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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3.10.05 14:26:56 | 수정시간 : 2003.10.05 14:26:56
  • [檢의 칼] 정대표는 '검찰개혁' 본보기?
    헌정사상 초유의 집권당 대표 사전구속영장 청구



    송광수 검찰총장이 전국 특수부장 회의에 앞서 국민의례를 하고있다.
    최흥수 기자



    “정대철 대표가 이 사건과 무관하다면 당당하게 출석해 해명한 뒤 귀가하면 될 것 아닌가.”



    야당 대변인의 여당 비난 논평이 아니다. ‘놀랍게도’ 검찰이 민주당 정대철 대표에 대한 사전 구속영장 청구 직후 내놓은 ‘공식’ 보도자료에 담겨있는 문구다. 불과 몇 개월전만 해도 상상조차 어렵던 검찰 관계자의 강경발언은 그러나, 정 대표에 대한 연이은 공세 속에서 어느덧 자연스러운 풍경으로 여겨질 정도가 됐다.



    그리고, 정치인 20여명이 굿모닝시티 대표 윤창열씨로부터 금품을 받았다는 ‘초대형 게이트’의 전야에 ‘무서운’ 검찰의 모습은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무서운 검찰, 쩔쩔 매는 정치권





    사실 정 대표에 대한 검찰의 대응 방식은 파격의 연속이었다. 이런 모습은 정 대표의 4억원 수수 의혹이 언론에 보도된 7월 10일부터 감지되기 시작했다. 비밀주의를 지고의 가치로 여겼던 검찰이 의외로 언론 보도를 부인하지 않는 듯한 태도를 보인 것이다.



    검찰은 14일 정 대표가 출석거부를 공식 선언하자 소환을 둘러싼 그 동안의 줄다리기 과정을 낱낱이 공개하고 정식 출석요구서를 발송하는 강수를 두기도 했다. 검찰에 따르면 정 대표는 지난 9일 전화 소환통보에 불응의사를 밝혔다가 다음날 먼저 전화를 걸어와 15일 출석을 약속했다는 것.



    그러던 정 대표가 14일 돌연 출석거부를 공식 선언한 이유가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게 검찰의 소환과정 공개 이유다. 특히, “정 대표가 자신의 약속대로 15일 오전 출석할 것으로 믿는다”는 신상규 서울지검 3차장의 압박성 발언은 국민에게 ‘주객전도(主客顚倒)’의 카타르시스까지 안겨 줄 정도였다.



    검찰은 이후 두 차례나 더 출석요구서를 발송한 끝에 18일 전격적으로 집권 여당 대표에 대한 사전 구속영장 청구라는 헌정 사상 초유의 조치를 취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정 대표측을 비롯한 민주당 의원들이 각종 비난 발언과 검찰총장의 국회 출석 의무화 방안 등을 거론하며 압박을 가해 왔으나 검찰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검찰 내부에서도 놀랄 만큼 강도 높은 정치권 비난 발언들이 검찰쪽에서 쏟아져 나왔다. “대형경제사건인 굿모닝시티 분양비리 사건 수사를 정치자금 수사로 몰아가려는 일부 정치인들의 태도는 통탄할 일”이라는 신 차장의 발언이 대표적인 예다.



    ‘국민의 정부’ 말기인 지난 2월 민주당 김방림 의원을 구속할 때까지 5년 동안 단 한명의 현역 의원도 구속하지 못했던 DJ 검찰을 떠올리면 그야말로 괄목상대(刮目相對)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검찰의 이런 모습이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은 아니다. 되짚어보면 참여정부 출범 이후 지금의 검찰을 예감할 수 있었던 대목이 적지 않았다. 단초는 평검사들이 제공했다. 평검사들은 참여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 3월 강금실 법무부 장관 주도의 ‘물갈이 인사’를 문제 삼아 ‘검찰 인사권 독립’문제를 사회적 이슈화시켜 노무현 대통령과의 대화 자리를 이끌어냈다.




