별명을 얻었다. 이른바 ‘백수 강호’. 가방 끈이 길다는 것도 이들의 공통점이다. 전원이 4년제 대학 졸업 이상의 학력을 지녔고, 김보인씨 등 3명은 대학원까지 나왔다.







    김보인씨는 지난해 8월 대학원 졸업 전에 IT컨설팅 회사에 취직했으나 그해 11월 소속 부서가 없어지는 바람에 졸지에 ‘고학력 백조’가 됐고, 김기환씨는 대학원을 졸업하고 계약직 근무만 되풀이하다 기간 만료로 끝내 일자리를 잃었다. 연수생들 중 막내인 김지정씨는 대학 재학 시절 내일신문의 학생기자로 활동하는 등 언론쪽 특기를 살리고 싶었으나 불명확했던 취업 목표 탓에 졸업 후 자연스레 백수의 길에 접어들었다.



    이 그룹의 구조조정본부 웹기획 홍보팀의 강새봄씨는 “참여한 사람들이 학벌이나 학점 모두가 뛰어난 인재들이다”며 “이런 재원들이 취직이 안 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심각한 취업난을 새삼 깨달았다”고 안타까워 했다.



    그렇다면 왜 능력 있고 혈기 왕성한 이들이 백수 신세를 면치 못하는 걸까. “직장체험 과정 속에서 취직이 안 되는 원인을 보다 객관적으로 평가 받고 싶었다”는 박진영씨. 회사 관계자들로부터 “그저 때를 기다리라”는 위로의 말만 들었다.



    김지정씨도 “만일 못 생겨서 그렇다면 성형 수술이라도 할 텐데, 이렇다 할 명확한 이유를 찾을 수 없으니 더 답답하다”고 하소연한다. 그래도 연수생들 중 어느 누구도 “이 X의 경제!”하며 세월 탓만 하지는 않는 이는 없다. “능력을 키우고 시야를 넓혀 다시 도전할 계획”이라고 입을 모은다.




    처량한 ‘추리닝 복’ 신세
    일단 바쁘게 움직인다






    이들은 또한 ‘무릎 나온 추리닝에 부시시한 머리’로 설명되는 ‘게으른’ 백수에 대한 이미지를 벗기 위해 노력 중이다.



    “아침에 늦게 일어나면 하루가 우울해요. 직장인들은 쉬는 날 어쩌다 늦잠을 자면 ‘잘 쉬었다’하고 치부하지만, 백수는 또 시간을 흘려 보낸 것 같아 후회해요.” 김지정씨의 말에 다른 참가자들도 앞 다퉈 맞장구를 친다. “영어 학원 다녀야지, 자격증 준비해야지 더 바빠요.”



    “백수가 밥은 먹냐” “넌 백수니까 돈 내지 마라” 주변에서 무심코 내뱉는 말은 이들에게 비수가 되어 가슴에 꽂힌다. 한 참가자는 “백수가 이렇게 처참한 거구나 새록새록 느낀다”며 울먹이기도 했다.



    다른 참가자는 지난해 회사를 그만두면서 결혼을 약속했던 이를 떠나보내야 했다. 무려 8년을 만나온 사이였다. 그는 “당장 일 자리가 없다는 것도 문제였지만, 냉엄한 현실을 못 깨달았다는 점 때문에 더욱 실망했던 것 같다”며 가슴 아픈 사연을 털어놓는다.




    짧은 직장체험
    희망얻고 사회를 봤다






    7월4일이면 이들의 직장 체험은 마무리된다. 김기환씨는 “유통 현장에서의 경험과 전공인 전자공학을 접목해 유통 분야의 전산 관리에 도전할 계획”이라고 목표를 밝혔다. 김보인씨는 “그 동안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분야를 접하면서 보람을 느낀다”며 “어디를 가든 열심히 하겠다는 마음가짐을 굳건히 한 것이 가장 큰 소득”이라고 말했다.



    짧은 직장 체험을 접고 본격적으로 드넓은 사회를 향해 날개를 펼 준비를 하고 있는 이들. 땀 흘려 일하는 즐거움을 배운 이들은, 백수가 아닌 ‘예비 사회인’이다.



    배현정 기자 hjbae@hk.co.kr


    입력시간 : 2003-10-02 16:22

  • HOME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