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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3.10.02 16:21:21 | 수정시간 : 2003.10.02 16:21:21
  • [백수탈출] 시절이 원망스러운 우리시대의 '화백'들
    긴 불황터널서 외롭고 고달픈 구직행보





    청년(15~29세) 실업자 36만 명 시대. 실업률 7.2%로 좀체 낮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1년 6개월째 백수로 놀고(?) 있는 박모(29)씨의 취업 좌우명은 “보이는 문은 다 두드려라”다. 어디를 가든 항상 옆구리에 끼고 다니는 낡은 보라색 가방 속에는 늘 10여 통의 입사 지원서가 구비돼 있다. 1년 6개월간 지원서를 낸 것만 무려 380여 회.



    박씨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오전 9시 대학 도서관에 도착하자 마자 컴퓨터를 켰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퀭한 눈을 부비며 E-메일을 확인한다. 그러나 역시 퇴짜였다. 오늘도 합격 소식을 알리는 연락은 오지 않았다. 반송된 입사지원서만 3통. 그저 한숨만 난다.



    곧바로 취업정보 사이트에 접속했다. 1시간 동안 사이트를 뒤진 끝에 원서를 낼 만한 곳 4~5곳을 찾아냈다. 3곳은 즉시 전자우편으로 서류를 접수하고, 나머지 1곳은 우편 접수만 받는 곳이라 근처 우체국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오라는 데 있으면 어디라도”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그에게 두려움은 없었다. 1남 3녀의 막내로 태어난 그는 빠듯한 형편에도 비싼 대학 등록금을 내준 부모와 누나들에게 보답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공부했다. 영어 경시대회 입상이 보증하는 영어실력과 만점에 가까운 학점. 미남은 아니라도 누가 봐도 번듯한 외모까지, 자신감이 넘쳤다. 친구들도 “네가 제일 성공할거야”라며 추켜세우곤 했다.



    그러나 첫 직장이었던 중소기업을 스스로 그만둔 것이 불행의 씨앗이자 백수의 시작이었다. 좀더 안정된 회사에 들어가기 위한 선택이었지만, 결과는 지금까지 백수를 면치 못한 것에서 보듯 참패. 면접은 커녕, 서류 전형만 붙어도 이제는 “잘 했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백수생활 중에 취직에 보탬이 될까 싶어 따 둔 자격증만 7개. 학원비와 시험 접수비로 들인 돈만 600만원이 넘는다. 남들보다 배는 따놔야 안심이 됐다. 토익 점수와 전산사무ㆍ컴퓨터 자격증을 기록하다 보면 이력서 앞뒤가 빼곡이 채워진다. 아직도 실력이 부족한 것일까. 아니면 여전히 눈이 높은 것일까.



    최근 채용정보사이트 잡링크(www.joblink.co.kr)가 남녀 구직자 3.08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구직 활동을 하는 동안 입사 희망 조건을 낮췄다고 답변한 응답자가 전체의 65.9%를 차지했다. ‘연봉을 낮춰 지원했다’는 응답이 30%로 가장 많았고, ‘기업규모를 가리지 않고 지원했다’(24%), ‘업ㆍ직종을 가리지 않고 지원했다'(16.5%)는 등의 응답이 뒤를 이었다.



    박씨도 마찬가지였다. 월급, 회사 규모, 업무 성격…. 18개월간 백수로 지내며 까다롭던 그의 취업 식성은 이미 다 사그라졌다.



    그렇게 눈높이를 낮춰 얼마 전 한 학습지 회사 입사 시험에 합격했다. 4대 보험에 월 급여 250만원의 관리직이었다. ‘돌 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넌다’는 심정으로 두 번이나 전화로 조건을 확인하고, 면접시 회사 관계자에게도 거듭 확인을 받았다. 3차에 걸친 까다로운 면접 시험 통과. 합격 통보를 받았을 때는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다.




    회원모집원 발령에 북받치는 설움







    그러나 가족과 친구들의 축하를 받으며 의기양양하게 출근한 첫 날, 그는 또 한번 비정한 사회의 이면을 경험해야 했다. 관리직 임용을 재차 확인하고 출근했건만 그에게 주어진 일은 회원 모집이라는 영업직이었다.



    일정 회원을 모은 뒤에라야 관리직 팀장으로 발령이 난다는 것이 회사측의 설명이었다. ‘그토록 기뻐하던 가족들에게 뭐라고 해야 하나!’ 목울대에서 설움이 북받쳤지만 그는 입사 첫 날 바로 그만두고 말았다. 하룻만에 다시 백수로 돌아갔다.



    그기 기거하는 서울 강북 미아리의 5평짜리 자취방은 그야말로 허름하다. 살림살이라고는 다 찌그러진 냄비와 라면 몇 봉지가 전부. 마음 같아서는 당장 대전의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구멍 가게로 근근히 생계를 이어가는 어머니를 볼 면목이 없다.



    70세를 넘긴 연로한 어머니는 녹내장을 앓고 있다. “수술비만이라도 벌어서 드릴 수 있다면, 까무러치도록 열심히 일할 자신이 있다”며 그는 초점 없는 눈으로 허공을 바라본다.



    방세가 2개월째 밀려 있다. 카드 대출금은 오래 전에 바닥이 났다. 남은 건 신용불량자라는 딱지 뿐이다. 과외 아르바이트를 해서 연체금을 조금씩 갚아가고 있지만, 쥐꼬리만한 아르바이트비는 불어나는 이자를 감당하기에도 벅찰 지경이다.




    “이러다 평생 실업자 될라” 불안





    빚보다 더욱 두려운 건 평생 백수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기업 230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채용계획에 따르면, 조사대상 기업의 38.7%가 지난해보다 신규 채용을 줄이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하반기 채용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그에게는 한숨만 나오게 하는 소식이다. 그럼에도 정부가 최근 청년층의 구직난 타개를 위해 직업훈련 예산으로 책정한 금액은 1,550억원. 지난해보다 750억원이나 줄었다.



    과연 올 하반기에는 백수를 탈출할 수 있을까. 그는 그 생각만 하면 한여름에도 오싹해진다.







    취업 한파속 '프리터족' 증가
       



    "아르바이트로 생계 유지해요"





    청년실업이 두드러지면서 특정한 직업 없이 겹치기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는 젊은 층이 늘고 있다.



    채용정보업체 잡링크가 최근 구직자 3,15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31%가 “현재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 중 2개 이상의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구직자는 46%, 3개 이상은 37%, 4개 이상은 17%를 차지해 대부분 겹치기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프리터(Freeter, Free+Arbeit)족’이다. 90년대 초반 일본에서 경제불황을 맞은 젊은이들의 삶의 방식을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개념. 한 가지 전문 분야에 매진하는 프리랜서와 달리, 갖가지 아르바이트를 가리지 않고 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들이 취업 대신 아르바이트를 하는 주된 목적은 취업 한파를 피하기 위해서다. “취업난 때문에”라고 이유를 밝힌 응답자가 55%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그런가 하면 ‘자유로운 시간 활용을 위해’(25%), ‘기업의 획일적인 조직문화가 싫어서’(11%), 직장생활로 받는 스트레스가 싫어서‘(5%) 등 한 직장에 묶이지 않고 자유롭게 시간을 활용하고자 하는 이들도 상당수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배현정 기자 hjbae@hk.co.kr


    입력시간 : 2003-10-02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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