    꾸준히 감지돼온 변화 징조





    송광수 검찰총장 취임 이후 이뤄진 나라종금 정ㆍ관계 로비 의혹 수사는 또 하나의 전기였다. 특히, 대통령의 측근인 안희정 전 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 부소장에 대한 두 차례의 영장청구는 잇따른 영장 기각과 사전각본설 등 각종 음모론에도 불구하고 검찰을 다시 보게 만든 중요한 사건이었다.



    송 총장이 법무부에 정보보고 폐지를 공식 요청한 것도 예사롭지 않은 대목이다. 검찰의 입장은 각 지방청에서 이뤄지는 수사내용을 담은 정보보고 중 일부만 선별적으로 법무부에 보내겠다는 것. 다시 말해 법무부를 통해 검찰 수사내용이 청와대와 정치권으로 고스란히 전달된 뒤 외압으로 변화해 내려오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겠다는 말이다.



    가장 최근의 사건은 송 총장의 ‘검은 돈과의 전쟁’ 선포다. 6월 말 전국 특수부장 회의에서 제기된 이 명제는 한 마디로 요약하면 정ㆍ관계 인사들의 금품수수 행태를 엄하게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합법적 후원금이라도 대가성?인정되면 처벌하고 형량이 낮은 알선수재 혐의 대신 최고 무기징역형까지 선고될 수 있는 알선수뢰 혐의를 적용하라는 송 총장의 권고는 정 대표에 대한 사전 영장청구 과정에서 모두 반영됐다.



    검찰을 둘러싼 환경도 나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갔다. 우선, 노 대통령 본인이 “더 이상 검찰 수사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검찰로서는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의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또한, SK수사 과정에서 이상수 민주당 사무총장과 김진표 경제부총리 등이 섣부른 개입을 시도했다가 혼쭐이 나는 등의 ‘학습효과’까지 뒤이었다. 검찰과 법무부의 이원화라는 강 장관의 소신도 한몫을 했다.




    검찰 바로서기 전기될까





    법조계에서는 이런 정황들을 고려, 정 대표에 대한 조치를 검찰의 ‘바로서기’ 시도가 비등점에 오른 사건으로 평가하고 있다. 뒤집어 보면 더 이상 사건 외적인 측면에 휘둘릴 경우 존립 자체가 어려울 수도 있다는 검찰의 냉철한 현실 판단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는 것이다.



    사실 국민의 정부 5년 동안 검찰은 참담할 정도로 망가졌다. 각종 권력형 비리 사건마다 은폐 의혹이 불거지면서 재수사가 이뤄졌다. 세 차례의 특별검사 임명을 방관할 수 밖에 없었던 것도 참기 어려운 수모였다. 더 이상의 위상추락을 보고 있을 수 없게 된 검찰로서는 돌파구 마련이 절실할 수 밖에 없는 상황.



    정 대표에 대한 영장청구만으로 검찰이 바로 섰다고 인정하기는 이르다. 당장 굿모닝시티 수사과정에서도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정 대표를 처리한다 해도 청와대 고위관계자 등 의혹 대상자들이 하나같이 만만치 않다. 벌써부터 “정 대표는 청와대로의 확전을 막기 위해 선택된 희생양”이라는 등의 음모론은 물론, 여야를 막론한 정치권의 압박이 쇄도하고 있는 것도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검찰이 호기를 잡았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대검 홈페이지에는 실로 오랜만에 검찰에 대한 국민의 격려 메시지가 줄을 잇고 있다. 검찰이 말 그대로 한 점 의혹 없는 수사를 통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전기를 마련할 것인지, 아니면 또 다시 ‘꼬리 자르기’의 병폐를 되풀이함으로써 국민의 기대를 배반할지 당분간 관심을 갖고 지켜볼 일이다.



    박진석 기자 jseok@hk.co.kr


    입력시간 : 2003-10-05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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